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4화. 천영
군막을 나선 당희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상청종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당희가 고민할 때, 갑자기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업보구나! 업보구나….”
익숙한 목소리였고, 현승천의 목소리 같았다. 당희가 다가가자 군막을 지키는 호위들도 당희가 현미의 사람임을 알고 저지하지 않았다.
군막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그 안에 현승천이 쇠사슬에 묶여 있었고, 현미의 남편 호승도 그 곁에 있었다. 그는 마침 당황한 모습으로 현승천의 입을 막으려고 하고 있었다.
호승은 안에 들어온 당희를 보고 순간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서문청공이 돌아온 것을 보고 두려움에 떨던 호승은 자신의 군막이 아니라 다른 곳에 숨으려고 했다. 그러다 결국, 현승천의 군막이 안전해 보인 그는 이곳에 숨어들었다가, 현승천과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실수로 지금 위국의 처지를 알려주게 되었다.
위국이 당장이라도 멸망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현승천은 자책하지 않고, 오히려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현미가 상황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여기고는 대소하며, 모든 것이 현미의 업보라고 소리 지른 것이다.
그가 그렇게 소란을 피우자, 주변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소란을 듣고 찾아왔다. 영허부의 장문인 상임선도 굳은 얼굴로 안으로 들어왔다.
“뭘 그리 소란 떠는 것이냐?”
상임선이 호통쳤다. 사슬에 발이 묶여 있는 현승천이 크게 비웃으며 소리쳤다.
“상 장문, 당신들이 저지른 짓을 보시오. 그 개 같은 년을 황제로 만든 덕분에 업보를….”
챙!
상임선이 돌연 검을 뽑아 들더니 그대로 찔러 버렸다.
“억….”
현승천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두 눈을 부릅뜨고 입술을 부들부들 떨며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
상임선이 들고 있는 검은 이미 현승천의 심장을 꿰뚫고 있었다. 선혈이 가슴에서 뿜어져 나왔다.
한쪽에 있는 호승도 아연실색했다! 당희도 깜짝 놀라 소리쳤다.
“상 장문인, 뭐하시는 겁니까!”
“감히 군심을 혼란스럽게 하다니!”
그것이 상임선의 대답이었다. 그는 보검을 한번 털어 내고 다시 검집에 넣었다.
그 전에 서문청공 때문에 체면을 한껏 구겼기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한 때에 여기서 현승천이 헛소리를 하며 소란을 피우고 있는 모습을 보니, 한순간 분노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린 것이다!
삼대 문파에 있어 이제 현승천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사람이었다. 만약 현미가 말리지 않았다면, 진작 처리해 버렸을 사람이다.
힘겹게 숨을 내쉰 현승천이 눈을 부릅뜨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상임선은 그대로 뒤돌아 옆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호승을 가리켰다.
“저자를 가둬두고, 엄히 감시해라. 내말 없이 그 누구도 저자를 데려갈 수 없게 해라. 만약 누군가 강제로 데려가려 한다면, 그 자리에서 그를 죽여도 된다!”
그전에도 제군 쪽에서 호승을 요구한 적이 있었다. 이런저런 변명을 내걸며 아무튼 호승을 데려가려 했다.
다른 건 위군이 다 양보했다. 설사 삼대 문파가 제군에게 모욕을 당해도 이를 악물고 참았다. 하지만 호승을 데려가려는 것은 위국 삼대 문파든, 위국 조정의 신하들이든 다들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제국 황제 호운도의 아들은 이미 그들이 유일하게 제국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최소한 호연무한은 신하 된 자로서 어느 정도 황자의 안전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호승을 붙잡고 있으면, 최소한 제군이 그들을 너무 거칠게 대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최후의 보호처가 될 수 있었다.
호승이 크게 긴장하며 도망가려 했다.
“뭐 하는 것이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요! 날 건들면, 제국의 대군이 당신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
이때, 한 제자가 닭목을 잡는 것처럼 호승을 붙잡았다. 다른 제자는 현승천을 묶고 있던 쇠사슬을 풀었다. 그리고는 그 쇠사슬로 호승을 묶었다.
