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군-1432화 (528/1,000)

1432화. 원강의 방법 (2)

의사대전 밖,

얼마 지나지 않아 막영설이 나왔다. 그 뒤를 제자들이 지필묵을 가지고 따르고 있었다.

관방의와 원강에게 다가간 막영설이 웃으며 말했다.

“장문인께서 출타 중이시니 일단은 본인이 종문 내부의 일을 처리하고 있소. 두 사람의 생각이 어떠한지 제자의 보고를 들었소.”

궁임책은 자신이 출타 중이라고 했으니, 당연히 나올 수 없었다. 그렇지 않고 궁임책이 직접 나오면 그 얼마나 민망하겠는가. 그러니 막영설을 보낸 것이다.

관방의도 포권을 하며 인사했다. 다만 원강은 바닥에 박혀 있는 칼에 손을 올린 채,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막 장로가 사정을 보아 좀 융통해주시면 고맙겠소.”

막영설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사실, 날짐승을 주고 말 것도 없는 일이오. 우 장로는 원래부터 자금동의 장로가 아니었소? 그의 물건은 바로 자금동의 물건이니, 그가 남긴 유산은 당연히 자금동의 것이오. 누가 들어도 반박할 수 없을 것이오. 물론, 자금동도 말이 안 통하는 곳은 아니오.

비록 문규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리 몰인정한 곳도 아니지. 다들 마음을 가라앉히고 일을 수습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라 할 수 있소. 이 일은 내가 결정을 내릴 수 있소. 기한을 삼 일로 연장하는 것은 어려울 것 없는 일이지. 다만….”

막영설이 손을 들자 곁에 있는 제자가 쟁반과 그 위에 있는 지필묵을 가져왔다.

“말로는 누가 무슨 말을 못 하겠소. 우리는 여러분과 이런 일로 나중에 쓸데없는 소문이 나도는 것을 원치 않을 뿐이오. 그러니 글로 적어 증거로 삼았으면 좋겠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어려울 것 없소. 다만 우리도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소.”

막영설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오?”

“우리에게 철수 기한을 삼 일로 늘려 준 것과는 별개로, 이제 우리가 이곳을 다급히 떠나야 하는 상황이오. 그러니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소. 그러니 일단 우리에게 날짐승 한 마리를 빌려주시오. 우리가 그걸 타고 이곳을 떠난 후에 어디로 갈지 주변을 살펴볼 예정이오. 나와 홍랑이 같이 움직이고, 다른 모든 사람과 물건들을 이곳에 남겨 놓겠소.

그러니 도망칠 염려는 하지 않으셔도 될 것이오. 우리가 그리 어리석은 자들도 아니고 말이오. 아무튼 우리는 머물 곳을 찾은 후, 삼 일 안에 이곳으로 돌아와 초려산장의 모든 사람과 같이 삼 일 안에 자금동을 떠날 것이오. 막 장로님, 어려운 요구는 아닐 것이오.”

“그건….”

막영설이 잠시 머뭇거렸다. 그녀는 뭔가 고민하는 것처럼 뒤돌아 곁에 있는 한 제자에게 눈짓했다.

그 제자는 막영설의 눈짓을 보고 즉시 조용히 그곳을 떠나 안으로 들어가 궁임책에게 보고했다. 그리고 그에게 결정을 미뤘다.

상대방이 한 마리의 날짐승을 빌리겠다고 했다. 다만 날짐승은 보통 비싼 물건이 아니었다. 만약 그걸 타고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다면, 결정을 내린 사람은 책임을 져야 했다. 덕분에 막영설은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보고를 받은 궁임책은 바로 승낙하지 않았다. 비록 마음속으로는 결정을 내렸지만, 그런데도 자리에 있는 다른 장로들의 의견을 물었다.

상대방이 제시한 요구는 나름 합리적이라 할 수 있었다. 사람과 물건들을 이곳에 남겨 놓는다고 했다. 적지 않은 사람이 원강과 관방의의 심복이었다. 둘이 그 심복들을 버리고 떠날 것 같지는 않았다.

설사 그들을 버린다 해도, 한 마리의 날짐승으로 나머지 수많은 날짐승을 정정당당하게 얻을 수 있으니, 손해 볼 것이 없었다.

다른 장로들이 모두 동의하자 궁임책 또한 장로들의 의견을 들어 승낙했다.

잠시 사라졌던 제자가 나타나 막영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감을 잡은 막영설이 마치 결정을 내렸다는 듯이 뒤돌아 말했다.

“좋소. 한번 예외를 두도록 하지.”

그리고는 한쪽에 제자가 들고 있는 지필묵을 가리켰다. 증거를 남기라는 뜻이었다.

