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0화. 신랄한 비판
상숙청은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나가며 물었다.
“자금동이 어째서 초려별원을 쫓아낸 것이지요?”
“그것이….”
관방의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녀는 이미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당황하며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그저 위치를 옮기는 것일 뿐이지요. 군주님, 혹시 누가 허튼소리를 했나요?”
상숙청이 엄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다시 묻겠습니다. 도야는 성경에서 잘 지내시나요?”
툭!
관방의의 등이 벽에 닿았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관방의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잘 지내신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럼 뭘 그리 두려워하시는 거죠?”
“제가요?”
관방의가 어깨를 으쓱하며 좌우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고혹적으로 깔깔 웃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두려워하다니요?”
“청아야, 무례를 범하지 말아라!”
봉약남이 앞으로 나와 상숙청을 잡아당겼다. 하지만 상숙청은 그런 봉약남의 손을 쳐내고는 뒤돌아 그녀를 압박하며 말했다.
“새언니, 혹시 제게 숨기는 일이 있나요?”
“내, 내가 뭘 숨긴단 말이야?”
봉약남은 당당하지 못하고 연신 뒷걸음질 쳤다.
봉약남의 모습에, 상숙청은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곧 상숙청이 한발 한발 더욱 다가가며 말했다.
“새언니를 어머니처럼 따랐어요. 그렇게 줄곧 존경해 왔던 새언니가 저를 속였다고 믿고 싶지 않아요. 사실을 말해주세요. 도야는 성경에서 잘 지내시나요?”
덜컥! 봉약남의 다리가 술상에 부딪혔다.
더는 물러날 수 없었다. 상대방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을 보면, 이미 뭔가를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더는 어찌 속일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 진실을 봉약남은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아주 난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상숙청은 봉약남의 반응을 확인했다. 그녀는 어리석지 않았다. 오히려 총명하고 지혜로웠다. 깨달았다. 알아차렸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왕소의 말이 맞았군요!”
왕소? 관방의와 허노육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방금 군주가 잠시 연회장을 떠난 것이 왕소를 찾아가기 위해서였음을 깨달았다.
봉약남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상숙청은 울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았다. 상숙청은 좋은 가정교육을 받은 여인이었다.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서서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머릿속에 초려산장에서 우뚝 서 있던, 그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믿을 수 없었다. 불가능이란 없을 것 같던 그 사람이 어찌 이렇게 죽었단 말인가?
그 조용하고, 두 눈에 가득한 눈물을 본 봉약남은 걱정이 되어 앞으로 다가와 상숙청을 껴안으려 했다.
“청아야!”
하지만 상숙청은 양손으로 봉약남의 팔을 밀어내며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
“왜 저를 속인 건가요?”
“청아야, 속인 것이 아니야. 그저 널 위해서 그랬을 뿐이야!”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봉약남은 순간 뭐라고 변명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집안일을, 특히나 부군란 앞에서 밝히기는 어려웠다.
“왜 다들 절 속인 거죠?”
상숙청이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마지막에 관방의를 빤히 바라보며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홍랑, 전 도야를 십수 년 동안 따랐어요. 아무리 초려산장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지만, 절반은 산장의 사람이라 봐줄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설마 제 용모가 추악해서, 그분을 제사 지낼 자격조차 없다는 건가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가슴 부위의 옷을 움켜쥔 상숙청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흐느꼈다!
벽까지 밀려나 움직이지 못하고 있던 관방의의 두 눈도 붉어졌다. 그녀는 어렵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군주님, 그런 것이 아니에요.”
관방의가 상숙청의 추궁에 낭패한 모습으로 곤란해하자, 허노육이 빠르게 나섰다.
“군주님, 이건 저희와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리고는 봉약남을 바라보며, 왕부의 부탁에 어쩔 수 없었을 뿐, 자신들이 숨기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고 말하려 했다.
“노육, 그 입 다물어!”
관방의가 팔을 휘두르며 호통쳤다. 허노육은 순간 침묵하더니, 천천히 물러났다.
봉약남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뒤돌아 멍청히 서 있는 부군란을 불러 말했다.
“부 공자, 그…. 군주님과 같이 먼저 돌아가세요.”
“네? 아, 네!”
정신을 차린 부군란이 즉시 일어나 상숙청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런데 그때, 상숙청이 돌연 뒤돌아 봉약남 등 뒤의 술상으로 다가가더니, 그대로 몸을 숙여 술상을 잡고 엎어 버렸다.
술잔과 접시가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그 모습에 깜짝 놀란 부군란은 감히 다가가지 못하고 멍청한 얼굴로 그저 바라만 보았다. 평소 얌전하던 군주였다. 한 번도 이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이 일은 공자님과 상관없는 일이에요!”
