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군-1357화 (454/1,000)

1357화. 미안해요

둘은 잠깐 침묵했다. 결국, 현미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대를 벗어나 뒤돌아 서문청공을 바라보았다.

등불이 아름다운 미인을 비추었다. 그 모습이 앵두처럼 아름다웠고, 비단옷 아래로 은근하게 보이는 곡선과 방금 목욕을 마친 실내의 향기가 더해져, 마치 최면 작용을 하는 것 같았다. 서문청공은 감히 그녀를 직시하지 못했다.

“밖에 있는 호위들이….”

서문청공이 입을 열었을 때, 현미가 그 말을 끊었다.

“제가 물러가라고 지시한 것이에요.”

서문청공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왜 그랬소?”

현미가 웃었다.

“왜 그리 멀리 서 있나요? 제가 아름답지 않나요?”

서문청공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매우 아름답소! 그대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보는군.”

현미가 발걸음을 옮겨 천천히 다가왔다.

눈앞에 분위기에 서문청공은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았고, 목이 타들어 가는 듯, 그는 연신 마른침을 삼켰다.

현미가 그의 눈앞에 멈춰 섰다. 더는 다가가지 않고, 애정이 가득한 반짝이는 두 눈으로 서문청공의 두 눈을 빤히 마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움직여, 허리를 묶고 있는 비단 끈을 풀어 입고 있는 겉옷을 천천히 벗었다.

부드럽게 휜 어깨선과 정교한 쇄골, 속옷 아래 보이는 풍만한 가슴과 개미같이 얇은 허리, 쭉 뻗은 다리와 백옥같은 피부가 드러났다.

서문청공은 엄청난 인내심을 발휘해 시선을 옆으로 옮기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다.

“날이 춥소.”

현미가 그대로 움직여 서문청공에게 몸을 밀착시켰다. 까치발을 든 그녀는 부드러운 두 팔을 들어 그의 목을 껴안았다.

서문청공은 매우 난처한 얼굴이었다. 이대로 밀어낼 수도, 같이 껴안을 수도 없었다. 마침내 참지 못하겠다는 듯, 그는 붉어진 얼굴로 현미에게 물었다.

“현미, 왜 이러는 것이오?”

현미가 그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오늘 당신에게 시집갈게요. 저를 당신에게 줄게요. 대답해주세요. 당신은 저를 원하나요, 원하지 않나요?”

서문청공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그는 두 손을 천천히 들어 현미를 껴안으려다가 다시 멈칫했다. 하지만 결국은 강하게 그녀를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

원한다! 당연히 원한다!

그가 지금껏 그녀 곁을 지킨 것이 무엇을 원해서인가? 바로 그녀를 위해서, 그녀를 원하기 때문이었다!

곧 침궁 안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소곤거리는 소리, 거친 숨소리, 부드럽고 격렬한 마찰 소리가 들려왔다. 곧 현미의 몸은 크게 고달파졌지만, 그저 그렇게 서문청공이 모든 것을 토해낼 수 있게 내버려 두었다….

모든 것이 잔잔해진 후, 격한 호흡 사이로 두 사람이 발가벗고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

그렇게 호흡을 가다듬은 후, 서문청공의 가슴에 엎드린 현미가 속삭였다.

“미안해요!”

서문청공은 그녀의 뜻을 오해했다. 그에게 너무 오랫동안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는 줄 알았다. 그는 부드러운 현미의 등을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내게 미안해할 건 아무것도 없소. 모든 것은 내가 자초한 것이오.”

현미가 눈을 감았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위국의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제국에 세 명의 군주를 시집보내려 했어요. 하지만 제국에서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며….”

잠꼬대하는 것처럼, 그녀는 제국 황자가 위국에 데릴사위로 오는 일에 대해 서문청공에게 털어놓았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서문청공의 귓가에는 벼락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한참 멍하니 있던 그가 돌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현미의 어깨를 붙잡고 밀어내며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현미의 뺨에서 생전 볼 수 없었던 눈물이 마치 끈이 끊어진 진주처럼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현미가 어렵게 고개를 저었다.

“청공, 내가 가장 잘 알아요. 지금 위국의 상황으로는 진국의 공세를 막을 수 없어요. 나뿐만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에요. 다들 위국이 어렵게 버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지금 같은 시기에 사람의 마음이 그 무엇보다 중요해요. 사람의 마음을 모아 한판 붙어 볼 수 있어야, 위국을 지켜낼 가능성이 있는 것이에요!”

