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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493화 (589/1,000)

1493화. 요구

태숙환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리를 세운 그녀가 신하들을 돌아보며 큰 소리로 물었다.

“본 공주의 청백을 여러분들도 믿으십니까?”

“공주님은 당연히 청백지신이십니다!”

“헛소문에 불과합니다!”

“공주님은 전방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전선으로 향하셨을 뿐, 당연히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대신들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다들 태숙환아를 위해 변명하고 나섰다. 비록 속으로는 단 한 명도 믿는 사람이 없었지만, 입으로는 태숙환아의 편을 들어주었다.

태숙환아가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가무군이 그날 자신들 모녀에게 해준 말이 떠올랐다.

‘거짓을 입에 담는 곳 중에서는 천하에서 조정이 제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연 그 말이 맞았다. 태숙환아는 그걸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어찌 단 한 사람도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없단 말인가!

저 높은 곳에 있는 태숙웅은 비에 젖은 딸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오늘의 딸아이는 마치 처음 보는 사람 같았다. 마치 예전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조당에 갑자기 들어온 것도 모자라, 신하들에게 호통을 치며, 그들을 굴복시키다니!

이때, 태숙환아가 갑자기 뒤돌더니 옥좌에 앉은 그를 바라보고는 두 눈을 빛내며 말했다.

“부황, 만약 누군가 다시 소녀의 청백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트리면 어찌해야 합니까?”

태숙웅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 명을 발견할 때마다, 한 명을 죽이겠다. 함부로 비방하는 자는 과인이 그의 구족을 멸할 것이다!”

딸을 보호하고자 하는 태도가 명확했다. 이러한 태도는 마음의 가책을 느낀 딸에 대한 보답이기도 했다.

신하들도 이견이 없었다. 진실이 어떠하든, 가문으로 돌아가 가족들에게 더는 그 일을 입에 올리지 말아야 한다고 신신당부할 생각이었다. 자칫 잘못했다간 멸문지화를 입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겨우 그 정도로는 태숙환아의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녀는 겨우 이런 결과를 원하고 온 것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 그녀가 반문했다.

“부황, 사람은 죽일 수 있지만, 그 마음은 어찌 죽이겠습니까? 만약 세상 사람들이 입으로는 말하지 못하지만, 속으로는 다들 소녀가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한다면, 소녀가 어찌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대전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침묵했다. 다들 서로 눈치를 보기 바빴다. 비록 다들 입 밖으로 내뱉지 말라 단속할 수는 있었지만,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어떻게 통제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지금 이건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지금은 다들 나설 때가 아니었다. 폐하의 집안일이니, 폐하가 알아서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태숙웅이 딸을 빤히 바라보았다. 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원하는 것이 뭐란 말인가.

태숙환아가 다시 장막을 깨며 입을 열었다.

“만약 모두 그리 생각한다면, 앞으로 제가 어찌 다른 사람과 혼인하겠습니까?”

태숙웅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과인의 딸이다. 어찌 혼처가 없겠느냐?”

태숙환아가 몸을 틀어 다시 중신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중에 있는 한 사람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조 대인, 만약 본 공주가 조 대인 집안의 공자가 마음에 들어, 그에게 시집가고자 한다면, 받아들이시겠나요?”

“헉!”

조 대인이라 불린 사람이 대경실색했다. 그 자리에서 어찌할 줄 몰라 했다. 갑자기 자신에게 이런 말을 꺼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것이…. 그것이….”

장난하는가? 자신은 높은 자리에 있는 권신이었다. 자기 아들에게 진장공 늙은이가 데리고 놀았던, 그래서 웃음거리가 된 여인을 어찌 아내로 맞이하게 한단 말인가. 그랬다가는 천하의 놀림거리가 될 것이다.

평소에는 논리로 반박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정말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지 몰랐다.

