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8화. 수견(誰見)
홍랑은 이가 아려왔다. 하지만 지금은 입 다물고 일단 몸을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때, 밖에서 들리던 금음이 멈췄다. 곧이어 밖에서 뭔가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이 서로 한번 마주 보았다. 둘 다 무슨 일인지 알지 못했다. 둘 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 난간에 기대 소란이 이는 곳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모여 있는 누각에서는 부군란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에게 포권을 하며, 마치 한 번만 봐달라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떠들썩한 웃음소리 사이로 들리는 말들은 부군란에게 한 곡 더 연주해 달라는 것이었다. 솜씨가 좋다고 가장 크게 칭찬하는 사람은 봉약남이었고, 부군란에게 한 곡 더 연주해달라고 가장 강렬하게 요구하는 사람도 봉약남이었다. 마치 부군란이 그 기예를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어, 부군란이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단순히 분위기상 열심히 칭찬하고 있을 뿐이었다. 우유도가 이를 보고는 중얼거렸다.
“금 타는 솜씨는 제법 괜찮군…. 인제 보니 저 왕비는 자신의 매부에게 아주 만족하는 것 같군.”
“황송합니다. 그저 미천한 재주일 뿐입니다. 군주님의 귀를 더럽혔습니다. 군주님의 솜씨야말로….”
소란스러운 소음 사이로 겸손하게 칭찬을 마다하는 부군란의 말이 은은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동시에 그 칭찬의 방향을 상숙청에게 돌려, 사람들에게 상숙청의 연주가 얼마나 대단한지 떠들었다.
그렇게 부군란은 계속해서 사양했고, 관방의 쪽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사실 관방의는 이들이 당장이라도 돌아가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저 분위기가 식지 않도록 웃으며 분위기를 맞춰 주었을 뿐이었다.
부군란이 계속 사양하자, 봉약남이 호쾌하게 소리쳤다.
“청아야, 부 공자님이 네 연주를 듣고 싶다고 하니, 그렇게 숨어 있지 말고 한번 보여주거라. 각자 돌아가면서 한 곡씩 연주하니, 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 한 쌍이야!”
하지만 상숙청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그저 연신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다.
하지만 봉약남은 마침 한참 기세가 오른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상숙청을 잡아 금 앞으로 잡아끌어 앉히는 것이 아닌가. 그건 마치 오늘 기필코 연주를 시키겠다는 모습이었다.
사실 봉약남은 내심 자존심이 상해 있었기에, 분출할 곳이 필요했다. 초려산장의 남자가 상숙청을 안중에 두지 않는 것이 퍽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니 이들에게 상숙청이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주고 싶었다.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봉약남은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는 사람을 가장 싫어했다. 이는 그녀의 외모 또한 솔직히 별로였기 때문이다. 그저 이 세상에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남자가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그 전에 부군란에게 연주를 부탁한 것도, 초려산장의 사람들에게 매부가 얼마나 잘났는지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럴 때마다, 상숙청은 가끔 자신의 새언니가 진절머리났다. 예를 들어 옷을 갈아입으라고 할 때, 만약 갈아입지 않겠다고 하면 강제로 옷을 벗겨버리곤 했다. 그러니 어찌 갈아입지 않겠는가?
정숙한 숙녀가 전장을 전전하던 여장군 출신을 이겨 먹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상숙청은 말할 것도 없고, 상조종조차 봉약남에게 얻어맞아 쓰러지지 않았던가!
지금 봉약남이 상숙청을 강제로 끌고 올라가니, 상숙청은 어쩔 수 없이 사람들에게 허리를 숙이고, 연주할 수밖에 없었다. 봉약남은 원하는 것을 얻기 전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둥….
섬섬옥수가 현을 튕겼다. 듣기 좋은 금음이 널리 울려 퍼졌다. 주위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금음이 천천히 그녀의 손가락을 통해 흘러나왔다. 어떨 때는 퐁당 떨어지는 물방울 같기도 했고, 어떨 때는 높은 산에 흐르는 물줄기 같기도 했다. 마치 구름이 뭉쳤다가 흩어지는 것처럼 사람들을 끝없는 사색으로 이끌었다.
조용히 듣고 있던 운희가 갑자기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 군주의 기예가 방금 저 남자보다 훨씬 고명하군. 금음에 강함과 유함이 동시에 공존하니, 그 소리가 참으로 깊군.”
