1335화. 감찰의 신분 (1)
성경 출입구.
빛이 파동을 일으켰다. 일단의 사람이 그 안에서 걸어 나왔다. 바로 성경 내부에 큰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온 정위 일행이었다.
정위의 얼굴은 한껏 굳어 있었다. 무량원에 불이 났다. 덕분에 정위의 심정은 말이 아니었다. 입구에서 나와 정상에 오른 정위 일행은 휙휙 부근에 있는 수결산장으로 날아갔다.
금시와 날짐승 등, 연락을 취할 수 있는 물건은 성경 안에서 엄격한 관리를 받았다. 마음대로 가지고 나갈 수도, 가지고 들어올 수도 없었다. 그리고 수결산장의 역할이 바로 그 규정으로 인해 불편한 부분을 보충하는 것이었다. 수결산장의 주요 업무 중의 하나가 바로 성경의 인원들이 성경을 드나들 때 그들의 날짐승을 관리하는 것이다.
정위의 신분으로 당연히 법력을 써서 뛰어다닐 리 없었다. 산장에서는 그의 탈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장로님, 왔습니다.”
산장의 누각에서 진관이 우유도에게 신호를 보냈다.
마침 누각의 높은 곳에서 배회하던 우유도가 고개를 들어보니, 정위 일행이 산장으로 오고 있었다. 웃었다. 예상대로 과연 정위가 돌아왔다.
우유도는 두말하지 않고 빠르게 누각을 내려가서 성큼성큼 걸어 정위 일행에게 다가가 포권을 하며 예를 올렸다.
“각주님을 뵙습니다.”
정위가 멈춰 서더니 싸늘한 눈빛으로 우유도를 보며 말했다.
“네가 여기서 뭐 하느냐?”
우유도는 두꺼운 낯짝으로 말했다.
“맡은바 직분이 있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정위가 콧방귀를 뀌었다. 마음대로 하라지, 지금 정위는 우유도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는 다시 성큼성큼 전진했고, 그 뒤로 피풍이 바람에 휘날렸다.
우유도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그 뒤를 따르며 말했다.
“마침 저도 선생님께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공교롭게도 여기서 선생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정위도 멈추지 않고 말했다.
“말해라!”
우유도가 뒤를 바짝 따르며 말했다.
“이곳을 순찰하다 사람들이 무량원이 불탄 일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만약 사실이라면, 소인도 무량원을 한번 살펴보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무량원을 보고 싶다고? 기가 찬 정위는 헛웃음을 짓고는 곧 표정을 굳혔다. 수결산장에서 급히 준비한 날짐승 앞에 선 정위가 경고했다.
“우유도, 무량원은 네가 갈 곳이 아니다.”
“각주님께서는, 감찰 인원이 무량원의 일을 조사하는 걸 금지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딱히 별말 아니었다. 단지 말하는 우유도의 말투가 살짝 괴이했다. 듣는 사람에게 쓸데없는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의미심장한 말투였다.
정위가 돌연 고개를 돌려 우유도를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하마터면 발작을 할 뻔했다. 우유도의 말투가 음흉했는데, 마치 정위가 고의적으로 감찰이 무량원의 문제를 조사하는 것을 막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속셈이 있는 것 같았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정위는 분노를 꾹 참고는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량원의 일은 따로 조사할 사람이 있다. 네가 가봤자 뭘 밝혀내겠느냐.”
“홍운법의 일도 감찰 인원이 밝혀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참으로 의미심장한 한마디였다.
정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우유도를 빤히 바라보았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묻고 싶었다. 그야말로 간덩이가 부은 것 같았다. 감히 이런 식으로 자신과 대화하다니, 만약 감찰이라는 신분이 없었다면, 만약 감찰 인원의 생사대권이 정위의 손에 있었다면, 정위는 지금 당장 우유도를 죽여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우유도를 죽일 수 없었으니, 우유도와 계속 말싸움하는 것도 시간 낭비에 불과할 뿐이었다. 저놈의 주둥아리는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한 번도 말싸움에서 지질 않았으니, 계속 말해봤자 자신만 답답해질 뿐이었다.
