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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370화 (467/1,000)

1370화. 애원

잠시 후, 귀의의 제자가 거주하는 장원의 대문이 열렸다. 곽만이 얼굴을 내밀어 문밖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의아해하며 물었다.

“누구시죠? 무슨 일로 오셨나요?”

문을 두드린 차불지가 몸을 틀어 등 뒤에 있는 소유아를 보여주었다.

“영왕부의 왕비께서 무심 선생님을 뵙길 청합니다. 낭자께서는 안에 기별을 넣어 주십시오.”

계단 아래서 간절한 얼굴을 하고 있던 소유아가 최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왕비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허리를 숙여 문지기 같아 보이는 곽만에게 최대한 공손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조금이라도 상대방의 호감을 사기 위해서였다.

“영 왕비님?”

곽만이 중얼거리더니 두 눈을 번쩍이며 상대방을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쿵!

문은 정 없이 다시 굳게 닫혔다.

문밖에 있는 사람들은 결과가 어찌 될지 알 수 없었다. 저 문 안에 있는 집 주인은 대내총관 보심의 체면도 깔아뭉갠 사람이었다. 어쩔 수 없이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내부,

수많은 병과 통들이 즐비한 곳 중앙,

양피지로 만들어진 책을 살펴보며 무심은 양피지에 기록된 제조 방법에 따라 약물을 만들고 있었다.

약 냄새가 강하게 나는 한쪽에서는 안보여가 어떤 식물의 뿌리를 갈고 있었다. 그녀는 무심의 지시에 따라 약 분말을 만들고 있었다.

그때, 곽만이 안으로 들어와 무심에게 다가가더니 보고했다.

“선생님, 영왕부의 왕비께서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무심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잠시 후 뒤돌아 그가 물었다.

“어느 영왕부의 왕비라고 했지?

곽만이 웃었다.

“경성에 영왕부가 몇 개 있겠습니까. 삼 황자 호진의 왕비입니다.”

무심이 순간 들고 있는 양피지를 움켜쥐었다. 호흡은 다소 거칠어졌고, 침을 꿀꺽 삼켰다.

“여긴 뭐하러 온 거지?”

한쪽에 있던 안보여가 고개를 들었다. 지금 무심은 평소에 말을 할 때와의 모습과는 매우 달랐다. 마치 조금 떨고 있는 것 같았다.

곽만은 무심의 반응을 유심히 살피더니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방금 선생님께 말씀드린 것처럼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아니….”

무심은 다소 불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내 말은, 왜 나를 만나러 왔냐는 거야.”

곽만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선생님, 왜 그러시나요? 당연히 영왕 호진이 중독되었기 때문이겠지요. 그전에 대내총관 보심도 그 일 때문에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영왕비가 자신의 남편을 구하기 위해 온 것임을 선생님이 모르시지 않을 걸로 생각합니다.”

무심은 천천히 손에 든 양피지를 내려놓고 망설였다. 한참이 지나 곽만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만나시겠어요?”

안보여의 두 눈이 번뜩였다. 무심은 마치 크게 긴장한 듯했고, 그의 가슴에는 큰 기복이 있었다. 그녀는 수행자였기에 그의 호흡이 심하게 흐트러졌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무심이 갑자기 뒤돌아 빠르게 양방의 입구를 나섰다. 그러더니 또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고, 자신의 의복을 확인하고는 다시 눈을 들어 대문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마치 차마 뭔가를 마주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다시 양방으로 들어가더니 한마디 했다.

“만나지 않겠다!”

같이 나와 상황을 살펴보던 안보여와 곽만은 다시 뒤돌아 약방 안으로 들어간 무심을 보았다. 그리고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모습을 보면, 분명 뭔가 이상했다!

하지만 어쨌든 명령은 명령이었다. 곽만은 약방을 떠나 다시 대문으로 가더니 문을 살짝 열었다.