원강이 앞으로 나서려고 하자, 관방의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원강이 돌아보자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 마주쳤다. 관방의는 마치 눈빛으로 정말 이렇게 하려느냐고, 확신이 있느냐고 묻고 있는 것 같았다.

원강은 그의 손목을 잡고 팔에서 떼어내더니 지필묵으로 다가가 증서를 작성하고 수결했다.

막영설이 다시 관방의를 향해 턱짓하며 말했다.

“두 사람이 떠난다고 했으니, 홍랑도 증거를 남기는 것은 어떻소?”

관방의는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걸 보고 원강이 다그쳤다.

“시간이 없으니 빨리하시오.”

이제는 원강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관방의도 앞으로 나서 증서를 작성하고 수결했다.

문서를 들고 내용을 확인한 막영설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그 종이를 잘 갈무리한 다음, 직접 두 사람을 데리고 엄입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기한을 삼 일로 늘리고, 날짐승을 한 마리 빌려준다는 말에 엄입은 크게 불만을 표했다. 하지만 종문의 결정이었으니, 그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날짐승을 빌린 관방의는 빠르게 초려별원의 사람들에게 기한이 삼 일로 늘어났다는 당부의 말을 전했다. 소식이 전해지자, 치솟던 사람들의 불안감도 어느 정도 수그러들었다. 그러고 나서야 관방의는 원강과 같이 날짐승을 타고 저녁노을을 맞으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 * *

말을 타면 쉬지 않고 한나절은 달려야 도착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날짐승을 타고 움직이자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는 그들이 만나려는 사람이 자금동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주위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초승달 아래 날짐승을 탄 두 사람이 깊은 숲속 산 정상에 내려앉았다.

그곳에서는 이미 한 사람이 나무 아래 뒷짐을 지고 달빛을 맞으며 조용히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닥에 내려온 두 사람은 서로 눈빛을 한번 교환하고는 뒷짐을 지고 있는 그 사람을 빤히 바라보았다. 관방의가 조용히 원강에게 물었다.

“누구야?”

둘을 등지고 있던 사람이 손을 들어 얼굴의 가면을 벗어 버리고 천천히 뒤돌아 미소지었다.

“왔어?”

원강과 관방의는 순간 넋을 잃었다. 특히 관방의는 마치 귀신을 본 것 같았다. 법안으로 상대방의 용모를 다시 한번 확실하게 확인할 정도였다.

익숙한 얼굴, 익숙한 미소, 익숙한 목소리였다. 우유도가 아니면 누구겠는가?

“도야!”

정신을 차린 관방의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마치 소녀처럼 우유도를 향해 뛰어들었다. 미친 듯이 흥분한 모습이었다. 관방의는 그대로 우유도에게 안겼다.

우유도는 미처 대응하지 못했다. 관방의가 이처럼 거리낌 없이 기뻐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다소 과할 정도였다.

이같이 큰 반응이 있을 줄은 몰랐던 우유도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듯이 입을 앙다물고 관방의를 밀쳐내려 했다.

하지만 관방의는 우유도를 꽉 껴안고는 놓아 주지 않았다. 마치 매달리듯이 우유도를 껴안은 관방의가 우유도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그녀가 흐느끼며 말했다.

“개자식, 진짜 죽은 줄 알았잖아!”

관방의가 정말로 엉엉 울었다. 지금까지 느꼈던 서러움이 드디어 갈 곳을 찾았다는 듯이 터져 나왔다. 드디어 지금까지 힘들게 버티던 가면을 내려놓고 여자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제 마음 놓고 감정을 분출할 수 있었다.

우유도는 관방의가 어째서 이처럼 거리낌이 없이 그를 안았는지 대충 알 수 있었다. 아무튼, 밀어내기 힘들었으니, 그저 어색하게 웃으며 그녀의 등을 두드리며 관방의를 놀렸다.

“자자, 다 늙은 여자가 이런 식으로 매달리니 속이 뒤집힌다고.”

“칫!”

관방의의 울던 얼굴이 웃는 얼굴로 바뀌더니, 화가 난 것처럼 우유도를 밀어내며 소리쳤다.

“아주 그냥 진짜로 죽어버리지 그랬어?”

관방의는 우유도가 참 재수 없는 놈이라는 걸 다시금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녀보고 맨날 늙었다고 놀리니, 좋았다가 싫었다가 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 마음에 안 들었다!

다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이렇게 태연하게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가짜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정말로 도야가 돌아왔다. 욕설을 다 내뱉은 관방의는 다시 웃었다.

원강이 다가왔다. 그의 무뚝뚝한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답지 않은, 부드러운 말투로 인사했다.

