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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505화 (601/1,000)

1505화. 주제를 알다!

란 귀비는 주위를 살피더니, 뭔가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때, 여전히 진술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태숙웅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란 귀비, 가무군이란 자를 아는가?”

란 귀비의 가슴이 철렁했다. 그녀는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송국의 은상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태숙웅은 대답하지 않았고, 고개도 들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손에 든 문서를 뒤적이며 기다렸다.

란 귀비는 큰 압박을 받았고, 여전히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가무군이 맞다면, 신첩은 그를 압니다. 저번에 남릉산의 화신묘에 갔을 때, 우연히 신첩 모녀와 만나 담소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태숙웅은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질문했다.

“무슨 담소를 나눴지?”

“별 것 아닙니다. 그가 환아에 대해서 들은 것이 있어, 환아를 일깨워주는 좋은 말을 해주었을 뿐입니다.”

도략이 한 귀비를 힐끗 바라보았다.

“일깨워줘? 그런가?”

태숙은 별말 하지 않고, 문서 중에 한 장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고 란 귀비에게 밀어 탁자를 툭툭 두드렸다.

“이걸 한번 보게나.”

“이게 무엇입니까?”

란 귀비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저 황제의 명령에 따라 종이를 들어 내용을 살필 뿐이었다. 다만 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내용을 확인한 그녀는 불안에 오금이 저릴 지경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들고 있는 것이 화신묘 묘축의 진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진술서에는 묘축이 자신들 모녀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단 한마디도 빼놓지 않고 모두 적혀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묘축이 신기를 받은 것도 아니고, 자신들에게 신비롭게 건넨 그 말들이 묘축 자신의 것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 내용은 모두 송국 사신관의 사람이 그를 사전에 매수해, 란 귀비 모녀에게 알리라 한 내용이었을 뿐이다.

비록 진술에서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적혀있지 않았지만, 란 귀비가 아무리 어리석다 해도 이 진술을 본 이상, 뭔가를 눈치채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자신이 가무군을 만난 것은 음모의 일부분이며, 더 정확히 말하자면, 두 모녀에게 가르쳐준 방법조차도 음모라는 이야기였다.

상황이 바뀌었다. 국가 사이의 싸움이라니, 란 귀비는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그녀는 손에 종이를 들고, 두려움에 떨면서, 황제가 자신을 찾아온 의도를 고민했다.

태숙웅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그대가 혼사를 준비하는 것 때문에 너무 바빠 당장 생각이 나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 과인이 그대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겠다. 가무군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했지? 환아가 조당에 뛰어들어와 한 짓이 혹시 그가 가르쳐준 것인가?”

란 귀비가 안절부절못했다. 태숙웅은 찻잔을 내려놓고, 다시 탁자 위의 문서를 툭툭 치며 말했다.

“란 귀비, 과인은 진실을 그 입으로 듣고 싶군. 내가 두 번째 진술을 꺼내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이야. 일단 꺼내 들면, 그건 기군망상이야. 그때가 되면 말하고 싶어도, 과인은 듣지 않을 것이야. 그리고 그대도 더는 살아날 길이 없겠지. 란 귀비, 외국과 내통했다는 죄를 뒤집어쓰면, 누군들 무사할 수 있을까. 과인이 그대에게 준 기회를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야!”

란 귀비는 그 순간 크게 당황했다. 지금 그녀는 태숙웅이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서탁 위에 다른 진술들이 많이 있으니, 태숙웅이 이미 가무군을 잡아 뭔가 알아냈다고 추측했다. 털썩 무릎을 꿇은 그녀가 두려움에 떨며 말했다.

“폐하, 가무군이 가르쳐준 것이 맞습니다. 다만 신첩은 이 배후의 일이 이처럼 복잡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저 일개 혼사에 불과합니다. 이렇게까지 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일개 혼사? 부녀자의 짧은 생각이군. 조당과 관련된 일이, 언제 간단했던 적이 있었나?”

말을 마친 태숙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란 귀비가 들고 있는 종이를 가리켰다.

“귀비 마마!”

도략이 다가가 공손하게 그녀를 부르고는 그녀의 손에서 종이를 가져갔다. 그리고 탁자 위에 있는 물건들을 같이 정리했다. 당연히 란 귀비에게 그 내용을 확인할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었다.

태숙웅이 떠나려는 것을 보고, 란 귀비가 무릎을 꿇고 기어가며 그를 불렀다.