문을 열자 문밖에 서 있던 사람들이 희망 가득 찬 눈빛을 보내왔다. 소유아는 두 손을 마주 잡고 그야말로 간절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곽만이 입을 열자 사람들은 절망에 빠져들었다.

“왕비님, 돌아가십시오. 선생님께서 만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너무나 당연한 대답이었고, 예상한 답변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답변이기도 했다.

소유아가 그 즉시 애원하며 말했다.

“아가씨, 천첩이 선생님의 얼굴을 한번 보는 것도 어려울까요?”

평소였다면, 곽만은 아마 이미 문을 닫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소유아에게 큰 흥미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급하게 문을 닫지 않았다. 그저 계속해서 상대방을 위아래로 살펴보며 좋은 말로 다독였다.

“왕비님, 절 난처하게 하지 말아 주십시오. 선생님이 정하신 규칙입니다. 만나지 않겠다고 하시면 누가 와도 소용이 없습니다. 예전에 제국 황제 폐하가 찾아와 만나기를 청했지만, 선생님은 마찬가지로 만나지 않으셨습니다. 설마 왕비님이 황제보다 더 대단하시단 말입니까?”

“천첩이 어찌 감히 폐하와 비견되겠습니까. 다만 천첩의 남편은 지금 생사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제발 제 남편을 살려주십시오.”

소유아가 울었다. 두 손으로 치마를 붙잡고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선생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왕비님.”

차불지는 그 모습을 지켜볼 수 없어 그녀를 부축하고자 했다. 하지만 소유아는 그 손을 거절했다. 곽만이 한숨을 내쉬었다.

“왕비님,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으신가요. 왕비님도 아시겠지만, 이 문 앞에 무릎을 꿇은 사람은 왕비님이 처음이 아닙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과거 수많은 사람이 이 앞에 무릎을 꿇고 선생님께 애원했지요. 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한 번 만나지 않겠다고 하시면 만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 관례를 깨뜨린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돌아가시지요.”

소유아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께서 저를 위해 관례를 깨뜨리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선생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수락하지 않으시면, 일어나지 않겠습니다!”

곽만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마음대로 하세요.”

그리고는 뒤로 들어가 문을 닫아 버렸다.

쿵!

문이 닫히자, 골목은 곧 조용해졌다. 오직 소유아의 울음소리만이 골목에 울릴 뿐이었다.

“왕비님, 만나지 않겠다고 하니, 저희도 이만 돌아가시지요!”

차불지가 소유아를 설득하며 말했다. 하지만 차불지의 설득에도 소유아는 오히려 고개를 숙여 절을 하며 애원했다.

“선생님, 자비를 베풀어 제 남편을 살려주십시오! 선생님, 자비를 베풀어 제발 제 남편을 살려주십시오….”

차불지 일행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왕야를 구하고자 하는 왕비님의 마음을 보고, 막을 수도, 그렇다고 막지 않을 수도 없게 되었다. 아까 왕비의 결심이 얼마나 독한지 보았다. 이대로 왕비를 강제로 왕궁으로 끌고 가면, 혹 잘못된 결심을 할까 두려웠다.

골목 입구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호연위 일행은 다들 말문이 막혔다.

“새언니….”

호청청이 이를 악물고 있었다.

“선생은 무슨, 내가 보니 목석간장(*木石肝腸: 나무나 돌처럼 딱딱하고 굳은 마음씨를 일컫는 말)에 잔인한 놈이 분명해. 아니, 어쩌면 사람도 아닐 거야. 만약 나중에 내 손에 걸리기만 하면, 저놈의 심장을 꺼내서 무슨 색인지 확인하고 말겠어.”

한쪽에 있던 수행자가 경고했다.

“말을 주의하십시오!”

“흥!”

호청청이 입을 삐죽거렸다. 그리고 골목 안에서 계속해서 절을 하는 여자를 보며 말했다.

“새언니가 정말 셋째 오라버니에게 진심인 것 같아.”

호연위가 그 모습을 보고 중얼거렸다.