서문청공은 현미를 흔들며, 마치 분노한 야수처럼 말했다.

“말해보시오. 제국이 당신을 협박한 것이오?”

서문청공의 생각은 단순했다. 남녀 사이의 이런 일은, 보통 여자 쪽이 손해를 보기 마련이었다. 그는 제국이 지금 기회를 틈타 현미에게서 어떤 이득을 취하려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의 눈에, 현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또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여인이었다. 분명 그런 그녀를 얻고자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미는 서문청공이 무슨 뜻으로 그리 말했는지 알고, 가슴 아프게 울며 말했다.

“청공, 그런 게 아니에요. 제국이 그렇게 하는 것은 모두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예요. 제국도 체면을 내려놓았어요. 제국 입장에서, 미혼의 황자를 데릴사위로 저같이 늙은 과부에게 보내는 것은 그야말로 천하의 웃음거리지요. 그런데도 제국이 그러는 것은 그들도 지금 상황이 제국에게 극도로 불리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일단 위국이 무너지면, 제국은 혼자서 진국을 막지 못할 거에요.”

“제국 또한 사실 큰 손해를 감수했다 할 수 있어요. 제국은 체면 불고하고 우리 위국의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이에요. 제국은 제가 위국의 민심을 모아 진국에 대항하기를 바라고 있어요. 위국이 모든 힘을 모아 진국의 발목을 잡고, 진국의 힘을 소모하게 하길 바라고 있어요.”

“청공, 지금 전쟁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국은 위국 국경을 파죽지세로 돌파했고, 민심이 흉흉해지고 있지요. 일단 민심이 떠나면, 위국은 철저하게 무너질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제국은 아주 과감하게, 체면이 상하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황자를 데릴사위로 보내겠다고 했어요. 그것은 위국의 사람들에게 제국이 위국을 끝까지 도울 것이라는 결심을 보여주어, 사기를 올리려 하는 것이에요! 그러면 최소한, 지금 흔들리고 있는 사람들의 태도를 늦출 수 있겠지요.”

“제국의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청공. 위국이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어요. 이 혼인이 너무 필요해요!”

서문청공이 비통하게 말했다.

“필요? 무엇이 필요하오? 그것이 지푸라기를 잡는 것과 무엇이 다르오? 현미, 이런 식으로 뜻을 굽히지 맙시다. 차라리 진국과 목숨 걸고 싸워, 깔끔하게 죽읍시다. 어찌 이처럼 구차해지는 것이오?”

현미가 흐느끼며 말했다.

“목숨 걸고 싸운다고요? 누가요? 우리 둘만으로 진국의 선봉 부대를 막을 수 있나요? 우리는 우리 아래 있는 수천수만의 장병들이 필요해요. 군심과 사기가 없다면, 민심이 없다면, 어찌 싸우겠어요? 청공, 모든 사람이 다 우리 같지는 않아요. 평온할 때는 수많은 사람이 위국에 충성하는 것처럼 보이지요. 하지만 위기가 닥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뒷길을 도모하는지 아시나요? 지금 민심의 향배가 그 무엇보다 중요해요.”

서문청공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승낙했소?”

현미가 고통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이번 전쟁에는 너무 많은 사람의 생사가 걸려있어요. 만약 제가 쉽게 포기한다면, 죽어간 부모님을 볼 낯이 없어요. 또 위국의 무수한 신민들을 볼 낯이 없지요. 청공, 이건 내가 마땅히 책임져야 할 일이에요!”

확!

좀 전까지 그녀와 뜨겁게 몸을 섞던 서문청공이 현미를 밀어내고 그대로 침상에서 내려오더니, 그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지금 이건 뭐 하는 짓이오? 미안한 마음에 보상이라도 해주는 것이오? 날 뭐로 보는 것이오?”

“아니에요!”

현미는 벌거벗은 몸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빠르게 침상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서문청공을 강하게 끌어안더니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말했다.

