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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536화 (632/1,000)

1536화. 영왕 생전의 당부

저녁이 되었을 때,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보이는 아이들이 즐거운 모습으로 학당 안에서 뛰어나왔다.

학당은 왕부 부근에 있는 한 장원에 위치해 있었다. 상숙청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라며 다들 허락했고, 그렇게 학당이 빠르게 세워졌다. 이 학당은 가난한 집의 아이들을 무료로 가르치는 곳이었다. 일단 지금은 수십 명에 불과했다. 아이들이 너무 많으면 상숙청이 이들을 모두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뛰쳐나오는 것을 보고, 허노육을 데리고 찾아온 관방의가 다급히 옆으로 물러났다. 그렇게 일단 아이들이 모두 나가기를 기다렸다.

이들 아이는 원래 다 낡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학당에 온 후로는 새로운 옷을 입고 있었다. 이것은 관방의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후원해줬기 때문이었다. 또 상숙청이 모으는 학생의 수만큼 새 옷을 후원해 주기로 약속까지 했다.

잠시 후, 학당 안에서 아이들의 선생인 상숙청이 걸어 나왔다.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는 그녀의 얼굴에도 미소가 걸려있었다.

혼사라는 부담을 내려놓은 상숙청은 마치 뭔가에서 해방이 된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예전보다 훨씬 침착하고 여유로운 모습이 되었다.

아이들이 모두 뛰쳐나간 후, 상숙청은 자신을 찾아온 관방의를 발견했고, 상숙청이 관방의에게 다가가며 미소지었다.

“오셨어요, 언니.”

“한참 말썽을 부릴 나이들인데, 힘들지는 않아요?”

“이곳은 달라요. 아마 여기 보내기 전에 집안에서 따끔한 충고를 받고 오나 봐요. 아이들이 대부분 말을 잘 들어서, 힘들지 않아요.”

바로 그때, 호위들이 마차를 끌고 골목으로 들어와 한쪽에 마차를 세웠다. 그리고 그중에 한 명이 상숙청에게 다가와 준비가 되었다고 보고했다.

관방의가 물었다.

“어디 가시려는 건가요?”

상숙청은 잠시 멍한 표정으로 조금 작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성 밖을 좀 둘러 보려고요.”

관방의는 상숙청이 어딜 가려고 하는지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숙청이 걸핏하면 성 밖에 있는 의관총에 들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관방의는 속으로 탄식을 내뱉으며 우유도에게 쌍욕을 퍼부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침 저도 한가했는데, 같이 가요.”

상숙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두 사람이 같이 마차에 올라탔고, 허노육은 마부를 한쪽으로 밀어내고 자신이 직접 마부를 자청했다.

마차는 왕부의 구역을 벗어나 거리로 나섰고, 그대로 멈추지 않고 성을 빠져나갔다.

두 여자는 마차 안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상숙청이 문득 관방의에게 물었다.

“평소 움직일 때는 곁에 많은 사람을 데리고 다니지 않았나요? 오늘은 어찌 허 대가만 대동하셨나요?”

관방의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다른 거지요.”

사실 그 말은 거짓이었다. 진실은 이제 더는 두렵지 않기 때문이었다. 관방의의 소매 안에 열다섯 장의 천검부가 있었다. 아주 자신만만했다. 뭐가 와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어디 눈먼 놈이 감히 관방의를 건든다면, 바로 그를 본보기 삼아 지져버릴 수 있었다. 그럼 다른 사람들도 관방의의 무서움을 알게 될 것이었다.

지금 관방의의 자신감을 생각하면, 먼저 나서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관방의는 은아와 같은 공포스러운 괴물이 널려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 지금 허노육에게도 한 장의 천검부가 있었다. 부방원의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단호 일행도 다들 남몰래 한 장씩을 호신용으로 가지고 있었다.

우유도 같은 경우는 관방의가 만약을 대비해서 몇 장 남겨 주었고, 나머지는 마치 수전노처럼 모두 자신의 손에 쥐고 있었다.

의관총으로 향하는 길은 이미 예전에 완성되어 있었다.

원래 상숙청은 길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숙청이 수시로 다니게 되면서, 울퉁불퉁한 길과 여기저기 자란 잡초들 때문에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고, 왕부의 집사는 사람을 보내 간단한 길을 뚫게 했다. 이 모든것이 상숙청을 위해서였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호위들이 빠르게 흩어져 의관총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각자 경비를 서기 좋은 위치를 점하고 주위를 경계했다.