“도야!”

우유도도 웃었다. 그는 원강의 가슴을 툭툭 치며 물었다.

“잘 지냈지?”

“그럭저럭 지냈어요.”

원강이 끄덕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우유도의 얼굴을 가리켰다.

“…….”

우유도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자신의 얼굴을 만져 보았다. 관방의는 옆에서 그 모습을 보더니, 입을 가리고 웃음을 참으려고 했다.

“풋!”

하지만 결국은 배를 잡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웃고 있는 관방의는 얼굴에 여전히 눈물 자국을 달고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었다. 우유도의 얼굴은 지금 아주 난장판이었다. 얼굴에 관방의가 남긴 연지가 여기저기 찍혀 있었다.

손으로 얼굴을 쓸어 본 우유도는 손에 묻어 나오는 연지를 보고는 어찌 된 일인지 깨닫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뭐야. 홍랑,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는데, 다음에는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관방의가 코웃음을 쳤다.

“미녀가 알아서 안긴다고 해도 그런 식으로 말하다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내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고 싶어 했는지 알아? 운 좋은 줄 알아야지….”

그러더니 갑자기 뭔가 깨달은 듯 휙 고개를 돌려 원강을 바라보더니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야가 안 죽은 걸 알고 있었지?”

원강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전에는 몰랐소. 이곳으로 오기 직전에 도야가 보낸 서신을 보고 나서 알게 되었소. 당시 도야는 내게 이곳에 와서 누군가를 만나라고 했을 뿐, 나도 여기 도야가 있을 줄은 몰랐소.”

“안 죽었다고 미리 말해주면 어디가 덧나? 괜히 슬퍼했잖아!”

관방의가 원망을 한 후에 다시 우유도를 보고는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도야, 그전에 표묘각 사람이 와서, 도야가 죽었다며 자금동에게 사람을 보충하라고 했어. 그런데 이렇게 무사히 살아 있다니, 어떻게 된 일이야?”

우유도가 웃었다.

“확실히 죽었지. 하지만 죽은 건 내가 아니라 내 대역이었어. 그 전에 원숭이가 몰래 물색해준 대역 말이야.”

“…….”

관방의가 다시 원강을 돌아보며 이를 갈았다.

“직접 대역을 물색했으면서 도야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몰랐다고?”

원강은 흥분된 감정을 숨긴 채, 담담한 얼굴로 설명했다.

“난 도야의 계획을 몰랐소. 대역이 죽은 것인지, 진짜가 죽은 것인지 확신을 할 수가 없었소.”

관방의는 전혀 믿지 않았다. 우유도가 한숨을 내쉬었다.

“홍랑, 아직도 원숭이를 모르는 거야? 고지식한 사람이잖아. 내가 만약 내 대역을 나 대신 죽일 거라고 했다면, 이놈이 사람을 찾아줬겠어? 정말로 비밀로 했던 일이야.”

그 말은 관방의도 믿었다. 관방의는 원강의 그 어울리지 않는 고질병을 아주 싫어했다.

원강의 얼굴이 굳어졌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그 대역이 우유도 대신 죽는 역할인 것을 알았다면, 그는 협조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원강은 조금 번거롭더라도 다른 방법을 생각하지,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넣지 않았을 것이다.

원강이 보기에, 그렇게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었다. 원강은 우유도처럼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째, 찝찝해?”

우유도가 물었다. 그리고는 쓴웃음을 지으며 원강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렇게 고민할까 봐, 네게 정보망을 동원해서 적당한 사람을 찾으라고 한 거야. 그 사람은 자기 문파 장문인의 딸을 살해한 사람이야. 죽을 짓을 한 사람이란 말이지.”

다만 그럼에도 원강은 여전히 침묵했고, 얼굴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관방의가 그런 원강을 흘겨보며 경멸의 한마디를 했다.

“가식적이긴! 너 또한 전장에서 수많은 병사를 베었잖아! 그들에게도 다 가족이 있었을 텐데, 그건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그리고 다시 우유도에게 말했다.

“이런 일이었다면, 나를 시켰어야지.”

“당시 나는 홍랑 쪽 사람에게 문제가 없다는 확신이 없었어. 보통 일이 아니니, 조심해야 하는 것이 좋지.”

관방의는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결국은 믿지 못한 거잖아.”

우유도가 하하 웃었다.

“믿지 못했다면, 원숭이에게 홍랑을 데려오라고 하지 않았겠지.”

이미 발생한 일이었다. 더는 이야기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었다. 관방의는 논리로 우유도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원강 또한, 자신의 논리가 우유도의 논리보다 결코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