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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491화 (587/1,000)

1491화. 이슬비

그렇게 일행이 화신묘를 빠져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내시가 수상쩍은 모습으로 화신묘의 대전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그 안으로 몰래 숨어 들어가더니 바로 묘축을 찾았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쪽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닌가!

묘축은 그 즉시 굽신거리며 소매에서 전표들을 꺼내더니, 란 귀비가 하사한 사례 중, 절반을 뚝 떼어 공손하게 내시의 손에 올려주었다.

“살펴 가십시오, 공공!”

아주 눈치가 빠른 자였다. 란 귀비 앞에서의 번지르르한 모습이 조급도 없었다.

“하하하, 배웅은 괜찮소!”

전표를 받은 내시가 성큼성큼 걸어 떠나갔다.

내시는 화신묘 같은 걸 처음부터 믿지도 않았다. 그가 알기로, 이 화신묘가 이곳에서 돈을 쓸어 담을 수 있는 것은, 매년 관부의 사람들에게 수많은 뇌물을 뿌리고, 그렇게 궁 안의 귀인들을 속여넘겨, 수많은 금과 은을 손에 넣기 때문이었다.

아주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대단한 사람들의 식솔들이 와서 기도하고, 큰돈을 사례로 내놓았다. 그리고 그 식솔들의 하인들은 화신묘에서 돈을 받아, 그 돈을 자신들의 주인들에게 바치는 순환이 이루어졌다.

대전 앞까지 배웅을 나간 묘축이 멀리 사라진 내시를 보고 혐오스럽다는 듯이 땅에 침을 뱉었다. 다만 곧 소매 안에 만져지는 묵직한 전표 덕분에 다시 미소지을 수 있었다. 이번에 이래저래 적지 않은 수확을 얻었다….

* * *

남릉산에서 내려온 일행은 경성으로 돌아갔다. 이미 경성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날이 저물고 있었다. 다만 곽문상은 가무군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으려 했고, 연회까지 열어 가무군을 접대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미 목적을 달성한 가무군은 더는 그와 쓸데없는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피로하다는 핑계를 대고 돌아가 휴식을 취하겠다고 했다. 곽문상은 어쩔 수 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송국 사신관으로 돌아온 가무군은 맥덕만에게 당부했다.

“지금 즉시 황궁 안에 있는 이목에게 황궁의 움직임을 살피라고 하시오. 특히 저 두 모녀!”

“알겠습니다!”

맥덕만이 포권을 하며 대답하고는 즉시 안배하기 위해 움직였다.

온종일 돌아다녔으니, 몸이 몹시 피곤했다. 하지만 가무군은 뒷짐을 지고 묵묵히 처마 밑에 서서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원종은 곁에서 그를 호위했고, 위충은 방 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있었다. 위충은 천으로 탁자와 의자를 깨끗이 닦으며 수시로 밖에 있는 가무군을 힐끔 쳐다보았다.

처마 아래 있던 가무군이 갑자기 뒤돌아 손을 뻗었다. 원종은 그 모습을 확인하고는 등을 내어주었다. 등에서 움직이는 손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소평파 주변에는 적지 않은 법사들이 있고, 그들이 수시로 내공을 주입해 소평파의 건강을 챙기고 있습니다. 다만, 그러한 도움이 있음에도 그가 수시로 각혈을 하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원종이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어쩌면 원래부터 몸이 건강하지 않았던 것일 수 있소. 수행자라 해서 의사는 아니지 않소. 아마 의사조차 치료하기 어려운 지병을 앓고 있는 걸 수도 있소.”

‘만약 몸이 건강하다면 어떤 이유로 인해 각혈하는 것 같습니까?’

“흠, 어쩌면 너무 과로한 나머지 그런 것일 수 있소. 만약 그것도 아니라면, 충격에 취약한 것일 수도 있소!”

가무군이 손을 내리고 사색에 잠겼다. 이때, 원종이 뒤돌아 바라보더니 갑자기 먼저 질문했다.

“만약 소평파가 혼인하려 하지 않으면 어찌 되오?”

가무군이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다시 손을 들어 등에 글을 적었다.

‘제가 알기로, 진국의 조정은 그에게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각종 조건이 갖추어지기만 하면, 그를 목 졸라 죽일 수 있습니다. 만약 혼인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면,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진국에서 도망치는 것밖에 없습니다! 진국 조정이 그를 가만 내버려 둘 것 같습니까? 감히 공주님과의 혼인을 거절하여, 황제의 자녀에게 모욕을 준 자를?’

