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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445화 (541/1,000)

1445화. 악운(惡運)

윤이덕이 포권을 하고는 죽통 앞에 섰다. 하지만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어떤 것을 뽑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젓가락들 위에서 한참을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망설일 뿐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의 손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였다.

“윤 장로, 종문을 위한 책임을 짊어지는 것이 그대를 그리 난처하게 하는 것이오?”

궁임책이 갑자기 물었다.

궁임책의 말에 윤이덕은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젓가락 하나를 잡고 그대로 뽑았다. 드드득! 젓가락은 죽통에 아주 꽉 끼어 있었기에, 불쾌한 소리를 내며 뽑혀 나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젓가락을 확인하니, 부러지지 않은 것이었다.

그 순간 그는 안정을 되찾고는 젓가락을 들고 뒤돌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마음속으로는 크게 기뻐하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담담한 얼굴로 뒤로 물러났다.

그다음 나이는 원안이었다. 그가 앞으로 나서 제비를 뽑았다. 역시나 큰 소리가 났다. 다행히 그가 뽑은 것도 부러지지 않은 것이었다.

그다음은 바로 부군량이었다. 그가 뽑은 것도 부러지지 않은 젓가락이었다. 그도 조용히 한쪽으로 비켜섰다.

이제 두 개가 남았고, 남은 두 사람 모두 떨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엄입조차도 안절부절못할 지경이었다. 이제 자신이 걸릴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다만 엄입은 막영설보다 좋은 상태였다. 궁임책이 어떻게든 자신의 편에 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엄입이 앞으로 나서 제비를 뽑으려고 할 때, 막영설이 갑자기 말했다.

“나이로 제비를 뽑는다면, 제가 가장 어리니 제게 너무 불리합니다.”

궁임책이 싸늘한 눈으로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설마 여러분도 이게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이오?”

부군량이 즉시 반박했다.

“만약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면, 왜 일찍 말하지 않았소?”

원안이 동의하며 말했다.

“막 장로, 이건 그대가 잘못한 것이오.”

이미 안전한 젓가락을 뽑았으니, 인제 와서 이번 일을 뒤엎으려 할 리가 없었다. 당연히 그들은 모두 공평하다고 궁임책을 변호하고 나섰다. 엄입은 아직 제비를 뽑지 않았지만, 그는 궁임책의 사람이었다. 당연히 잘못되었다고 말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막영설 또한 물러서지 않고 다른 장로들과 격론을 벌였다. 처음엔 자신이 뽑기 전에 다른 사람이 먼저 부러진 젓가락을 뽑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부러진 젓가락은 계속해서 나오지 않았고, 이젠 자신이 뽑을 확률이 매우 높아졌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 트집을 잡으려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쉽게 한쪽으로 치우쳤다. 막영설을 제외하고 다들 다른 편에 서 있었으니, 막영설이 아무리 말해도 사람들은 의견을 바꾸지 않았다. 결국 궁임책은 더는 막영설을 신경 쓰지 않고, 엄입에게 말했다.

“뽑게!”

엄입이 앞으로 나섰다. 원래라면 장문 사형의 안색을 보고 어떤 것을 뽑을지 결정하려 했다. 하지만 웬걸, 궁임책은 공평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두 눈을 감아 버렸다.

엄입은 넋이 나갔다. 더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일은 그다음에 있었다. 눈 딱 감고 젓가락을 뽑았다. 드르륵! 소리가 그치고, 대전의 싸우는 소리 또한 즉시 조용해졌다. 부러진 젓가락이었다.

엄입의 늙은 얼굴이 부들부들 떨렸다. 눈을 뜬 궁임책이 손에 든 죽통을 흔들었다.

“막 장로!”

막영설은 즉시 앞으로 나와 아직 뽑지 않은 마지막 젓가락을 뽑아 들었다. 과연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것은 부러지지 않은 젓가락이었다. 그녀는 크게 기뻐하며 진땀을 흘리며 물러났다.

오직 엄입만이 궁임책 앞에서 멍청한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궁임책이 그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엄 장로, 종문의 중임을 자네가 책임져야 하겠네!”

젓가락을 들고 있는 부군량이 갑자기 포권을 하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장문인께서는 참으로 엄정하고 공평하십니다!”

나머지 사람들도 즉시 따라 소리쳤다.

“장문인께서는 참으로 엄정하고 공평하십니다!”

