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군-1482화 (578/1,000)

1482화. 오래 기다렸다

“예전에는 상조종을 얕잡아 보았습니다.”

‘승상께서는 예전에 익명으로 우유도에게 호의를 보이기 위해 보냈던 서신을 기억하십니까?’

“당연히 기억합니다. 다만 우유도는 이미 죽지 않았습니까. 선생님께서 다시 그 일을 언급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당시 그렇게 한 것이 바로, 천하에 풍운을 대비해, 퇴로를 만들고자 한 행동이 아니었습니까!’

자평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풍운이 곧 일어날 것 같습니다. 남주도 마찬가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들이 한 말에 거짓은 없습니다. 자부가 언젠가는 마주해야 하는 현실입니다. 그때 저희는 어디로 숨어야 한단 말입니까? 어차피 마주해야 한다면, 일전의 계획대로, 자부의 퇴로를 준비하는 것도 좋겠지요.

오공령은 고집불통이고,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한 소인입니다. 천하의 패권을 다툴 능력이 없으니, 일단 천하가 급변하게 되면 그 상황에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따를 만한 군주가 아닙니다. 과거에는 승상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리한 것일 뿐입니다!’

자평휴가 매우 놀라 동요하며 말했다.

“선생님의 말씀은?”

‘제가 하산해 상조종의 힘이 되겠습니다!

“…….”

자평휴의 말문이 막혔다. 그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 그…. 그렇다면, 저들에게 포섭당하신 겁니까?”

가무군이 종이를 뜯어 긴 문장을 적더니 자평휴에게 건넸다.

‘그렇지 않습니다! 상조종은 제가 오고 가는 것을 막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들이 제게 강요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일부러 보여준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소평파의 일도 생각해 보십시오. 이 또한 저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제게 부탁을 했습니다. 왜입니까? 상조종의 계획은 거대합니다. 겨우 저 하나로 그 배를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결국에는 송국을 삼키려 할 것입니다. 이건 제게 입장을 밝히라는 권고입니다. 더욱이 승상께 입장을 밝히라는 권고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게 이번 일을 맡긴 것입니다. 승상께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나중에 승상을 끌어들여도 되는지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자평휴가 종이를 보고 연신 끄덕였다. 인제 보니 그전에 나누었던 이야기가 틀림없는 것 같았다. 과연 지금 보니 가무군뿐만 아니라 자신 또한 포섭하려는 게 상조종의 목적이었던 것 같았다. 하긴, 이와 같은 제안을 가무군에게 했을 때, 가무군이 자신에게 이를 보고하지 않을 리 없었다. 상조종 측은 아마 이것마저도 모두 예측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선생님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다만 전 걱정이 됩니다. 만약 선생님께서 이번에 저들을 대신해 나서게 된다면, 저들에게 약점을 잡힐까 두렵습니다.”

‘어떤 약점 말입니까? 설사 변고가 있다 한들, 이건 제 개인적인 일에 불과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제가 감당할 것이니, 모든 죄는 제가 뒤집어쓸 것입니다. 승상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평휴가 침음했다.

“이미 결정을 내리신 것입니까?”

‘만약 기한을 넘으면 더는 기다리지 않겠다고 명확히 알려주었습니다! 또 제가 저들의 기밀까지 알고 있으니, 제가 지금 가지 않으면, 저들이 또 어떤 일을 준비했을지 추측하기 어렵습니다.’

“음….”

자평휴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서성였다.

하지만, 더는 고민해봤자 달라질 게 없는 듯했다. 결국, 이쪽에서 남주로 서신을 보내, 가무군이 그곳으로 향할 날짜를 정했다….

* * *

누각 내부,

서신을 받은 우유도는 밀실 안에서 앙천대소했다. 그리고 관방의를 보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내가 정말로 송국을 삼키려 한다고 생각하나 보군!”

관방의도 같이 깔깔 웃으며 말했다.

“이 모든 것이 그를 얻기 위함임도 모르고 말이야. 그치?”

“사람이 있으면, 나라도 있는 법이지!”

우유도가 서신을 툭 치며 냉소 지었다.

“남주의 융숭한 대접에, 미약한 힘으로나마 답하겠다라…. 아마 자신만의 계획을 세우고 있겠지. 다만 내 배에 올라탄 후에는, 후회해도 이미 늦었을 것이야. 이 우유도가 오래 기다렸어!”

우유도의 말을 듣고 뭔가 떠올린 관방의는 차마 계속 웃을 수 없었다. 입술을 삐죽거린 그녀가 말했다.