그러니 뭐라고 할까? 결국, 고민하던 정위는 별말 하지 않고 앞을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곧 몇 마리 날짐승이 날아올랐고, 곧이어 일단의 사람들이 뛰어올라 그 위에 올라타더니 하늘을 날아 멀어져갔다.
우유도가 가는 것을 승낙하지 않았지만, 거절하지도 않았다. 중요한 것은 감찰 인원의 목적이 표묘각을 감찰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량원은 명목상 표묘각에 속해 있었다.
“빨리!”
우유도는 서슴없이 진관과 가정걸을 부르더니 자신들이 올 때 타고 왔던 날짐승에 빠르게 올라타고는 먼저 날아간 정위의 뒤를 쫓아갔다.
귓가에 바람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관과 가정걸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우유도가 이런 식으로 정위와 대화하는 이유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장로님, 정말 이런 식으로 정위의 노여움을 사는 것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진관이 걱정스럽다는 듯, 우유도에게 당부하듯이 말했다. 사실 우유도에게 정위의 분노가 쏟아진다면, 자신들에게 그 불똥이 튈까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우유도가 하하 웃으며 말했다.
“노여움? 진즉에 노여움이란 노여움은 이미 다 샀다. 이번 한 번 더 한다고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정위는 신분이 높고 큰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맞다. 하지만 우리를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으로선 그에게 우리를 처벌할 권한이 없다.”
두 사람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우유도가 자포자기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가정걸이 말했다.
“장로님, 무량원은 최대한 멀리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어찌 무량원에 가시려는 것입니까?”
“다른 사람이 피하기 때문에 우리는 가야 한다. 무량원에 그렇게 큰일이 났는데, 감찰이라는 사람이 감히 물어보지도 못하면, 그게 감찰의 모습이라 할 수 있느냐? 나는 성존이 진노하실까 봐 두렵구나, 그러니 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너희는 무량원을 한번 구경해 보고 싶지 않으냐? 그러니 빨리 저 뒤를 쫓아라.”
가정걸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지령을 흔들어 날짐승을 전속력으로 몰았다.
곁에 있는 사람의 보고를 듣고 정위가 뒤돌아보았다. 우유도가 정말로 따라오고 있었다. 정위는 화가 났다. 하지만 성존들이 걸어 놓은 제한 때문에 우유도를 건들 수 없었다. 처리하려 해도 나중에 따로 기회를 마련해야 할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유도 일행이 정위 일행을 따라잡고는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 이들이 움직이고 있는 하늘은 무척 푸르렀고, 아래 펼쳐진 땅 또한 광대하기 끝이 없었다. 그렇게 끝없이 펼쳐져 있던 숲 사이에 풀에 탄 흔적이 역력한 큰 구역이 나타났다. 정위 일행이 무량원 근처에 도착한 것이다.
하지만 정위는 급하게 내려가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을 이끌고 주위를 맴돌며 불에 탄 구역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그렇게 높은 하늘에서 주변을 한참 살피고는, 다시 조금 아래로 내려가 또 한참을 살펴보았다. 그러고 나서야 일행은 한 언덕 위에 내려섰다. 정위가 앞으로 나서 표묘각 각주의 영패를 꺼내 들고 눈앞에 검게 그을린 산야를 향해 소리쳤다.
“문을 열어라!”
그렇게 잠시 기다리자, 허공에 한줄기 푸른 선이 나타나 빛을 뿌리며 허공에서 흔들렸다. 그리고 얼마 후, 푸른 빛을 뿜어내던 선이 천천히 두 갈래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 두 갈래 선 사이에서 푸른 빛을 머금은 투명한 반구형의 공간이 나타났다. 그 안에는 산과 물이 흐르고 있었으며, 정자와 누각이 마치 허공에 생겨난 것처럼 갑자기 나타났다.
투명한 반구형의 빛무리 옆에 작은 입구가 나타났고, 그 안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걸어 나왔다. 가장 선두에 선 사람은 백발의 노인이었는데, 그가 입을 열었다.
“각주는 무슨 일로 여기 오셨소?”
정위가 영패를 수습하고는 대답했다.
“큰일이 났다기에 한번 와봤소.”
백발노인이 말했다.
“여기 상황을 알 것이오. 저들을 모두 들어오게 할 수는 없소. 수행원은 두 명이면 충분할 것 같군.”
