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8화. 귀빈
오히려 한쪽에 있는 내시가 나서며 말했다.
“마마, 은상 가무군에 대해서 노신이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호오, 어디 한번 말해 보아라.”
“그자는 송국 승상 자평휴 집안의 봉공입니다. 자평휴가 송국 승상의 자리를 오랫동안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배후에 있는 그의 책략 덕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또 송국 승상에게 큰 영향력이 있어 사람들이 그에게 ‘은상’이라는 호칭을 붙여주었습니다.
은상은 사람들이 부르는 호칭일 뿐, 관직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아무런 관직이 없는 일반인의 신분으로, 전 송국 황제 목 씨가 수차례 그를 불러 관직을 하사하려 했지만, 모두 거절했다고 합니다!”
란 귀비는 그 말을 듣고 안색이 굳어졌다. 가무군은 모르지만, 자평휴를 모를 수는 없었다. 그자는 송국에 수십 년간 승상에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는 자로, 목 씨 황권이 무너진 후에도 여전히 승상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였다.
이것만 봐도 송국에서 그자의 권위와 지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저 가무군이 그런 자평휴에게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니…. 어쩐지, 자신이 화신묘에 있는데도 왜 그자가 들어올 수 있는 건지 즉시 알 수 있었다.
그때, 옆을 지키던 여 수행자가 입을 열었다.
“그 가무군이란 자에 대해서 저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표묘각을 찾아가 헛소리를 늘어놓다가, 혀가 뽑혀 개의 먹이가 되었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가무설이라고 부르며 비웃었습니다!”
“아, 혀가 뽑혀 개에게 먹이다니,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요? 혀가 없다니, 그건 벙어리가 아닙….”
란 귀비가 그를 비웃으려다가 뭔가 생각이 미쳤는지 멈칫했다. 그리고는 뒤돌아 저 높게 솟아있는 위엄있는 화신상을 바라보더니, 다시 천천히 고개를 돌려 딸아이를 바라보았다.
조용히 있던 태숙환아도 그 말을 듣고 뭔가를 깨달았는지 마침 그 어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태숙환아는 어머니의 눈빛을 보고,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설마 정말 화신이 현현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란 귀비가 중얼거렸다.
생각을 정리한 그녀가 안색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진국의 손님이라고 하니, 그 대접을 소홀히 할 수 없지, 빨리 그들을 올려보내세요!”
“알겠습니다!”
이 장군이 포권하고는 빠르게 다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이고, 이 커다란 화신묘를 차분히 둘러보지 못했구나. 어렵게 황궁을 나온 참이니, 어디 여기저기 확실히 둘러보자꾸나.”
란 귀비는 딸의 손을 잡고, 일단의 사람들을 이끌고는 주변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이곳에 온 것은 영험한 신령에 의지하기 위해서였다. 처음부터 급하게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혹시라도 기도만 하고 돌아가면 신령이 불쾌하게 여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말 화신이 자신에게 언질이라도 준 것인지, 신비한 일이 발생했다. 그러니 이제는 더욱더 이곳을 빨리 떠날 생각이 없었다.
산자락,
이 장군이 돌아왔다. 란 귀비가 그들의 진입을 허락했다고 전하고는 입구를 열었다.
“드시지요!”
안도한 곽문상이 그를 데리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발걸음을 뗐을 때, 이 장군이 갑자기 손을 뻗어 말했다.
“법사님들은 산에 오르실 수 없습니다!”
이 장군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이들 곁에 수호 법사가 없을 수가 없다는 태도였다.
그 부분에 대해서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건 그의 소임이었다. 귀비와 공주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이기도 했다.
하지만 곽무상, 맥덕만의 수호 법사는 모두 막아설 수 있었지만, 유독 가무군 곁에 있는 원종은 막을 수 없었다. 원종이 없다면 가무군과 소통을 할 수 없었다. 원종이 없다면, 누가 가무군의 손짓 발짓을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곽문상의 보증하에 위충을 포함한 모든 수행자 중에서 오직 원종만이 같이 산을 오를 수 있었다.