‘그러한 결정은 소평파로 하여금 진국에서 도망치게 할 뿐입니다. 만약 남아 있는다 하더라도, 진국에서 얻었던 모든 지지를 서서히 잃게 될 것이고, 그는 진국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계획을 진행시키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소평파가 진국에서 영향력을 잃어간다면, 그것이야말로 바로 남주가 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소평파가 영향력을 잃어간다고 해도, 진국은 절대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을 것입니다! 소평파가 아깝기도 할 테고, 소평파가 이미 진국의 내부에 대해 깊이 알고 있으므로, 그가 다른 나라로 가는 것은 진국에게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가 진국에 남고자 한다면 반드시 혼인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게 도망쳐야 합니다. 그에게는 이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으니, 무엇을 선택하든 그건 남주가 원하는 결과일 것입니다!’

원종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다.

‘다소 피곤하군요. 먼저 쉬겠습니다.’

가무군은 손을 내리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 원종이 뒤돌아 말했다.

“위충, 선생께서 쉬시겠다신다.”

“알겠습니다!”

위충이 즉시 방안에서 뛰어나왔다. 곧이어 가무군을 따라 침실로 들어가더니, 다시 빠르게 나와 뜨거운 물을 준비해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나온 위충은 가무군이 갈아입은 옷을 들고 있었다….

다만 이때 위충은 급하게 그 옷들을 들고 가지 않았다. 처마 밑에 물건을 내려놓고는 원종에게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

“가 선생님이 산에 올라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원종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쓸데없이 나불거리고 싶지 않았다. 다만 위충이 이곳의 상황을 파악하고 남주에 상황을 보고하는 임무를 띠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 또한 우유도에게 부탁을 받은 바 있었다. 위충은 충의가 있는 사람이니, 그에게 위충을 살펴 달라 우유도가 부탁한 것이다.

“산을 오른 후 화신묘에 들어가….”

원종이 당시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위충이 연신 끄덕이며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허리를 숙여 옷을 집어 들었다.

“너는 상청종 전임 장문인의 제자라고?”

원종이 갑자기 물었다. 위충이 발걸음을 멈추고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우유도의 사부 동곽호연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위충이 잠시 멈칫하더니 다소 모호하게 대답했다.

“장로님의 일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우유도와 상청종의 관계가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나쁘지는 않나 보지?”

“아닙니다. 좋지 않습니다!”

위충이 고개를 저었다. 갑자기 이 사람이 왜 그것에 관심이 생겼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우유도와 상청종의 관계에 대해서 언급하자, 위충의 안색이 확연히 어두워졌다. 그는 물건을 들고 고개를 숙이고 멀어졌다.

“안 좋다고?”

원종이 냉소 지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더니 혼자 중얼거렸다.

“안 좋은데, 내게 너를 부탁한단 말이냐….”

* * *

날씨가 급변했다. 저녁쯤부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진국 경성의 하늘을 뒤덮었다. 그리고 조금씩 가랑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경성 거리를 거닐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다들 급히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몇몇 사람들은 거리 양쪽에 있는 점포의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기도 했다. 그렇게 모인 백성들의 주요 화제는 단연 전쟁이었다.

원종은 가무군의 방문 밖 처마 밑에서 단 한 걸음도 벗어나지 않았다.

위충은 일단 갈아입은 옷을 내버려 두고, 빠르게 달려와 방문을 조심스럽게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숙면을 취하고 있는 가무군을 깨우지 않기 위해서였다. 위충은 조용히 창문을 닫고, 침상에 다가가, 가무군을 위해 이불을 덮어주고는 다시 조용히 방을 빼져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누워있던 가무군이 눈을 살짝 떴다. 그는 위충이 떠난 문을 잠시 바라보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

한번 이런 거사를 치르고 나면, 신경이 아주 날카로워졌기에, 몸이 피로해져도 잠이 잘 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가무군은 숙면을 취하기가 어려웠다. 덕분에 아주 작은 소리에도 잠에서 깨곤 했다.

비는 많이 내리지 않았다. 이슬비였다. 하지만 그 이슬비가 끊이지 않고 며칠을 연달아 내렸다.

