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8화. 익숙한 목소리
공부가 끝났다. 아이들이 소리치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때, 한 행상이 서당 밖에 도착해, 걸어 나오는 서생과 마주했다.
행상은 이 마을의 행상으로 장기간 외부에 나가 물건을 팔고 가끔 마을로 돌아오고는 했다.
그리고 이 행상이 바로 성존이 추적하고 있는 사람으로, 해무극의 대내총관 제갈지였다.
제갈지의 신분은 진짜였고, 그의 행상 신분도 진짜였다. 그는 줄곧 이 마을의 사람이었고, 마을에서 이 행상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외지에서 행상을 하기 때문에 마을에 자주 돌아오지 못할 뿐이었다.
제갈지가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을 때는 조국 황궁의 대내총관이었다.
제갈지가 훨씬 젊어진 모습을 했을 때는 바로 외부에서 물건을 팔러 다니다가 가끔 이 마을에 돌아오는 행상이 되었다.
다만 이제 그 행상이 나이가 들어 체력과 다리가 예전 같지 않은 것 같았다. 외부에서 뛰어다니는 것도 이제 힘든 나이가 되었으니, 행상은 마을로 돌아와 정착하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천의무봉하게 맞아떨어졌다. 수행자가 이 마을에 방문한 적이 있었고, 관병이 비밀리에 이 마을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상을 눈치채지 못했다.
백면서생이든, 행상이든 원래 이 마을 사람이었다. 마을 안팎의 사람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주변 관아에 있는 사람들도 이들을 알았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제갈지가 과거부터 준비한 것으로, 몇 분의 황제를 모시면서, 자신의 비밀을 완벽하게 숨기기 위해 철저히 예비해둔 것이었다. 사실, 제갈지는 이런 준비를 해무극에게만 한 것이 아니었다. 선황제 때도 마찬가지로, 제갈지는 직접 다른 비밀스러운 곳에 비슷한 안배를 해 놓았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황조가 멸망하는 것에 대비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대단한 조국이 이렇게 무너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과거의 역대 황제는 물론, 제갈지조차, 만약 제갈지의 비밀이 새나가면 어떻게 될지 잘 알고 있었다. 제갈지뿐만 아니라, 암중에 명령을 내린 황제도 마찬가지로 목숨을 잃을 것이다. 그 때문에 제갈지는 어쩔 수 없이 사전에 이런 비밀스러운 안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폭로된다면, 도망친 후에 숨을 곳이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천하가 크다 한들, 절대 성존의 방대한 세력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두 사람이 서당을 나섰다. 그들은 길거리에 널린 소똥을 조심스럽게 피하며 울타리를 따라 걸었다.
그렇게 마을을 벗어나, 시내가 흐르는 작은 다리로 다가갔다. 발아래로 시내가 졸졸 흐르고 있었다.
눈을 들어 바라보니 벽옥색의 논밭들이 있었고, 늙은 소들이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비가 온 후여서인지 아직 안개가 다 가시지 않은 하늘은 마치 단계가 나뉜 것처럼 저 멀리 보이는 청산을 반쯤 비추고 있었다.
서생이 감개무량하다는 듯이 탄식했다.
“강산이 이토록 아름답구나!”
행상이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
“선생님, 그만 내려놓으시지요. 제가 손을 쓰는 그 순간부터, 이 강산은 더는 되돌려 받을 수 없습니다. 강제로 빼앗는다면, 목숨을 잃을 것입니다. 그때는 저도 선생님을 지킬 수 없을 것입니다.”
“모친은 평안하신가?”
“모릅니다. 한번 가봤지만, 상황이 이상했습니다. 그쪽에 이미 천라지망을 펼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다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큰 아가씨가 계시니 분명 잘 지내실 겁니다.”
“그래서 왜 나를 보러온 것인가?”
“선생님께 전해드릴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마음을 좀 푸시지요. 우유도가 죽었습니다. 성경 안에서 죽었습니다. 누구 손에 죽었는지는 모르지만, 죽은 것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서생의 입꼬리가 격렬하게 씰룩거렸다. 그의 두 눈에는 증오가 가득했다.
“잘 죽었다. 다른 사람에 손에 죽었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군!”