상숙청이 눈물 가득한 눈을 한 채, 그가 감히 다가오지 못하도록 노려보았다.
부군란은 그 자리에 어정쩡하게 서서, 다가가지도, 물러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현장이 침묵에 휩싸였다. 봉약남은 그 자리에서 차마 움직이지 못하고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무슨 말이라도 했다가, 상숙청을 더 화나게 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
상숙청은 바닥에 깨져나간 접시를 밟으며 성큼성큼 움직여 연회장을 벗어나려 했다.
봉약남은 어둠 속으로 멀어지는 상숙청을 보며 소리쳤다.
“청아야, 어딜 가는 것이야!”
관방의가 다급히 말했다.
“왕비님, 빨리 따라가세요. 큰일이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봉약남이 사과하고는 곧바로 상숙청의 뒤를 따랐고, 부군란의 곁을 지나갈 때 겸사겸사 그를 잡아끌었다.
“뭘 그리 정신을 놓고 있는 겁니까? 빨리 쫓아가지 않고.”
“아….”
정신을 차린 부군란이 그 즉시 대청을 뛰쳐나갔다. 하지만 곧 자신이 앞에 가는 봉약남의 속도조차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조급한 마음에 다급하게 움직이다가 대청 문턱에 발이 걸려 그대로 우당탕 넘어져 버렸다. 물론 그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뒤를 쫓았지만, 그 모습이 참으로 낭패스러웠다.
어지러운 바닥을 바라본 관방의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곧 다른 사람들에게 물러가라 손짓했다.
입구의 처마 밑을 빠져나갈 때쯤 허노육이 그녀에게 다가와 물었다.
“누님, 괜찮습니까?”
고개를 들어 하늘의 별을 한번 바라본 관방의가 대답했다.
“몇 마디 질책을 들었다고 무슨 일이 있겠느냐? 하아, 생각해 보면, 과거 사람들에게 천하제일미녀라는 칭호를 받은 본녀다. 수행의 경지가 낮지 않은 내가 오늘 못생긴 계집아이에게 겁을 집어먹고 말 한마디 하지 못하다니. 이게 다 무슨 일이란 말인가.”
허노육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다 왕부의 칼받이가 된 것 아니겠습니까.”
관방의가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뭘 잘했다고 웃는 거야? 재밌어? 강 건너 불구경이지? 또 웃으면, 이빨을 다 뽑아버릴 거야!”
허노육이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왜 저한테 그러십니까?”
관방의가 그를 한번 노려보더니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미인박명이라 해서, 나도 아름다운 여인만이 주제 모르고 나서다가 제명에 못 죽는다고 생각했었지. 저 계집은 어려서부터 저 얼굴을 가지고 있어, 귀한 집안에 태어나고도, 그 복을 누리지 못하는군. 평생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니, 정말로 고달픈 인생이구나!”
그러던 관방의가 갑자기 뭔가 떠올랐는지 두 눈을 번뜩이더니 후원 방향을 바라보았다.
“이게 다 그 개자식이 벌인 일이지. 본때를 보여줘야겠어!”
개자식은 당연히 ‘우유도’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왕소가 알려주었다고 했다. 그놈의 입이 아니었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허노육은 알지 못하고 뒤따라 오며 말했다.
“어느 개자식 말입니까?”
관방의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자신이 입을 잘못 놀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즉시 말을 바꿔 말했다.
“운희 말고 누구겠어? 수하 하나 간수하지 못하다니, 개자식이 아니면 뭐겠어? 그러는 너는 뭐하러 따라오는 거야? 여자끼리 싸우는 걸 구경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꺼져!”
“…….”
허노육은 어이가 없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한편, 창가에 앉아 있던 운희가 뒤돌아 우유도에게 당부했다.
“홍랑이 화가 난 모습으로 달려오는군.”
잠시 후, 발소리가 들리더니, ‘덜컹’하고 문이 열리고, 관방의가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두 손을 휘둘러 법력으로 문을 닫고 그대로 우유도에게 황소처럼 달려가 따져 물었다.
“이봐 왕 씨, 이게 뭐 하자는 거야?”
“뭐가 뭐 하자는 거야?”
우유도도 관방의의 말에 화가 나, 그녀에게 삿대질하며 말했다.
“지금 상황을 모르는 거야? 최대한 만나면 안 되는 걸 모르는 거야? 그렇게 당당하게 여길 찾아오는 의도가 뭐야? 죽고 싶어 환장한 거야?”
“아이고, 나도 아직 화를 안 냈는데, 네가 먼저 화를 내는군?”
“너, 그리고 누님!”