그 장면을 목격한 당희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자신이 떠나있는 사이에 자신이 모르는 많은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다만 눈앞의 이것만 보아도 지금 상황이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 위국이 어느 정도 위급한 상황인지, 상임선은 현승천조차도 조금의 망설임 없이 죽여 버릴 정도였다!
바로 이때, 한 병사가 안으로 들어와 당희에게 포권하며 말했다.
“당 장문인, 밖에서….”
그는 핏물 속에 쓰러져있는 현승천을 보고 넋을 잃었다. 상임선이 그를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고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냐!”
병사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바…밖에서 한 사람이 찾아와 자신을 천영이라고 소개하며 당 장문인을 뵙길 청했습니다.”
“천영?”
마치 눈앞의 일을 잊어버린 듯 상임선과 당희는 다들 깜짝 놀랐다.
최근 수행계에서 ‘천영’이라고 불리는 수행자는 나름 유명했다. 수행계에 그야말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원래는 일개 산수에 불과한 사람이었지만, 한방에 저 하늘로 올라가, 빙설각 각주를 아내로 맞이한 사람이었다.
빙설각 각주 설락아는 구성 중 한 명인 설파파의 손녀였다. 그렇게 설파파의 손녀사위가 된 사람이니, 한방에 하늘로 날아오른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상임선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어느 천영 말이냐?”
“그것이….”
병사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소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긴, 그 천영이 맞는지 아닌지 일개 병사가 어찌 알겠는가? 상임선은 자신이 헛소리했다는 것을 깨닫고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물러가라!”
“알겠습니다!”
병사가 두려운 얼굴로 물러났다. 그는 어쩌면 자신이 보면 안 되는 장면을 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당희가 곧 손님을 맞이하러 가려는 그때, 상임선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
“당 장문인!”
당희가 발걸음을 멈추더니 물었다.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상임선은 굳은 얼굴을 풀고, 최대한 부드러운 안색을 했다. 더는 상청종을 무시하는 그런 얼굴이 아니었다. 그가 떠보듯이 물었다.
“당 장문인, 혹시 빙설각의 천영이라는 사람과 아는 사이요?”
당희는 잠시 침묵하더니 대답했다.
“어느 천영인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만나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포권을 하고는 그 자리를 빠르게 벗어났다.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상임선은 당희를 강제를 붙잡지 못하고 혼자 침음 하며 중얼거렸다.
“보통이라면, 빙설각의 사람은 전쟁에 참견하지 않아야 하건만….”
군막 밖.
당희는 급히 손님을 맞이하러 가지 않고, 우선 현미의 군막으로 움직였다. 서문청공과 현미가 아직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지금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대로 현미에게 다가가 상임선이 현승천을 죽인 일을 알려주었다!
현미가 화들짝 놀라더니 넋을 잃었다. 하지만 곧 다급히 뛰쳐나갔고, 서문청공이 그 뒤를 따랐다.
군막 안에 묶여 있는 호승은 현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소리쳤다.
“폐하, 살려주세요. 폐하….”
하지만 곧 그 뒤를 따라 들어오는 서문청공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현미는 호승의 생사에 관심이 없었다. 현미는 호승을 완전히 무시하고는 달려가 쓰러진 시신을 껴안고 울며 흔들었다.
권세 있는 집안에서는 사실 이런 일이 드물지 않았다. 이는 인간 참극일 뿐이었다.
상임선은 냉담한 얼굴로 그 모습을 싸늘하게 지켜보았다. 잠시 후, 서문청공이 뒤돌아 그를 바라보며 온몸에 살기를 내뿜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일촉즉발의 상황, 상임선이 소매에서 한 장의 천검부를 꺼내 들었다!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현미를 보고, 다시 대치하고 있는 두 사람을 본 당희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그곳을 빠져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임선이 군막에서 빠져나왔다. 방금 들은 천영이 어찌 된 일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군막 내부의 서문청공은 결국 상임선을 어쩌지 못했다. 현미가 막았기 때문이다.
