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5화. 청혼
두 사람은 어서방에 들어섰다.
안에 들어가 인사를 올린 후, 서탁에 앉아 있던 태숙웅이 소평파의 얼굴을 보더니 잠시 멈칫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평파 앞으로 걸어가 물었다.
“조공권이 때린 것인가?”
“소신이 실수로 넘어진 것입니다.”
태숙웅이 코웃음을 치고는 말했다.
“평소의 그 배짱이 다 어디로 갔는가? 어찌 실수로 넘어졌다고 하는가?”
“이 모든 일은 소신이 처신을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원망할 것도 없으니, 실수로 넘어진 것입니다.”
“조공권의 노기가 작지 않군. 감히 조정의 대신을 구타하다니…. 하지만 생각해 보면, 자네가 조공권의 아들을 죽였지 않은가. 누구라도 견디기 힘들었겠지.”
“다 지나간 일입니다.”
태숙웅이 눈살을 찌푸렸다.
“다 지나갔다고? 선물이 쓸모 있던가? 자네를 용서하겠다던가?”
“소신을 용서할지 말지 소신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소신이 북주에서 데려온 학생들은 용서해주기로 약속했습니다.”
태숙웅이 냉소 지었다.
“저들이 고집을 부리면, 과인조차도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인데…. 대체 무슨 조건을 내걸었길래 그들을 용서해주겠다던가?”
“칠 공주와 혼인하는 것입니다.”
“뭐라?”
태숙웅은 마치 꼬리가 밟힌 고양이 마냥 크게 분노했다.
“빌어먹을 자식들! 과인의 딸이 자기들 장난감이라도 된단 말이냐. 주고 싶으면 주고, 거두고 싶으면 거두고, 그렇게 반복하니, 과인을 뭐로 생각하는 것이냐?”
한쪽에 있던 도략도 눈살을 찌푸렸다. 소평파가 포권을 했다.
“폐하, 감히 청하옵건대, 칠 공주와 혼인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소평파의 그 한마디는 불길에 기름을 끼얹는 말이었다. 태숙웅이 크게 분노했다.
“소평파, 애당초 혼인을 거절한 것이 바로 너다. 그런데 감히 내 앞에서 그 말을 하다니, 과인의 딸을 그리 모욕해도 된다고…….”
태숙웅은 소평파를 호되게 꾸짖었다. 소평파를 가리키는 태숙웅의 손가락이 하마터면 소평파의 이마를 찌를 뻔하기도 했다.
소평파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태숙웅이 그저 꾸짖게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한참을 꾸짖던 태숙웅은 결국, 더는 꾸짖을 말도 없고, 화도 대충 풀리게 되었다. 그제야 도략이 옆에서 태숙웅에게 찻잔을 올려주었고, 차를 한 모금 마신 그는 철저하게 냉정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문제의 핵심을 생각해 내고는 물었다.
“그 조건에 승낙한 것은, 바로 자네가 북주에서 데려온 학생들 때문인가?”
“그들이 북주의 학생이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 과거 북주의 부강을 책임질 희망이었기 때문입니다. 과거 소신이 북주에서 도망칠 때도 최대한 그들을 데리고 움직이려고 한 것은, 바로 그들을 지켜 희망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북주의 부강을 책임질 희망?”
태숙웅이 잠시 멈칫하더니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
“과인이 알기로 그들은 겨우 스무 살 정도 되는 젊은이들이다. 그들이 어찌 북주의 부강을 책임질 희망이란 말인가?”
“곡평방(曲平方), 스물에 학습에 참여했습니다. 스물하나에 북주의 수많은 산을 관통하는 수로 준공을 책임졌고, 공사 기간에 민부들의 징발과 각 군성의 협조를 훌륭하게 받아냈습니다. 당시 북주가 그에게 제공할 수 있는 재력이 많지 않은 상황 속에서 민부들의 병사와 나이로 인한 자연사를 제외하고 사상자가 백을 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겨우 삼 년이라는 시간 안에 북주를 동서로 관통하는 천 리에 달하는 수로를 성공적으로 준공해 냈습니다. 덕분의 북주로 수많은 선박이 오가게 되었으며, 남북 곡창지대의 관개(灌漑)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태숙웅은 그 말을 듣고 매우 놀랐다.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일국의 황제인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천 리가 넘는 수로를 준공하는 것은, 진국의 재력을 가지고 한다고 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겨우 북주의 재력으로 그토록 큰 공사를 완성해 내다니, 보통 그런 경우라면 돈 대신 사람의 목숨을 밀어 넣어야 하니, 최소한 수천의 사상자가 나와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민부들의 사상자가 백이 넘지 않았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도 겨우 삼 년의 시간 동안 말이다. 보기에는 간단해 보이는 숫자였지만, 그 배후에 도대체 얼마나 복잡한 것이 숨어있는지 모른다. 협조를 받아낸 능력도 보통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이 곡평방이라는 자는 분명 치수의 인재가 분명했다!
