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화. 압박
군막 내부,
간이침상에 누워있는 소평파가 깨어났다. 사실 진작에 깨어났지만, 조용히 누워 멍하니 군막의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다.
소삼성이 그를 몇 번이나 불렀지만, 반응이 없어, 그저 곁을 지키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콜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곁에 앉아 졸던 소삼성이 깜짝 놀라 깨어났다. 소평파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있었다.
“대공자님!”
소삼성이 다급히 다가와 그를 부축했다. 소평파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나가서 좀 걷자.”
“대공자님, 법사님의 말에 따르면,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소평파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나가서 좀 걷자, 바람을 좀 쐬고 싶다!”
소삼성은 어쩔 수 없이 한쪽에 있는 피풍을 들고 급히 뒤를 쫓았다. 그는 소평파에게 다가가 피풍을 둘러 주었다.
하늘이 천천히 밝아오고 있었다. 새벽의 바람은 차가웠고, 풀과 땅 위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다. 공기는 신선했지만, 가끔 말똥 냄새가 섞여 있기도 했다.
사실 말똥은 말할 것도 없고, 주둔지에서는 인간의 분뇨 냄새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행군하고 전쟁을 할 때는 그런 것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사람과 군마가 많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대인, 지금은 정양이 필요합니다.”
한 흑수대 인원이 따라와 당부했다. 소평파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 감사를 표하고는 말했다.
“그저 가슴이 답답해 이리 나와본 것이오.”
그리고는 따라올 것 없다면서 가볍게 손짓했다.
상대방이 걸음을 멈추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은 천천히 그곳에서 멀어졌다. 주위에는 계속해서 순찰대가 주변을 돌고 있었고, 심지어 두 사람 곁을 지나가기도 했다. 서서히 밝아오는 하늘에서는 주변을 순찰하고 있는 날짐승이 지나가기도 했다. 혹시라도 하늘로 접근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언덕 위에 지은 간이 초소 부근에 멈춰서 대군이 이루고 있는 진영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잠시 침묵하던 소평파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가 진국을 위해 피땀을 흘렸으나, 진국의 조정은 나를 용납하지 못하는구나.”
소삼성이 소평파를 관찰해보니, 그 확실히 전보다 많이 진정된 것 같았다. 그제야 소삼성이 입을 열었다.
“공자님, 칠 공주와 혼인하는 것을 절대 승낙해서는 안 됩니다!”
어찌 보면, 소삼성은 하인에 불과했다. 주인의 혼사에 관여할 권한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일반 백성의 혼인이라면 모를까. 이 칠 공주의 일에 관한 사실을 천하에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다.
만약 칠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면, 대공자는 평생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을 것이다. 대공자는 원래부터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심력이 크게 소모되어 충격을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앞으로 오랫동안 이런 짐을 짊어지게 된다면, 어찌 버틴단 말인가?
“어떻게 거절하느냐? 조정에서 있었던 일을 너도 보았을 것이다. 저들은 내가 거절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백관이 모두 폐하와 공주에게 공주가 원하기만 하면 혼인시키겠다고 승낙을 했다. 나만 거절하란 말이냐? 일단 내가 거절하면, 저들은 마치 굶주린 늑대처럼 나를 덮칠 것이다.
각종 공격이 나를 파묻을 것이고, 내가 오랫동안 경영해 온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것이다. 내가 세운 큰 공으로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하나도 받지 못할 것이다. 모두 저들의 입속에서 물거품이 될 것이다! 앞으로 폐하가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우려 해도, 이번 일은 저들이 나를 공격하는 빌미가 될 것이니, 아마 저들은 이번 일을 끝까지 이용할 것이다!”
“대공자께서는 폐하를 위해 견마지로를 다 했습니다. 폐하께 부탁하십시오!”
한숨을 내쉰 소평파가 말했다.
“의미 없다. 대세가 이미 기울었다. 폐하도 막을 수 없다. 흑수대가 내게 조정의 상황을 전해 왔겠느냐? 이건 폐하가 내게 보낸 것이다. 도와줄 수 없으니, 나보고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소삼성이 비통한 얼굴로 말했다.