조국이 어떻게 멸망했는지,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연국과 조국의 전쟁을 일으킨 사람이 바로 우유도였다. 바로 우유도 때문에 효월각이 병력을 일으켜 조국을 칠 수 있었으니, 그는 모든 일의 원흉인 우유도가 가장 증오스러웠다.
조국이 멸망한 후, 그는 이곳에 숨어 살았다. 어렵게 안전한 곳을 찾았지만, 해무극은 이 원한을 참을 수 없었다.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라뿐만이 아니라, 그야말로 패가망신이었다. 급하게 도망치느라, 수많은 가족을 데려올 수 없었고, 데려와서도 안 되었다. 다들 아름다운 외모와 남다른 기도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도망치는 가운데 이들을 숨길 장소가 마련되어 있는 것도 아니니, 그들을 모두 데리고 도망칠 수 없었다. 만약 그리한다면 사람들의 이목에서 숨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그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많은 자녀가, 얼마나 많은 첩들이 칼 아래 귀신이 되었는지 몰랐다. 또 몇몇 이들은 무력하게 다른 사람의 노리개가 되었다. 그런데도 그는 모른척해야 했다. 알아도 소용이 없었다.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은 다들 끝없는 학대를 받고 있었으니, 그가 괜히 참견했다가, 잘못하면 그를 유혹하는 미끼에 걸려들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니 감히 언급조차 할 수 없었다. 말해봤자 자신의 가슴에 상처만 늘어날 뿐이었다. 불철주야, 매일매일 생각해봐야, 마음속으로 피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과거에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포기할 때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라를 다시 세울 수는 없지만, 복수는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는 제갈지에게 우유도의 목숨을 취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제갈지는 동의하지 않았다. 물론, 그가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러면 행적이 쉽게 폭로될 수 있었다.
금주는 원래 조국의 영역이었고, 그 안에 아직 많은 밀정이 남아 있었다. 상유란이 금주에서 어떤 일을 당했는지, 표묘각이 그를 찾아온 사실을 제갈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표묘각이 상유란을 찾아오다니, 표묘각이 이번 일에 개입한 것인가?
제갈지는 그 즉시 자신이 가장 걱정하는 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성존에게 찍힌 것이다. 성존의 공포스러움에 감히 어찌 경거망동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에게 대항하는 것은 어느 정도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수행계를 수백 년간 점거한 노 괴물들을 상대하는 것은 조금도 자신이 없었다. 아마 그중 가장 젊은 오상도 자신을 손쉽게 굴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다른 아홉 명의 그 방대한 세력이란.
그리고 그의 존재는 복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인제 와서 그는 더는 나라를 다시 세우는 일에 간섭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그에게 그런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가 몇 세대 동안 황국에 있으면서 책임진 것은 단 하나였다. 바로 황제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를 돌보아 준 과거 황제와의 약속이었다!
과거, 그 황제는 제갈지를 마치 아들처럼 보살펴 주었고, 덕분에 오늘날의 제갈지가 있을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그 황제가 준 것이었다.
황제가 임종할 당시, 그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삼 대의 황제를 지키겠다고 맹세했다. 그 후에 그는 조용히 떠날 것이었다!
오직 삼 대만을 지킬 수 있었다. 황제는 제갈지가 계속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최대한으로 잡아도 아마 삼 대뿐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위험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해무극이 어찌 그냥 승복할 수 있을까. 이 지경이 될 정도로 패가망신을 당했다. 살아 있는 처와 딸은 치욕을 당하고 있으니, 어찌 이 화를 삼킬 수 있을까?
결국, 그는 제갈지에게 다시 한번 간청했다. 오직 우유도만, 단지 우유도만 죽여달라고 말이다. 모든 일의 원흉인 우유도의 머리만 있다면 충분하다고 말이다!
단지 그 한 가지 조건이었다! 결국, 제갈지는 승낙했다. 그의 능력으로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우유도가 자금동에 숨어있어도 소용이 없었다. 그가 자금동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자금동은 그를 막을 수 없었다.
