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0화. 드러난 현요 (2)
현장이 침묵에 휩싸였다. 한참 고민하던 황반이 갑자기 바닥에 있는 현요를 노려보더니 남몰래 이를 갈았다. 그런데도 정위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 이 일을 어찌합니까?”
정위는 바닥에 무릎 꿇고 있는 현요를 노려보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성존이 시키신 일이다. 내가 뭘 어쩐단 말이냐?”
현요가 절을 하며 말했다.
“모두 소인의 잘못입니다. 모든 책임을 제가 홀로 지겠습니다. 절대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지 않겠습니다!”
정위가 눈살을 찌푸리며 냉소 지었다.
“끌어들여? 누굴 말인가? 설마 내가 그 일을 시키기라도 했단 말이냐? 지금 날 협박하는 건가?”
아무 이유 없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세력이 있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일부 떳떳하지 못한 일을 심복에게 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만약 현요가 했던 일을 그대로 다 밝히게 된다면, 정말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
“절대 그런 뜻이 아닙니다!”
현요가 허리를 펴고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소인이 이번에 지은 죄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입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으니, 그냥 한 번에 목숨을 끊겠습니다. 지금껏 선생님의 호의를 받아 왔으니, 선생님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소인은 이대로 가서 공개적으로 자수하고, 그곳에서 자진하겠습니다. 선생님께 불리할 수 있는 것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위는 몰래 이를 갈았다. 사실 그는 현요를 이대로 잡아 성존에게 데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요가 그의 심복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 현요가 아무리 지시한 사람이 없다고 잡아떼고, 개인적으로 행한 일이라고 한들, 상부에서 그 말을 믿겠는가?
또 한 가지, 다른 감찰 인원들이 무량원에서 대체 어떤 일에 개입되었는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걸 확인하기 전까지는 경거망동할 수 없었다.
무량원과 연관된 일은 왕왕 아주 심각해지고는 했다. 현요가 하필 이런 시기에 우유도를 죽였으니, 현요를 이대로 잡아들인다면, 정말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정위가 천천히 물었다.
“이번 우유도 살해에 연관된 사람이 몇 명이냐?”
“소인을 포함해 총 열다섯입니다!”
“이번 일은 잠시 지켜보도록 하자. 그들의 입을 아주 잘 틀어막아야 할 것이다. 일단 소나기를 피하도록 하자. 이후, 나중에 그들을 단 한 명도 살려두지 말아라!”
그 말을 듣고 현요는 크게 기뻐했다. 정위가 드디어 이번 일을 숨기기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위가 단서를 은폐하기로 한 이상, 외부인은 뭔가를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현요는 다행히 살아남은 것이다.
그는 그 즉시 고개를 숙이며 울먹였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앞으로도 목숨을 다해 보답하겠습니다!”
* * *
문천성, 무쌍당 내부.
일곱 문파의 사람들은 이전과 달리,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견문을 크게 넓힐 수 있었다. 그들은 몇몇 성존을 만나 보았다. 최근에 반복해서 여기저기 불려 다닌 것이다.
하지만 골치가 아프기도 했다. 무량원에서 가지고 나온 진술을 아무리 반복해서 살펴보아도, 뭔가 단서랄 것이 없었다.
또 한 가지, 진술에 빠져있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우유도가 관리하던 진술이었다. 그 진술은 사람과 같이 사라졌다.
성존이 지금 문천성에 남아 있는 것은 바로 그 일 때문이었다. 성존은 아래 수하들에게 진술을 살펴보게 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도 직접 그것들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들도 마찬가지로 의문이 가득했다.
다들 정말 여러 가지로 진술을 살펴보았지만, 대체 무슨 단서가 있는지 알 수 없어 망연자실하고 얼떨떨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이 비밀을 풀 수 있는 사람은 우유도밖에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우유도는 이미 누군가에 의해 죽어 버렸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포기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상황 파악이 어렵다 해도, 일곱 문파의 사람들은 머리를 쥐어짜며 조사를 해야 했다. 그렇게 그들은 진술을 이리저리 들춰보며, 사소한 단서라도 찾아내려 했다.
설사 그것이 쓸데없는 짓이라 해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성존이 직접 관심을 가지는 일이었다. 어찌 최선을 다하지 않겠는가? 만약 소홀히 하는 모습을 보이기라도 하면,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게 죽을 수 있었다.
* * *
아침이 막 밝았을 때, 침상 위에 원색이 발가벗고 누워 있었다.
