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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466화 (562/1,000)

1466화. 큰 장사

부군란은 전쟁에 대해서 몰랐다. 하지만 그 당시 조국이 멸망한 전쟁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수백만의 대군이 대치하는 상황이 어떠했는지 상상은 해볼 수 있었다.

수백만의 대군이 연약한 여인 한 명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직 단 한 사람만이 적진으로 향했다. 그 몇 마디 말만 듣고도 부군란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야말로 난세의 영웅이구나!”

곧 다시 물었다.

“군주님을 위해 목숨을 걸 정도라면, 분명 그분도 군주님을 사모했을 것 같습니다만…….”

그런 사모지정에 대해서 이야기하니 상숙청은 다소 난처해졌다. 하지만 부군란에게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다.

“만약 서로 사모했다면, 제가 어찌 감히 부 공자님 앞에서 ‘결백’이라는 단어를 사용했겠습니까? 도야가 저를 구하신 것은 그분이 원래 그런 분이시기 때문이지, 남녀 사이의 애정과는 무관한 일이었습니다!”

“부 공자님은 어째서 제가 비석에 ‘도화선인’이라고 적었는지 아시나요?”

부군란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도야의 별호가 아닙니까?”

“봉숭아꽃 언덕에 도화암이 있고, 도화암 안에 도화선인이 있네. 도화선인은 도화나무를 심었고, 복사꽃을 따서 술을 사 먹네…….”

상숙청이 갑자기 시를 읊었다. 그리고는 미소지었다.

“이 시는, 제가 처음 도야를 뵈었을 때, 그분이 자신을 도화선인이라 말하고는, 허풍을 떨며 읊었던 시입니다.”

“호오!”

부군란이 큰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말했다.

“도화선인이라는 명칭이 그렇게 생긴 것이군요. 그래서 비석에 그리 새기셨군요.”

“부 가가 연루되었던, 영왕부가 경성에서 어려움을 겪은 일을 공자님도 아실 거예요. 경성에서 도망칠 때 저희는 상청종에 들렀습니다. 당시 상청종은 부왕과 깊은 사이였고, 상청종에서 그들의 도움을 받고자 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세상의 인심은 참으로 무정했지요. 다른 사람은 움직이지 못했고, 오직 도야만을 모실 수 있었어요. 도야는 저희 집안과 아무런 인연이 없었어요. 속세의 시시비비에 말려들기 싫어 저희를 떠나려고 했지요. 다만 제가 어떻게든 그분을 붙잡아…….”

상숙청은 십여 년의 세월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충 부군란에게 알려주었다.

물론 말하면 안 되는 부분은 생략했기 때문에, 상당 부분이 결여된 이야기였다. 그런데도 부군란 같은 사람이 듣기에는 심장이 떨릴만한 이야기였다. 그제야 상조종이 지금의 세력을 일으키기까지,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보통 백성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잘 싸워서 지금의 기업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그 배후에 얼마나 많은 일이 얽혀 있는 줄 몰랐다.

비록 생략된 부분이 적지 않았지만, 사실 이런 건 부군란에게 알려줄 필요가 없는 일들이었다. 그런데도 상숙청은 부군란을 속이고 싶지 않았다.

십여 년의 세월을 간략하게 전해 들은 부군란은 그제야 상조종에게 우유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상숙청에게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참으로 감탄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약관이 되지 않아 하산한 소년이 그토록 거침없는 책략과 변칙적인 수단을 보여주다니, 정말 놀랄 일입니다. 거기에다가 영웅의 담력을 가지고 있고, 강적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일신의 경지와 금기서화 등 능통하지 못한 것이 없으니, 그 재능과 용모가 가히 천하 일절이라 할 수 있겠군요. 그렇게 웃으며 천하를 종횡하니, 이 세상에 그런 기재가 정말로 존재한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지경입니다.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기재가 아닙니까!”

“제가 여태까지 잘못 생각하고 있었군요. 저는 그저 법력이 높은 법사님이 그 실력으로 적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오늘에서야 제가 그분보다 나이가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하하, 그런 분과 비교하면, 저는 그야말로 허송세월한 것 같습니다.”

