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4화. 희생
이때, 옥왕부의 왕비 상설이 차 문을 열어 먼저 마차를 버리고 뛰기 시작했고, 그녀의 안색이 매우 안 좋았다.
이곳에 오기 전 황후가 그녀를 먼저 찾아왔었다. 황후는 그녀를 한껏 자극하며 영왕의 아내가 어쩌니저쩌니하고 말을 늘어놓았다. 남편을 살리기 위해 왕비의 존엄을 버리고 무릎을 꿇었으며, 심지어 검을 들어 자신의 목숨으로 상대방을 압박했다고까지 이야기했다.
황후는 그것이야말로 아내의 모습이며, 자신의 눈이 멀어, 어쩌다가 이런 며느리를 얻었느냐며 한탄했다.
아들의 생명이 걸린 일이었다. 황후가 확실히 말을 심하게 하기는 했지만, 상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준 것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듣고도 상설은 할 말이 없었다.
상설이 마차를 버리자, 다른 귀부인들도 그 모습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다들 마차를 버리고 목적지를 향해 뛰기 시작한 것이다.
귀부인들이 밖을 나설 때는 그 수행원이 적지 않았다. 주인이 목숨 걸고 뛰기 시작하니, 수행원들도 당연히 뒤로 처질 수 없었다. 그렇게 현장은 더욱 난장판이 되기 시작했다.
다행히 병사들이 늦지 않게 도착해, 황제의 어명에 따라 질서를 유지했고, 현장은 정상을 되찾을 수 있었다.
어느 정도는 자신을 위해 후궁의 암투를 이용하는 황제는 여인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심지어 여인들이 어떤 모습을 가졌는지도 알고 있었다. 황제는 사전에 이들 여인들이 어떤 짓을 벌일지 알고 있었고, 늦지 않게 병사를 파견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귀부인들만 골목에 들어갈 수 있게 하고, 수행원들은 모두 저지당했다. 그 모습을 보고 누군가 살짝 불만을 내뱉었고, 한쪽에 있던 장군은 그 즉시 검을 뽑아 말 위에서 그자를 베어버렸다. 선혈이 뿜어져 나왔고, 머리가 땅에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시체 한 구가 피바다 속에서 꿈틀거렸다.
안장 위에 앉아 있는 장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피 묻은 칼로 주위를 가리켰다. 현장이 한순간 조용해졌다!
반면 골목 안,
무심의 장원 밖이 아주 소란스러워졌다. 일단의 귀부인들이 그곳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애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 * *
황궁.
호운도는 삼대 문파의 장문인들과 무심 쪽의 치료가 어찌 진행되는지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한 내시가 다가와 호운도에게 귀부인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상황을 전했다.
호운도는 상황을 듣고 내시에게 물러가라 손짓했다. 그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 좋을 리가 없었다. 자신의 며느리들이 다 같이 몰려가 다른 사람에게 절을 하고 있으니, 어찌 체통이 서겠는가. 만약 이 소식이 다른 곳에 전해진다면, 큰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겨우 의생 한 명이 그 조그마한 배경을 믿고, 황가의 체면을 이처럼 밟아 놓다니. 호운도의 마음에 살심이 생겨났다.
비록 귀의의 영향력이 크다고 하나, 호운도의 세력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만약 귀의가 신출귀몰하여 찾을 수 없는 것만 아니면…. 아무튼, 이번 일이 지난 후, 설사 그 귀의의 제자를 죽이지 않는다고 해도, 편히 지내게 놔두지는 않을 것이라 결단을 내렸다.
설사 그가 자기 아들을 구했다 한들, 조금도 고맙지 않았다. 너무 편하게 지내고 있는 그 귀의의 제자에게 본때를 보여주기로 결심한 것이다.
다만 또 다른 상황이 연이어 생기다 보니, 눈앞의 일은 일단 제쳐놓았다. 이제 와 아들의 생사는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보심이 더욱 긴급한 소식을 가져온 것이다. 위국을 지원하기 위해 움직이던 병력에 문제가 생겼다. 지시에 문제가 생겼는지, 그들 세 부대가 지금 경성으로 향하고 있다고 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호운도가 대경실색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호연무한에게서 소식이 왔다. 호연무한은 부대의 이상을 보고하며, 혹시 저들의 철수를 명령했느냐고 황제에게 묻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호운도는 그 즉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인지했다.