“뭐라고 답장할까?”

우유도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두 글자만 보내, ‘대기!’”

관방의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여기 오겠다는 사람에게 대기하라고 한다고?”

우유도가 괴이하게 웃으며 말했다.

“영웅에게는 보검이, 좋은 말에는 좋은 마편이 어울리는 것이지. 일단 기다리라고 해. 내가 기다리는 사람이 온 후에도 늦지 않아. 오랫동안 칼을 간다고, 장작 패는 일이 지체되는 것은 아닌 법이야!”

“기다리는 사람?”

관방의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누굴 기다리는데?”

우유도가 웃으며 말했다.

“알려줄 수 없어!”

관방의의 얼굴에 즉시 불만이 가득해졌다….

* * *

대기? 남주의 소식을 전달받은 자부의 두 사람은 마음이 답답해졌다. 남주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쪽의 전쟁이 끝나기 전에 급히 해야 하는 일이 아니던가?

가무군은 전쟁 때문에 남주의 요구에 승낙한 것이기도 했다. 이번 전쟁에서 소평파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알았고, 그도 소평파를 조금은 억제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송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는 진국이 쉽게 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전에는 시간 안에 대답하라고 하더니, 이제는 선생님께 대기하라고 합니다.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말도 없이 말입니다. 선생님께서는 혹시 남주의 의도를 파악하실 수 있으십니까?”

자평휴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맞은 편에 앉은 가무군은 고개를 저으며 붓을 들어 적었다.

‘추측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달리 어쩔 수 없었다. 대기하라고 하니, 일단은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대략 보름의 시간이 지나갔다….

가무군이 기다리는 동안, 초려산장의 사람들이 임시로 거주하는 곳에 운희가 지하도를 뚫었다.

우유도 등 사람들이 지하도에 들어가 살펴볼 때, 원강이 그에게 밀서를 건넸다.

“그쪽에서 보내온 소식입니다.”

우유도가 서신을 받아보고 깊은 사색에 빠져들었다.

관방의는 우유도가 대비하기 전에 갑자기 손을 뻗어 우유도가 들고 있는 밀서를 낚아챘다. 이들 두 사람이 뒤에서 무슨 꿍꿍이를 벌이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 행동을 본 원강은 관방의를 노려보았다. 관방의도 원강의 눈빛을 눈치챘지만, 일단 신경 끄고, 손에 든 정보에 집중했다.

그 정보는 천영이 위국 군영 밖에서 당희를 찾아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에 대한 대략적인 내용이었다.

관방의는 자신도 모르게 원강을 돌아보았다. 전에 우유도가 그녀에게 이 내용을 알아보라고 했을 때, 방법이 없다고 했고, 우유도는 바로 원강을 찾았었다. 그 행동에 기분까지 나빠했던 그녀였다. 그런데 웬걸. 이 원숭이가 정말로 대화 내용을 알아 왔지 않은가.

지금 관방의는 조웅가와 상청종으로 이어진 통로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으니, 당연히 조웅가를 이용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내용을 확인한 관방의가 물었다.

“도야, 정말로 천영에게 상청종을 부탁한 거야?”

밖에서는 쉽게 부를 수 없는 ‘도야’라는 호칭이었지만, 지하도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 봐 걱정할 필요 없었다.

우유도가 깊은 생각에 잠기며 고개를 저었다.

관방의도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전에 우유도가 말했다시피, 천영이라는 사람은 뭔가 꺼림칙했다. 관방의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그럼 이 천영이라는 사람이 없는 일을 만드는 것은 무슨 의도인 거지?”

우유도는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느릿하게 말했다.

“확실히 문제가 있는 사람이야…. 다만,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나를 내세워 상청종을 돌봐준다라…. 거기에 대해서 나는 아무런 단서도 없어. 도대체 무슨 꿍꿍이속인 건지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군. 그전에는 나를 찾아오더니, 내가 죽으니까 이제는 상청종을 찾아갔어. 설마 그전에 나를 찾아온 것이 상청종과 연관이 있는 것인가? 흠, 지금 보니, 상청종이 그에게 뭘 줄 수 있는 건가….”

한참 고민하던 우유도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우유도는 밀실에 있는 서탁으로 가더니 벼루에 물방울을 떨어뜨리고 천천히 먹을 갈았다.