두 여인이 마차에서 내려 의관총에 다가가 한참을 침묵했다.

도화선인. 관방의는 비석에 새겨져 있는 네 글자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상숙청은 담담한 얼굴로 무덤에 새롭게 자란 잡초를 직접 뜯어내기 시작했다.

의관총의 주위는 매우 깔끔했다. 모두 상숙청이 수시로 주위를 정리했기 때문이었다.

관방의는 도와주지 않고, 그저 상숙청이 하는 것을 지켜만 보았다.

평소에 자주 정리를 한 덕분인지, 잡초가 군집을 이루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에 상숙청이 몇 가닥 잡아 뽑으니, 무덤이 아주 깨끗해졌다.

상숙청이 다시 비석 앞으로 돌아왔을 때, 관방의가 갑자기 뒤돌아 호통을 쳤다.

“저들을 한번 보고, 너를 한번 보아라. 옆에서 뭐 하는 것이야? 그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허노육이 갑작스럽게 욕을 먹고,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제야 상숙청의 호위들이 멀리 떨어져 주위를 경계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호위들이 멀리 서 있는 것은, 상숙청이 이곳 의관총에 올 때마다 비석 앞에 한참을 서 있고, 심지어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상숙청의 마음을 이해하고 자리를 피해주었다.

욕을 먹은 허노육은 호위들이 하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했다. 다만 멀리 떨어지기 전에 비석 앞으로 가서 포권을 하고 허리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

“도야, 노육이 인사드립니다. 편히 쉬십시오.”

지금 이건 우유도를 저주하는 것인가? 관방의가 허노육을 노려보며 말했다.

“편히 쉬기는 개뿔, 빨리 저리 꺼져.”

허노육이 머리를 긁적거리고는 그대로 날아올라 저 멀리 날아갔다. 아주 고분고분했다.

부방원의 사람들은 다들 관방의의 말을 잘 들었다. 만약 관방의가 과거 그들을 거두지 않았다면, 그들은 아직도 그저 일개 산수로 떠돌고 있을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과거 이들이 제경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모두 관방의의 미모 덕분이었다.

그러니 어찌 보면, 부방원의 인원들이 관방의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은, 사실 관방의에 대한 죄책감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다들 제경에서 어떻게 부족한 것 없이 살 수 있었을까? 바로 일개 여인인 관방의가 자신의 미모를 팔아 사람들을 먹여 살린 것이다. 관방의의 미모가 퇴색된 후에는 다시 관방의가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을 팔아 사람들의 밥그릇을 지켜주었다. 일단의 남자들이 이렇게 수행계에서 살아남았다. 수치스럽지 않은가?

더군다나, 지금까지 관방의는 부방원의 사람들을 홀대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는 남자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줄 필요도 없었다.

다른 사람은 관방의가 미색을 파는 천한 여자라고 비웃지만, 허노육을 포함한 부방원의 사람들은 그럴 자격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양심이 없는 사람들은 진작에 부방원에서 쫓겨났다. 그러니 지금 관방의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충신들이었다. 관방의를 대장으로 인정하고, 이번 생을 기꺼이 관방의에게 바친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몇 번 걷어차이고, 욕 몇 마디 듣는다고 기분이 나쁠 리 없었다. 더욱이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관방의가 그들을 때리고 욕하는 것에 나쁜 마음이 없다는 것도 알았다.

다시 뒤돌아보았을 때, 옆에서 미소지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상숙청을 보고 관방의가 다소 민망해하며 말했다.

“미안해요. 저놈들이 저를 오랫동안 따르다 보니 얼굴이 두꺼워져서, 저렇게 꼭 욕을 해야 말을 듣더라고요.”

상숙청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다만 이상해서요.”

관방의가 의문을 담아 물었다.

“뭐가요?”

“언니는 도야의 심복이었어요. 도야를 향한 언니의 감정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요. 도야가 돌아가신 후, 저는 언니가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본 적이 없었어요. 사실은 그게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

관방의는 말문이 막혔다. 살아 있으니, 슬퍼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닌가? 자금동에서 대충 슬픈 척했을 뿐,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정말 그렇게 한다면, 어찌 일상생활을 하겠는가?

