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2화. 마전(魔典)
요마령,
‘천도객잔’에 자리를 잡은 우유도와 운희는 객잔에서 빠져나와, 요마령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곳은 산을 깎아 만든 성으로, 대부분이 흑색으로 되어 있었다. 이곳은 적성성 같은 곳과 매우 달랐다. 적성성에는 항시 적지 않은 사람이 오갔기에 사람 냄새가 났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았다. 이곳은 이름 그대로, 대부분 요마귀괴가 거래하는 곳이었기에, 사람들의 모습은 정말로 몹시 드물었다. 대부분 거리를 지나다니는 존재들은 요마귀괴였다. 사해의 요마귀괴들이 대부분은 이곳에 모여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 우유도와 운희는 둘 다 역용을 하고 있었다. 운희는 심지어 남장을 하고 있었다.
다만 이들의 모습이 사람의 모습이었기에, 여러 요마귀괴의 관심을 끌지 않을 수 없었다. 덕분에 이들이 객잔을 나서자, 일단의 산수들이 그들을 계속해서 관심 있게 쳐다보며 줄줄 쫓아다니기까지 했다. 이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 처하자, 우유도는 문득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고, 덕분에 우유도는 다소 아련한 얼굴을 했다.
다만 어쨌든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둘은 자신들을 쳐다보며 따라오는 산수들을 무시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운희는 우유도의 얼굴이 심드렁해진 것을 보고는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어?”
우유도가 한숨을 내쉬었다.
“잊어버린…. 한 가지 일이 떠올랐습니다!”
“무슨 일?”
우유도가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을 본 운희도 더는 묻지 않았다. 둘이 같이 다닌 지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다. 관방의가 느낀 것과 같이, 대답하려고 하지 않는 우유도를 보면 더는 묻지 않게 되었다. 어차피 물어보았자 답을 들을 수 없으니 말이다.
사실 이번 여정에 관방의 또한 같이 오고 싶어 했었지만, 우유도가 허락하지 않았다. 덕분에 관방의는 불만이 가득했다.
다만 우유도는 우유도 나름대로 관방의를 데려오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지금 겉으로 보기에 초려별원을 이끄는 사람은 관방의라 할 수 있었다. 그런 관방의가 돌연히 사라지는 것은 너무 눈에 띄었다. 반면 운희는 달랐다. 줄곧 조용히 살았으니, 한동안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것이었다.
요마령의 성 안을 둘러보던 두 사람은 한 상점에 들어갔다. 유선종의 상점이었다.
사실 상점을 둘러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안에서 받을 물건이 있었다. 계산대 앞에서 암호 신호를 보내자, 지배인은 별말 하지 않고 밀봉된 납환을 하나 꺼내 우유도에게 주었다.
우유도는 물건을 받고 바로 그곳을 빠져나왔다. 지배인도 어찌 된 일인지 알지 못했다. 상대방의 신분도 알지 못했다. 알아볼 생각도 없었다. 아무튼, 상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일 뿐이었다. 누군가 물건을 보내왔고, 누군가 물건을 가져갔다.
물건을 손에 넣은 두 사람은 성 밖으로 나가 납환을 깨트려 그 안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냈다. 종이를 펼쳐보니, 간단한 지도였다.
이는 요마령을 중심으로 하는 지도였다. 자세히 살펴본 두 사람은 움직이는 방향을 바꿔 빠르게 이동했다. 이제 흥미가 사라진 듯한 요마귀괴들도 그들을 더 이상 쫓지 않았다.
두 사람은 산자락을 끝없이 오르내리며 깊이 펼쳐진 계곡을 계속해서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렇게 작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불모지에 이르게 되었다. 이는 산맥의 아주 깊은 곳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깊은 곳에 있는 설산 협곡에 도착했다. 이 협곡 주변에는 우렁찬 소리를 내며 흐르는 강줄기가 있었는데, 이들은 그 강줄기를 따라 움직였다. 그러던 중에 두 사람은 한쪽에 있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찾아냈다. 그 절벽에는 매우 깊은 균열이 하나 있었다.
그 절벽 위에 올라서 균열 안을 들여다보니,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주향을 맡을 수 있었다. 우유도가 미소지었다. 운희에게 이곳에 있으라고 신호를 보내고는 그 자신은 안으로 몸을 날렸다.