산길을 천천히 오르며 주변 풍경을 감상했다. 걷다가 담소를 나누기를 반복하며 조금씩 높아지는 시야를 즐기니, 또 다른 풍취가 있었다.
그렇게 남릉산이 정상에 자리 잡은 화신묘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본 가무군이 원종의 입을 빌려 과연 진국 최대의 화신묘라며 그 기상을 칭찬했다. 또 보기 드문 풍경이라며, 이곳으로 자신을 데려온 곽문상에게 감사를 표했다.
듣기 좋은 말을 누가 싫어할까. 곽문상은 가무군의 치하를 기꺼워하며, 그를 위해 이것저것 소개해 주기 시작했다.
물론, 가무군은 말하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에, 대부분 곽문상의 말을 듣는 편이었다.
결국, 대전이 있는 곳에 도착했고, 안에 들어가 둘러보게 되었다.
흉악한 얼굴로 저 높이 솟아있는 화신상을 보고, 신앙 여부를 차치하고 일단 분향을 했다. 그 후에는 맥덕만에게 성의를 표하라 지시했다. 그 금액이 적지 않았는지, 묘축이 연신 감사 인사를 올렸다.
그들에게 묘축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오히려 조심하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맥덕만이 묘축에게 사례한 후에, 가무군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신호를 보냈다.
가무군이 빙그레 미소지었다. 또 마찬가지로 묘축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뒤돌아 대전을 빠져나갔다. 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 가볍게 몸을 돌리는 그 모습이 참으로 여유로워 보였다.
사람들이 떠난 후, 묘축은 가슴에 손을 얹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이제야 큰일을 모두 마쳤다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일행이 대전을 나서며, 주변에 대해서 연신 설명해 주고 있을 때, 한 늙은 내시가 다가와 말했다.
“곽 대인, 귀비마마께서 송국의 귀빈이 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대로 피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저를 보내셔서 귀빈을 청하셨습니다.”
“어….”
곽문상은 란 귀비가 적극적으로 손님을 초대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 갑작스러운 일에 그는 가무군을 바라보았다. 그건 이 귀빈의 의견을 들어봐야 하는 일이었다.
맥덕만은 가무군이 란 귀비가 누군지 모르는 것처럼 옆에서 설명해 주었다.
가무군은 은근한 눈빛으로 늙은 내시의 반응을 살피더니 손을 들었다. 원종이 곧바로 몸을 틀어 그 앞에 섰고, 입을 열었다.
“본인은 무관무직의 백성에 불과하오. 이렇듯 갑자기 귀비마마와 만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니, 호의만 받은 것으로 하겠다 전해주시오.”
“그것이….”
늙은 내시가 멈칫했다. 이렇게 되면 귀비의 명령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내시는 즉시 미소지으며 말했다.
“귀비마마께서는 은상의 대명을 오래전부터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곽문상을 향해 말했다.
“곽 대인께서도 공주님의 일을 잘 아실 겁니다. 마마의 심정이 겨우 진정되었습니다. 오늘 화신묘에 들린 것도 폐하의 허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노신은 차마 마마와 폐하의 기분을 상하게 할 담력이 없습니다. 곽 대인께서는 가능하시면….”
말을 마친 내시는 허리를 깊이 숙이며, 도움을 요청했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것이 있었다.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니, 곽문상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그가 뒤돌아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가무군에게 말했다.
“선생님, 귀비마마께서 우리의 방문을 허락해 주셨으니, 호의를 받아들이는 것이 어떻습니까. 심지어 마마께서 먼저 도착하시고, 저희가 그분의 청정을 방해한 것이지 않습니까. 또 여기는 진국 경성이고, 마마께서 좋은 의도로 선생님을 초청한 것이니, 만약 거절한다면, 그것 또한 손님으로서 예의가 아닌듯합니다.”
가무군이 침음하더니 다시 손을 움직였다. 원종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손님이라면 주인을 따라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요!”
내시가 곧 허리를 깊이 숙이며 빙그레 웃고는 손을 뻗었다.
“이쪽으로 가시지요!”
그리고는 먼저 움직여 길을 열었다. 일단의 사람들이 곧 그 뒤를 따라 거대한 화신묘의 후원으로 향했다.
