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8화. 은인자중(隱忍自重)
황궁 내부,
태숙웅과 란 귀비는 줄곧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소평파가 자신의 딸을 어찌 대하는지 알고자 한 것이다.
곧 이들은 태숙환아의 상황이 아주 좋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런데도 태숙웅과 란 귀비는 안심할 수 없었다.
나중에 태숙환아 본인을 만나고, 딸이 부끄러워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 후에야, 황제와 귀비는 안도했다. 그제야 아랫사람들의 보고가 진실이었음을 믿게 되었다.
딸이 기뻐하니, 태숙웅은 마음의 큰 짐을 덜 수 있게 되었다. 황제라고는 하지만 그도 한 사람의 아비였다. 그 때문에 크게 기뻐한 그는 소평파에게 큰 상을 내렸다!
이에 질세라, 황후도 적지 않은 상을 내렸다.
란 귀비는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로 기뻐했다. 보면 볼수록 사위가 마음에 든 것이다. 혹시라도 사위가 기분이 나빠 자신의 딸을 학대하기라도 할까 봐, 그녀는 소평파를 매우 꼼꼼하게 챙겼다. 나중에 사람들을 시켜 황제 앞에서 차마 주지 못했던 수많은 예물을 소부로 보내기도 했다.
물론, 태숙웅은 이번 한 번으로 완전히 안심한 건 아니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가? 그는 소평파가 보여주기식으로 이런다고 의심하고, 흑수대에게 비밀리에 감시하게 했다.
또 다른 한편, 소평파는 태숙환아를 이용해 태숙웅을 움직였다. 드디어 조정의 대신에게 손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 목표로 선정된 사람은 내사령 조공권이었다!
사적으로 소평파와 조공권은 원수지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소평파가 조공권의 아들을 죽였으니 그 원한이 어찌 쉽게 사라지랴! 이 때문에, 다들 두 사람의 은원이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상황이 좀 달라졌다. 이제 소평파는 황제의 딸과 결혼까지 했으니 황제가 누구 편을 들지 물어볼 것도 없었다.
공적으로는 황제를 압박했던 일에 대해서, 태숙웅은 이미 조공권에게 화가 머리끝까지 차 있었다. 진작부터 그를 징계할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조공권은 자신의 머리 위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소평파가 자신에게 머리를 숙인 이상, 이제 자신에게 감히 함부로 덤비지 못할 거라 생각한 것이었다.
공주의 대혼이 거행된 지 며칠이 지났다. 그동안 흑수대는 부지런히 움직였고, 조공권의 일부 죄증을 긁어모았다. 그 자료를 모두 조공권의 정적에게 제공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은밀히 뒤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그렇게 죄증이 폭로되었고, 조당이 뒤흔들렸다. 조공권은 결코 깨끗한 인물이 아니었다. 사실, 이 자리에 올라오기까지 깨끗한 것만 해서 올라올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누구든지 들추면 먼지가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조공권은 그대로 옥에 갇혔고, 가문은 무너졌다.
기운종에서 누군가 나서서 애원했지만, 명확한 증거를 가진 태숙웅의 배후에는 기운종의 장문인이 서 있었다. 조정에서 죄증이 폭로된 사람을 어찌 구한단 말인가? 만약 다들 그리한다면, 규율과 법도가 어찌 되겠는가? 결국 기운종에서 나선 사람은 간신히 자신의 딸과 외손주만을 살려 기운종으로 데려갔을 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목이 베였다!
소평파는 조정 대신들과 관계를 개선하려 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조공권과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소평파가 그의 아들을 죽였기 때문에 이는 지워지지 않는 원한 관계였다. 결국,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 그를 반드시 처리해야 했다!
그 후, 소평파와 태숙환아의 부부 사이는 그야말로 주위 사람들을 부럽게 했다.
