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7화. 부탁
지배인이 담담히 말했다.
“진국이 정말로 서삼국의 영역을 장악할 수 있다면, 너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 누굴 사용하면 되지, 왜 꼭 너를 골라야 한단 말이냐?”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기운종이 있고, 황제 태숙웅도 있지요. 하지만 선생님께서 정말 그들을 직접 찾아가실 수 있으십니까? 성경의 이름이나, 표묘각의 이름을 사용하게 된다면, 그건 더는 선생님 개인의 일로 치부할 수 없게 됩니다. 만약 그 두 이름으로 암중에 사적인 일을 처리한다면, 탄로 나는 것은 둘째치고, 그들이 감히 표묘각 뒤에서 선생님을 위해 그런 짓을 할 것이라 보시는 겁니까?”
“기운종이든 태숙웅이든, 오늘날 그들의 지위로 보건대, 선생님을 위해 모험할 필요가 없습니다. 선생님과 표묘각 사이에 그들이 어디에 설지는 더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물론, 다른 신하들과 접촉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신하들 사이에 서로 견제가 많고, 서로 수많은 투쟁이 오가고 있습니다. 그런 곳에 말려든다면, 그건 선생님께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해가 되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소인은 다릅니다. 저는 그 사이에서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어느 정도 있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지원을 받을 수만 있다면, 절대 선생님을 실망하게 해 드리지 않겠습니다!”
지배인이 잠시 침묵했다. 그는 소평파를 한번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소평파는 확실히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 그건 여러 가지 검증을 거친 후에 얻은 결론이었다.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은 소평파가 표묘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소평파의 손에 그의 약점이 잡혀있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마음이 동한 것을 보고, 소평파가 허리를 깊게 숙이고 포권을 하며 말했다.
“많이 부족하지만, 선생님을 위해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지배인은 바로 승낙하지 않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호연무한을 죽이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다. 호연무한 곁에는 집사 사호가 있지. 과거 그가 비록 서문청공의 손에 패배했다고는 하지만, 그건 그가 원한 것이었다. 이후, 그가 지니고 있던 금단방의 순위는 계속 떨어져 지금은 금단방 십 위권에서도 그 이름을 볼 수 없지. 하지만 사실 정말 진지하게 싸운다면, 서문청공조차도 그의 적수가 아닐 것이다.”
“그는 그런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호연무한의 사냥개가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호연무한을 따르며, 그야말로 단 한 걸음도 떨어지려 하지 않지. 그가 있는 한, 고수들을 대거 동원해 호연무한을 공격하지 않고는 호연무한을 죽이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호연무한 곁에 있는 호위 세력도 그 힘이 약하지 않지, 또 그는 지금 대군 사이에 있다. 가까이 다가가기도 어렵다. 그러니 그를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대놓고 죽이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암중에 행하면 됩니다.”
“지금 고품이 이미 우세를 점하고 있지 않으냐. 호연무한은 연신 후퇴만 하고 있지 않으냔 말이다.”
“일시적인 상황일 뿐입니다. 겨우 인질로 나라가 망하는 것을 지켜만 보겠습니까? 지금은 위국 내부에서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하고 있을 뿐이니, 일단 제국의 상황이 매우 급하게 돌아간다면 상황이 바뀔 것입니다. 호연무한은 전장을 종횡하며, 살벌한 결단력을 가진 장수입니다.
피가 강이 되어 흐르고, 시신이 평원을 가득 메워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사람이지요. 그런 그가 약한 마음을 먹겠습니까? 연산명, 제무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 허명은 없는 법이지요. 제가 보기에 고품은 호연무한의 상대가 아닙니다!”
지배인이 천천히 말했다.
“사호가 직접 기른 칠종복(七從僕)은 하나하나 호연무한에게 충성하고, 그들 모두가 고수라 할 수 있다. 그들이 호연무한의 먹고 마시는 일상생활을 책임지고 있으니, 다른 사람이 수작을 부릴 기회가 없다. 그러니 암살도 불가능하다. 조야와 국내외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호연무한을 죽이려고 했을 것 같으냐? 그것을 생각해 보아라. 정말 그렇게 쉬웠다면, 호연무한이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었겠느냐?”
“표묘각의 숨겨진 힘으로도 힘들다는 말씀입니까?”
지배인이 고개를 저었다.