“청공, 내가 제국의 황자와 혼인하더라도, 그건 명목상일 뿐, 절대 그자와 진실로 부부가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제국도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을 거예요. 상황을 안정시키기만 한다면, 그 즉시 그자와 이혼하고, 제국으로 내치겠어요. 또, 난 아직 제국에 요구에 승낙하지 않았어요. 당신이 한마디만 한다면, 당신이 동의하지 않으면 이번 혼인을 바로 거절하겠어요!”

현미의 말에, 서문청공이 뒤돌더니 현미의 얼굴을 붙잡고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는 마치 발버둥 치는 것 같은 얼굴로 크게 소리쳤다.

“난 동의할 수 없소!”

현미는 웃고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눈물을 닦아내고는 고개를 들어 서문청공을 보고 말했다.

“좋아요! 당신이 동의하지 않으면, 저도 승낙하지 않겠어요!”

아주 단호하고 화끈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서문청공은 오히려 멈칫했다.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들었지만, 오히려 너무 쉽게 얻은 것 같았다. 현미가 이렇게 쉽게 대답할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그를 꺼림칙하게 했다.

하지만 현미가 승낙했으니, 결정 난 게 아닌가! 그는 다시 기뻐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를 얻고 나면, 그다음에는?

눈앞에 가련한 모습으로 울며 웃고 있는 현미를 보며 서문청공의 가슴이 아려왔다. 아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그가 현미 옆에 남아있는 것은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 현미는 서문청공을 위해, 자신이 평생토록 지켜온 위국을 버리려 하고 있었다. 현미는 마치 자기 허벅지 살을 베어내어 서문청공을 위해 주겠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기뻐해야 정상인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가 없었다. 그녀를 얻었다! 하지만, 정말로 얻은 것인가? 내가 이대로 그녀와 떠나간다면, 나는 혹시 그녀의 소중한 것을 모두 앗아가 버리는 게 아닐까? 쉴 새 없는 고뇌가 그의 머리를 울려왔다.

현미는 아주 강한 여자였다. 그녀는 눈물을 보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얼마 전에 일어난 그런 소란 속에서도, 자신의 동생을 가뒀을 때도,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린 적이 없었다. 그런 여자가 지금 이렇게 자신 앞에서 엉엉 울고 있었다. 지금 그녀의 고뇌가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서문청공의 속이 턱 막혀왔다.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던 두 손이 천천히 그녀의 눈물을 닦아냈다.

그런데도 그녀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현미는 고개를 저으며 그에게 닦아내지 말라고 하며, 이마를 그의 가슴에 대고는 계속해서 미안하다고 중얼거렸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두 사람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 서문청공은 인제야 조금씩 뭔가를 깨닫고 있었다. 낮에 금영찬은 자신을 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제야 서문청공은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또 깨달았기 때문에 그의 얼굴에는 참담한 미소가 걸렸다.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일찍이 현미는 순차적으로 권력을 이양하고 그와 같이 떠나기로 했다. 하지만 위국에 변고가 생겼고 이로 인해 위국을 떠날 수 없게 되었다. 이후, 현미는 위국을 떠나지 않는 대신, 위국 상황을 안정시킨 후에 그에게 시집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약속도 결국 어그러졌고, 결국 현미는 다른 사람의 부인이 될 것 같았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그는 서서히 한 가지를 깨달았다. 결국은 자신이 무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무력으로 현미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다면, 그녀를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무력이 이토록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경지가 높고 강한 실력이 있으면 뭐 하는가. 자신의 검 한 자루로, 위국의 위기를 구해낼 수 있는가? 아니다! 자신의 검으로는 위국의 위기를 구해낼 수 없었다. 오히려 현미의 지혜가 위국의 위기를 해소할 수 있었다.

자신은 진국의 대군을 물리칠 수 없었다. 기껏해야 적진으로 파고들어 병사 몇백이나, 수행자 몇십 명을 베고 장렬히 전사할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현미는 가능했다. 그녀는 말 한 마디로 진국의 대군을 멈출 수 있었고, 후퇴시킬 수도 있었다.

대체 지금까지 내가 검을 갈고닦은 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사랑하는 여자 한 명도 지키지 못하는 검 따위,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금단방 일 위라는 게 개뿔, 이제 와서는 허명이었고 아무 의미도 없었다.

이제는 막연한 마음뿐이었다. 그의 경지는 위국 사람들의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현미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고 있지 않았다.

남자로서 이토록 무능하다니. 무슨 낯짝으로 현미에게 뭔가를 요구할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