유일하게 확인해야 하는 것은, 우유도가 자금동에 있느냐였다. 위치만 확인하면 그만이었다. 그렇지 않고 함부로 쳐들어갔다가, 우유도가 그 큰 자금동에서 숨어 버린다면, 제갈지 혼자의 힘으로 찾는 것은 아주 고단한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가 그가 자금동에 숨어서 천천히 찾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건 제 무덤을 파는 행위였다.
속도가 중요했다. 위치를 확인하고, 목표에 돌진해 처리한 후, 다시 신속하게 떠나야 했다.
그런데, 제갈지가 아직 준비를 마치기도 전에, 우유도가 성경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손을 쓸 기회를 놓치게 되었다.
이제 그가 직접 손을 쓸 필요도 없이, 우유도는 이미 죽어 버렸다!
* * *
일행의 마차가 멈춰 섰다. 휴식을 취하며 정비를 하기 위해서다.
운희가 산을 올라 언덕에서 저 멀리 어떤 곳을 바라보았다.
관방의가 그 뒤를 따라 천천히 그녀 곁에 섰다. 그렇게 같이 먼 곳을 바라보았다. 곧 운희가 관방의를 돌아보았다.
“언니는 이제 어찌할 거예요?”
관방의가 갑자기 웃으며 물었다.
“네가 어떡할지 묻는 것이 먼저겠지. 여자의 몸으로 이 많은 사람을 이끄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야.”
“사실 별것 아니에요. 걱정해야 하는 사람은 제가 아니니까요. 전 그저 심부름꾼에 불과해요. 오히려 언니가 세력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이네요. 아마 남아 달라고 만류하지 못하겠지요?”
“내가 세력에 별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야. 오히려 관심을 가지면 안 되는 것이지. 관심을 가진다면, 그건 죽고 싶어 환장한 것이지. 우유도와 약속을 했어. 만약 그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너희를 안전하게 목적지로 데려다주기로 말이야. 그는 너희를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이지.”
“목적지에 도착하면 떠날 건가요?”
“사실 동생이 알고 있는 일도 있고, 모르고 있는 일도 있을 거야. 아무튼, 내가 여기 계속 남아 있는 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니야. 어떤 일들은 너희들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법이지.”
“만약 도야가 아직 살아 있다면, 계속 남아 있었을 거예요. 맞죠?”
“그건 다른 이야기지. 만약 그가 아직 살아 있다면, 모든 문제는 더는 문제가 아니야. 오히려 내가 그의 비호를 받고 있었어. 우유도가 없으니, 너희를 봐봐. 바로 비 맞은 개꼴로 쫓겨났잖아. 또 그 원강과 동생, 둘은 너무 안 맞아. 이 수많은 사람이, 서로 얼마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겠어.
그들을 하나로 모으고, 너희들을 모두 굴복시킬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언젠가는 사분오열되고 말 거야. 그러니 너희를 목적지에 돌려보내고, 안전해지면, 나는 떠나야 해. 우유도가 말한 곳은 요마령이었어. 그곳에 가면 너희를 돌볼 사람이 있을 것이라 했어.”
“언니의 뜻을 잘 알았어요. 언니의 보호를 받을 수 있어 참으로 감사한 마음뿐이에요. 더는 지나친 요구는 하지 않을 거예요.”
관방의가 무릎을 살짝 굽혀 감사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 후에 운희에게 가까이 다가가더니 조용히 말했다.
“오른쪽에 있는 저 높은 산, 뒤쪽에 있는 골짜기에 누군가 언니를 기다리고 있어요.”
운희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누가 말이야?”
“가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조심하세요. 다른 사람에게 들키면 안 돼요.”
운희가 다시 뭔가를 물으려고 할 때, 관방의는 이미 몸을 돌려 그곳을 벗어나고 있었다.
운희는 뒤돌아 오른쪽에 있는 산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잠시 망설이더니, 조용히 그곳에서 사라졌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 골짜기에 내려서서 주위를 둘러볼 때 갑자기 뒤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셨습니까.”
운희가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초목으로 숨겨진 큰 바위 뒤에 한 사람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본 적이 있었다. 바로 자금동에서 파견해 길을 열게한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고 운희는 깜짝 놀랐다. 매우 익숙한 목소리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