다만 생각은 생각이고, 겉으로는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관방의는 서글픈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군주님, 이 늙은 여자가 어떤 출신인지 아시지요? 웃음을 팔던 사람이에요. 웃는 얼굴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된 것이지요. 하지만 이 마음속의 슬픔은 다른 사람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면서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도야가 돌아가셨어요. 어찌 저라고 슬프지 않겠어요? 제 슬픔이 군주님보다 못하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초려별원의 사람들이 있지요. 만약 제가 온종일 얼굴을 찌푸리고 다닌다면, 다들 어찌 생각하겠어요? 비록 제가 속없이 웃고 다니는 것 같지만, 그 모든 슬픔은 이 가슴속에 있어요! 군주님의 그 한마디가, 제 가슴을 찌르는군요. 하아!”

그 말을 들은 상숙청은 크게 당황하며, 어찌할 줄 몰라 했다. 오히려 상숙청의 두 눈이 더욱 붉어졌다.

“언니, 죄송해요. 제가 무례한 말을 했어요. 그런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관방의가 손사래를 치고는, 상숙청에게 다가가 그 손을 잡고 말했다.

“다 가족 같은 사이에요. 돌려 말하는 것보다,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이 낫지요.”

그리고는 상숙청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상숙청은 관방의의 시선에 다소 어색해하며 물었다.

“언니, 왜 그러세요?”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상숙청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뭐를요?”

“예전에 들은 이야기가 있었어요. 군주님이 태어날 때부터 그런 얼굴이 아니었다는 이야기요! 도야의 상청종 사부 동곽호연이 얼굴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요. 그렇게 만들 방법이 있다면, 분명 풀 방법이 있는 것이 당연할 거예요! 어느 아비가 딸의 얼굴을 그렇게 만들고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을까요. 설마 왕야께서는 군주님께 얼굴을 원래대로 돌릴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나요?”

상숙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법은 알려주셨어요.”

관방의가 두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무슨 방법이요?”

“부왕께서 말씀해 주셨었어요. 제 얼굴에 이런 반점을 만들어 낸 것은, 제가 어렸을 때 괴질이라는 이상한 병에 걸렸기 때문이라고요. 그 괴질이라는 병은 치료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 반점을 통해 평생 억제할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니 갑작스럽게 이 반점을 없애면, 괴질이 다시 퍼져 나가 제 몸에 해가 될 수 있다고 하셨어요.”

“이후, 문제가 없다는 것이 확실해지면, 동곽 선생님을 찾아 반점을 없애주겠다고 하셨어요. 다만 동곽 선생님이 그렇게 가실 줄 누가 알았겠어요…. 도야도 저를 위해서 알아 봐주셨지만, 상청종의 다른 분들은 이 반점을 없앨 방법을 알지 못하셨어요.”

관방의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동곽 선생님만 반점을 없앨 수 있다고 하셨나요? 다른 방법은 없나요?”

상숙청이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확실한가요?”

상숙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해요.”

“다시 생각해 보세요. 영왕이 살아계실 때, 혹시 군주님께 뭔가를 알려 주었을 수도 있어요.”

상숙청이 쓴웃음을 지었다.

“예쁜 것을 싫어하는 여자가 있을까요? 만약 회복할 방법을 알았다면, 분명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을 거예요. 그걸 어찌 잊어버리겠어요. 부왕의 말씀이 아직도 생생해요. 동곽 선생님을 찾으면 반점을 없앨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언니, 오늘 왜 그러세요. 어째서 갑자기 여기에 관심을 가지시는 건가요?”

관방의가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안타까워서 그러지요. 이 부드러운 피부를 보세요. 또 나조차도 질투가 날 것 같은 그 몸매를 보세요. 하필 그 얼굴 때문에…. 이 언니는 그 얼굴을 고치고 싶은 거예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마음만 받을게요. 방법이 없다면, 어쩔 수 없지요. 어차피 이렇게 오랫동안 살아왔어요. 이미 익숙해요.”

“그걸 치료하려면 방법을 찾아야 해요.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어쩌면 뭔가 생각해 낼 수 있을지도 몰라요.”

상숙청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언니, 부왕께서는 정말 동곽 선생님을 찾으라고 당부하셨어요. 다른 말씀은 없으셨어요.”

상황을 보니, 뭔가 단서를 얻기 어려워 보였다. 그렇다고 강요할 수도 없으니, 포기할 수밖에.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쉽군요!”

“어쩌면 이것이 운명일 수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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