“표묘각에서 호연무한을 죽이는 것은 당연히 어려울 것이 없지. 하지만 만약 그를 암살하려 한다면, 적지 않은 힘을 동원해야만 한다. 지금 성경 내에서 일어난 여러 문제 때문에, 성존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다. 이와 같을 때에 표묘각의 힘을 대량으로 움직인다면, 당연히 나에게 시선이 집중되겠지.
그런 일은 너무나 위험한 것이다. 그런 것을 감수할 만큼의 가치가 없다. 그러니 표묘각 상부의 명령이 없는 이상, 누가 감히 그런 짓을 하겠느냐? 만약 강제로 그들을 부린다면, 나중에 나는 물론이고, 너라고 해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더냐?”
지배인의 말을 들은 소평파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표묘각의 힘으로도 정말 방법이 없습니까?”
“방법이 있으면 내가 진작에 언급했겠지. 이렇게 대화를 주고받지 않았을 것이다. 이 일은 상황을 좀 더 지켜보고 나중에 네게 다시 연락하겠다.”
그리고는 그대로 떠나려 했다.
“선생님.”
소평파가 다시 그를 불러 세웠다. 어렵게 한번 만난 참이었다. 기회가 있을 때 최대한 많은 정보를 알아내야 했다.
“방금 선생님께서 서문청공을 언급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선생님께서 도와주신 일에 대해 아직 감사 인사를 안 드렸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최선을 다해 선생님께 보답하겠습니다!”
소평파가 허리를 깊게 숙이고 다시 말했다.
“다만 진국의 밀정이 보내온 소식에 따르면, 서문청공은 중독된 후에 어디로 갔는지 그 동향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혹시 선생님께서는 그의 행방을 아십니까?
“제경에 귀의의 제자라는 자가 있지 않더냐?”
“그 말씀은 귀의의 제자가 서문청공을 구했단 말씀입니까?”
지배인이 그를 흘겨보았다.
“그것도 모두 네 누이 덕분이지. 호운도가 네 누이보고 가서 귀의의 제자에게 부탁하라고 했다. 하하. 너희 남매는 참으로 재미있군. 한 사람은 죽이려고 하고, 한 사람은 살리려고 하다니. 그럴 줄 알았으면 나도 헛수고하지 말 걸 그랬어. 서문청공의 독은 아마 이미 해독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어딘가에서 회복에 힘쓰고 있겠지. 그리고 그곳이 어디인지는 나도 모른다. 현미는 서문청공이 다시 해를 입을까 봐, 심혈을 기울여 그를 숨기고 있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 호운도조차 모를 것이고, 물어보지도 않은 것 같았다.”
“내가 굳이 그 서문청공에게 매달릴 이유도 없지. 만약 기어이 그를 찾아야겠다면, 그를 찾는 방법을 네게 알려주겠다. 상청종의 장문인 당희를 찾아라. 그렇다면 아마도 서문청공의 행방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말을 마친 그는 입을 다물고 그대로 그곳을 떠나버렸다.
소평파는 더는 그를 붙잡지 못하고, 포권을 하며 배웅할 뿐이었다. 지배인이 떠난 후, 소평파는 손을 내리고 눈살을 찌푸렸다.
“유아야….”
잠시 자리를 피해있던 소삼성은 지배인이 떠나는 것을 보고 다가와 물었다.
“이번 만남에 혹시 얻은 것이 있으십니까?”
하지만 소평파는 눈살을 찌푸리며 동문서답했다.
“이 사람은 서삼국의 정보를 아주 많이 파악하고 있구나.”
“표묘각의 사람은 원래부터 각지에 숨어있지 않습니까. 심지어 천하전장의 집사인 홍운법의 생사까지도 좌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표묘각에서 그 지위가 결코 낮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정보를 파악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 이상한지요?”
소평파가 끄덕였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내가 표묘각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정보가 많지 않구나. 저 정도 지위에 있는 사람이 다들 이 정도는 알고 있는지 아니면, 저자가 특별한 것인지….”
소평파는 다시 사색에 잠겼다.
그 말을 들은 소삼성은 대공자가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가 아는 소평파를 생각하면 아마도 지금 저 신비인의 신분을 추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소삼성은 한편에서 소평파의 사색을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대기했다.
“하아!”
정신을 차린 소평파가 하늘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은 서글퍼 보이는 모습에 소삼성이 이해하지 못하고 물었다.
“어찌 그리 한숨을 내쉽니까?”
소평파가 자조하며 말했다.
“우유도가 죽었다!”
“네?”
