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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452화 (548/1,000)

1452화. 허송세월할 수는 없다

긴장으로 입이 타들어 갔던 부군란이 그제야 찻잔의 뚜껑을 열더니, 찻잔을 들고 벌컥벌컥 마셨다.

안에 대기하던 시녀는 눈썰미가 좋은 아이였다. 그는 부군란이 찻잔을 기울이는 각도를 보고는 즉시 다가가 부군란이 내려놓은 찻잔에 찻물을 채워 주었다.

부군란은 왕부의 시녀에게도 감히 무례하지 못하고,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연신 감사를 표했다.

시녀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법도에 맞게 대답했다.

“부 공자님께서는 그리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건 저희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왕부 하인들 사이에 소문이 쫙 났다. 당연히 이 시녀도 눈앞에 있는 사람이 미래 왕부의 사위라는 것을 모를 수 없었다. 방금만 해도 왕야와 남 선생님이 직접 같이 차를 마시지 않았던가, 절대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밖에서 남약정이 상조종과 같이 한쪽 처마 밑으로 움직였다. 곧 상조종이 뒤돌아 남약정의 귓가에 뭐라고 잠깐 중얼거렸다.

남약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잘 알겠습니다.”

상조종은 그제야 성큼성큼 그곳을 벗어났다. 반면 남약정은 다시 빠르게 객청 안으로 들어왔다.

남약정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보고 부군란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약정은 만면에 미소를 띠고 연신 자리에 앉으라 손사래 쳤다.

“앉으십시오. 앉으십시오. 부 공자, 차를 드시지요.”

안절부절못하던 부군란은 어쩔 수 없이 어정쩡하게 서서 기다리다가, 남약정이 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 그제야 다시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시녀는 남약정의 찻잔을 남약정이 앉은 자리로 옮겨 주었다. 남약정이 손짓하자 시녀들은 곧 알아서 객청에서 물러갔다.

외부인이 없는 것을 보고 남약정이 곧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방금 급한 일이 있어 잠시 어딜 다녀왔습니다. 부 공자님을 기다리게 했습니다.”

부군란이 다급히 대답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남 선생님은 공사가 다망하신 분이시니, 만약 바쁘신 일이 있으시면, 소생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소생이 어찌 감히 선생님의 귀중한 시간을 뺏겠습니까. 소생은 그냥 놔두시면 됩니다.”

“아이고, 괜찮습니다. 마침 시간이 있었습니다.”

남약정은 하하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후, 잡다한 주변잡기에 대해서 대화를 시작했다.

부군란은 감히 남약정이 묻는 말에 조금의 거짓도 없이 딱딱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집안일에 대한 질문이 끝나자, 다시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등을 물어왔다.

사실 이런 건 질문할 필요 없었다. 상대방의 습관과 취미는 이미 진작에 쭉 정리되어 그의 서탁에 올라온 적이 있었다. 당연히 그에 대해서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다만 지금 남약정이 그에게 이리저리 묻는 것은 마치 미래를 위해 안배를 한다는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마치 미래를 위해 그를 평가하듯이, 그에게 어떤 관직을 주면 좋을지,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덕분에 부군란은 더욱 안절부절못했다.

그렇게 상대방의 집안과 개인 상황을 확인한 후, 남약정이 드디어 남녀 사이의 일에 대해서 언급했다.

“공자와 군주님이 만난 지도 어느 정도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공자님은 군주님을 어찌 생각하십니까?”

“군주님께서는 지혜로우십니다. 금기서화등 못 하는 것이 없으시지요. 그야말로 보기 드문 인재이십니다. 소생은 그저 앙모할 따름입니다.”

남약정이 허리를 살짝 숙이고 물었다.

“그럼 공자님의 집안사람들은 군주님을 어찌 생각하십니까?”

부군란은 다시 아주 정석적인 답변을 했다.

“귀한 집안의 명문 규수입니다. 다들 찬탄을 금치 못하고 있지요!”

“하하, 좋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남약정이 만면에 미소를 띠고 찻잔으로 그 능구렁이 같은 얼굴을 살짝 가렸다. 이후, 다시 찻잔을 내려놓고, 기침을 한번 하더니 말했다.

