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3화. 백 년은 이르다!
소평파는 대청 아래에서 포권을 하며 인사를 했다.
“조 대인을 뵙습니다!”
하지만 조공권은 그를 무시하고, 그대로 빈소로 들어가 버렸다.
소평파는 주위에 걸려 있는 흰 천을 한번 둘러보고는, 결국 천천히 걸음을 옮겨 빈소에 들어섰다. 그 안에는 유등 앞에 소평파를 등지고 서 있는 조공원이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또한, 길게 늘어선 유등 위에 올려진 새로운 위패도 볼 수 있었다. 바로 조옥군의 위패였다.
소평파는 그 뒤에 서서 다시 포권을 하며 말했다.
“조 대인을 뵙습니다!”
여전히 뒤돌아보지 않는 조공권이 냉소 지었다.
“난 또 누구라고, 소 대인이셨소? 소 대인의 위풍당당함을 노부가 겪어 보았으니 차마 소 대인의 인사를 받기가 두렵구려!”
“대인, 화를 거두어 주십시오. 소관이 무례를 범했습니다.”
“당당한 북주자사가 아니시오. 그 품계가 결코 노부보다 낮지 않으니, 참으로 젊은 인재가 아닐 수 없소. 노부는 소 대인의 ‘소관’이라는 두 글자를 감당하기 어렵소! 하아, 접대가 부족한 점 양해 바라오. 보았겠지만, 이곳이 참으로 적적하지 않소. 조부의 사람들이 다들 매우 놀란 나머지, 여기 와서 절을 하는 사람조차 없구려, 그렇다고 아비인 이 늙은이가 아들에게 절을 할 수는 없지 않겠소!”
그 말을 들은 소삼성은 분노 가득한 두 눈으로 상대방을 쏘아보았다.
소평파는 잠시 침묵하더니, 결국은 장포를 젖히고 위패 앞에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대공자님!”
소삼성이 깜짝 놀랐다. 소삼성이 그를 저지하려 했지만, 소평파는 자신을 부축하려는 손을 쳐내며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조공권이 그를 힐끗 바라보더니 천천히 뒤돌아 의아해하며 말했다.
“소 대인, 어찌 그런 대례를 하는 것이오?”
“소관이 잘못했습니다. 소관은 진심으로 사죄드리기 위해 온 것입니다.”
“호오! 잘못한 줄 알면 됐소.”
조공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아들의 위패를 보며 탄식했다.
“이 노부의 아들이 말이오. 어려서부터 총명해 다섯 살에 ‘성씨대전’을 외우고 여덟 살에 시를 지었소. 노부는 이 아이에게 큰 기대를 품었지. 그런데 이처럼 횡액을 당할 줄 누가 알았을까. 노부의 가슴이 참으로 아프오. 심장을 송곳으로 찌르는 것만 같소. 소 대인, 이 빚을 어찌 갚을 것이오?”
“조 대인께서는 어찌하고 싶으십니까?”
조공권이 돌연 고개를 돌렸다. 아들의 죽음을 떠올리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는지 갑자기 소평파의 뺨을 후려쳤다.
‘짝!’ 경쾌한 따귀 소리가 소평파의 뺨에서 울렸다.
뺨을 얻어맞은 소평파의 신영이 흔들렸다. 갑작스러운 일격에 하마터면 그대로 쓰러질 뻔했다.
“대공자님!”
소삼성이 대경실색했다. 그는 즉시 소평파를 감싸며 소리쳤다.
“우리 공자님은 조정의 대신입니다. 어찌 감히….”
하지만 소평파는 그런 소평파의 옷을 움켜잡았다. 소삼성이 승복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대공자님, 어찌….”
소평파가 소리쳤다.
“무릎을 꿇어라!”
“대공자님…”
“어서 꿇지 않고 무엇 하는 게냐!”
소삼성은 어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안쪽으로 물러나더니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짝!’ 조공권이 다시 한번 따귀를 후려쳤다. 소평파의 얼굴에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졌고, 그 입에서는 피가 배어 나왔다.
“네놈이 뭐라도 되는 줄 아는 것이냐?”
조공권이 소평파에게 삿대질을 하며 분노를 토해냈다.
“패배한 개새끼 주제에, 감히 굴러들어온 돌이 이 진국 경성에서 행패를 부려? 감히 노부와 대적해? 백 년은 이르다 이놈아!”
소평파가 담담히 말했다.
“조 대인, 저도 사죄를 드렸고, 조 대인도 저를 때리고 욕하셨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일찍이 뭐 했느냐?”
조공권이 크게 분노하며, 그대로 향탁에 있는 찻잔을 집어 그대로 소평파의 머리를 후려쳤다.
퍽! 찻잔이 깨지며, 찻물이 소평파의 얼굴과 몸을 적셨다. 그리고 곧 검붉은 핏물이 소평파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공자님!”