곧이어 삼대 문파의 종군 수행자들에게서 상황을 묻는 소식이 전해져왔다.
곧, 수 마리의 날짐승이 삼대 문파의 수행자들을 태우고 빠르게 각지의 군대가 있는 곳을 향했다.
왜 이런 문제가 생겼는지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식을 중간에서 전하는 전신(傳信) 중추 몇 곳이 공격을 받아 전멸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경성으로 달려오는 세 부대는 진짜 소식을 받을 수도, 보고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모든 전신 중추가 공격받은 것은 아니었다. 오직 저들 세 부대로 통하는 곳만 공격받았다.
사실 처음부터 이런 방법으로 제국의 병력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 봤자 조금 시간을 늦추는 것이 다였다.
호운도가 크게 분노했고, 교사대가 한순간 미칠 듯이 움직여 전면적인 조사를 실시했다.
물은 흔적을 남긴다. 교사대의 힘으로 남아있는 흔적을 쫓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조사를 실시했다. 잘못 죽이는 한이 있어도 놓치지 않을 정도였다.
진국 흑수대와 제국 교사대의 소리 없는 전쟁이 전장 밖 곳곳에서 대대적으로 전개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싸우는 곳은 결국 제국의 영토였다.
진국이 수백 년 동안 제국에 만들고, 발전시켜온 비밀 정보망이었다. 하지만 제국 영토에서 은밀히 세력을 길러왔기에, 그 병력이 클 수 없었다. 그러니 결국 일거에 그 병력이 색출되어 제거되기 시작했다.
이는 진국에서 정말로 많은 세대 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놓았던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걸고 만들어놓은 연락 통로였는데, 이번 한 번으로 대부분이 폭로되었다. 심각한 손실이었다. 그야말로 감당하기 어려운 거대한 손실이었다!
하지만 진국에게 그건 모두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번 소평파의 계획을 지지하기 위해서, 진국은 그야말로 국가의 힘으로 소평파를 지원했다. 전쟁에서 이기기만 하면, 아무리 큰 대가를 치른다 해도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진국은 처음부터 일부 사람들을 희생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흑수대와 교수대 간에 벌어진 전투는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아주 은밀한 전쟁이었다. 이는 어둠 속에서 이루어진 결투였다. 그리고 이 결투에서 패배한 자들은 대부분 다시는 빛을 보지 못했다.
다만 승리자들 또한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얼마나 많은 적을 죽였는지 감히 뽐내지 못했다.
승리자들 중에서도 전사자가 적지 않았지만, 이들은 전장에서 죽은 병사들에게 해주는 것처럼 그들을 위한 비석을 세워주지 못했다. 게다가 심지어는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 제대로 알려주지도 못했다.
이는 같은 이유였다. 그런 것을 밝힐 경우, 꼬리가 잡힐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산 자는 명성을 얻지 못했고, 사자는 침묵했다. 정말로 암흑 속에서 벌어진 전투였다.
* * *
진국,
두 나라의 정보 조직이 목숨 걸고 싸우다 죽은 희생자의 명단이 진국 대내총관 도략의 손에 들려 있었다. 등불 아래 앉아 있는 도략은 눈을 감고 침묵하고 있었다. 그의 눈가에 물기가 머금어져 있었다.
울었다. 다만 그는 소리 내서 울지 않았다. 심각한 손실이었다. 흑수대가 얼마나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경영한 것인가. 저들 죽은 자들은 모두 자신을 ‘조상님’처럼 떠받들던 사람들이다. 도략은 자신이 그들을 볼 낯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대장님, 이대로 계속 싸울 수 없습니다. 저곳은 제국의 영역입니다. 형제들의 손실이 너무 큽니다. 이대로 계속 싸우는 것은 아무 의미 없습니다. 지금 당장 후퇴해야 합니다. 그렇게만 하면 일부나마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보고하기 위해 들어온 남자가 흐느끼며 말했다. 너무 참혹했다!
“하아!”