우유도 또한 두 눈을 감고 묵묵히 감상하고 있었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금에 정통한 것은 아니었지만, 좋고 나쁜 것을 구분할 수는 있었다. 물론 부군란의 솜씨가 나빴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상숙청의 솜씨는 부군란과 비교하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매우 뛰어났다. 그러니 다들 천천히 상숙청의 연주에 빠져들었다.
한편, 자리에 앉아 있는 부군란의 얼굴이 유독 남달랐는데, 그의 두 눈에는 상숙청을 향한 사모의 빛이 가득했다.
사람들은 그렇게 연주에 빠져들었고, 곧 자신들도 모르게 감정이 요동쳤고, 금음에 따라 조금씩 서글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가 연주하는 금의 곡조가 바뀌어 있었다.
왜인지 모르게, 상숙청은 곡 안에 자신의 감정을 담아내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는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어 천천히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맑고 부드러워 사람의 마음을 흔들었다. 우유도는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고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일 정도였다.
“하늘과 바다 사이, 산은 말이 없네.
그 사이로 배회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누군지 보이는가?
바람은 세월로 돌을 깎고, 비는 세월로 처마를 두드리네.
그 사이로 배회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누군지 보이는가?
푸른 풀은 바람의 말을 아는데,
푸른 호수는 빗물의 말을 아는데,
누군가는 나의 말을 알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구나.
요조는 숙녀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은 세월을 타고 흘러가는구나.
하늘과 바다 사이, 산은 말이 없고,
바람과 땅 사이, 흐르는 강 또한 말이 없네…….”
상숙청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같은 곡조를 반복해서 불렀다. 관방의는 서서히 노래가 담고 있는 의미를 깨달아 갔다.
저 천지 사이에 배회하는 고독한 모습의 사람은, 우유도를 지칭하는 것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상숙청 자신을 지칭하는 것이기도 했다. 또한, 푸른 풀은 바람의 말을 알지만, 푸른 호수는 빗물의 말을 알지만, 누군가는 자신의 말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게 누구겠는가? 당연히 우유도였다. 우유도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다고 조용히 한탄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우유도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동안, 자신이 가졌던 아름다움과 젊음이 어느새 사라져가고 있다고, 상숙청은 남몰래 한탄하고 있었다.
청춘은 영원하지 않았다. 비록 상숙청이 아름답지 않다고는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녀에게는 청춘이 있었다. 지금 그녀는 아직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세월이 그녀의 청춘마저 가져갈 것이고, 그녀는 지금 갖고 있는 작은 아름다움마저도 빼앗기게 될 터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 없는 우유도의 강건함과 묵묵함, 그의 침묵을 말하고 있었다. 우유도의 강건함은 마치 변하지 않는 산과 강 같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노래의 뜻을 깨달은 관방의의 두 눈이 서서히 붉어졌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난간을 짚고 있는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에게 알아들었는지 묻고 싶었다.
그 남자는 알아들었는지 어쨌는지, 그저 두 눈을 감고 움직이지 않았다.
한편, 부군란은 멍한 얼굴로 금을 타며 노래를 부르는 상숙청을 보았다. 그녀가 어째서 갑자기 이처럼 슬퍼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찌 이리 서글퍼 한단 말인가?
이 노래의 뜻을 알아들은 것은 관방의뿐만이 아니었다. 봉약남이 아무리 문무 중에서 무에만 출중하다 한들, 그녀 또한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 문에도 어느 정도 조예가 없을 리 없었다. 그러니, 봉약남의 두 눈이 서서히 붉어졌다. 하지만 곧 부군란의 반응을 확인한 후, 정신을 차렸다. 봉약남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상숙청의 노래를 자르며 소리쳤다.
“마침 다들 기분 좋을 때 뭘 그리 슬픈 노래를 부르는 것이야. 그만 부르는 것이 좋겠다.”
그 말을 들은 상숙청은 곧 정신을 차렸고, 그녀의 노래가 멈췄다. 동시에 열 손가락으로 금의 현을 내리눌러 금의 여음을 없앴다.
상숙청은 그제야 자신이 추태를 보였음을 깨닫고는 민망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에게 허리를 숙여 사의를 표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려 할 때, 부군란이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군주님, 정말 좋은 곡인 것 같습니다. 혹시 곡명이 있습니까?”
상숙청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즉흥적으로 만든 것이라, 다른 분들께 들려드릴 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공자님의 칭찬을 들을 정도가 되지 않습니다. 당연히 곡명도 없습니다.”