소삼성이 소리 지르며 일어나려 했다.
머리가 윙윙 울렸다. 눈앞이 번쩍인 소평파가 정신을 차리려고 고개를 저으며 동시에 분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꿇어라!”
“공자님….”
소삼성은 비통한 얼굴로 무릎을 꿇고 울었다. 하지만 최대한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이를 악물었다.
머리를 얻어맞은 어지러움이 서서히 사라지자, 소평파가 다시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 대인, 지금 얻어맞고, 욕먹은 것을 헛수고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이제 차분하게 대화를 나눠보아도 되겠습니까?”
이게 대체 무슨 말이란 말인가? 조공권은 소평파의 피를 보고 분노가 조금은 사그라들고 있었다. 하지만 소평파의 그 한마디를 듣고 다시금 화가 치솟았다.
헛수고라니? 내 아들은 저놈의 행패 때문에 온몸의 피를 쏟고 죽었거늘, 저놈은 고작 한 줌도 안 되는 피를 흘려놓고는 그것을 수고라 보고 있단 말인가? 심지어 진정한 사과도 아니고, 어떤 대가를 치르고 뭔가를 얻어낼 수작으로 왔단 말인가?
아들을 죽이고, 아들의 위패 앞에서 이런 말까지 하다니! 그 순간 도저히 화를 참을 수 없었던 조공권은 대청 옆에 걸려 있는 칼 걸이에서 검을 집어 들었다. ‘챙’ 서늘한 소리와 함께 검이 뽑혀 나왔다. 그는 망설임 없이 소평파를 향해 뛰어왔다.
소삼성이 대경실색했다. 당연히 그 모습을 그냥 지켜볼 수 없었다. 자리에서 허둥지둥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소평파는 그런 소삼성을 꾹 붙잡고 일어나지 못하게 했다.
조공권의 보검이 번쩍하며, 그 검 끝이 소평파의 목에 드리워졌다. 거친 숨을 내쉬는 그는 홧김에 검을 들고 있는 손까지 떨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는 검을 찌를 수 없었다.
아들의 원수가 눈앞에 무릎을 꿇고 무방비로 있었다. 그는 언제든지 이대로 목숨을 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소삼성에게 지금 상황은 너무 위험해 보였다. 수많은 위험을 헤쳐나온 소평파이지만 방심하다가는 눈앞에 있는 사람의 손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소삼성이 발버둥 쳤고, 소평파는 그런 그를 강하게 붙잡으며 담담히 말했다.
“노소, 긴장할 것 없다. 조 대인은 오랫동안 조당에서 활약하신 분이시다. 무엇을 해도 되고, 뭘 하면 안 되는지 너무나 잘 알고 계신 분이지. 나처럼 경솔하고 충동적이지 않으시다. 나는 조정이 임명한 관리이고, 저 밖에 흑수대의 사람들이 있으니, 만약 내가 여기서 죽는다면, 조 대인도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것이야. 조 대인의 목숨은 나보다 훨씬 가치 있는 목숨이다!”
조공권이 결국 손을 쓰지 못하는 것을 보고, 소삼성은 겨우 진정하고는, 긴장된 얼굴로 상황을 지켜보았다.
다만 소삼성은 검 끝이 이미 소평파의 목을 파고들어 피가 흐르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소평파가 살짝 고개를 돌려 조공권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조 대인, 제 목숨이 여기 있습니다. 만약 저를 죽여 아들의 넋을 기리고자 한다면, 저도 할 말이 없으니, 손을 쓰시지요. 하지만 만약 죽이시지 못하겠다면, 검을 내려놓으시고 말로 하시지요. 계속 이러시면 제가 참으로 불편하고 어색합니다!”
조공권의 얼굴이 뒤틀렸다. 마음속으로 한참 동안 갈등했지만, 결국에는 손에 든 검을 거둬들였다.
죽이고 싶었다. 당연히 눈앞에 이놈을 죽이고 싶었다. 죽이기 싫은 것이 아니었다. 다만 죽일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사적인 원한으로 조정의 관리를 죽인다면, 그것도 봉강대리(封疆大吏)급의 관리를 죽이는 것은 그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소평파의 관직 위계가 낮지 않기 때문에, 또 지금 소평파에게는 위계만 있고 실질적인 직책이 없기 때문에, 일단 중임을 맡게 된다면, 같은 위계의 다른 사람의 자리를 대체하게 되는 것이다.
누구를 대체하게 될지, 누구의 권한을 나눠 가지게 될지 황제는 당연히 사전에 알려줄 리 없었다. 소평파는 마치 누군가의 머리 위에 달린 한 자루의 검과 같았다. 언제든지 떨어져 내릴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손을 잡고 소평파를 내리누르려 한 것이다.