“폐하, 딸아이의 혼사는 어찌합니까? 설마 이대로 없었던 일로 한단 말입니까?”

태숙웅이 발걸음을 멈추더니 란 귀비를 등진 채로 말했다.

“예정대로 진행되기를 바랄 뿐이지. 하지만 누군가 그걸 원하지 않는군. 과인도 강요하기 어려운 일이니,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란 귀비가 승복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폐하께서는 일국의 군주이십니다. 겨우 일개 혼사입니다. 누가 감히 폐하를 난처하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폐하, 모든 잘못은 신첩에게 있습니다. 환아는 폐하의 친딸이 아닙니까! 어찌 이리 무심하십니까!”

“일국의 군주면 어떠한가? 제대로 된 군주 행세를 해야 하는 게 더 중요하지! 다만 나는 그러고자 하지만, 갈수록 더 많은 견제가 들어오는군! 란아야. 과인의 당부를 들어라. 강요에 의한 것이, 딸에게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소평파는 좋은 짝이라 할 수 없다. 소평파에게 딸아이를 시집보내는 것은, 환아에게 불행일 수도 있어. 모든 일을 담담히 마주하는 것이 꼭 나쁜 일은 아니다.”

그는 도략이 들고 있는 문서를 가리키며 말했다.

“외국과 내통했다는 죄명이라면 누구든 목이 베일 죄명이다. 하지만 환아가 바로 과인의 딸이기 때문에, 또 너희 두 모녀에게 과인이 미안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이 일은 과인이 대신 막아주겠다. 더는 죄를 묻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대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인이 환아에게 약속한 그 일을 환아가 더는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너희 모녀는 스스로 잘 처신해야 할 것이다!”

말을 마친 황제는 성큼성큼 걸어 움직였다.

도략은 폐하가 지금 여길 찾아온 것은, 이번 기회에 칠 공주에게 약속한 조건을 해결하기 위해서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다만 그 생각이 머리를 언뜻 스쳐 지나갔을 뿐, 도략은 곧바로 태숙웅의 뒤를 쫓았다.

란 귀비는 바닥에 주저앉아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행복하게 웃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상황이 뒤바뀌고 말았다.

그렇게 태숙웅이 궁문을 나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한 내시가 빠르게 도략에게 다가와 뭐라 뭐라 중얼거렸다.

도략이 즉시 태숙웅에게 따라붙더니 보고했다.

“폐하, 조 대인이 왔습니다. 다만 들어오지 못하게 앞을 막아서자, 문 앞에 무릎을 꿇고 울부짖으며 반드시 폐하를 뵈어야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태숙웅이 냉소 지었다.

“자업자득이다. 과인에게 압박을 가할 때는 아주 신나지 않았더냐? 인제 와서는 운다고? 태세전환이 너무 빠른 것은 아니냐? 계속 울라지, 과인은 만나지 않겠다!”

“폐하, 또 한 가지, 소 대인이 일을 모두 마치고 흑옥으로 다시 돌아갔다고 합니다.”

태숙웅이 움직이며 물었다.

“몇 사람을 잡아들였느냐?”

“일곱 곳에 들러 모두 일곱 명을 잡아들였습니다. 조당에서 가장 크게 소리치던 그 일곱입니다.”

“그도 무서운 줄은 아는가 보군, 과인은 조정의 문무백관을 모두 잡아들일 줄 알았더니. 그랬다면 살아남지 못했겠지!”

도략이 다시 당부하며 말했다.

“그들 일곱의 집안사람들을 잡아들일 때도 선택적으로 잡아들였습니다. 기운종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사람들 쪽은, 단 한 사람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태숙웅이 하하 웃었다.

“이것 보아라. 이것이 바로 우리 소 대인의 수법이다. 이번에 경성을 휩쓸고 다니면서, 주제 파악은 그 누구보다 확실히 하고 있구나. 다른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그에게 기운종의 친족을 잡아들이지 않는다고,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좋다. 주제를 아니, 과인도 안심할 수 있구나.”

“폐하, 이대로 계속 조 대인을 무릎 꿇리고 만나지 않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태숙웅이 한숨을 내쉬었다.