“대공자님, 절대 칠 공주와 혼인하면 안 됩니다. 공자님이 진국을 위해 피땀을 흘리셨으나, 진국이 이처럼 공자님을 무정하게 대하니, 그냥 이대로 떠나시지요!”
“주위를 둘러보아라. 떠날 수 있겠느냐?”
그 말을 듣고 소삼성이 유심히 주위를 살펴보았다. 결국, 뒤편을 보았다. 지금 흑수대의 사람들은 자신들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보일 듯 말 듯한 시선들이 여기저기서 느껴졌다. 소삼성은 대공자가 기어이 산책해야겠다고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만 둘러보아라. 진국의 대 전략이 이미 새롭게 세워졌다. 병력으로 밀어붙이기로 한 것이지. 최소한 이제 내 역할은 크지 않게 되었다. 내가 만약 도망치려 한다면, 저들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나를 죽일 것이다.”
소삼성이 비통한 얼굴로 말했다.
“대공자님의 헌신이 겨우 이런 보답을 얻기 위한 것이었습니까? 너무나 가증스럽습니다. 정말 다른 방법은 없는 것입니까?”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칠 공주가 죽는 것이다. 다음은 고품이 전쟁을 빌미로 나를 돕는 것이다. 나머지는 지배인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과 기운종을 이용해 조정에 간섭하는 것이다.”
방법이 있다는 것을 들은 소삼성이 즉시 물었다.
“칠 공주를 어찌 죽입니까?”
“칠 공주가 조정에 쳐들어가서, 우선 황권으로 백관의 입을 열고, 그 백관으로 폐하를 협박했다. 그야말로 조정을 쥐고 흔든 것이지. 겨우 열 몇 살짜리 계집이 그런 짓을 할 수 있다고 보느냐? 배후에 분명 조정의 상황에 익숙한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을 것이다! 다만 나는 그가 누군지 모른다.
그러니 이런 일을 벌일 정도의 사람이라면, 어쩌면 이미 내가 칠 공주에게 손을 쓸 것을 기다리고 있었을 수도 있다. 상대가 누군지 알기 전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움직이면 함정으로 기어들어 갈 위험이 있으니, 일단 그 방법은 보류해야 한다.”
“사실 이번 일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손쉽게 칠 공주를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은 폐하 자신이다. 만약 전쟁이 벌어지기 전이었다면, 내 중요성을 보고, 폐하는 어쩌면 칠 공주를 죽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온 관직자들의 관심이 칠 공주에게 쏠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럴 때 그런 일이 일어나면 당연히 화살은 나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그럼 고 대사마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고품은 이미 대답을 주었다. 내게 진국이 대전략을 새롭게 세웠다고 했다. 그건 내가 이미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고 알려주는 것과 같았다. 그는 나를 위해 조정의 문무백관과 싸우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미리 충분한 준비를 하고 그를 협박하지 않는 이상, 그는 절대 나를 돕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조정은 내가 수작을 부릴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을 것이다. 이번 일을 계획한 사람은, 아주 절묘한 시기를 파고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아주 악독하구나. 내게 숨돌릴 기회와 시간을 주지 않았다.”
“사전에 조금의 징조도 없었다. 어떠한 대비도 없이, 미처 손을 쓸 새도 없이 걸려들었구나.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이미 그물 안에서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이다!”
“그럼 결국 지배인의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겠군요.”
소평파가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다. 다만 이번 일은 너무 요란한 일이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일이 생기면 표묘각에게 발견될 수 있다. 아마 지배인도 경솔하게 끼어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제는 시도해 볼 수밖에 없구나. 지배인에게 연락해, 그에게 다른 힘을 동원해 칠 공주를 죽이거나, 기운종을 좌우해 조정에 간섭해달라 전해라. 그가 보기에 편한 방법을 선택해서 진행해 달라고 말이다.”
