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3화. 보통 일이 아니다
빠르게 다가온 봉약남은 상숙청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어서, 옷을 갈아입어야지.”
상숙청은 참으로 곤란해했다.
“새언니, 괜찮아요. 부 공자가 기다리고 있어요.”
“좀 더 기다리라고 해. 좀 기다리는 게 어때서?”
봉약남을 그렇게 코웃음을 치고는 그대로 상숙청을 끌고 갔다.
상숙청이 여장군 출신인 봉약남의 힘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봉약남은 기마에 올라타 창을 들고 전장을 뛰어다니고, 남편을 때려눕히던 여걸 중의 여걸이었다.
상조종 같은 경우는 여자들이 자신을 꾸미는 일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고, 끼어들 생각도 없었다. 그냥 그렇게 못 본 척했다.
주위에 아이를 보는 하인들이 보이지 않자. 상조종은 일단 잠깐 아이를 돌보기로 했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자, 봉약남이 돌아왔다. 상조종이 아들을 품에 안고 물었다.
“청아는 부 공자에게 갔소?”
“네, 갔어요.”
봉약남이 아들을 다시 돌려받으며 물었다.
“초려별원에는 잘 전했나요?”
상조종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이러는 것이오. 잘 당부했소. 홍랑에게 말했고, 승낙했소. 아마 아랫사람들도 잘 통제할 것이오. 그들은 청아를 만나도 도야의 부고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상조종이 갑자기 말을 멈추고 침묵했다. 오랫동안 같이 살아온 부부였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봉약남이 물었다.
“설마 뭐가 잘못됐나요?”
“아무 일 아니오!”
상조종은 손사래를 치며 일이 있다고 그곳을 벗어났다.
그 순간, 상조종의 마음속에 도야의 죽음이 거짓인 것이 떠올랐다. 동시에 우유도의 경고가 같이 떠올랐다. 비록 그 죽음에 얼마나 큰일이 얽혀 있는지는 모르지만, 특별히 당부한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상조종은 봉약남에게도 비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봉약남의 부름에, 한쪽에 숨어있던 하인들이 분분히 나왔다. 이 큰 왕부에 소왕야를 돌볼 하인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 * *
객청 내부,
남약정은 여전히 부군란과 같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다만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이 그렇게 담소를 나누다 보니, 사실 남약정도 뭔가 불편하고 어색했다.
이때, 상숙청이 요조숙녀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남약정은 마치 큰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하하 웃으며 말했다.
“부 공자, 군주님이 오셨습니다.”
“남 선생님.”
상숙청이 우선 남약정에게 인사를 했고, 남약정도 포권하며 답례했다. 부군란이 또다시 상숙청에게 인사했다.
“군주님.”
상숙청도 다시 예의 바르게 그에게 인사했다.
“부 공자님.”
이리저리 인사를 주고받는 게 조금은 번잡해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예를 저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남약정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군주님, 부 공자, 지금 남 모는 일이 있으니 이만 먼저 가볼까 합니다. 두 분께서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그는 포권을 하고는 빠르게 그곳을 벗어났다. 상숙청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여기가 좋으신가요. 아니면 좀 걸으실래요?”
부군란은 더는 앉아 있고 싶지 않았다. 그가 다급히 말했다.
“이미 한참 동안 앉아 있었습니다. 좀 걷는 게 좋겠습니다.”
“그럼 가시지요!”
상숙청이 팔을 뻗었다. 거만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객청을 나간 두 사람은 후원에 있는 화원으로 향했다. 여전히 전쟁이 한창이었다. 안전을 위해서 상숙청은 왕부를 떠나지 않는 것이 좋았다. 덕분에 매번 부군란이 직접 이렇게 찾아와야 했다. 두 사람이 한 번 만날 때 다음 약속 시각을 잡고는 했다.
후원으로 향하는 와중에 상숙청이 물었다.
“방금 공자님이 한참 앉아 있었다고 했는데, 설마 일찍 도착하신 건가요?”
부군란은 딱히 숨기는 것 없이 그대로 말했다.