“말했다시피, 잠깐일 뿐이다. 어찌 만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저들 일곱 명이 모두 모이면, 아마 만나지 않기도 어려울 것이다. 어디 두고 보아라. 다들 기운종과 혼인으로 묶여 있는 사이이니, 분명 기운종을 움직일 것이다. 과인이 저들을 어찌 피할까. 다만, 그런데도 최대한 저들을 오랫동안 무릎 꿇려 놓고 싶구나. 무릎 꿇은 시간이 길어지면, 자신들이 일전에 무슨 짓을 했는지 조금은 반성할 수도 있겠지!”

“소평파가 멈추니, 이제는 이쪽이 소란스러워졌구나. 소평파에게 사람을 보내 진술을 모두 받아 오거라. 대응할 준비를 해야겠다!”

“또, 혹시 누군가 이 기회에 소란을 피울 수 있으니, 경기대군을 동원해 경계하게 하라. 어명이다!”

“알겠습니다!”

도략이 대답했다.

태숙웅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소평파에게 집안의 사람들이 잡혀간 일곱 대신이 모두 황제를 찾아와 억울함을 호소하며, 황제에게 나서 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태숙웅은 그들을 무시했다.

그렇게 해가 질 때까지 무릎 꿇고 있던 사람들은 다들 어느 정도 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들은 서로 잠시 의논하더니, 더는 무릎을 꿇고 있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빠르게 그곳을 벗어났다.

이들 일곱의 능력은 가히 보통이 아니었다. 곧 태숙웅조차도 두려워하는 사람이 움직였다.

태숙웅이 저녁을 먹고 있을 때, 도략이 빠르게 들어와 보고했다.

“폐하, 장문인께서 폐하를 부르셨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

태숙웅이 중얼거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곧 젓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으로 입을 닦은 그가 도략에게 말했다.

“준비한 물건을 하나도 빠뜨리지 말아라.”

도략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모두 준비되어 있습니다.”

“가자!”

태숙웅이 빠르게 움직였다. 저녁을 배부르게 먹지도 못했다. 하지만 기운종의 장문인 태숙비화가 부른 것이니, 지체할 수 없었다.

전쟁 때문에 유기적인 협력을 위해서 기운종의 장문인 태숙비화는 현재 황궁 안에 머물고 있었다.

그가 머무는 곳은 당연히 황궁에서도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황궁을 건축할 당시, 처음부터 이런 용도로 지은 곳이 있었다.

태숙비화는 그곳에 있었고, 기운종의 제자들이 직접 경비를 서고 있었다. 금군과 시위들은 한참 떨어져 밖에서 경계를 섰다.

태숙웅이 이곳에 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엄격한 조사를 받을 필요 없이, 막힘없이 쭉 들어올 수 있었다. 기운종의 제자들은 태숙웅을 보고 그저 포권으로 예를 차릴 뿐이었다.

작은 호숫가에 있는 정자.

월접이 주위를 밝히며 날아다니고 있었고, 태숙비화가 연안에 뒷짐을 지고 달을 보고 있었다.

태숙웅이 그 뒤에 도착해 예를 올리며 말했다.

“소질이 백부님을 뵙습니다!”

태숙비화는 여전히 그를 등진 채로 한숨을 내쉬었다.

“웅아야. 조정의 정무를 내가 간섭하지 않는 것이 맞음을 잘 알고 있다. 수행계의 사람들은 많은 시간을 수련에 힘써야 하지. 또 내게는 문중의 중요한 일도 적지 않으니, 조정에 간섭할 정력도 시간도 없다 할 수 있다. 더욱이 네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가문의 많은 사람이 모두 확인했다.

그러니 네게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 그런데 오늘은 어찌 된 것이 밖이 저리도 소란스러운 것이냐. 경기대군까지 동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찌 된 일이냐, 누가 반란이라도 일으켰느냐?”

“소질이 무능해 백부님의 청정에 누를 끼쳤습니다. 이 죄를 어찌 감당해야 할지요!”

“다 가족이다. 일이 있으면 말하고 문제를 해결하면 그만이니, 죄를 감당하고 말 것도 없다. 너는 황제고, 조정을 통제하고 있다. 그러니 어떤 방식을 쓸지 네게 계획이 있겠지. 나도 그런 것까지 간섭하고 싶지는 않구나. 내가 이것저것 다 간섭하면, 너도 네 일을 할 수 없겠지. 진국은 우리 태숙 가문의 것이다.

진국이 소란스러워지는 것은 바로 우리 집안이 소란스러워지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그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 다른 기운종의 제자들이 그런 짓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을 것이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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