모든 사람이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태숙웅조차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되든 안 되든 간에, 어쨌든 조 대인의 태도를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우려스러운 얼굴로, 어떤 사람은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심정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조 대인은 황제의 눈빛을 확인하고는 식은땀이 흘렀다. 다행히 그는 조정에서 오래 구른 사람이었으니, 사고의 전환이 빠른 사람이었다. 곧바로 평정을 회복한 그가 태숙환아에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소신의 집에 있는 아이들은 모두 부족하여, 다들 이미 혼인을 했거나, 어리석은 아이들입니다. 감히 공주님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태숙환아는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조 대인, 어리석든 말든 간에, 지금 그걸 묻는 것이 아닙니다. 본 공주가 만약 그 집으로 시집가겠다면, 조 대인은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조 대인은 지금 마음속이 얼마나 복잡한지 몰랐다. 평소에 칠 공주와 별다른 원한이 있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왜 자신을 걸고넘어진단 말인가?

그는 자신도 모르게 좌우에 있는 정적들을 돌아보았다. 혹시 누군가 뒤에서 사주를 넣은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칠 공주에게 조당을 이처럼 휘어잡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대답하지 않으시는 것을 보니, 마음속에는 본 공주의 청백을 믿지 않아, 감히 조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봅니다.”

조 대인이 다급히 말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공주님의 선택을 받는 것은 조가 후손들의 영광입니다. 만약 폐하께서 명하신다면, 어찌 따르지 않겠나이까!”

그는 선택을 다시 황제에게 미뤘다.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만약 황제가 정말 그를 섭섭하게 한다면, 그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는 황제에게 알아서 경중을 따져 선택하라는 의미였다. 그렇게 그는 이 곤란하기 그지없는 선택권을 넘겨 버렸다.

태숙환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공 대인, 만약 본 공주가 공 대인의 아들이 마음에 들어 그 집에 시집가고자 한다면, 받아들이시겠나요?”

바로 앞에 예시가 있었다. 지명 당한 공 대인은 당황하지 않고 방금 본대로 따라 했다.

“공주님의 선택을 받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폐하께서 명하신다면, 따를 것입니다!”

그 또한 마찬가지로 그 선택을 황제에게 미뤘다. 태숙환아는 또 다른 사람에게 물었다.

“성 장군, 성 부의 공자는 본 공주를 안내로 맞이할 수 있습니까?”

성 장군도 배운 대로 대답했다.

태숙환아는 집안에 혼인 적령기의 남자가 있는 집안의 신하들을 하나하나 지목하며 연달아 몇 명에게 같은 질문을 했고, 다들 처음의 대답을 그대로 따라 했다.

먼저 대답한 사람들이 있으니, 나중에 대답한 사람들은 모두 안심할 수 있었다. 태숙환아는 그저 신하들의 태도를 보려 하는 것일 뿐, 정말로 시집오겠다는 의미로 그 말을 꺼낸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태숙환아는 그렇게 적당한 대상이 있는 집안의 사람들에게 질문을 돌린 후, 뒤돌아 높은 옥좌에 앉아 있는 태숙웅에게 말했다.

“부황, 여러 대인의 속마음이 어떠한지, 소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사람은 죽일 수 있지만, 마음은 죽일 수 없다는 말입니다. 소녀가 원하는 것은 겉과 속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소녀가 결백하다고 믿는 것을 원합니다.”

태숙웅도 냉정해질 수 있었다. 높은 자리에서 신하들의 알력싸움을 바라보는 것에 익숙한 그가, 자신의 딸이 지금까지 한 모든 행동이 아무 이유 없이 행하는 것이 아님을 못 알아볼 리 없었다. 처음부터 목적을 갖고 움직인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딸이 어찌할지 보고자 했다.

“그래서, 뭘 원하느냐?”