소평파를 죽인다면 한순간 통쾌하겠지만, 그의 정적이 이를 빌미로 그를 죽음으로 몰아갈 것이 분명했다.
조당의 사람들이 지금 같이 손을 잡고 소평파를 상대하고 있지만, 그건 공동의 목표가 있기 때문이었다. 일단 공동의 목표가 사라진다면, 같이 연합했던 사람들의 창날이 즉시 상대방을 향할 것이다. 조정관리를 죽인 죄명은, 한순간에 그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다.
“너는 죽이지 못한다!”
조공권이 냉소 짓더니 옆에 있는 소삼성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네놈의 이 집사 놈은 참으로 괜찮아 보이는구나!”
그의 얼굴이 살기등등해졌다.
소평파는 죽이지 못하지만, 하인 한 명 정도는 감당할 수 있었다. 소평파의 하인 한 명으로 그의 아들을 바꾼다면 설사 황제라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과하게 벌하지는 못할 것이다.
상대방이 발걸음을 옮겨 소삼성에게로 향했다. 소삼성은 크게 긴장하기 시작했다.
소평파가 돌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 대인, 만약 그의 손가락 하나라도 다치게 한다면, 오늘 전 여기 온 적이 없는 것으로 할 것이고, 조 대인과 끝까지 갈 것입니다. 만약 그를 죽인다면, 조부의 모든 사람들을 같이 순장시킬 것입니다!”
소삼성은 그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크게 감동하며 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공권은 검으로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무릎 꿇고 애원하면서, 지금 날 위협하는 건가? 폐하를 등에 업고 멋 부리는 것이라면 몰라도, 진지하게 하자면 넌 아직 멀었다.”
“만약 조 대인에게 대화할 조금의 성의도 없다면, 지금 당장 떠나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무릎, 이 따귀, 이 모욕에 대한 원한은 언젠간 돌려받을 것입니다. 반년 안에 조 가를 개새끼 한 마리 남기지 않고 모두 죽여버릴 것입니다!”
조공권은 너무 화가 나서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
“네놈이 뭐라고 나를 그리 협박하느냐? 그럴 능력이 있으면 그냥 지금 떠나지 그러느냐, 여기서 무릎 꿇고 뭐 하는 것이냐?”
“확실히 전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과거 북주를 경영할 당시, 겨우 그 작은 북주 하나로 북으로는 한국에 대항하고, 남으로는 연국을 저지했지요. 당시 조 대인과 같은 사람을 적지 않게 보았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정말로 당신 같은 사람들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지요. 정말로 조부가 어떻게 멸문할지 보겠다는 말입니까?”
소평파의 말을 듣고 조공권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하지만 입으로는 여전히 고집을 부렸다. 특히나 지금은 아들의 위패 앞이었다.
“그럼 가라니까!”
“조 대인은 정말 잘 생각하고 결정한 것입니까?”
조공권이 손을 크게 내저으며 문밖을 가리켰다.
“꺼져!”
“제가 여길 나간 후에, 그 즉시 흑수대의 병력을 모아서 조부를 쓸어버릴까 봐 두렵지 않으십니까?”
조공권이 ‘흐흐’ 웃으며 말했다.
“우리 집을 쓸어버려? 흑수대가 네 것이라도 된다더냐? 세 살배기 아이한테나 먹힐 위협을 노부에게 하는구나. 이봐, 소 대인, 어찌 그리 유치한가?”
“조 대인께 당부하지 않을 수 없군요. 저는 지금 흑수대의 사람입니다. 흑수대는 도 총관의 사람이지요. 이 경성에서 누가 감히 건들겠습니까. 조 대인이 저를 이렇게 만들었고, 이 모습 이대로 나간다면, 상황이 난처할 것 같습니다만….”
그리고 고개를 돌려 상대방의 두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흑수대의 사람이 진국 경성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모욕을 당한 적은 없었습니다. 특히 저 정도 급에 있는 사람은 더욱 그렇지요. 도 총관이 아주 기분 나빠하실 겁니다. 이처럼 도 총관의 체면을 구기다니, 도 총관을 이처럼 모욕한 결과를 생각해 보았습니까?”
“흑수대의 힘으로 조 대인을 쓰러뜨리는 것은 좀 힘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못할 일은 아니지요. 제가 이 분을 풀기 위해서 조부를 쓸어 버린다는 건 사실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하지요. 하지만 사람들을 불러, 흉수를 몇 명 흑수대로 잡아가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조 가의 사람들이 흑수대에 잡혀들어간 후에 살아서 나올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장담할 수 없겠군요! 사실 저는 집안을 박살 내는 것 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저번 흑옥에서 이 집안 딸의 옷을 벗기지 못해 아주 아쉬웠습니다. 어디 이번에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조공권이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소평파를 가리키며 대노했다.
“감히!”
홧김에 이놈을 때린 것으로 이런 트집이 잡힐 줄 생각지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