“곡평방….”
태숙웅이 중얼거렸다. 순간, 이 이름이 태숙웅의 머리에 깊숙이 박혔다. 그는 도략에게 눈짓을 보냈다.
도략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태숙웅은 도략에게 그 이름을 기억하라고 한 것이다. 소평파가 계속 이어 말했다.
“조사(曹思), 열아홉에 북주 관도진(關渡鎭)에 학습을 보냈고, 스물에 그곳의 정무를 보게 되었습니다. 역병을 없애고, 학당을 부흥시켰고, 부두를 수리한 후, 관도진의 부두라는 지리적인 우위를 이용해 통상을 발전시켰습니다. 겨우 이 년이라는 시간 동안에 이백 명 정도 살고 있던 관도진이라는 곳을 삼천여 명이 거주하는 곳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인구는 순차적으로 계속 증가하는 추세였으며, 상업 또한 끊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주민들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었습니다. 청년이든 노인이든, 농사를 짓거나, 잡무를 보는 등 모두 할 일이 있었고, 모두 따듯한 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 년 후, 소신은 관도진을 관도현으로 승급시켰습니다. 그는 유민을 끌어들여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현의 황무지를 전면적으로 개간해 이롭게 사용하였습니다. 그렇게 농업을 안정화하고, 상업을 발전시키니 유민들이 그곳을 떠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작은 현이 된 그곳은 그 후로도 계속해서 발전했습니다. 인구수가 폭증해, 상납하는 세금이 반년마다 두 배로 뛸 정도로 그 기세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사기안(謝忌安), 뛰어난 판관입니다. 처음에는 작은 마을에서 시작해, 군에 이르기까지, 그의 눈을 피해간 사건이 없었습니다. 수없이 억울한 사건을 처리했으며, 그가 가는 곳에는 불손한 무리가 전전긍긍…….”
“교심(喬深), 상업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이 소평파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들이 어느 분야에 뛰어난지 소평파는 손바닥 보듯이 꿰고 있었다.
태숙웅은 소평파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두 눈을 반짝이며 듣고 있었다. 그렇게 모든 이야기가 끝났을 때, 정신을 차린 태숙웅이 떠보듯이 물었다.
“어디서 그런 인재들을 찾았는가?”
“모두 북주의 판학(辦學)을 하던 자들 중에 선발한 학생들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피땀을 흘려 그들을 단련시켰고, 그들 중에 단련을 받아들일 만한 자들이 남아 실력을 발휘했던 것입니다. 조당의 다툼으로 인해 저들이 이대로 스러지는 것을 소신은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판학을 하면 그런 인재들을 선별할 수 있는 것인가?”
“천하의 풍기가 이미 낡고, 문란해졌습니다. 소신이 북주에 있을 당시 도저히 들어 쓸 인재가 없었기에 신인을 훈련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사람들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를 바라보는 태숙웅의 눈빛이 다소 복잡했다.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다니.
태숙웅은 자신의 딸을 깔보는 것이 아니었다. 확실히 마주해야 하는 일들이 있었다. 딸이 이미 그 지경이 되었다. 소평파에게 시집보내는 것은 소평파에게 큰 치욕이 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소평파가 그 전에 어째서 그렇게 강하게 저항했겠는가?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 자네는 과인의 딸을 한 번 더 욕보여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태숙웅이 이를 악물고 물었다.
“오늘날, 칠 공주의 처지가 소신의 잘못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칠 공주와의 혼인을 허락해 주신다면, 소신은 진심으로 공주를 선대하고 조금도 욕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태숙웅이 잠시 침묵하며, 이해득실을 따져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말했다.