“이번 일은 이렇게 결정이 되었으니, 그대들은 이만 먼저 물러들 가시오!”

궁임책이 물러가라 손짓했다. 사람들은 장문인이 엄입을 위로하려는 것임을 알고는 모두 공손하게 대답했다.

“장문인의 법지를 따릅니다!”

그리고는 분분히 물러갔다. 떠나기 전에 다들 넋을 잃고 우두커니 서 있는 엄입을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동시에 다들 의외라고 생각했다. 이번에 궁임책은 정말로 일을 아주 공정하게 처리해, 뭐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궁임책은 대전 안의 제자들에게도 물러가라 손짓했다. 대전에 두 사람이 남았을 때, 궁임책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제,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게.”

엄입이 비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문 사형, 제게 천도비경에 가라고 할 때, 대세를 생각해서 눈 딱 감고 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저란 말입니까?”

“이건 제비뽑기로 뽑은 것이네. 내가 뭘 어쩔 수 있었겠는가? 내가 만약 속임수를 썼다면, 다른 장로들의 불만이 폭발했을 것이네. 심지어 장문인의 자리조차 지키지 못했을 수도 있었겠지.”

“제게 암시라도 하나 주실 수 있지 않았습니까?”

궁임책이 분노하며 말했다.

“허튼소리! 뭘 암시한단 말인가? 그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뭘 어찌 암시를 준단 말인가. 사람들이 다들 눈먼 장님인 줄 아는가?”

“그러면 사전에 뭐라 말씀이라도 해주실 수 있었지 않습니까. 이 사제의 편을 한번 들어 주실 수는 없는 것입니까? 우리는 같은 사부를 둔 사형제가 아닙니까!”

궁임책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편을 들어줘? 이게 지금 자네 편을 들어준 것이 아닌가? 저들은 다섯 개 중에 네 개를 뽑고, 자네는 다섯 중의 하나를 뽑았네. 어느 쪽이 뽑을 확률이 높았나? 이런 하책까지 동원한 것은 사제를 크게 편들었기 때문이야. 나는 자네의 사형일 뿐만 아니라, 자금동의 장문인이기도 하네. 나보고 어떻게 더 편들어 달라는 것인가?”

그리고 그는 좀 더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사제, 이런 상황에서도 자네가 당첨된 것을 보면, 그저 자네의 운이 너무 안 좋았다고밖에 말할 수 없군!”

엄입은 혼비백산했지만, 그래도 이해할 수 있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저들이 다섯 중에 네 개를 뽑았고, 자신은 하나를 뽑았다. 확률적으로 봤을 때, 엄입이 이길 확률이 아주 높았다. 사형이 이런 방법을 꺼내온 것은 확실히 자신을 편들어 준 것이다. 다만 엄입은 자신의 운이 너무 나쁘다고 한탄할 뿐이었다.

엄입이 울상인 얼굴로 말했다.

“사형, 우유도 같이 교활한 사람도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제가 간다면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궁임책이 다시 분노했다.

“그럼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사람들 앞에서 제비를 뽑고 결과가 나왔네. 다들 그 결과를 똑똑히 보았지. 인제 와서 나보고 결정을 번복하란 말인가? 의사대전에서 결정을 내린 일을 번복하며 공정성을 잃는다면, 자금동의 사람들을 무슨 낯으로 보겠는가?”

“저들은 분명 태상 장로들을 찾아가 억울함을 토로할 것이고, 그때가 되면, 자네는 어쨌든지 예정대로 성경에 가야 할 것이네. 그리고 나도 큰 곤욕을 치르겠지. 앞으로 저들은 계속 이 일을 가지고 나를 압박할 것이네. 그럼 앞으로 종문의 일을 처리할 때 누가 나를 따르겠는가? 설마 자금동이 사분오열되길 바라는 것인가? 사제, 장문인의 자리도 그리 쉽지 않네. 이럴 때일수록 자네가 나를 도와야지, 누가 나를 돕겠는가?”

“제가 사형을 돕는다고요?”

엄입이 참담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깨달았다.

더는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이 일은 사형조차 뒤엎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럴 권한이 없었다. 장문인이라 해서 자금동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일은 법도에 따라야 했다.