“저런 아내를 얻는다면, 남편으로서 더는 무슨 소원이 있을까!”

호청청이 그 즉시 싸늘한 눈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마음에 안 든다는 말이야?”

“허! 네 생각은 어때?”

호연위가 입만 웃는 얼굴로 다시 골목 안에 절을 하고 있는 여인을 턱으로 가리키고 말했다.

“좀 배우지그래.”

호청청이 두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나보고 너를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흥, 꿈 깨라지. 아주 그냥 어디 가서 죽어버리지그래?”

호연위가 눈을 치켜뜨고는 중얼거렸다.

“좋아, 아주 좋아. 그래야 너답지.”

약방 안,

곽만이 들어오자, 양피지를 들고 있는 무심이 즉시 물었다.

“돌아갔나?”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지금 문밖에 무릎을 꿇은 채, 선생님이 남편을 살려주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무심의 얼굴에 비웃음이 걸렸다.

“정말로 부부 사이에 애정이 깊나 보군, 무릎까지 꿇다니.”

그리고는 계속해서 손에 든 양피지를 살폈다.

곽만과 안보여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무심과 지낸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무심의 성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지금 두 사람은, 무심이 이처럼 남을 비웃는 말을 하는 경우를 처음 보았다.

무심은 이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계속해서 연구에 집중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문득 밖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린다는 것을 깨달은 곽만이 잠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보고했다.

“영왕비가 아직도 밖에 있습니다. 지금도 계속 절을 하며 선생님께 살려달라 애원하고 있습니다.”

무심은 침을 꿀꺽 삼킬 뿐, 침묵하고는 계속해서 손에 든 양피지를 살피고만 있었다.

그러나 곽만과 안보여는 무심이 양피지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양피지는 들고 있지만, 이미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는 것 같았다. 좀 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잠시 후, 곽만이 다시 대문에 가서 문틈으로 밖의 상황을 관찰했다.

그렇게 양방과 대문 사이를 몇 번 왕복했을 때, 무심이 갑자기 먼저 물어왔다.

“아직 있나?”

“아직 있습니다. 여전히 절을 하며 애원하고 있습니다. 척 보기에도 크게 지쳐 보이는 모습이었습니다.”

무심이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두 손은 양피지를 꽉 붙들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 두 눈을 뜬 무심이 손에 든 양피지를 내려놓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문을 열어라!”

“어….”

곽만이 멈칫하더니 다시 물었다.

“승낙하시려고요?”

“그녀를 들여보내라!”

“알겠습니다!”

곽만이 뒤돌아 빠르게 대문으로 향했다.

덜컥!

대문이 열렸다. 이번에는 활짝 열렸다.

문밖에 있는 사람들이 다들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이미 지친 몸으로 계속해서 절을 하고 있던 소유아도 힘겹게 고개를 들어, 목소리를 쥐어짜며 더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선생님, 자비를 베풀어 제발 제 남편을 살려주십시오!”

“왕비님, 일어나세요. 선생님께서 들어오시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크게 기뻐하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소유아가 크게 기뻐하며 급히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다리가 이미 굳어있었다.

한쪽에 있던 사람들이 빠르게 달려와 소유아를 부축했다. 한 여 수행자가 그녀의 등에 손을 대고 법력을 불어 넣어 주어 혈액이 순환되도록 도왔다.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한 소유아는 즉시 좌우 사람들을 물렸다. 그녀는 감히 주인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못하겠다는 듯, 한시라도 빨리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소유아와 같이 들어가려던 수행원들은 곽만에 의해 저지당했다.

“다른 분들은 여기서 기다려 주십시오. 선생님께서는 번잡한 것을 싫어하십니다.”

그렇게 소유아가 안으로 들어가고 문이 닫혔다.

“이게 된다고?”

입구에서 바라보던 호청청은 넋을 잃었다. 그리고는 곧 크게 소란을 피웠다.

“비켜요, 저리 비켜요. 나도 가서 절을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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