정위가 끄덕이며 좌우를 둘러 보았다.
“너희 둘은 나와 같이 들어가고, 나머지는 여기 남아있어라.”
그때 한쪽에서 듣고 있던 우유도가 다급한 마음에 빠르게 앞으로 나와 말했다.
“정 선생님, 그럼 저는 어찌합니까?”
정위는 우유도를 무시했다. 하지만 우유도는 놀랍게도 다짜고짜 정위 앞으로 나서 백발노인에게 다가가더니 노인 앞에서 물었다.
“선배님, 저희는 성존의 법지를 받고 표묘각을 감독하고 있습니다. 저희도 들어갈 수 없습니까?”
진관과 가정걸은 정말 장로님에게 뭐라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 뒤를 한발 한발 따를 뿐이었다.
“법지에 따라 감찰을 한다고?”
백발노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정위를 바라보았다.
“이 말이 사실이오?”
정위가 거기에 대고 뭐라 말할까. 그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백발노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우유도에게 별말 하지 않고, 우유도 앞에서 옆으로 비켜섰다.
비록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하긴 했지만, 검사는 받아야 했다. 성존들을 제외하고, 무량원에 드나드는 모든 사람은 검사를 받아야 했고, 일반적으로 어떤 물건도 가지고 들어갈 수 없었다.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것이라고 하면 무량원 내부 인원들의 일상용품이 다였다. 일상용품도 들어가기 전에 엄격한 검사를 받아야 했다.
한 사람이 세 사람에게 둘러싸여 몸수색을 받았다. 정위조차 피해 가지 못했고, 고분고분 몸수색을 받았다.
무기를 포함한 일체의 장식품은 모두 밖에 풀어 놓아야 했다.
확실히 문제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정위 등 사람들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사람들이 무량원 안에 들어가자, 방호대진의 입구가 다시 빠르게 닫혔다. 곧 진법이 수축하더니 푸른 빛이 번쩍하고는 그대로 허공에서 사라졌다.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눈앞에 있던 산과 물들이 그렇게 사라졌다. 그렇게 그들의 눈앞에는 검게 그을린 땅만이 남았다.
반면,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본 바깥의 상황은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었다. 바깥의 모든 것이 여전히 선명하고 확실하게 보였다. 아주 신비로웠다.
안으로 들어온 우유도는 여기저기 두리번거렸다. 금지에 처음 들어온 것이다 보니 호기심이 없을 수 없었다.
“성존이 오셨었다고 들었소만?”
백발노인과 같이 움직이던 정위가 물었다. 백발노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건이 발생하고 다음 날부터 한 분씩 오셨소. 다만 오래 머물지는 않으시고, 직접 상황을 묻고는 가볍게 살펴보신 후, 곧 떠나셨소.”
비록 말을 가볍게 했지만, 정위는 노인의 말투에서 성존들이 크게 진노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무량원 사람들이 꾸지람을 듣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우유도는 정신없이 주변을 돌아보았다. 무량원은 무릉도원 같았다. 누각과 정자가 들쭉날쭉한 산 지형 곳곳에 세워져 있었으며, 운치가 있었다. 뒤를 따르던 우유도는 줄곧 지형을 관찰하고 있었다. 무량원 안에 있는 입구와 창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머리를 내밀고 일행을 구경하고 있었다.
다만, 그렇게 움직이는 와중에 우유도는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상대방은 우유도를 발견하고 매우 놀라고 있었다.
바로 누각의 난간을 짚고 있는 오풍이었다. 오풍의 두 눈에는 경악이 가득했다. 누가 왔나 싶어 밖에 나와봤더니 거기서 우유도를 발견한 것이다. 물론, 그의 놀란 표정은 금세 차분해졌다. 경악한 표정을 계속 드러내고 있어 봤자 자신에게 좋을 것이 없었다.
얼마 전에 우유도를 만났을 때, 자신이 며칠 후에 무량원에 방문할 거라고 말했었다. 다만 그는 그저 우유도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로 무량원에 찾아오다니!
하지만 곧 그 앞에 있는 정위를 보고 난 후에야 어찌 된 상황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정위를 따라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