소삼성이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내 말을 잊지 말아라. 이번 일은 주변의 이목을 너무 많이 끌었다. 지배인은 끼어들지 않으려 할 것이고, 승낙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지배인은 내게 매우 중요하다. 만약 정말 자신이 없다면, 나도 강요할 수 없다. 그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으니, 그에게 문제가 생기면, 나도 무사하기 어렵다. 그렇게 되면, 나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고, 우리 둘은 목숨조차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공자님의 말씀은?”
“다른 준비를 해야 한다. 만약 그가 돕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에게 다른 일을 도와달라고 해라. 이번 일을 계획한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달라고 해라! 문제가 생기는 것은 두렵지 않다. 가장 두려운 것은 상대방이 누구인지 모르는 것이다. 이 사람은 아주 위험한 사람이다. 반드시 그를 찾아 대비해야 한다!”
“나중에 내가 자리를 잡으면, 그자는 반드시 없애야 할 것이다! 그 외에도, 지배인에게 나를 공격한 조정의 인사들이 누구누구인지 알아봐달라고 해라….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는, 일부를 죽여 저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지 않고는 안 되겠구나!”
뒤돌아 소삼성을 확인한 그가 말했다.
“이번 일은 흑수대에게 조사를 맡길 수 없다. 그렇다고 내게 다른 힘이 있는 것도 아니니, 지배인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구나.”
소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점점 밝아오는 하늘을 보며 소평파는 한숨을 내쉬었다.
“우유도가 죽어 안심했더니…. 도대체 조정에 있는 어떤 자가 이리 악독한 수법을 썼는지 보아야겠다. 조정에 이런 인물이 숨어있음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니!”
소평파의 두 눈이 매섭게 빛났다.
우유도에 대해서 언급하자, 소삼성의 안색이 침울해졌다. 우유도 때문에 지금 소평파의 몸이 망가지고, 명성이 땅에 떨어졌다. 그 때문에 화가 심장을 공격해 피를 토할 지경이었다. 이번에 다시 한번 소평파의 명성이 땅에 처박히게 되었다. 덕분에 소평파는 다시 한번 피를 토했다.
우유도가 성경에 갇혀있는 동안, 오랫동안 웅크리고 있던 소평파가 기지개를 켜고 큰일을 할 참이었다. 그런데 우유도가 죽자,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나 훼방을 놓다니.
“대공자님, 이제 어디로 갈까요?”
소삼성이 침울한 얼굴로 물었다. 사전에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일이 생기니, 나도 다른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구나. 후환을 없애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일단 어디도 가지 않는다. 이번 기회에 정양하도록 하자. 폐하 쪽으로 돌아가지 않고, 일단 시간을 좀 끌면서, 지배인의 대답을 듣고 어찌할지 경정하는 것이 좋겠다! 그러니 너는 어서 가서 연락을 취해라.”
“알겠습니다!”
소삼성이 대답했다.
그 결과, 소평파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지배인은 이번 일이 너무 눈에 띄는 일이라며, 주목하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아. 표묘각의 힘을 이용해 칠 공주를 죽일 수 없다고 했다. 당연히 기운종을 이용해 조정에 간섭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런 때 움직이면, 쉽게 들킬 것이 분명했다.
다만 배후에 흑막이 누구인지 조사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 없었다. 표묘각을 살짝 유도하기만 하면, 표묘각이 알아서 진실을 조사할 것이었다. 지배인은 겸사겸사 그 정보를 얻어 전해주면 그만이었다.
소평파는 정양을 핑계로 태숙웅에게 늦게까지 대답을 하지 않았다. 태숙웅도 그런 소평파에게 답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정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태숙웅을 압박했다. 소평파가 와병을 핑계로 이번 일을 벗어나려 한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태숙웅은 소식을 전해 받은 소평파가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결국, 누군가가 직접 전선으로 향해 조정을 대표해 병문안하고, 조정의 ‘호의’에 따라 소평파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결국은 소평파에게 빨리 견해를 밝히라는 압박이었다.
소평파는 계속 병을 핑계로 누워있고 싶었지만, 조정의 인사는 수호 법사까지 대동했다. 소평파를 위해 진찰을 한 수행자는 소평파의 몸이 좋지 않긴 하지만, 이미 많이 회복되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