운희는 그러려니 했다. 우유도가 뒤에서 여기저기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아직도 얼마나 많은 비밀을 숨기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누굴 만나든,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신기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균열 안쪽은 천연 동굴이었다. 지진 때문에 자연스레 생겨난 것인 듯했고, 이 균열 안에서는 녹은 눈이 상부의 균열을 따라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마치 영원히 그럴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밖은 더없이 추웠지만, 동굴 내부는 밖보다 따뜻했다.
동굴 내부 깊은 곳에는 한 마리 월접이 날아다니며 은은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한 석실에 내부에는 술고래 한 명이 술 단지를 껴안고 술을 진탕 마시고 있었다. 바로 조웅가였다!
우유도는 우선 동굴의 이곳저곳을 한참 동안 조사하더니 마지막에 몸을 날려 석실 한쪽에 내려섰다. 이후, 눈앞에 있는 술고래를 바라보았다.
조웅가의 취한 두 눈이 번득이며, 우유도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을 찾아온 사람의 신분을 모름에도 조웅가는 술을 들이켜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오랜만입니다.”
우유도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술 단지를 다시 입으로 가져가던 조웅가는 그 목소리를 듣고 멈칫했다. 조웅가의 잔뜩 취한 두 눈에서 취기가 싹 가신 듯한 착각이 들었다. 조웅가가 크게 놀라 우유도를 빤히 바라보았다.
우유도가 손을 목 뒤로 가져가더니, 마치 피부를 한 꺼풀 벗겨내듯이 얼굴의 가면을 뜯어냈다. 그렇게 진짜 얼굴을 드러낸 우유도가 빙그레 웃으며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조웅가의 얼굴이 한순간 아주 볼만해졌다. 마치 범인이 귀신을 본 것 같은 얼굴이었다. 두 눈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다. 허둥지둥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가 우유도에게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너…. 너…. 너….”
하지만 완전한 문장을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 우유도가 하하 웃으며 말했다.
“왜요? 너무 취해서 절 못 알아보시는 겁니까?”
우유도가 그렇게 조웅가에게 다가가려 할 때 조웅가가 갑자기 우유도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움직이지 마!”
우유도가 멈칫했다. 하지만 조웅가는 그런 우유도에게 다가가 주위를 두 바퀴 정도 돌더니 그 앞에 섰다. 조웅가는 술 단지를 내려놓고는 두 손으로 천천히 우유도의 얼굴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 큰 남자가 자신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는 것을 못 견디겠다는 듯, 우유도는 상대방의 무례한 두 손을 밀어내고 말했다.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그냥 확실히 말하겠습니다. 원래는 당신께 얼굴을 드러낼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렇듯 나서지 않으면 원강에게 사실을 말해 줄 것 같지 않았지요. 그래서, 대체 어떻게 천영이 오상의 사람인 줄 알았습니까?”
그 말을 들은 조웅가는 상대방이 우유도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또 그 전에 원강의 수완이 보통이 아니라고 느꼈던 이유도 깨달을 수 있었다. 또 초려별원의 사람들이 자금동을 떠난 후에 어째서 우유도 생전의 약속에 따라 요마령에 오지 않고, 남주부성에 자리를 잡은 것인지도 이해되었다. 이에 대해 조웅가는 몹시 의아했었는데, 인제 보니 이놈이 배후에서 상황을 통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의혹이 한 번에 풀렸다. 어쩐지 초려별원이 상청종의 뒷일을 걱정하더라니!
“살아 있었다고?”
조웅가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두 눈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마치 제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것처럼 들립니다만? 제가 죽으면 무슨 이득이라도 있습니까?”
조웅가는 다시 술 단지를 들고 크게 몇 모금 마시고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런 뜻이 아니다. 단지…. 성경에서 네가 확실히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성존들이 직접 네 시신을 검시했다고 했는데, 어찌 살아 있단 말이냐?”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제가 다 알아서 처리했습니다. 일단 제 질문부터 대답해 주십시오. 어떻게 천영이 오상의 사람인 것을 알았습니까?”
조웅가의 기쁜 안색이 빠르게 사라졌다.
“그건 너와 아무 상관 없다. 그저 천영을 조심하면 그만이다.”
“어찌 저와 상관이 없겠습니까. 아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성경에 있을 때 천영이 저를 찾아왔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친근하게 다가왔지요. 저와 친분을 만들려는 의도가 확실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가 죽으니 당희를 찾아갔습니다. 그에게는 분명 어떤 은밀한 목적이 있습니다. 전 모르지만, 당신은 분명 뭔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조웅가가 잠시 침묵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일은 너와 무관하다. 그러니 더는 묻지 말아라. 이 일에 얽혀서 네게 좋을 것이 없다. 이건 나와 오상의 일이다.”