대전이 잠시 침묵에 휩싸였다. 궁임책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제, 일단 돌아가서 마음을 진정시키게. 그리고 떠나기 전에 나를 만나러 오게, 당부할 일이 있으니 말이야. 어떠면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위험하지 않을 수도 있네.”

사실 엄입을 성경에 들여보내기로 결정을 내린 후, 궁임책은 엄입의 안전이 걱정되었다. 최소한 엄입이 일찍 죽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어쨌든 우유도는 성경에 오랫동안 머문 경험이 있었다. 심지어 무량과를 훔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 때문에 궁임책은 우유도에게 생존 방법에 관해서 물어보았었다.

방법은 있었다. 다만 고정적인 방법은 아니었다. 상황을 보고 임기응변을 발휘하거나,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했다. 하지만 우유도조차 엄입에게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유도는 다만 다른 일곱 문파와 같이 움직인다면, 좀 더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라 조언했다.

궁임책은 그 방법을 엄입에게 알려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건 방법이랄 것도 없는 방법이었다. 엄입의 심리상태로는 들어도 기억을 못 할 가능성이 컸다. 지금 이야기해봤자 말다툼만 할 가능성이 컸다. 그러니 엄입이 자신의 안위에 대해서 고민하고 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좋았다.

엄입은 혼비백산한 얼굴로 그곳을 빠져나갔다.

대전 안에 궁임책이 혼자 남게 되었고, 그는 죽통을 다시 뒤집었다. 그 안에서 반쪽으로 부러진 젓가락이 흘러나와 궁임책의 손바닥에 떨어졌다.

사실 궁임책은 아까 뒤돌아서 젓가락을 부러뜨렸을 때, 죽통에 꽂혀 있던 젓가락을 부러뜨린 것이 아니었다. 미리 품속에 준비해두었던 또 하나의 젓가락을 꺼내 그것을 부러뜨린 것이었다.

이후, 궁임책은 뒤돌아 부러진 젓가락을 장로들에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품속에서 꺼낸 젓가락일 뿐이었고, 죽통에 있는 다섯 젓가락은 여전히 하나도 부러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니 누구든지 간에 죽통에 있는 다섯 젓가락을 뽑을 때, 당연히 젓가락이 멀쩡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죽통에는 특별한 장치가 되어 있었다. 이는 궁임책이 암중에 효월각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마련한 것이었다. 효월각은 암수를 만드는 것에 탁월했지만, 이런 속임수 물건을 만드는 데에도 매우 탁월했던 것이다.

어쨌든 궁임책은 이 죽통을 사용해 죽통에서 누군가 젓가락을 뽑을 때, 젓가락이 자동으로 부러지게끔 할 수 있었다. 매우 간단했다. 죽통 옆에 있는 몇몇 부분을 순서대로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면, 죽통이 자동으로 젓가락을 압박해 특정 젓가락을 부러지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죽통에 젓가락이 이상하게 꽉 끼어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렇게 젓가락이 꽉 끼어 있었기에 죽통에서 젓가락을 뽑을 때마다 큰 소리가 났다. 그리고 이 큰 소리는, 죽통에서 젓가락을 뽑을 때 젓가락이 부러지는 소리를 가리기 위한 일종의 속임수 장치였다.

결국 이런 장치들이 되어 있었으니, 엄입이 어떤 것을 뽑든, 먼저 뽑든 나중에 뽑든, 결국은 부러진 것을 뽑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 부러진 것을 뽑았다면, 승복하지 못하는 마음에 검증을 요구할 수도 있으니, 이 방법을 쓸 수 없었다.

하지만 엄입은 달랐다. 엄입은 절대 장문 사형이 이런 일로 자신을 속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자신의 운이 너무 나빴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경우에는 이미 목숨을 건졌으니, 굳이 쓸데없는 문제를 만들려 하지 않았다. 당연히 다시 검증하려 하지도 않았다.

모든 것은 우유도가 이미 다 계산한 후에 궁임책에게 알려준 방법이었다. 엄입은 어쩔 수 없이 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또 궁임책에게 이는 확실히 일거양득이기도 했다. 다른 장로들에게 공평함에 대한 칭송을 받게 된 것이다!

“어쩐지 우유도, 그놈이 성경에서 날뛰더라니. 어쨌든 이런 지략이 있었으니 그 물건도 얻을 수 있었던 거겠지….”

그가 중얼거렸다.

부러진 젓가락은 궁임책의 손에서 가루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하늘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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