그 옆에는 마찬가지로 발가벗고 있는 여인들이 있었다. 원색은 코를 크게 골며 단잠에 빠져있었다.
그때, 문이 열렸다. 얇은 비단으로 몸을 감싼 여인이었는데, 아름다운 몸매가 은은하게 드러난 모습이었다. 여인은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왔는데, 얼굴은 면사로 가리고 있었다. 그녀는 바로 원색 옆에 있는 시녀들을 총괄하는 통령이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원비(元妃)라고 불렀다.
원색 곁에는 세대마다 시녀들을 총괄하는 통령이 있었고, 이 통령은 모두 원비라고 불리었다.
원비가 침상에 다가가 코를 골고 있는 원색에게 조용히 말했다.
“공자님, 정위가 어제저녁에 만났다는 그 다섯 명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들이 다섯 날짐승을 동원한 사실이 있습니다.”
비록 원색의 나이가 어리지 않았고,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살이 쪘긴 했지만, 그 곁에 있는 여인들은 대대로 그를 ‘공자’라고 불렀다. 온 대원성지에서 오직 이들 여인에게만 허락된 호칭이었다.
코 고는 소리가 멈췄다. 원색은 마치 잠꼬대하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처리해라!”
그리고는 몸을 틀어, 옆에 있는 여인의 풍만한 가슴을 움켜잡았다.
원비가 그대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더니 밖에서 문을 닫았다….
* * *
문천성 수십 리 밖, 한 동굴.
몇 사람이 그 동굴을 지키고 있었다.
잠시 후, 열 몇 명의 사람들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그들은 모두 노출이 있는 옷을 입고 있는 여자로, 선두에 선 사람은 바로 원비였다.
그들 여인이 도착하자, 입구를 지키던 호위는 순간 당황해 어찌할 줄 몰라 했다. 대원성지의 사람들은 이들 여인이 바로 원색 곁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원비가 품에서 영패를 꺼내 들자, 호위는 두려워하며 예를 올렸다. 원비는 그대로 걸어서 동굴 안으로 쑥 들어갔다.
동굴 안에는 다섯 사람이 우울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이들은 바로 어제 정위가 만났던 다섯 명이었다. 발소리를 듣고 그들이 고개를 들었다가 멈칫했다.
원비는 그들을 둘러 보고는 담담히 말했다.
“따라와라.”
동굴을 나간 원비가 입구를 지키고 있는 호위를 보고 말했다.
“이들도 데려간다!”
아침이 밝았다. 정리를 마친 정위는 대문을 나서, 항상 하던 대로 사부 원색에게 문안 인사를 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 외에도 혹시 다른 지시가 있다면 명령을 받아야 했다.
그렇게 정위가 그곳을 나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원비가 몇몇 여인들을 이끌고 그 자리에 나타났다. 그녀의 신분 때문에 그 앞을 막아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정위를 배웅한 황반과 현요는 마침 방 안에서 문을 닫고, 앞으로 어찌할지 의논하고 있던 중이었다.
덜컥! 문이 열렸다.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온 사람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라 분분히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올렸다.
“원비를 뵙습니다.”
원비가 빙그레 웃으며 앞으로 다가와 손짓했다. 곧 일단의 여자들이 두 사람을 포위했다.
두 사람은 깜짝 놀랐다. 황반이 다급히 물었다.
“원비, 이게 무슨 뜻입니까?”
“쉿!”
원비가 조용히 하라며 검지를 세워 입술이 있는 면사 위에 가져다 댔다.
두 사람은 크게 당황했지만, 감히 반항하지 못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여자들에게 현장에서 제압당했다.
갑자기 일어난 일에, 중추부 내부의 사람들은 크게 당황했다. 눈앞에서 황반과 현요가 붙잡혀 가는 것을 보면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지 못했고, 감히 원비 일행을 저지하지도 못했다.
누군가는 정위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 했다. 하지만 정위는 이미 원색에게 갔기에, 감히 그곳에 난입해서 소식을 알릴 사람은 없었다.
정위는 이미 원색이 있는 거주지에 들어서고 있었다. 누각 안에 들어선 정위는 사부에게 문안 인사를 한 후, 표묘각의 각 사무에 대해서 보고했다.
다만 이곳엔 평소에 볼 수 없는 사람도 있었으니, 여무쌍도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정위는 또 다른 성존이 있는 것을 보고는 몹시 놀랐지만,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다. 정위가 보고하는 동안, 그녀는 원색 곁에서 가끔 정위를 살펴볼 뿐이었다.