원종은 줄곧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처마 밑을 지켰다. 하지만 그의 안색은 담담하고 평온했다. 그를 보고 있자면, 마치 지금, 이 순간과 생명의 유동을 극도로 만끽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 * *

남주의 밀실,

우유도가 손에 든 밀서를 내려놓고 미소지었다. 관방의는 우유도가 내려놓은 밀서를 집어 들어 확인하고는 혀를 찼다.

“이 가무설이라는 사람 말이야. 정말 보통이 아니군. 그를 불러온 것이 헛수고가 아니었어. 뭐 결국에는 고분고분 도야의 명령을 듣게 되었지만 말이야. 그렇지?”

다소 아부를 떠는 것 같은 느낌을 숨길 수 없었다. 우유도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직접 갔다 한들, 화신묘를 통해 손을 쓸 생각을 했을 것이라 확신할 수 없어. 아마도 다른 방법을 동원해 접근했겠지. 이걸 보니, 안심이 되는군. 아마 소평파에게 쉽게 당하지 않을 거야!”

* * *

아침 일찍, 평소라면 하늘이 서서히 밝아올 무렵이었다.

하지만 지금 경성의 하늘은 여전히 먹구름에 빛이 가려져 있어 어두웠다.

란 귀비는 아침 일찍 일어나 딸아이의 방에 들어가서는, 뭔가를 쑥덕거렸다. 요 이틀 동안 그녀는 줄곧 딸아이와 뭔가 쑥덕거리며, 계속 뭔가를 당부하고 가르치곤 했다.

곧 조정에 백관이 입조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두 모녀가 그제야 문을 나섰다.

하늘이 서서히 밝아왔다. 다만 여전히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란 귀비가 가볍게 딸의 등을 밀며 말했다.

“우리 모녀의 운명이 모두 네 손에 달려 있다. 가거라!”

태숙환아는 이를 악물고 이슬비 안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를 본 하인 한 명이 즉시 우산을 펴고 태숙환아를 따라가 비를 막아 주려 했다. 그러나 이를 본 란 귀비가 호통쳤다.

“가만있어라, 공주 혼자 가게 두어라!”

우산을 들고 있던 내시가 멈칫하더니,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태숙환아가 홀로 차가운 빗속 사이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다만, 란 귀비는 어미로서 결국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두 수행원을 이끌고 뒤를 쫓았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계속 따라갈 수는 없었다. 결국 한 월동문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딸아이가 텅 빈 광장을 가로지르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곧 태숙환아는 천천히 먹구름이 뒤덮고 있는 조당의 대전으로 들어섰다.

태숙환아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어쩌면 비에 젖은 옷 때문일 수도 있었다. 다소 춥기도 했다. 마치 눈앞에 있는 대전이 웅크리고 있는 괴물 같아 보였다. 활짝 열린 대문은 모든 것을 삼키는 흉악한 주둥이 같았다. 태숙환아는 조금 두려워졌다.

그럼에는 그녀는 결국 높은 옥계(玉階) 앞에 서게 되었다. 호위 장수가 다급히 뛰어와 공주를 막아서며 말했다.

“공주님, 이곳은 조당입니다. 공주님께서 오실 곳이 아니니, 돌아가시지요!”

태숙환아가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폐하를 보아야겠다!”

호위 장군이 멈칫하더니 곧 당부하며 말했다.

“공주님, 산회한 후에 다시 폐하를 만나시지요. 지금은 조회에서 국사를 논하는 중이니, 어찌 방해하겠나이까!”

“가서 기별을 넣어라! 그렇지 않다면….”

호위 장군은 일순간 크게 당황했다. 비에 홀딱 젖은 태숙환아가 갑자기 품속에 손을 집어넣은 것이다. 황급히 눈을 돌린 호위 장군은 다시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곧 크게 경악했다. 태숙환아의 손에 날카로운 단검이 들려 있었다. 옥과 보석으로 장식된, 매우 귀해 보이는 것이었다.

“공주님….”

“더 말이 필요한 것이냐!”

호위 장군이 뭘 할 수 있겠는가. 그는 수행자가 아니었으니, 빠른 속도로 다가가 그 단검을 빼앗을 수도 없었다. 그러기엔 거리가 조금 멀었다. 결국, 좌우에 손짓해 수하들에게 그녀를 막아서게 하고는, 빠르게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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