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2화. 사칭
무심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잠시 바라보더니, 갑자기 또박또박한 말투로 물었다.
“그대는 지금 나보고, 당신의 남편을 구하라는 것이오?”
말하는 사람은 그럴 뜻이 없었으나. 듣는 사람이 다른 마음이 있었는지, 그 말을 들은 소유아는 마음이 왠지 모르게 섬뜩했다. 자신도 모르게 다시 상대방의 외모를 살펴보았다. 착각일 수도 있지만, 상대방의 한마디가 참으로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그러나 상대방의 눈빛은 비할 바 없이 차가웠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급박했다. 소유아는 잡념을 지우며 두 손으로 치마를 붙잡고 다시 무릎을 꿇으며 애원했다.
“선생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내가 왜 그대의 남편을 구해야 하는 것이오?”
소유아가 즉시 말했다.
“선생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왕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반드시 최선을 다해 선생님을 만족시켜 드리겠습니다.”
그리고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바닥에 머리가 부딪칠 정도로 절을 했다.
무심은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았고, 그 눈빛에 고통스러움이 스쳐 지나갔다.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그가 말했다.
“남편과 깊은 애정이 있는가 보오.”
절을 하고 있던 소유아의 몸이 순간 멈칫했다.
“내가 원하는 것을 그대는 줄 수 없소! 난 아무것도 필요 없소.”
소유아는 무심이 거절하는 줄 알고 고개를 들어 당황하며 말했다.
“선생님, 무슨 조건이든지 말씀만 하십시오.”
“그대에게 조건을 제시하지 않겠소. 다만 이왕 그대를 만났으니, 그대는 이대로 돌아가 남편을 이리로 보내시오. 치료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장담을 할 수는 없소!”
그 결과에 소유아는 다소 의외였다. 여기까지 오면서 고민했던 수많은 설득의 말들을 할 필요도 없었다.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라는 소문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만나서 말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승낙하다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크게 기뻐한 소유아가 연신 감사 인사를 하며, 다급히 일어나,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황급히 남편을 보내기 위해 움직였다.
곽만이 소유아를 따라 움직였다. 이곳은 외부인이 함부로 돌아다녀도 되는 곳이 아니었다.
안보여가 무심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예전에 왕비를 만난 적이 있으십니까?”
“저 왕비를 아느냐고?”
무심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그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외부인이 사라지자, 그의 얼굴에 드디어 고통스러움이 떠올랐다.
“음….”
갑자기 신음을 내뱉은 무심은 가슴을 움켜잡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곧이어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렸다.
“선생님!”
안보여가 대경실색하더니, 급히 무심을 부축했다.
“약…. 약…. 약을 줘….”
무심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통을 호소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안보여가 그를 바닥에 누이고는 그 소매에 손을 넣어 약을 꺼냈다.
무심을 오랫동안 따르다 보니, 무심에게 심교통(心絞痛)이라는 고질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번 고통이 시작되면 매우 고통스럽고, 빠르게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안보여든 곽만이든 간에, 무심에게 그토록 고명한 의술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을 치료할 수는 없느냐고, 당연히 물었었다.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해서 무심은 답하지 않았다….
* * *
성 안에 있는 거리의 한 장원,
그곳에 일단의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났고, 급히 장원을 포위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사람이 그 안에 뛰어들었고, 주위에 있는 옥상에서 사람들이 나타나 경계를 서기 시작했다.
장원 안에 들어간 사람들이 수색했지만, 개미 새끼 한 마리조차 찾을 수 없었다.
한 거한이 마당에 서서, 냉혹한 얼굴을 하고, 독수리의 눈으로 주위를 관찰했다.
그는 바로 변장을 한 교사대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조사하고 있는 곳은 바로 소평파가 얼마 전까지 머물던 곳이었다.