우유도가 관방의를 가리키고 다시 운희를 가리켰다. 그리고 다시 밖으로 손가락을 돌렸다.
“그리고 저 원숭이! 참 이상하군. 내 옆에 어째 다 이런 이상한 사람들뿐이지? 다들 아주 죽고 싶어 환장했어. 목숨이 조금도 아깝지 않은가 봐?”
운희가 우유도를 싸늘하게 흘려보며 말했다.
“어디에다가 삿대질이야. 내가 언제 널 건드렸다고. 홍랑, 신경 쓰지 마. 오늘 이놈이 약을 잘못 먹었는지 아주 이상하군!”
우유도가 다시 운희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자와 아이는 상대하는 것 아니라더니, 틀린 말이 하나 없군!”
운희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지금 욕하는 거야?”
“말 돌리지 말고!”
관방의는 여기저기 삿대질하는 우유도의 팔을 잡아당기고는 허리에 양손을 올리고 연신 냉소 지었다.
“혹시 인제 와서 아가씨가 마음에 들기라도 한 거야? 혹시 곧 시집을 간다고 하니 질투라도 하는 거야? 그래서 남의 집 혼사를 다 망쳐 놓으려고? 그렇다면 그냥 말해. 상관없어. 본녀가 만나본 남자가, 네가 지나간 다리보다 많을 거야. 남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가 모를 것 같아? 말해봐, 말을 해야 내가 도와주든지 할 거 아니야?”
관방의가 어깨를 펴고 가슴을 들이대자, 우유도는 관방의의 이마를 밀어내며 말했다.
“미친 거야?”
비틀거리며 두어 걸음 물러난 관방의가 사나운 얼굴로 말했다.
“누가 미쳤다는 거야? 말해봐, 우유도가 죽었다고 상숙청에게 말한 사람이 네가 맞아?”
우유도는 의아해하며 말했다.
“내가 말했는데, 뭐?”
관방의가 허허 웃고는 말했다.
“아이고 어르신, 정말 모르는 거야, 아니면 모른 척하는 거야? 저 계집이 곧 시집을 간다고 했었지. 그리고 너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심지어 혼인할 남자도 오늘 데려와서 보여주지 않았어? 오늘 보니 아주 잘생겼고, 차분한 것이 나쁘지 않더군. 저 계집이 적당한 남자를 찾는 것이 어디 쉬웠겠어?
그런데 저런 남자가 있는 앞에서, 도야가 죽었다는 소식을 대놓고 알려주다니, 너야말로 머리가 이상해진 거 아냐? 아니면, 저 계집이 도야를 어찌 생각하는지 정말 모른다고, 딱 잡아떼기라도 할 거야? 그 머리로 모르는 것이 이상하지. 만약 모른다면, 여태껏 도야를 따른 게 헛수고라 생각될 정도야.
그런데 장차 남편이 될 사람 앞에서, 도야가 죽었다는 사실을 대놓고 밝혀? 이래놓고도 모른다고 시치미 뗄 거야?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잠시 잊고 있었군. 이 세상에 도야만큼 모르는 척하는 연기를 잘하는 사람도 드물다는 것을 말이야!”
“…….”
“그래, 도야가 모르는 척하는 건 상관없어. 우리도 딱히 그런 걸 혐오하지도 않고 말이야. 어차피 이미 습관이 되었기도 하고. 하지만 그래도 도야를 십수 년 동안 시중든 사람이야. 집에서 키우는 개도 그 정도면 정이 들지 않았겠어? 아무리 양심이 없어도, 이런 식으로 해를 끼치면 안 되지!
왕부에서 상숙청을 얼마나 오랫동안 설득했고, 얼마나 힘을 들여서 이제 겨우 시집가겠다는 약속을 받았는지 모르지? 이래도 모르겠어? 좋아, 내가 그냥 속시원히 다 말해주지. 왕부는 혹시 계집이 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심경에 변화가 생길까 봐 걱정하는 거야….”
관방의는 주절주절 상조종이 해준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방금 상숙청이 연회장을 뒤집어 놓은 것도 같이 알려주었다.
운희는 아연실색했다. 우유도의 죽음을 상숙청에게 숨기고 있다는 것을 지금 처음 들었다. 아무도 그녀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우유도 또한 넋을 잃었다. 관방의의 질책이 끝난 후, 우유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 내게 사전에 알려주지 않았지?”
“아니, 뭘 알려줘? 이런 일을, 이 모든 일의 원흉인 네게 어떻게 알려줘? 혼자 잘난 맛에 사는 도야잖아, 그 뱃속에 온갖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 사람에게, 이런 것까지 알려줘서 심란하게 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지.”
관방의는 그야말로 우유도를 신랄하게 비꼬았다. 우유도는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