“부 공자님, 이 남 모가 공자께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부군란이 다급히 말했다.

“내리실 분부가 있으시면 얼마든지 내리십시오. 소생이 그 교훈을 귀히 듣겠습니다.”

남약정이 한쪽 손을 들어 찻잔을 잠깐 툭툭 건드리더니 잠시 단어를 선택하고 입을 열었다.

“부 공자, 다 아는 사람끼리 숨기지 않겠습니다. 이렇습니다. 공자와 군주님이 꽤 오랫동안 사귀었고, 이처럼 붙어 다니니,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좋지 않은 소문이 돌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일찍 결정을 내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결정 말입니까?”

부군란이 긴장했다. 그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포권을 하며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저를 깨우쳐 주시기 바랍니다.”

“아이고!”

남약정이 자신의 허벅지를 ‘탁’ 치며 부군란에게 상반신을 한껏 기울이며 말했다.

“공자처럼 똑똑한 사람이 이럴 때 어찌 이리 둔하십니까? 왕부에서는, 왕야와 왕비 모두 공자를 좋게 보고 있습니다. 공자와 공자 집안의 사람들도 군주님을 좋게 본다니, 그만 이제 결정을 내려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군주와 공자의 나이가 이미 적지 않습니다. 이대로 그냥 허송세월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어….”

부군란은 그 순간 상대방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 혼인이 이제 정식으로 진행되려는 것이었다. 그는 순간 절절매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맞습니다.”

남약정이 물었다.

“맞기는 뭐가 맞습니까?”

부군란이 즉시 말을 바꿨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아이고! 공자.”

남약정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얼굴로 직설적으로 말했다.

“부 공자, 군주는 여인입니다. 군주가 시집을 가는데, 여자 쪽에서 먼저 입을 열어야 하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설마 왕야가 권세로 압박을 가했다느니, 군주가 뻔뻔하게 공자에게 시집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느니, 그런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서 흘러나오게 할 참입니까? 그런 이치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공자는 남자입니다. 당연히 적극적으로 나서야지요. 중매든, 예물이든, 먼저 움직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부군란은 다소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사실 내심으로는 불만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왕부에서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 누가 감히 왕부에 중매를 넣겠는가?

“알긴 뭘 알았습니까?”

남약정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부 공자는 확실히 대답을 해보십시오. 그래야 왕부에서 준비하든가 할 것 아닙니까?”

부군란은 어리석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왕부가 정식으로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그가 즉시 확실한 대답을 해주었다.

“알겠습니다. 오늘 제가 돌아가면 즉시 집안 어르신들께 아뢰고 일을 추진토록 하겠습니다.”

남약정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바로 그래야 하지요!”

사실 이건 상조종의 뜻이었다. 우유도가 돌아오자, 상조종은 다소 마음이 다급해졌다.

원래 상조종은 조급하지 않았다. 이쪽에서 부군란의 조상들 상황까지 다 파헤치고 부군란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수차례 검증을 거치고 있었다. 그렇게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서쪽에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런 시기에는 병사를 훈련하며 전쟁을 대비해야 할 때였다. 지금 혼인을 올리기에는 좋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일이었다. 조금 더 늦는다고 큰일 날 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상조종은 원래 정세가 안정되면 다시 상숙청을 위해 혼인을 제대로 치러 주려고 했다.

그런데 웬걸, 갑자기 우유도가 돌아왔다. 심지어 초려별원의 사람들이 앞으로 남주부성에 거주하게 되었다.

사실 어떤 일들은 당장 숨길 수 있지만, 오래 숨기지는 못하는 법이다. 상숙청의 성격을 생각하면 나중에 진실을 알고 무슨 짓을 벌일지 몰랐다.

상황이 상황이었다. 과연 상조종은 전쟁을 전전하며 군대를 지휘하던 장군이었다. 그는 지금 당장 혼인을 치르기로 과감히 결정을 내렸다. 방금 밖에서 상조종이 남약정에게 당부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렇게 남약정의 말을 들은 부군란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을 고하더니, 그대로 집으로 달려가 어르신들에게 알리려 하는 것이 아닌가.

남약정은 울고 싶었다.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난 남약정이 그를 저지하며 말했다.