부군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정말로 좋은 곡입니다. 만약 곡명이 없다면, 그 얼마나 아쉬운 일입니까. 군주님께서는 이 곡의 이름을 짓는 게 어떠십니까?”
관방의는 그런 부군란을 흘겨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흥, 말하는 게 퍽 고상하네, 배알꼴려서 못 보겠어. 뭐 하는 놈이야 저놈? 저런 사람이 어찌 상숙청에게 어울린단 말이야!’
그가 사람들 앞에서 요구하는 바람에 상숙청은 거절할 수 없었다. 거절하면 부군란의 체면이 크게 상하기 때문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상숙청이 말했다.
“그럼 ‘수견(누가 보았는가)’으로 하지요.”
“수견?”
부군란이 잠시 음미하더니, 갑자기 크게 감탄하며 손뼉을 쳤다.
“좋습니다. ‘수견’이라, 참으로 좋은 이름입니다! 나중에 가사는 반드시 적어 놓아야겠습니다.”
적으면, 나중에 돈 받고 팔기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관방의가 다시 내심 중얼거렸다. 그전에는 나름 괜찮은 젊은이라고 생각이었는데, 왜인지 이제 보니 이상하게 하나부터 열까지 눈에 거슬렸다.
“수견이라….”
난간을 짚고 천천히 눈을 뜬 우유도가 중얼거렸다. 운희가 돌아보니, 우유도가 조용히 뒤돌아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근처 모퉁이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던 원강이 뒤돌아 우유도가 서 있던 난간을 바라보았다.
상숙청의 노래 때문에 흥이 깨졌는지, 봉약남도 더는 즐겁게 떠들지 못했다. 드디어 더는 사람들을 부추기지 않고, 조용해졌다….
밤이 찾아왔고, 영빈관의 수많은 등불이 켜졌다. 봉약남이 초려별원의 사람들을 위해 준비한 연회가 시작되었다. 또다시 시끌벅적해졌다.
그렇게 앞쪽은 소란스러웠지만, 뒤쪽은 조용했다.
연못에 달그림자가 떠올랐다. 그 곁에 조용히 서 있는 우유도는 운희의 당부를 잊고 뒷짐을 지고 서서 물속의 달을 보며 넋을 잃고 있었다.
지금은 이렇게 해도 상관이 없었다. 운희가 곁에 있을 때는, 그녀의 수행원으로 그녀 앞에서 뒷짐을 지고 있는 것이 이상해 보일 수가 있었다. 어찌 보면 운희가 수행원같이 보일 수도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운희가 없었다. 혼자 있는데, 뒷짐을 좀 지고 있다고 누가 뭐라 하겠는가?
주위 어두운 곳, 모서리에 자리 잡은 원강은 우유도를 지키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도야의 신분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호위들은 지금 도야를 보호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도야를 보호하도록 배치한다면, 도야의 신분을 수많은 사람이 의심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원강이 직접 나서서 경계를 서야만 했다.
그때, 한사람이 갑자기 앞뜰에서 나타나 달빛 아래 천천히 걸어왔다. 여자였다.
어둠 속에서 자세히 살펴보니 그 여자는 상숙청이었다. 그녀는 후원에 와서 뭔가를 찾는 것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상숙청은 잠시 바람을 쐰다는 구실로 연회를 벗어났다. 하지만 그녀가 지금 무얼 찾고 있는지는 그녀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녀의 시선이 연못 곁에 있는 그림자로 향했다. 잠시 침묵한 그녀는 결국 우유도를 향해 걸어갔다.
원강이 한 걸음을 내디뎠다. 상숙청을 저지해, 우유도에게 경고를 보내려 한 것이다. 원강은 지금 우유도가 상숙청을 보고 싶어 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일까? 원강이 눈살을 찌푸리더니 내디뎠던 발을 회수했다. 이후, 상숙청이 우유도에게 걸어가는 것을 그저 지켜만 보았다.
만약 이 사실을 우유도가 알았다면, 크게 진노했을 것이다. 이런 일을 어찌 이처럼 무책임하게 처리한단 말인가?
다만, 우유도의 경지도 장식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저 잠시 넋을 잃고 있었을 뿐,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니 눈치채지 못할 수가 없었다.
다만 뭔가 익숙한 발소리였다. 조용한 아침에 수없이 많이 들었던 그 소리를 어찌 잊을까? 상숙청은 이미 우유도의 등 뒤에 도착해 있었다. 우유도는 그곳에 한껏 굳어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