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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487화 (583/1,000)

1487화. 화신현령(火神顯靈)

나라와 나라 사이에 왕래할 때는 예를 중요시했다. 곽문상은 맥덕만의 이런 강경한 말을 듣자, 다소 난처해졌다. 손님을 모시고 있는 입장이었다. 그러니 힘겹게 산에 올라온 사람들에게 아무 소득도 없이 다시 내려가라고 하는 건 확실히 예의가 아니었다. 나라와 나라 사이는 말할 것도 없고, 설사 일반 백성들조차도 이런 식으로 손님을 접대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리고 그가 직접 나서서 가무군을 접대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가무군이 위국 군영에서 송국 사신과 만났다는 것이 진국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별로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은상’이 갑자기 전쟁터에 나타나더니, 게다가 갑자기 진국을 찾아오기까지 했다. 송국이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이런 시기에, 전쟁이 이토록 심화된 상황에서, 진국은 다른 나라에서 너무 많은 수행자를 보내 전쟁에 개입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진국의 힘이 너무 많이 소모될 것이니, 그건 진국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곽문상 정도 지위에 있는 사람이, 진짜로 한가하게 놀러 다닐 리 없었다. 그가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그만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 가무군을 데려오고서, 화신묘를 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돌려보내는 것은 확실히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다만 곽문상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두 손을 들고 상대방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맥 대인, 오해이십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분명 칠 공주님의 이야기를 들어 알고 계실 겁니다. 이러한 때에 그분들과 마주치는 것은 별로 좋지 않으니, 고민이 되어 사전에 당부를 드린 것일 뿐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리고는 그대로 산문을 지키는 장수에게 다가가 속삭이며 귓속말을 했다.

그 후, 그 장수가 빠르게 그곳을 벗어나, 산 위로 연락을 취하기 위해 뛰어 올라갔다.

맥덕만이 조심스럽게 가무군의 반응을 살피고는 내심 탄식을 내뱉었다. 과연 가무군이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고 느낀 것이다. 칠 공주를 만나기로 결정한 후에, 화신묘든, 곽문상이든, 그야말로 거침없이 모든 일을 순조롭게 안배했다. 지금까지 모든 것이 그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

궁을 나서지 않으려는 칠 공주를 궁 밖으로 불러냈다. 게다가 만나기 어려운 공주를 만나기 위해 곽문상이라는 사람을 이용했다. 만약 곽문상이 없었다면, 아마 오늘 산을 오르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것들은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쉬운 일이었다. 아무튼, 가무군의 손에서는 그야말로 아주 손쉬운 일처럼 느껴졌다.

가무군의 능력을 직접 확인한 그는 은상이 다른 나라에 사신으로 가지 않는 것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였다.

산 아래에서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반면에 산 위의 화신묘는 한적했다. 향불 연기가 주위를 맴돌았고, 주위에는 수많은 병사가 경계를 서고 있을 뿐이었다.

화신묘에서 가장 큰 대전 내부.

란 귀비와 그의 딸 태숙환아는 흉악한 화신 조각 앞에 무릎을 꿇고 성심을 다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경건한 모습의 두 모녀는 그 용모가 매우 아름다웠다.

산문을 지키던 장수가 아래 상황을 알리기 위해 대전에 왔다가 입구를 지키고 있는 내시들에게 저지당했다.

장수가 내부를 살펴보니, 기도를 올리는 중이었다. 확실히 기도를 중간에 끊게 하면서까지 알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 그가 내시에게 귓속말로 뭐라 뭐라 중얼거렸다.

내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시 기다리겠다는 듯 손을 내리눌렀다.

대전 안,

한쪽에는 엄숙한 모습의 묘축(廟祝)이 서 있었다. 그는 잠시 입구를 힐끗 살피더니 그 모든 것을 두 눈에 담아 두었다.

두 모녀가 기도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란 귀비가 손짓하자, 즉시 궁녀가 가까이 다가와 천하전장의 전표를 묘축에게 건넸다.