“부 공자, 지금 당장 급한 것은 아닙니다. 오늘 군주님과 만나기로 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일방적으로 약속을 어길 수는 없는 일이지요. 일단 군주님과 약속을 지키고, 돌아간 후에 집안 어르신들께 아뢰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소생이 어리석었습니다.”

남약정이 그에게 차를 권하고는 이어 말했다.

“그리 조급해할 것 없습니다. 왕야께서 군주님을 데리러 가셨으니, 군주님도 곧 오실 겁니다. 진정하십시오.”

“진정하겠습니다. 진정하겠습니다.”

부군란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들어 민망한 얼굴을 숨겼다.

* * *

왕부의 내택 깊은 곳,

시녀들을 모두 물린 봉약남은 마치 아이를 돌보는 것을 도와줄 사람이 없는 것 같은 모양새로 상숙청을 붙잡고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한참을 돕던 상숙청은 부군란과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가니 슬슬 움직이려고 했다. 하지만 봉약남에게 붙잡혔다. 만약 부군란이 온다면 사람이 와서 소식을 전할 것이니 걱정할 게 없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는 사실 상조종이 아직 그쪽 일을 다 처리하지 않아, 상숙청이 초려별원의 사람들을 만날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부군란을 만나오면서 상숙청은 부군란이 약속을 어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되어도 자신에게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오지 않았다. 그렇기에 몇 번이나 찾아가 보려고 했지만, 계속해서 봉약남에게 붙잡혔다.

그렇게 봉약남이 더는 상숙청을 붙잡고 있기 어려운 지경에 달했을 때, 기침 소리가 들렸다. 상조종이 온 것이다. 부부 사이에 눈빛을 주고받더니, 봉약남은 큰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자신이 임무를 완수한 것이다!

마음이 딴 곳에 가 있는 상태로 아이를 달래고 있는 상숙청을 보고 상조종은 모르는 척 물었다.

“청아야, 여기 있느냐?”

“오라버니!”

상숙청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집안에서 하는 간단한 인사를 했다.

“방금 부 공자를 만나고 왔다. 객청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다. 어서 가보아라.”

“아….”

상숙청이 조급해졌다. 남녀 사이의 감정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가 받은 가정 교육과 인품의 문제였다. 사람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은 실례되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상숙청은 봉약남에게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새언니, 손님이 왔어요. 먼저 가볼게요.”

봉약남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음, 어서 가봐. 아니, 잠깐만.”

봉약남이 상숙청을 불러 세웠다. 걸음을 멈춘 그녀가 돌아보았다.

“할 말이 있으세요?”

봉약남은 상숙청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물었다.

“이렇게 하고 부 공자를 만나러 갈 참이야?”

상숙청은 그 말을 듣고 머리가 아팠다. 매번 부군란과 만날 때마다 새언니를 만나서 반드시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중요한 것은 그 갈아입는 옷들이 다들 보기에 다소 민망한 것들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새언니는 항상 상숙청에게 몸매가 좋으니, 그 몸매를 드러낼 수 있는 옷을 입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녀는 새언니의 의도를 알고 있었다. 장점으로 단점을 덮길 바란 것이겠지. 최대한 몸매라는 장점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길 바라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상숙청은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못생긴 얼굴을 부끄러워한다는 느낌을 주는 것 같았고, 또 다른 한 가지는 그렇게 입으니, 다소 방탕하고, 볼썽사납다는 느낌을 주었다. 상숙청은 미혼의 여자가 그렇게 입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미 못생긴 용모를 가지고 있었다. 상숙청은 자신의 인품이 다른 사람에게 가벼워 보이는 것이 싫었다.

“괜찮아요. 이대로 아주 좋아요.”

상숙청은 그렇게 대충 둘러대고는 바로 떠나려 했다.

“잠깐.”

하지만 봉약남은 두말하지 않고 품에 안고 있던 아이를 상조종에게 던져 주었다. 그냥 말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아이를 두 손으로 상조종에게 던졌다.

다행히 상조종은 눈앞에 있는 여장군 출신의 부인에게 익숙해져 있었다. 뼛속 깊이 각인된 것은 바꾸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상조종은 자연스럽게 아이를 두 손으로 받아 들고는 아이를 안고 빙글빙글 돌며 달래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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