정위는 여무쌍이 아침 일찍부터 이곳에서 자신의 사부와 같이 있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아무튼, 원색은 그렇게 정위의 보고를 유쾌한 얼굴로 듣고 있었다. 지금 원색이 정말로 기쁜 얼굴인지, 가짜로 기쁜 얼굴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튼, 그는 줄곧 유쾌한 얼굴이었고,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정위가 보고를 마친 후에도 원색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정위더러 물러나라고 하지도 않았고, 보고에 대해 묻지도 않았다. 잠시 후, 원비가 돌아와 누각에 들어오더니 원색의 곁에 섰다. 그 이후에야 원색이 유쾌한 얼굴로 정위에게 말했다.
“정위야, 어제저녁에 어딜 갔었느냐?”
정위가 멈칫했다. 내심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하지만 정위도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나쁘지 않은 대답을 한 것이다.
“어제 제자는 사건을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원색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그래, 뭔가 단서를 찾았느냐?”
정위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최대한 신속하게 조사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별다른 진전이 없습니다.”
원색이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는 것이냐? 어찌 아직도 진전이 없단 말이냐? 정위야, 이 사부는 너를 참 좋게 보고 있단다. 그러니 네게 표묘각을 관리하게 한 것이다. 그러니 절대 이 사부를 실망시키지 말아라!”
정위가 자책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다 제자가 무능하기 때문입니다. 최선을 다해 조사해, 하루라도 빨리 사부님께 성과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원색이 끄덕이고는 유쾌하게 말했다.
“너도 보았겠지만, 지금 이 일에 대해 관심을 가진 늙은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다들 이곳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여 미인이 아침부터 날 찾아온 것도 호의가 아니다. 그저 네가 맡은 사건이 어디까지 진전되었는지 궁금해서 이곳에 온 것이다. 정위야, 이건 어떻겠느냐? 내가 몇몇 사람을 보내 너를 돕게 하겠다. 그러면 조사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정위가 곧 포권을 하며 말했다.
“사부님께서 사람을 보내주신다면, 당연히 조사가 훨씬 수월할 것입니다. 제가 바라마지 않은 일입니다!”
“좋다!”
원색이 손을 비비며 고개를 돌렸다.
“원비, 그대가 가서 도와주도록 해. 늙은이들이 하도 재촉하니 빨리 결과를 봐야겠구나.”
“알겠습니다!”
원비가 빙그레 웃으며 무릎을 살짝 굽혀 인사하고는 곧 손짓했다.
정위는 의아한 얼굴로 그녀가 손짓한 곳을 돌아보았다. 잠시 후, 그곳에서 다소 노출이 있는 의복을 입은 여자들이 몇몇 남자들을 데리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 다섯 남자는 매우 두렵고 불안한 모습이었다.
그들의 얼굴을 확인한 정위의 동공이 급격히 수축했고, 크게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바로 정위가 어젯밤에 만났던 사람들이었다. 정위가 천천히 다시 뒤돌아 원색을 바라보았다. 원색은 여전히 유쾌한 모습으로 먹고 마시고 있었다. 마치 뭔가 이상한 것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다섯 남자는 그곳에 와서 감히 정위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들은 여자들에게 어깨를 붙잡힌 채, 고분고분 원색 앞에 일렬로 무릎을 꿇었다.
“사부님….”
정위가 다시 몸을 돌려 포권을 했다. 그때 원색이 손을 들어 정위의 말을 끊고는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급할 것 없다. 일단은 원비가 조사하는 것을 지켜보자. 만약 문제가 있다면, 나중에 네가 보충하거라.”
“사부님….”
정위가 또 뭔가 말을 하려 했지만, 빙그레 웃던 원색의 두 눈이 돌연 싸늘해졌다. 덕분에 정위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를 악다문 정위는 곧 공황에 빠져들었다.
정위는 그제야,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감시받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들 다섯 명을 이렇게 빨리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는 어리석지 않았고, 강호에 갓 출사한 신인도 아니었다. 은밀하게 움직이면서 미행을 방비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당연히 대비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문제가 생겼다. 그리고 정위는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가? 이건 처음부터 정위를 대상으로 모든 감시 인원이 아주 은밀하게 배치되어 있었다는 것을 뜻했다!
다만 정위는 이해할 수 없었다. 사부가 왜 자신을 감시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설마 처음부터 뭔가를 알고 있었단 말인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정위도 어제저녁이 되어서야 진실을 알게 되었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