“우리 모녀가 화신묘를 방문하기 위해, 너무 큰 폐를 끼친 것 같습니다. 화신묘의 청정을 방해했습니다. 이것은 그저 죄송한 마음에 드리는 작은 성의이니 받아 주십시오.”

란 귀비가 묘축에게 받으라 손짓했다.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묘축이 두 손으로 전표를 받고는 란 귀비에게 예를 올렸다. 그리고는 다시 태숙환아에게 예를 올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예를 올린 후, 태숙환아에게 덕담을 해주었다.

“공주님의 관상을 보니, 시끄러운 사람을 멀리하시고, 조용한 사람을 가까이하시옵소서. 그리하면 마음에 안정을 찾고, 액운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황실의 사람이든 평민이든 간에, 뭔가 신비로워 보이는 설법에는 어쩐지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화신묘가 존재할 일도 없었고, 이 두 모녀가 이곳을 찾을 이유도 없었다. 특히 이 화신묘를 관리하는 사람의 몸에는 신비로움이 있어, 왕왕 다른 사람의 생각을 쉽게 좌지우지하고는 했다.

묘축의 갑작스러운 발언이, 마치 핵심을 찌른 것 같았다. 원래는 그대로 그곳을 떠나려던 란 귀비가 멈칫하더니 다시 가르침을 청했다.

“시끄러운 사람이란 무엇이고, 조용한 사람이 무엇입니까. 가르침을 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녀의 두 눈에 기대가 가득했다. 지금 그녀는 마음속 쓸쓸함을 풀 곳이 없었다. 원래는 자신의 딸이 폐하의 장상명주이기 때문에, 나중에 좋은 집안을 지닌, 용모도 멋들어진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면 딸아이는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었고, 자신은 늙었을 때를 대비해 의지할 곳이 생기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무정하시게도 자신의 딸을 진장공에게 선물로 보내버렸다.

그녀의 나이조차 서른 전후에 불과한데, 진장공은 쉰이 넘은 늙은이였다. 그런 자가 자신의 딸과 혼인한다고 하니, 쉰이 넘은 늙은이가 자신에게 장모님이라고 부른단 말인가? 란 귀비가 그 현실을 어찌 받아들일까?

그녀는 태숙웅에게 그가 가장 아끼는 딸을 어찌 그리 대할 수 있느냐고 울며 애원도 해보았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고, 오히려 태숙웅의 진노를 샀을 뿐이었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국운과 연관된 전쟁이었다. 저들 남자들이 서로 속고 속이며, 일으키는 풍운의 난장판 속에서, 그녀 같은 일개 부녀자는 바로 그 풍운 속, 하나의 나뭇잎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바람을 따라 날아오르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니, 결국에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에는 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자신을 위로하며, 비록 진장공의 나이가 많다고는 하지만, 일단 큰 공을 세우면, 그래도 나중에 기댈 수 있는 든든한 기둥이 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누가 알았을까. 윤여 그 빌어먹을 늙은이가, 공주를 안중에도 두지 않고, 황명을 무시하며, 진장공과 공주를 그 위험한 곳에서 돌려보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직접 손을 써서 진장공을 죽여버렸다!

그 소식을 들은 란 귀비는 그야말로 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이제 자신의 딸은 어찌한단 말인가. 앞으로 누구에게 시집간단 말인가?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남자들이 누가 딸아이를 데려가려 하겠는가?

란 귀비는 그 자리에서 기절해 버렸다. 깨어난 란 귀비는 울부짖으며 황제를 찾아가 윤여를 엄벌해 달라고 애원했다. 황제가 윤여의 구족을 멸해야지만 마음속의 울분을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황제는 그저 굳은 얼굴로, 윤여를 엄벌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울지 말라고 다그치기까지 했다. 심지어 윤여가 진장공을 죽였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고, 그녀 곁에 있는 사람들의 입도 잘 틀어막으라고 경고하며, 만약 이를 어길 시에는 란 귀비에게 영원히 입을 열지 못하게 만들 것이라 했다!