“그런 대단하신 분이니, 군주님이 그토록 사모하시는 거겠지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미 돌아가신 분이시니, 어쩌면 제가 군주님 마음속의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할 수 있지는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저는 감히 그분의 뒤를 따르기도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뭐라고 그런 망상을 했을까요?”

상숙청이 다급히 말했다.

“부 공자님, 저는 그저 사실을….”

부군란이 손을 들어 말을 끊고는 말했다.

“그리 조급해하실 것 없습니다. 소생은 그저, 그런 인물의 죽음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리고 다시 상숙청에게 웃으며 말했다.

“군주님은 모르실 겁니다. 저번에 남 선생님께서 제게 빨리 매파를 보내라고 하셨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가 고개를 저었다. 이에 상숙청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부 공자님, 다른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비록 소인이 어리석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보는 눈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집안 사람들이 강요하지 않았다면, 군주님은 혼인하실 생각이 없으셨겠지요. 그저 저는 군주님께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만약 집안 사람의 강요가 없다 해도, 군주님은 진심으로 저와 혼인하실 수 있으십니까?”

상숙청이 침묵했다. 마음을 속이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부군란이 미소지었다. 아주 해맑은 미소였다. 오히려 과거보다 훨씬 홀가분해 보였다.

“사실 말입니다. 저도 지금 훨씬 홀가분한 것 같습니다. 군주님께서는 잘 모르시겠지만, 매번 왕부에 들어왔을 때, 삼엄한 시위들이 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을 보면서 늘 전전긍긍했습니다. 혹시 실수라도 할까 봐 대화를 나눌 때도 크게 긴장하고 있었지요. 지켜야 하는 법도도 많아 매번 이곳에 올 때마다 너무 힘들었습니다. 부 가와 왕부의 차이가 너무 큰 것 같습니다.”

“부 가는 몇 차례 어려움을 겪은 후, 집안이 망하다시피 했습니다. 나중에 왕야가 남주에서 거병해, 남주를 점령하고 그 기세가 하늘을 뚫는다는 소식을 듣고, 부 가의 사람들은 모두 이곳으로 옮겨오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곳까지 오는 도중 겪었던 어려움을 외부인에게 어찌 말로 다 하겠습니까. 남주에 도착해, 온 집안은 안절부절못했습니다.

다행히도 왕야께서는 옛정을 잊지 않으셨고, 한 곳을 지정해 부 가에게 관리를 맡기셨습니다. 덕분에 부가가 서서히 원기를 회복할 수 있게 되었지요. 집안에서 제게 군주님과의 혼인을 명한 것은, 과거 집안이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 지금 같은 난세에 권력의 비호를 받지 못하면 어찌 될지 깊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돌아가면, 저는 집안사람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집안사람은 그나마 괜찮습니다. 하지만 외부인은 상황을 모르지 않습니까.”

“외부 사람들은 지금 다들 제가 군주님과 혼인 할 것이라 굳게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적지 않은 지방관리들이 저희 집안을 알아서 찾아오고 있을 지경입니다. 만약 군주님께서 혼담을 거절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면, 외부인들은 제가 왕야의 노여움을 샀다고 생각할 것이고, 그때가 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우리 부 가를 곤란하게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혼담을 거절했다고 하면, 이 좋은 일을 왜 거절했느냐는 이야기가 나올 것입니다. 외부인들은 마찬가지로 부 가가 왕부의 기분을 거슬렀다고 생각할 것이고, 마찬가지로 곤란하게 할 것입니다. 하아, 정말 골치가 아프군요.”

거기까지 이야기했을 때, 상숙청은 부군란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이번 일을 통해서 상숙청도 자신을 알 수 있었다. 상대방의 태도를 보고 상숙청의 태도가 훨씬 밝아졌다. 돌려 말할 것 없이 직설적으로 말했다.