아무런 단서도 없는 상황에서 이토록 빠른 속도로 소평파의 거점을 찾아냈다. 이를 보면, 제경에 거미줄처럼 뻗어있는 교사대의 능력이 정말 대단하다 할 수 있었다. 일단 힘을 집중하기만 하면 정말로 정보력이 엄청났다.
장원 내부를 수색하던 사람들이 서로 만나 의견을 교환하더니 그중에 한 사람이 냉혹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와 포권을 하고 보고했다.
“대인, 사람들은 모두 떠났습니다. 하지만 현장에 남아있는 흔적을 보고 판단하자면, 이곳을 떠난 지 채 한 시진이 지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희가 한발 늦었습니다!”
“한 시진이 지나지 않았다고?”
“확실합니다.”
남자는 다시 주위를 살펴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곳은 목표가 머물렀을 가능성이 아주 큰 곳이구나.”
“그럴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교사대를 전면적으로 동원한 후, 전력을 다해 조사했고, 단서를 찾았습니다. 그 전에 수행계의 누군가가 변장을 한 진국 수행자가 이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저희가 오랫동안 지켜보던 진국의 밀정이 이곳에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그 두 가지를 결합하면,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시진!”
냉혹한 남자가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수색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났다는 말이구나?”
“그렇습니다.”
“일찍도 아니고, 늦게도 아니고, 하필 우리가 행동을 시작한 후에 떠나다니, 우리 내부에 첩자가 숨어있을 가능성이 있구나. 이 일은 돌아가서 처리하도록 하자.”
남자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지금 즉시 각 성문에 있는 인원들에게 연락해 성문을 지나는 의심스러운 사람은 그가 누군지를 불문하고 모두 잡아들이라고 전해라! 경성에 숨어있던 진국의 밀정들은 이미 우리의 감시하에 있다. 지금 즉시 그를 습격해 비밀리에 잡아들여, 목표의 행방을 확인해야 한다!”
“그분께서 딱 잘라 말씀하셨다. 이번 어명은 결과만 보고 과정은 보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러니 교사대의 행사를 막거나 따르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자가 누구든지, 그 자리에서 참하라!”
“이곳도 그냥 놔둘 수 없다. 사람을 시켜 감시하게 해라. 혹시라도 등잔 밑이 어두워 예상치 못한 반격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보고자가 대답했다.
성문 밖.
한 남자가 강가에 있는 부두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강가에 멈춰있는 수많은 화물선을 살피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뭔가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곧 그 남자는 수많은 선박 중, 한 선박의 처마 밑에 새장이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 안에 세 마리의 작은 새가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주위를 살펴보던 남자는 새장이 걸려있는 선박으로 향했고, 그대로 위에 올라탔다. 선박의 선두에서는 맨발의 선원이 노끈을 꼬고 있다가, 선박에 올라탄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 남자는 그대로 배에 걸려있는 새장을 자기가 내리더니 새장을 열고 두 마리 새를 꺼내 날려 보냈다. 그는 한 마리만 남은 새장을 닫아 다시 처마 밑에 걸어 놓았다. 할 일을 마친 그는 그 아래 앉아 기다렸다. 혼자가 된 새는 새장 안에서 이리저리 날뛰며, 짹짹거렸다.
곧 선박 안에서 두 사람이 걸어 나왔다. 한 사람은 사주를 경계했고, 한 사람은 선주를 불러 지시를 내렸다.
“화물이 모두 모였으니 출발하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선주가 큰소리로 외쳤다.
“출발이다!”
선두에 있던 선원이 손에 든 노끈을 놓고 선박과 부두를 연결한 줄을 풀었다. 선박 안에서 몇몇 선원이 나와 긴 장대로 땅을 밀어 선박을 강 중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다른 선원은 돛을 올렸다.
작지 않은 화물선에 선원들이 서로 웃고 떠들며 질서정연하게 할 일을 찾아서 하기 시작했다.