후원의 대청에는 황궁의 귀인이 차지하고 있었고, 대청 주위에는 호위들이 사방에 서서 경계하고 있었다.
일행은 안으로 들어갔고, 곽문상과 맥덕만 등 사람들이 상석에 앉았다. 곧 이들은 서 있는 두 사람에게 예를 올렸다.
“귀비마마와 공주님을 뵙습니다!”
가무군은 말을 할 수 없으니 그저 허리만 숙일 뿐이었다. 란 귀비가 손을 들어 예를 거두게 하고는 사람들을 훑어보며 물었다.
“어느 분이 송국의 은상 가 선생님이십니까?”
내시가 즉시 앞으로 나와 가무군을 가리키며 란 귀비 앞에 허리를 숙이고 몇 마디 중얼거렸다.
가무군이 자신이라는 의미로 포권을 하고는 다시 원종을 불러 손을 놀렸다.
“은상이라는 이름은, 세상 사람들의 망언에 불과합니다. 감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사실 그는 ‘은상’이라는 칭호를 아주 싫어했다. 다만 세상에 바람이 통하지 않는 벽이란 없듯이, 새어나가지 않는 소식도 없었다. 예전에 이미 널리 퍼진 호칭이었다.
혀가 뽑혀 개에게 먹이로 던져졌다고? 란 귀비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그를 살펴보았다. 가무군은 검소한 장삼을 입은, 다소 마른 모습의 사내였다. 다만 얼굴은 희었고, 두 눈에는 힘이 있었다. 또 그의 움직임에는 여유가 있었는데, 그 기백이 안에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보아도 그런 악재를 겪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은 담담함이 있었다. 아무튼, 보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편안함이 있었다. 란 귀비는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딱 봐도 식견이 높아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겸손하시군요….”
이어 칭찬의 말을 했다.
양측이 그렇게 담소를 나누고 나서 가무군의 시선이 옆에 조용히 서 있는 태숙환아를 바라보더니 손을 움직였다.
“칠 공주의 일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필이면 감추고자 하는 사실을 들추다니, 란 귀비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태숙환아도 이를 악물었다.
맥덕만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곽문상은 더욱 깜짝 놀라 굳은 목소리로 저지하며 말했다.
“가 선생님, 귀비와 공주님 앞에서 말씀을 가려 해주십시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는 망언이 아닙니다. 다만 칠 공주께서 슬퍼하시니, 마음속에 탄식이 일었을 뿐입니다. 본인이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는 말이 있어, 진심으로 칠 공주님의 근심을 덜어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다만 듣기를 원하시면 말씀드릴 것이고, 듣기를 원치 않으시면, 혀가 없는 본인은 당연히 입을 다물 것입니다.”
‘혀가 없는’이라는 단어가 다시금 란 귀비의 마음을 울렸다. 귀비가 손을 들어 곽문상이 다시 입을 열려는 것을 막고는 말했다.
“곽 대인, 본궁은 그토록 아량이 좁은 사람이 아닙니다. 가 선생님께서는 귀빈이시고,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이라고 하시니,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요.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하십시오!”
그녀는 화신이 정말로 영험한지 확인해 보고자 했다.
곽문상은 그가 또다시 헛소리할까 봐 조심스럽게 가무군을 바라보았다.
다만 가무군은 좌우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더니 다시 미소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시켰더니 입을 다물다니?
란 귀비는 가무군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사람들 앞에서 할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가 모두 물러가라 손짓했다.
“곽 대인께서는 잠시 자리를 비켜주세요.”
“귀비마마….”
곽문상이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란 귀비는 다시 손을 흔들며, 상대방을 질책하는 어투로 말했다.
“자리를 비켜달라 하지 않았습니까!”
곽문상은 우물쭈물했지만, 결국에는 포권을 하고 그곳을 벗어났다. 그러면서 가무군에게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언행에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명확한 경고였다. 다만, 그의 말에 가무군은 가볍게 미소지을 뿐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물러나자, 곧 맥덕만에게 눈짓을 했다. 그도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