“황가에 태어나 진국의 공주가 되었습니다. 당연히 평민에게 시집을 갈 수는 없지요. 만약 지금 조정의 관원들이 모두 저를 거절하고, 다급히 누군가에게 하가(下嫁)한다면 천하의 사람들이 어찌 오해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만약 조정의 신하들이 소녀를 집안에 받아들인다면, 자연스럽게 소녀의 청백이 증명될 것입니다. 부황, 소녀의 청백을 증명하고자 혼인을 하고자 합니다. 혼인을 하사하여 주십시오!”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빙빙 돌았지만, 결국 공주는 누군가에게 시집을 가고자 하는 것이었다. 순간 대신들은 다들 조마조마한 마음이 되었다. 정말로 자신의 집안이 걸릴까 봐 걱정스러워진 것이다.

특히 처음에 지명 당한 조 대인은 그야말로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그는 속으로 왜 처음에 자신을 지목했느냐며 구시렁거렸다.

태숙웅이 주위 신하들의 반응을 살피고는 말했다.

“환아야, 혼인하고 싶은 건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는 황가의 집안일이니, 대전에서 논의할 일이 아니다. 우선 돌아가거라. 나중에 네 모후와 같이 그 일을 의논하자. 과인이 장담하건대, 반드시 너를 위해 훌륭한 낭군을 찾아 주겠다!”

하지만 태숙환아가 쉽게 물러날 리 없었다. 그녀가 큰 소리로 말했다.

“일국의 공주가 시집가는 것입니다. 신하의 집안으로 하가하는 것이 어찌 황가의 집안일이 되겠습니까? 또 소녀가 군대의 사기를 위해 전선에 직접 방문해 국가를 위해 위험을 무릅썼다가, 오늘날 큰 모욕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찌 집안일이라 할 수 있습니까? 장수가 공이 있다면, 논공행상이 당연하거늘, 소녀는 어찌 오히려 얼굴을 들 수 없단 말입니까?”

“부황, 소녀가 어명을 듣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소녀의 마음속에 이미 여의낭군으로 점찍은 남자가 있습니다. 아마 조정의 대신들도 반대하지 않으실 겁니다. 제가 서병관으로 떠나기 전에 부황께서 제 요구를 한 가지 들어주시기로 하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생각해둔 여의낭군이 있다고? 신하들이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서로 다들 눈빛을 교환하면서 누군지 가늠하고 있었다. 누굴까? 공주가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만약 지금 그녀가 생각하는 남자의 이름을 말한다면, 거절하기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특히 집안에 아직 혼인하지 않은 아들이 있는 자들은 혹시 공주에게 찍혔을까 봐 걱정스러워했다.

“당연히 기억한다. 한가지 요구를 할 수 있다고 했지! 하지만 그 전제는 합리적이고 이치에 맞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소녀가 나라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다가 이 지경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천하다 여기고, 집안에 들이는 것을 꺼립니다. 이대로 일생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부황께 신하의 집안과 혼인을 하사해 달라고 하는 것도 과한 요구란 말입니까? 설마 그 또한 합리적이지 못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것입니까?”

대전 밖, 광장의 측면에 있는 월동문,

우산 뒤에 숨은 란 귀비는 긴장한 모습으로 앞섶을 꽉 붙잡고 있었다. 크게 긴장하고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대전 안이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가무군도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화신묘에 있을 때 임기응변에 대해서 가르침을 받았다.

비록 방법은 좋지만, 란 귀비는 딸아이가 조당에서 너무나 긴장하고 두려워한 나머지, 혹시 가르침대로 행동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딸이 긴장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냉정하게, 그야말로 그럴듯하게 상황을 이끌어 가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대전 내부.

높은 곳에 앉아 있는 태숙웅은 침묵했다. 그는 괴이한 눈빛으로 신하들을 둘러 보았다. 그는 내심 속으로 그 또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딸아이에게 안 좋은 일이 있었다. 만약 평소였다면, 대신들은 수많은 핑계를 대고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딸아이가 소란을 피운 덕분에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아비로서, 딸이 생각하는 여의낭군이 누구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니 그는 딸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신하들은 황제의 눈빛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 눈빛을 마주한 신하들은 다들 솜털이 곤두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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