도략이 하늘을 보고 장탄식을 내뱉더니, 눈을 뜨고 소매로 눈물을 닦아냈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는 네가 결정할 것이 아니다. 어떤 의미가 있는지 너도 곧 알게 될 것이야.”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보고하기 위해 들어온 남자는 애절한 목소리로 답을 구했다.
하지만 도략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남자에게 답을 알려줄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알려주어서도 안 됐다. 이건 엄중히 지켜야 하는 기밀이었다. 핵심 요원 몇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에게 알릴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는 도략의 말이 맞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남자는 답을 얻었다. 형제들의 희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 * *
제국이 소평파를 추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위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수색을 시작했다.
다만, 놀랍게도 소평파는 제국을 떠나지 않은 상태였다. 제국이 그를 잡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여전히 제국에 남는 모험을 감행했다. 어쩔 수 없었다. 앞으로 더 큰 계획이 남아있었다. 자신이 제국에 남아서 지휘를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지휘를 맡기기에는 너무 불안했다.
소평파는 제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역참에 있었다. 지금 이 정도가 소평파가 그나마 제경에서 가장 가까이 머무를 수 있는 곳이라 할 수 있었다. 더 이상 가까워지면 그의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어쨌든 이 정도면 제국의 중추에서 어느 정도 가까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역참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가능한 한 빨리 현재 상황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자 했다.
그곳은 진국 흑수대 쪽에서 소평파를 위해 준비한 곳이었다.
이곳 역참을 책임지고 있는 관리는 제국의 관리였다. 그와 동시에 그는 흑수대에서 제국에 침투시켜 놓은 사람이기도 했다. 이 역참은 흑수대가 준비한 한 수였다. 혹시라도 중대한 일이 있을 때 요인을 숨기기 위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진국 조정이 필요로 할 시, 이곳은 요원을 엄호하며 철수하도록 도울 것이다.
이곳의 관리는 직책이 있고, 비밀을 보장하기 위해서, 제국에 숨어 있는 다른 인원들과 어떠한 연락도 주고받지 않았다. 이들은 오직 진국 흑수대의 중앙 직속으로 활동했다.
이 역참은 지금까지 한 번도 가동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소평파를 위해 움직인 것이다.
소평파는 역참 아래 지하도에 숨어, 마치 쥐새끼처럼 지하 동굴 안의 어둡고 습함을 참고 있었다.
등불 아래,
전해온 소식을 확인하고 있던 소평파가 중얼거렸다.
“과연 그자다! 지금 정말로 나를 죽이려고 하는구나!”
정보는 위국에서도 소평파를 찾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누구 말입니까?”
소삼성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소평파는 천천히 긴 숨을 내쉬었다. 그 숨이 참으로 무거웠다.
“우유도! 내 추측이 맞았다. 성경도 그자를 어쩌지 못할 줄 알고 있었다. 과연 성경에서 외부와 연락할 수 있는 연락 통로를 만든 것이 분명하다.”
“우유도 말입니까?”
소삼성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소평파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그는 우유도라는 사람이 이미 대공자님의 마음의 병이 되어있음은 잘 알고 있었다. 과거, 이 우유도라는 사람 덕분에 대공자가 기혈이 뒤틀려 수차례 토혈을 했었고, 덕분에 오랫동안 정양을 해야 했다. 인제야 조금 몸이 회복되었는데, 어쩌다가 또다시 우유도와 얽힌단 말인가?
소삼성은 걱정스러워졌다. 대공자님이 오랫동안 웅크리고 있다가, 이제야 조심스럽게 기지개를 켰다. 그런데 또다시 우유도와 맞닥뜨린단 말인가?
사실, 소평파는 말할 것도 없고, 그 곁에서 소평파를 따르는 소삼성조차도, 우유도라는 ‘이름’만 들어도 두려울 정도였다. 소평파는 우유도에게 연달아 몇 번 패배하고, 우유도 덕분에 어미와 형제를 죽였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기까지 했다. 그렇게 소평파의 악명이 천하에 퍼져나갔다. 그것도 모자라 나중에는 심지어 우유도의 추격에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소삼성은 소평파 옆에서 그 모든 것을 직접보고, 직접 겪은 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