출발을 명령한 남자는 처마 밑으로 가서 마지막 한 마리 새를 날려 보내더니, 비어있는 새장을 다시 처마에 걸어 놓았다.
그렇게 두 번 연달아 세 마리 새를 날려 보낸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자는 그대로 몸을 돌려 선창으로 들어갔고, 전자는 그 뒤를 쫓았다.
두 사람이 모두 안으로 들어갔을 때, 주위를 경계하던 사람도 그 뒤를 따라 들어가 문을 닫았다.
세 사람은 바닥의 뚜껑을 열어 계단을 따라 선저에 내려갔고, 마지막으로 내려간 사람이 다시 뚜껑을 닫았다. 한 사람이 선저에서 유등에 불을 붙였다.
유등이 흔들렸다. 선박이 방향을 바꾸어 나아가기 시작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등을 밝힌 사람은 뒤돌아 선박에 오른 남자에게 다가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변장을 풀어 보시오. 효과가 어떠한지 확인해야겠소.”
“알겠습니다.”
나중에 선박에 오른 남자가 대답하고는 목덜미의 피부 부분을 잡아당겨 얼굴의 변장을 뜯어냈다. 그곳에는 우유도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나타나 있었다.
두 남자는 비록 예상하고 있었지만, 눈앞에 ‘우유도’가 나타난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서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남자에게 다가가 여기저기 자세히 살펴보았다.
두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바로 변장한 단호와 오삼양이었다. 그들은 명령을 받고 이 남자를 마중 나온 것이었다.
가짜 우유도의 얼굴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단호가 말했다.
“몸의 상처를 보여주시오.”
남자는 웃옷을 벗어 상반신을 드러냈다. 단호와 오삼양은 주위를 돌며 자세히 살펴보았다.
흉터를 확인한 오삼양이 혀를 차며 탄식했다.
“새로운 흉터의 느낌이 전혀 없소. 귀의의 제자라더니, 과연 명불허전이오. 이처럼 천의무봉하게 사람의 얼굴을 바꿀뿐더러, 몸의 흉터까지도 재현할 수 있다니.”
“옷을 입고, 다시 변장하시오.”
단호는 남자에게 배에 탈 때의 모습으로 다시 변장하라고 말했다. 남자는 원래 모습으로 변장을 한 후,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길래, 나보고 우유도를 사칭하게 하는 것이오?”
단호가 물었다.
“그게 중요하오?”
남자가 다소 조급해하며 말했다.
“어째서 중요하지 않소? 우유도는 성경에 있소. 내가 만약에 밖에서 얼굴을 드러내면, 사람들은 다들 내가 가짜인지 알 것이오. 도대체 날 이용해 뭘 하려는 것이오?”
“당신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소? 아니면 당신을 다시 사문으로 돌려보내고, 당신의 장문인에게 당신이 그의 딸을 어떻게 간살(奸殺)했는지 설명해주길 바라는 것이오?”
남자는 그 즉시 입을 다물었다. 오삼양이 말했다.
“최소한 우리는 당신을 도와 거짓으로 죽게 했고, 당신이 더는 추격받지 않게 도와주었소.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오. 당신에게 약속한 것을 지킬 것이오. 우리말을 잘 따르기만 하면,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수 있게 해주겠소. 비록 진짜 얼굴로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죽지 않고 살아 있을 수는 있는 것 아니오. 지금 당신이 다른 것을 걱정할 때요?”
“그럼 날 어디로 데려가는 것이오?”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오.”
두 사람은 구체적인 상황을 남자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배를 타고 어느 정도 거리를 갔다. 이들이 제경과 충분히 멀어졌을 때, 누군가 날짐승을 타고 일행을 마중 나왔다. 이대로 배를 타고 하염없이 시간을 허비할 리 없었다.
“기죽어 있지 마시오. 변장하려면 어울리게 해야지. 진짜 우유도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처럼 기죽어 있지 않을 것이오.”
오삼양이 상대방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