“환아는 이미 큰 치욕을 맛보았네, 과인은 자네가 약속을 지켰으면 좋겠군. 그렇지 않으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야!”
소평파가 허리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태숙웅은 귀찮다는 듯이 물러가라 손짓했다.
소평파가 물러간 후, 태숙웅은 어서방을 한참 서성이며 계속 한숨을 내쉬더니 갑자기 말했다.
“도략, 방금 그 이름들을 모두 기억하느냐?”
“어….”
도략이 다소 민망해하며 대답했다.
“폐하, 한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한 번에 다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으니,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 모두 사실인지 알아보아라.”
“알겠습니다!”
도략이 대답했다.
“천하의 풍기가 낡고 문란해 신인을 훈련하고,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사람을 찾는다….”
태숙웅이 혼자 중얼거렸다. 도략은 귀를 쫑긋하고 태숙웅의 말을 듣다가 간담이 서늘해졌다.
태숙웅이 한참을 깊이 생각하다가, 돌연 정신을 차린 듯하더니 갑자기 다시 말했다.
“어쨌든 이번 일은 내 묵인과는 별개로, 그놈이 선을 넘었구나. 감히 과인의 딸로 자신의 분을 풀려 하다니…. 과인의 딸이 그의 아들만 못하단 말인가? 도략, 그에게 본때를 보여주어라!”
도략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명에 따르겠습니다.”
* * *
다음 날 조회, 소평파가 입조했다.
소평파의 출현은 원래 큰 소동을 일으켜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상할 정도로 평온했다. 오히려 괴이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이 퍽 많이 보일 정도였다.
국사를 거의 다 처리했을 때, 소평파가 앞으로 나와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황제에게 혼인을 청했다. 이전과 달리,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미 모든 것이 암중에 다 이야기된 상황이었다. 그러니 모두 찬성 일색이었다. 그렇게 그 일이 결정되었다.
조정의 신하들은 처음에 칠 공주의 청백지신을 위해서 이 일을 찬성했다가, 나중에 그것이 적국의 음모라며 반대했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다시 소평파의 진심은 적국의 음모와 무관하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아무튼, 찬성도 반대도 자기들 마음대로였다.
태숙웅은 오늘 조회에서 일어난 일을 보며 크게 분노했다. 평소에는 자신의 손바닥 위에서 서로 싸움을 벌이던 파벌들이 갑자기 연합한 것이다. 태숙웅은 이 일이 참 불쾌했다. 이건 황제가 보고 싶어 하는 광경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행히 태숙웅은 공과 사를 구별할 줄 알았다.
이런 일은 어쨌든지 간에 이번 일에만 제한된 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게다가, 사실 이런 일을 유도한 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소평파가 혼인을 청했지만, 혼사 일을 그가 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이 소평파를 위해 길일을 의논했다.
이 일에 대한 결론이 나오자, 소평파의 학생들에 대한 의논도 급물살을 탔다.
마치 소평파가 과거 일부 사람들의 가족들을 흑옥에 붙잡아 들였을 때와 같았다. 소평파가 목적을 달성한 후, 그 당시에 잡혀 들어왔던 일부 사람들의 가족들은 빠르게 풀려났다. 혐의 또한 빠르게 무죄로 밝혀졌다. 겨우 사례금에 불과한 일이었으니, 처음부터 별일도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소평파가 데려온 학생들은 곧바로 무죄 판결을 받았고, 복직되었다. 큰일이 될 수 있고, 작은 일이 될 수도 있었던 사건은 그렇게 어떻게든 축소되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었다.
사실 조정의 사람들은 처음부터 소평파의 학생들을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 다만 기세가 오른 소평파의 기를 꺾어, 소평파와 또 아랫사람들에게 자신들의 힘을 보여주고자 했을 뿐이었다.
물론, 소평파를 공격할 건덕지가 없어 그의 학생을 공격한 것은 사실 조금 졸렬한 일이기도 했고, 그렇게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 미지수였던 일이었다. 다만 그 일을 행한 사람들조차 이처럼 예상치 못한 효과를 얻을 줄은 몰랐다. 소평파가 그들을 그처럼 신경 쓰다니.
어차피 이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진실로 나라를 위한 일이라 볼 순 없었다. 그저 자신들의 권력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해 이리저리 일을 벌이는 것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