“부 공자님의 어려운 점을, 잘 이해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 일은 제가 집안에 잘 설명하겠어요. 이번 일은 공자님과 상관없는 일임을 남 선생님이 직접 공표하실 것이고, 남 선생님이 직접 나서서 돌봐 드릴 것이니, 남주에서 부 가를 곤란하게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에요. 앞으로 부 가에 무슨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저를 찾아오세요.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반드시 최선을 다해 돕겠어요.”

부군란이 정색하며 말했다.

“지금 제가 난처한 것은, 매파를 보내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제가 매파를 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군주님께서 알아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

상숙청이 말문이 막혔다. 그때, 부군란이 갑자기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농담입니다! 다만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만약 제가 스스로의 부족함을 알고 물러난다면, 군주님께서는 혹시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저는 절대 이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저도 더는 군주님을 모독하지 않겠습니다!”

상숙청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꿈을 꾼 것 같군요. 혼인하지 않겠어요!”

“하아!”

부군란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말했다.

“집안사람들이 하나같이 다들 크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돌아가면, 분명 크게 혼날 것입니다!”

상숙청이 미소지었다.

“그날, 수많은 남자 중에서 제가 공자님을 선택했습니다. 공자님은 이름처럼 난과 같은 군자입니다. 제가 사람을 제대로 보았어요. 만약 약속을 어기고 혼인을 해야 한다면, 가장 먼저 공자님을 찾아가겠어요!”

“군주님께서 드디어 웃으시는군요. 왕비님께서 제게 맡기신 임무를 드디어 완수했습니다.”

부군란이 한숨을 내쉬었다. 상숙청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임무라니요?”

부군란이 좌우를 살피고는 조용히 말했다.

“혹시라도 군주님께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어떤 분께서 저보고 군주님의 기분을 풀어주라고 하셨습니다. 왕 공자를 위해 그림을 가지러 왔다는 것은 순 변명입니다!”

그리고는 서탁 위에 있는 서화를 가리키며 가까이 가서 집어 들더니 말했다.

“하지만 이 그림은 왕 공자에게 줄 만한 그림은 아닌 것 같습니다. 혹시 기념으로 제게 주실 수는 없으십니까?”

“공자님께서 마다하지 않으신다면, 드리겠어요.”

부군란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당연하지요,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이 그림 때문에 제게 좋은 인연이 끊어진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니 군주님께서는 제게 빚진 겁니다. 그 증표로 이 그림을 받아 가는 것으로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나중에 부 가에 문제가 생기면, 제가 이 그림을 가지고 군주님을 찾아오겠습니다. 그때가 되면 절 꼭 좀 도와주셔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상숙청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약속하겠어요!”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부군란이 포권을 하고는 걸으며 손에 든 그림을 잘 접었다. 상숙청이 그를 배웅하고자 했지만, 그는 연신 괜찮다며 사양했다.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이미 익숙한 길이 아닙니까. 전 정말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숙청이 직접 그를 거처의 정문까지 배웅했다.

정문 근처에서 상숙청과 헤어진 후, 부군란은 공교롭게도 왕부를 다 나가기 전에 남약정과 만나게 되었다.

“대공자!”

남약정이 그를 멈춰 세우고는, 좌우 사람들을 물리고 조용히 물었다.

“매파를 보내는 일은 어찌 준비되고 있습니까?”

“곧 있으면 알게 되실 겁니다!”

부군란은 그 말을 하고는 포권을 했다. 미소 띤 얼굴을 한 부군란은 경계가 삼엄한 왕부를 마치 제집인 양 성큼성큼 걸어 빠져나갔다.

“어라….”

남약정은 부군란이 떠나가는 그 모습을 배웅하며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착각일 수도 있지만, 어째 부군란이 전보다 훨씬 대범해진 것 같았다.

왕부의 대문을 나선 부군란은 뒤돌아 왕부를 한번 보고는 다시 손에 고이 접혀 있는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돌아가면 아주 혼쭐이 나겠구나. 다만 이 거래가 가치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

마차에서 기다리던 하인들이 다가오며 물었다.

“공자님, 무슨 거래 말입니까?”

“아주 큰 거래다!”

부군란은 하인의 머리를 툭 치고는 손짓하며 큰 소리로 말했다.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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