“딱히 이르게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간에 맞춰서 도착했지요. 다만 마침 왕야를 만나서 같이 왕부에 들어왔습니다.”
시간에 맞춰서 왔다고? 상숙청이 시간을 계산해보더니 말했다.
“그럼 오래됐군요. 정말 죄송해요. 일이 있어서 시간이 지체되었어요. 공자님을 오래 기다리게 하면 안 됐었는데.”
“괜찮습니다. 남 선생님과 담소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런 기회가 많지는 않을 것이니 말입니다.”
상숙청이 다소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남 선생님이 줄곧 공자님과 같이 계셔 주신 건가요?”
“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 왕야와도 몇 마디 나눴습니다. 그 후에 남 선생님께서 저를 좋게 보셔서 잠시 담소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상숙청은 다소 의외라는 듯이 부군란을 보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나요?”
“그냥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이야기지요.”
그는 부끄러웠기에 혼인에 관련된 이야기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다. 혼인과 관련된 이야기는 아주 짧게 지나간 이야기였다. 남약정도 부군란과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대다수 시간을 그저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때웠을 뿐이다.
“자질구레한 이야기요?”
상숙청은 크게 의아해했다. 그녀는 아주 지혜로운 여인이었다. 그녀가 보는 시야는 감히 보통 여인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남약정이 어떤 사람인가. 상숙청이 모를 수가 없었다. 남약정 같은 사람에게 시간은 금보다 귀했다. 그런 그가 부군란과 같이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그리 오랫동안 나눴다니, 이는 절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상숙청은 부군란을 얕잡아 보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 출신 배경이 너무나 차이가 났다. 아마 당분간은 그 간격을 메우기 힘들 것이다. 그건 상숙청도 다 이해하는 부분이었다. 천천히 하면 됐다.
설사 상숙청이라 할지라도, 평소에 부군란과 대화를 나눌 때면, 이 차이로 인해 부군란이 어설퍼 보일 정도였다. 그 때문에 가끔 부군란의 언행이 다소 현실과 동떨어질 때가 있었다. 예를 들어 서생의 분노로 천하를 평가할 때, 부군란의 가문도 예전에 고생한 적이 있었다. 당연히 지금 시국에 대한 자신의 느낌이 있었다.
부군란이 하는 말은 사실 아주 얄팍했다. 그 안에 개인의 감정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었다. 막말로 무지하다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상숙청은 아주 좋은 청자였다. 그래 봤자 그저 한번 빙그레 미소짓고 말았다. 부군란이 불편함을 느끼게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상숙청은 남약정 같이 바쁜 사람이 그 귀한 시간을 이런 쓸데없는 곳에 허비했다는 것이 참으로 의외였다.
그런데도 상숙청은 그저 한 번 더 되물었을 뿐, 의문이 있다 하더라도 너무 캐묻지는 않았다. 혹시라도 상대방이 자신을 추궁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불편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상숙청은 부군란 같은 수준의 사람과 어떤 대화를 나누어야 할지 알고 있었다. 그렇게 주제를 남주부성의 일상생활로 돌렸다. 예를 들어 어느 집이 새로 점포를 열었더라, 누구 점포의 과일이 더 맛있더라 하는 이야기였다.
그쪽으로 이야기가 돌아가자, 부군란의 얼굴이 살아났다. 부군란은 그런 이야기에 자신이 있었다.
어느 집의 음식이 맛있는지 이야기할 때, 부군란은 마치 정말 좋은 집을 찾았다는 듯이 아주 칭찬을 늘어놓았다.
“공자님의 극찬을 받은 것을 보면, 분명 아주 맛있겠지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한번 방문에 보고 싶군요.”
상숙청은 부드러운 어투로 말을 이어갔다. 남주부성 안에 새로 연 점포가 있다면, 왕부에서 누군가 그 물건을 공수해와 맛볼 수 있었다. 그러니 남주부성의 정말 맛있는 것들을 왕부에서 보지 못한 게 있을 수가 없었다.