우유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 보십시오. 조 사숙. 인제 와서 제가 오상과 무관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죽은 척하고 성경에서 도망 나왔습니다. 이미 성존들과 대적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오상은 말할 것도 없고, 제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구성 중에 절 내버려 둘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겠습니다. 잘 들으십시오. 저는 이미 구성과 대적하고 있습니다. 구성과 저 사이에서 저는 절대적인 약세에 처해있지요. 그러니 이렇게 숨어 있는 것이지요. 이제 오상의 한쪽 손이 이미 제 근처까지 뻗어왔습니다. 만약 제가 상황을 모른다면, 오상이 그러는 이유를 제가 모른다면, 그런 상황에서 제가 상청종을 돕는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겠습니까? 일단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갈 겁니다.”
“그러니 최소한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는 제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아무것도 모르는 오리무중의 상태라면, 제가 앞으로 어찌 상청종을 돕겠습니까?”
조웅가는 입을 다물고 열심히 술만 퍼마셨다. 우유도는 급할 것이 없었다. 그저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기다렸다.
한참이 지난 후, 조웅가가 긴 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오상이 한 가지 물건을 찾고 있다.”
우유도가 즉시 물었다.
“무슨 물건 말입니까?”
“마교비전(魔敎祕典)!”
우유도가 의아해했다.
“지금 오상의 실력과 경지는 진작에 마교를 뛰어넘었습니다. 그런 놈이 겨우 마교비전에 그토록 집착하고, 겨우 그것 때문에 이토록 조심스럽게 움직인단 말입니까?”
“마교에는 비밀리에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바로 마전은 사실 무국의 개국 황제 상찬의 황후, 이향이 만든 것이라는 것이다. 마전에는 이향의 일부 비술이 적혀있다고 한다. 이향이 실종되었을 때, 그녀가 마전을 자신의 시녀에게 맡겼다는 소문이 떠돌아다녔지.
그리고 그 소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실이 되었다. 그 시녀가 이향의 비술을 갖고 마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바로 마교의 개파 조사이며, 또한 마교의 일대 성녀였다. 그 후, 이 마전은 역대 성녀들이 계속해서 보관했다.”
“오상의 권세가 마교를 뒤덮은 후, 오상은 마전을 손에 넣으려 했다. 이에 성녀가 대대로 그것을 보관한다는 규칙을 깨트리고, 성녀가 마전을 보관하고 있던 곳으로 쳐들어갔다. 하지만, 이미 오상의 계획을 눈치채고 있었던 성녀는 마전을 갖고 도망쳐 다른 비밀스러운 곳에 이를 숨긴 후였다.”
“이후, 오상이 자신을 찾아와 사악한 술수를 쓸까 걱정된 성녀는 자진해 목숨을 버렸고, 그 이후에 마전의 행방은 완전히 수수께끼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오상은 내가 마전의 행방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지. 나와 성녀의 관계가 있었으니, 그리 의심하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다.
다만 성녀가 자진해서 목숨을 끊은 사실을 안 이후, 그는 내게 압박을 가하지 않았다. 만약 나마저 자신의 압박 때문에 목숨을 끊어버리면, 마전의 행방을 아는 자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릴 것이라 걱정한 것이다.”
“그 때문에 오상은 반대로 내게 잘해주었고, 심지어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 다만 그럼에도 내가 꿈쩍도 하지 않자, 결국 참지 못하고 각종 방법으로 나를 괴롭혀 마전의 행방을 알아내려고 했지.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변함이 없자, 결국 내가 죽을까 무서워, 나를 더는 어쩌지 못하고 놓아준 것이다.”
“이래저래 오상은 내게 수많은 방법을 사용했고, 각종 수작질을 동원했다. 천영이 당희와 접촉했다는 것을 안 순간, 나는 이 또한 오상의 수작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그놈이 이런 수단을 쓴 건 한두 번 있던 일이 아니라서 말이야.”
“게다가 너희 쪽에서도 갑자기 천영과 당희의 대화 내용을 알아봐 달라는 연락이 오기까지 했으니, 내가 어찌 그것을 모를 수 있었겠느냐? 다만 이런 내용은 네가 알고 있어봤자 좋을 것이 없다. 그래서 말해주려 하지 않은 것이다. 어쨌든 네가 방금 해준 이야기 덕분에 더욱 확신할 수 있게 됐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