“원숭아, 그쪽에 연락해서 내가 천영에게 그런 일을 부탁한 적이 없다고 전해. 천영의 목적이 뭔지 모르지만, 분명 다른 의도가 있는 것 같다고 말이야. 그리고 그에게 어찌 된 일인지 아느냐고도 물어봐. 만약 모른다면, 그에게 상청종의 상황을 감시하고, 일단은 타초경사 하지 말라고도 전해.”

“알겠어요.”

우유도가 말한 ‘그’는 당연히 조웅가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다만 관방의에게 알리기를 원하지 않았기에 ‘그’라고 한 것이었다.

우유도가 자리에 앉아 붓을 들어 몇 줄의 글을 적어 내려가더니 종이를 원강에게 건네며 말했다.

“그리고 이 사람을 우리 쪽으로 보내라고 해. 자리를 마련하면, 우리 쪽 사람이 가서 데려오겠다고 전해.”

원강이 종이를 한번 보더니 대답했다.

“이 사람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잖아요.”

관방의는 호기심이 들어 서신의 내용을 살펴보려 했지만, 원강이 즉시 서신을 접더니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때문에 관방의는 원강을 노려보았다.

“언제부터 그렇게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게 된 거야?”

우유도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원강은 곧 입을 다물고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그곳을 빠져나갔다.

* * *

요마령, 마궁의 뒷산,

음울한 구름 아래 있는 절벽 위에서 금모후가 단잠을 자고 있었다.

술통을 허리에 찬 채, 서신을 확인하고 있는 조웅가의 얼굴이 한껏 굳어져 있었다. 시선이 천천히 서신에서 멀어졌고, 그는 머리 위에서 빛을 받아 이리저리 변화하는 먹구름을 보며 중얼거렸다.

“천영은…. 그의 사람이었군….”

* * *

툭. 궤짝 위,

벽에 걸어놓은 길쭉한 죽첨(*竹籤: 얇고 길게 깎은 대나무)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벽에 있는 고리가 벽 안으로 쑥 들어가더니, 그 위에 걸려 있던 죽첨이 떨어진 것이다.

운희가 그 소리를 듣고 우유도를 바라보았다. 우유도는 이미 몸을 돌려 지하도로 들어가고 있었다.

원강은 그 안에 우뚝 서서 우유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곧 원강이 우유도에게 밀서를 건네며 말했다.

“조웅가의 답신이에요. 도야가 생각했던 것보다 문제가 심각한 것 같아요.”

우유도가 서신을 받아 내용을 살펴보았다. 서신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그쪽이 원하는 사람은 상청종을 통해서 안배할 것이다. 그쪽의 당부를 받고 확인해 본 결과, 천영은 오상의 사람이었다. 앞으로 상청종과 접촉할 때 반드시 조심하라!’

“오상?”

우유도가 대경실색했다. 이 세상에 오상이라고 불리는 동명이인이 있다 한들, 조웅가가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면, 그건 틀림없이 천마성지의 그 사람일 것이 분명했다.

또 그러므로 우유도는 더욱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오상이 사람을 보내 그에게 접근하고, 그가 죽은 후에 다시 당희에게 접근하다니. 도대체 뭘 위해서지?

오상이 뭔가를 하고 싶다면, 이처럼 우회적으로 할 필요가 있단 말인가?

더욱 우유도를 놀라게 한 것은, 오상의 사람이라는 천영이 설락아를 아내로 맞이했다는 것이다. 그 깊은 뜻을 생각해 보면, 오한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한참 침묵하더니 우유도가 고개를 들었다.

“천영이 당희를 찾아간 일에 우리는 아무런 단서가 없었지만, 우리가 그쪽에 당부하자마자, 그쪽은 천영이 오상의 사람이라는 것을 바로 눈치챘다. 그는 분명 뭔가 알고 있을 거야. 원숭아. 지금 당장 그에게 연락해, 오상이 어째서 당희를 주목했는지, 그 배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봐.”

“알겠어요!”

원강도 이번 일이 심각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해 조웅가는 더 이상 묻지 말라고 답장했을 뿐이다!

그 후에는 그와 관련된 어떤 질문도 대답하지 않았다. 다른 것들은 모두 답장을 보냈지만, 유독 그 일은 무시했다. 이쪽에게 조심하라고 당부하는 것 외에 너무 많은 정보를 알려주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덕분에 우유도는 더욱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반복해서 고민한 우유도는 기회를 봐서 직접 조웅가를 만나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조웅가는 원강을 완벽하게 믿지 못해, 비밀을 말해줄 것 같지 않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