그 후에는 진장공의 아내와 아들에게 큰 상을 내렸으니, 그야말로 딸이 겪은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과 같았고, 딸을 마치 진장공에게 선물로 준 노리개처럼 취급하는 꼴이었다. 황제가 그토록 무정하니, 딸아이의 심정이 어떻고, 그녀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돌아온 딸은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웠지만, 황제는 그런 그녀를 한 번도 보러오지 않았다.

그렇게 불행에 고통받고 있을 때, 화신묘에서 제사를 지내면 액운을 몰아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러니 효력이 있든 없든, 딸아이가 원하든 원치 않든, 딸아이의 액운을 몰아내기를 기원하며, 그녀를 데려온 것이다.

그런데 지금 묘축까지 묘한 당부를 해주니, 그녀는 마음이 크게 동해, 그에게 설명을 부탁하게 되었다.

묘축이 담담히 대답했다.

“모든 화는 입에서 나지요. 말이란 그토록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니 말이 많은 사람은 문제가 많을 것이고, 깨끗한 사람은 과묵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할 말을 다 했다는 모습으로 손님을 배웅했다.

란 귀비는 뭔가 알듯 모를듯한 얼굴로 고민에 빠졌다. 화가 입에서 나오고, 말이 많은 사람은 문제가 많다는 것이 과연 틀린 말이 아니었다. 만약 그 소평파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딸이 지금 이런 처지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말이 참으로 무섭다는 말도 틀림없었다.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이 뒤에서 그들 모녀를 욕하고 있는지 몰랐다.

하지만 깨끗한 사람은 과묵하다는 말은 이해할 수 없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대사님!”

란 귀비가 다시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그렇게 대전을 나섰다. 그들이 대전 입구를 나서자,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내시가 다가와 보고했다.

“귀비마마, 이 장군께서 보고할 것이 있다고 합니다.”

란 귀비가 산문을 지키던 장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이 장군이 앞으로 나와 포권을 하며 말했다.

“대행령 곽문상, 곽 대인이 송국의 귀빈을 모시고 화신묘를 방문했습니다. 다만 귀비마마와 공주마마께서 이곳을 방문하셔서 남릉산이 봉쇄된 참이었습니다. 곽 대인께서는 그들이 산을 오를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십사 청했습니다.”

란 귀비가 다소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어떤 귀빈이기에 곽 대인이 직접 곁을 지킨단 말인가요?”

“귀빈은 송국 사신 맥덕만입니다. 다만 곽 대인의 말씀에 따르면, 진정한 귀빈은 송국의 ‘은상’ 가무군이라는 자로, 이는 국사와 관련된 일이니 마마께서 이해해 주십사 간청하셨습니다.”

란 귀비의 얼굴에 불만이 떠올랐다. 이 장군의 말을 들으니, 마치 저들이 산을 오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같았다.

다만 불만은 불만이고, 국사와 관련된 일은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비록 그녀의 귀비라는 신분이 고귀하기는 하지만 국사와 관련된 일에서는 곽문상의 말이 더 무게감 있었다. 만약 자신의 결정으로 혹시 나랏일이 뭔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녀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은상이라니, 그게 무슨 관직인가요? 가무군은 또 어떤 사람인가요? 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죠?”

란 귀비가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 고개를 숙이더라도, 도대체 누군지는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냥 굴복할 수는 없었다.

“그것이….”

이 장군이 침음 하며 말했다.

“소장도 어떤 사람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그 모습을 보면 일반인 같았습니다. 하지만 마마, 곽 대인이 직접 그를 수행하고, 정중하게 대하는 것을 보면, 절대 평범한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이건 귀비에게 이런 일에 고집을 부리면, 이득은 고사하고, 나중에 큰 손해를 볼 수 있다는 당부이기도 했다.

그도 곽문상의 당부를 받은 상태였다. 국사와 관련된 일이니, 귀비가 일을 망치게 둘 수 없었다. 혹시 나중에 황제가 무엇이 중요한지 모른다고 죄를 묻는다면, 자신이 어찌 감당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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