이때, 상숙청의 생각이 살짝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음식을 이야기하면, 누가 감히 초려별원의 승려들이 차려주는 것과 비교할 수 있을까. 초려별원의 음식이야말로 천하 일절이었다. 아침에 종소리가 울리고, 승려들이 경건하게 차린 음식이 올라온다. 그건 감히 이런 도시의 길거리 음식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상숙청이 초려별원의 음식을 떠올린 것은, 솔직히 말해 지금 나누는 대화가 다소 따분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사실, 이런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그리 범속하지 않았다.
그럴 거면 차라리 여자들이 입는 옷과 장신구 등 여자들이 좋아하는 이야기가 나았다. 하지만 부군란은 그런 것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분명 말이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제 와서 어쩐단 말인가. 부군란은 이미 집안의 사람들이 모두 인정한 그의 미래 남편이었다. 상숙청도 내심 받아들였다. 앞으로는 이 남자와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최대한 상대방에게 맞춰주어, 부군란이 편안하다고 느끼게 해주려 했다.
“초려별원의 사람들이 모두 왔더군, 저기 남주 부성에 자리를….”
왕부는 아주 컸다. 두 사람이 드디어 후원 입구에 도착했을 때, 저 멀리서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그 내용을 들은 상숙청은 멈칫했다. 갑자기 부군란에게 허리를 살짝 숙여 사죄하고는 발걸음을 빨리했다.
후원 입구에는 녹색 덩굴이 복도를 타고 오르고 있었고, 그 안에서 두 수행자가 마주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발소리가 가까워지자 그들은 대화를 멈추고 돌아보았다. 상대방이 상숙청인 것을 확인한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 있게 인사를 건넸다.
“군주님!”
상숙청은 그에게 인사를 하고 물었다.
“방금 두 분께서 초려별원의 사람들이 여기 왔다는 이야기를 하셨지요. 그들이 남주부성에 왔나요?”
두 사람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상부에서 내려온 명령에 따르면, 이 왕부 안에서 우유도의 부고에 대해서 떠들 수 없었다. 다만 초려별원은 그 범주에 들어가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초려별원과 우유도의 부고는 연관이 없을 수 없었다. 당연히 상숙청이 들어도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군주님께서 잘못 들으셨습니다.”
한 수행자가 예의 있게 대답하고는 별말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눈짓했다. 두 사람은 그대로 찻주전자를 들고 그곳을 떠났다.
상숙청이 멈칫했다. 그때 부군란이 다가와 물었다.
“군주님, 어찌 그러십니까?”
상숙청이 뒤돌아 물었다.
“혹시 방금 공자께서는 저분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으셨나요?”
부군란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초려산장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남주부성에 들어왔다고 했던 것 같군요. 아니, 초려별원이라 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초려산장은 들어봤지만, 초려별원은 못 들어봤군요. 제가 잘못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부군란조차 ‘초려별원’이라는 단어를 들었다. 상숙청이 잘못 들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들이 마치 자신을 피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에게, 초려별원에 관한 이야기를 들키면 안 된단 말인가? 지금 보면 자신을 피하는 것 같았다. 마치 자신에게 어떤 중대한 이야기를 숨기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말했다시피, 상숙청은 지혜로운 여인이었다. 곧바로 조금 전, 새언니가 했던 의아한 행동이 즉시 연상되었다. 왕부에 아이를 돌볼 하인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또 남 선생님의 행동이 떠올랐다. 이처럼 바쁜 와중에 부군란과 장시간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또 한 가지, 초려별원의 사람이 온 게 분명해 보였다. 자신이 초려별원의 사람들과 얼마나 친분이 깊은가. 어째서 자신에게는 알려주지 않은 것이지?
생각할수록 이상했다. 그녀는 즉시 부군란에게 허리를 숙여 예를 올리고는 말했다.
“부 공자님,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좋습니다.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부군란이 포권을 하며 대답했다. 그리고 미안한 얼굴로 다급히 떠나는 상숙청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봉약남을 찾아갔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밖에서 놀고 있었고, 봉약남은 건물 안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