소삼성이 넋을 잃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잘못들은 줄 알았다. 소평파가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알고 있는 우유도라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 않으냐? 처음에 들었을 때, 난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배인이 확실하게 알려주더구나. 우유도가 성경 안에서 건드려선 안 되는 사람을 건드려 살해당했다고 한다. 지금 그 흉수가 누군지도 알 수 없으며, 성경 내부에 작지 않은 소란이 일었다고 하는구나.”
소삼성은 여전히 믿지 못하며 말했다.
“우유도의 능력으로 어찌 그리 쉽게 살해당했단 말입니까? 공자님, 그놈은 아주 교활한 놈입니다. 시신은 확인했다고 합니까? 만약 확인하지 못했다면, 속임수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북주에서 진국으로 도망치면서 모든 날개가 꺾여 나갔다. 소삼성 또한 우유도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소평파가 크게 웃었다. 이 늙은이의 반응이 어쩜 그와 이리도 똑같단 말인가. 우유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첫 번째 반응이 속임수일지도 모른다니. 소평파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틀림없을 것이다. 목격자가 적지 않고, 시신의 용모도 확인했다고 한다. 성존들이 확인한 데다가, 성경에서 아주 자세히 조사를 진행하고 확인했다고 했으니, 죽은 사람은 우유도가 틀림없다.”
“정말 죽었단 말입니까….”
소삼성은 혼자 잠시 중얼거리더니 결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자가 죽지 않았다면, 후에 공자님의 큰 후환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제 죽었으니, 대공자님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가 처음 성경에 들어갈 때, 다들 그곳이 얼마나 흉험한지 추측하지 않았습니까. 그놈도 결국은 살아남지 못했군요. 성경이 어찌 온 수행계의 수행자들을 전전긍긍하게 만드는지 알겠습니다. 인제 보니 정말 그곳은 보통 사람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아!”
소평파가 다시 하늘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말이다. 정말 죽었다니.”
그 말투를 들으며 소삼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유도가 죽었으니 공자님은 마땅히 기뻐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어째서 그리 안타까워하십니까. 설마 그를 동정이라도 하시는 것인지요?”
소평파가 쓴웃음을 지었다.
“동정? 빌어먹을 동정이구나. 내가 그를 동정할 이유가 무엇이냐? 나는 기뻐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어째서 기뻐하지 못하는지 모르겠구나. 우유도 같은 인물은 참으로 보기 드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그 하찮은 암살에 목숨을 잃다니, 사람이 아무리 거창한 계획을 세운들, 하늘의 계획을 따라갈 수 없다는 말이 참으로 맞다. 참으로 가치 없는 죽음이구나, 참으로 가치 없어!”
소평파가 연신 탄식했다. 소삼성은 침묵했다. 지금 그는 소평파가 기뻐하지 못하는 이유를 추측할 수 있었다.
사실 대공자는 지금까지 우유도의 손에 수차례 패배를 맛보았다. 그러니 그런 적수가 사라지는 것은 대공자에게 기뻐 마땅한 일이어야만 했다. 하지만 연신, 씁쓸한 표정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대공자는 아직까지 우유도에게 제대로 한 방 먹여주지 못했으니, 그 마음속에 앙금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이제 앞으로 우유도에게 패배했다는 그 명성을 영원히 벗을 길이 없어졌다.
그는 그걸 눈치챘지만, 소평파 면전에 두고 말하지는 않았다. 어떤 말은 알아도 하지 않아야 하는 법이다.
아무튼, 우유도가 죽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그는 기뻤다. 그것도 아주 기뻤다. 줄곧 우유도는 대공자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거대한 태산과 같았고, 소삼성의 가슴속에도 거대한 압박이었다. 이제 마음속에 있는 먹구름이 다 쓸려나갔으니, 대공자에게는 더는 어떠한 후환도 없었다.
그리고 대공자의 전략 전술과 그 능력이 점점 드러나고 있었으니, 이제는 누가 대공자의 적수가 되겠는가? 대공자가 드디어 그 능력을 크게 펼칠 수 있게 되었으니, 장래가 밝았다.
다만 이때, 소평파가 자못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데, 귀의의 제자는 성정이 기괴하다고 하지 않았느냐? 유아가 그런 귀의를 움직여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다니, 어째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을 수 없구나…. 노소, 사람을 시켜 유아가 어떻게 귀의를 움직였는지 그 과정을 알아보아라. 또 그 귀의의 상황도 마찬가지로 사람을 시켜서 최대한 상세하게 알아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