군막 외부,
눈처럼 하얀 백의를 입은 남자가 서성이고 있었다. 큰 키에, 길게 땋은 머리를 등 뒤로 넘기고, 붉은 입술과 흰 치아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별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남자에게서 이처럼 사람들을 압도하는 품격이 있다니, 입구를 지키는 병사들조차 참지 못하고 그들 힐끗힐끗 바라볼 지경이었다. 그들은 지금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를 본 느낌이었다. 그야말로 옥면낭군이 아닌가!
당희도 입구에 있는 남자를 보고는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옥수임풍(*玉樹臨風: 바람 앞에 선 옥으로 만든 나무라는 뜻으로, 키가 크고 멋진 남자를 일컫는 말)이라는 단어가 눈앞의 남자를 형용하기 위한 말 같았다.
당희도 이렇게 잘생긴 남자는 처음 보았다. 아마, 저런 매력을 가진 남자를 거부할 수 있는 여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 용모만으로 아마 다른 대부분의 단점을 용납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렇기 때문에 당희는 눈앞의 천영이 바로 소문의 그 천영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소문에 그 남자는 보기 드문 미남이라고 했었다.
하긴, 빙설각 각주가 마음에 들어 한 남자였다. 당연히 보통사람이 아닐 것이다.
천영도 자신에게 다가온 당희를 보고는 잠시 살펴보더니, 빙그레 미소지었다. 그 미소에는 충분히 여인의 마음을 녹일 수 있는 매력이 있었다. 그가 물었다.
“상청종의 당희 장문인 되시오?”
그제야 앞으로 나선 당희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귀하께서는?”
천영이 포권을 하며 말했다.
“빙설각의 천영이라고 하오!”
마치 더는 증명할 것도 없다는 말과 자신감이었다. 하기서, 자신의 얼굴이 마치 증명이라는 자신감이 드러나 있기도 했다. 당희가 급히 예를 올렸다.
“천영 선생님께서 찾아오신 줄 모르고 마중을 나가지 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천영이 미소지었다.
“그러실 필요 없소. 갑작스러운 방문이니, 본인이 폐를 끼친 것이라 할 수 있소.”
당희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황송합니다! 선생님, 안으로 드시지요.”
당희가 몸을 틀어 손을 뻗으며 들기를 청했다. 아주 공손한 움직임이었다.
상대방의 신분을 확인했으니, 공손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상대방이 여자를 등에 업고 신분이 높아졌다 하나, 지금의 신분은 확실히 함부로 할 수 없는 신분이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흐음….”
천영이 군영 안을 한번 보더니 잠시 고민하고는 말했다.
“당 장문인, 두 나라가 전쟁을 벌이는 곳이니, 지금 내 신분으로는 들어가기에 적당한 곳이 아닌 것 같소.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내가 감당할 수 없으니 말이오. 다만 지나가는 길에 들렸을 뿐이니, 들어가진 않겠소. 양해 부탁하오.”
지나가는 길? 그런데 왜 자신을 찾아온단 말인가? 당희가 의문을 품었다. 상대방이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니, 강요할 수도 없었다. 그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어찌한 일로 절 부르셨습니까?”
“딱히 일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천영이 연신 손을 내저으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와 우 형제는 친분이 깊었습니다!”
우유도? 당희가 멈칫했다. 우유도에 대해서 언급하자, 당희의 마음이 약간 서글퍼졌다. 우유도가 죽었다는 소식을 자신 또한 들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그녀 또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아무튼, 오랫동안 진정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어쩐단 말인가. 살아 있는 사람은 계속 살아가야 했다. 일문의 장문인으로서 다른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천영이 나타나 자신이 우유도의 친한 친구라 말하다니? 당희는 다소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무슨 의도로 이런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