같이 말을 타고 꽃구경을 하러 가고, 같이 배를 타고 놀았다. 같이 책을 읽고, 같이 금을 탔다. 소평파는 직접 태숙환아에게 그림을 가르치며 밤낮으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소평파는 마치 사람이 변한 것 같았다. 태숙환아에 푹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사실, 태숙환아가 소평파의 수법에 대항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녀는 이미 행복해서 방향감각을 상실할 지경이었다. 그 때문에 원래 그녀를 비웃던 수많은 황족 여인들이 이제는 태숙환아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반대로 그 때문에 답답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태숙웅이었다. 그가 처음에 소평파를 국사와 같이 대한 것은 소평파가 국사의 역할을 하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진국천하책’이 줄곧 그의 마음속에 있었다. 하지만 그 책략을 만든 사람은 지금 온종일 자신의 딸과 사랑을 나누며 전선으로 향하지 않으려 했다. 그처럼 나서지 않고 가만있으니, 마음이 답답했다. 갑자기 딴사람이 된 듯했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란 귀비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사위가 아주 큰 권력을 쥐길 바라마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 공을 세우려고 하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결국 태숙웅의 요구에 도략이 소부를 몇 번이나 찾아와 슬슬 일해야 할 때라고 암중에 당부했다!
하지만 소평파는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완곡히 거절했다. 그렇게 일을 하러 가지 않겠다고 해도, 지금으로선 그를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소평파는 태숙환아와 혼인했고, 태숙웅은 지금 당장 소평파에게 뭐라고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미 소평파에게 푹 빠져, 소평파의 방패가 된 태숙환아는 남편이 전장에서 피를 토했다는 말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절대 자신의 남편을 전장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태숙웅과 란 귀비가 그녀를 찾아와 그녀에게 소평파를 설득하라고 했지만,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뭘 설득한단 말인가? 태숙환아는 지금 생활에 아주 만족하고 있었다. 남편이 자기 곁을 떠나 전장으로 간다는 건 생각만 해도 싫었다.
결국 참지 못한 란 귀비가 직접 나서 소평파를 설득하고자 했다. 그에게 향상심을 보이라 재촉한 것이다.
하지만 소평파는 그저 흘려듣고는, 그냥 하던 일을 계속했다. 태숙환아를 데리고 수시로 조정의 대신들의 집을 방문해 친분을 다졌다.
대신들은 원래 그를 무시하고자 했다. 하지만 소평파는 만나지 않아도 괜찮다 할 수 있지만, 공주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비록 마음속으로는 공주를 안중에 두지 않았지만, 겉으로는 법도를 따라야 했다.
그렇게 소평파는 각 대신의 집을 방문하여,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자신은 이제 맘을 바꾸었고, 조용히 부마나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설사 공이 있다 해도 받지 않을 것이니, 대신들에게 조당에서 자신에게 지지를 보내 달라 요청했다.
소평파가 권력을 포기하고 대신들과 경쟁하지 않겠다고 하자, 그들은 당연히 아주 좋아했다. 이익분쟁이 없으니, 황제를 분노케 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최근 보여주는 소평파의 태도가 정말 그렇게 보였다. 괜히 소평파를 의심하고 계속 그와 좋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면, 자신들도 결국 황제의 눈 밖에 날 수가 있었다. 결국, 서로의 이익을 위해, 그렇게 양측의 관계가 빠르게 회복되었다. 곧 과거의 원한을 내려놓았고, 적극적으로 친분을 나누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일은 당연히 흑수대의 이목을 벗어날 수 없었다. 태숙웅은 그 소식을 듣고 크게 분노하며 즉시 소평파를 황궁으로 불러 호통을 쳤다.
소평파는 그 때문에 연달아 몇 번 토혈했다. 이유는 심력이 버티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였다. 그 후, 태숙환아가 황궁에 들어가더니 황제에게 울며 애원했다.
자신의 딸과 혼인한 소평파였다. 태숙웅은 그를 어찌할 수 없었다!
소평파는 그렇게 은인자중했다. 소식을 들은 우유도조차도 소평파가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우유도는 조당의 일을 잘 모르기 때문에 가무군에게 의견을 구했다.
하지만 가무군도 소평파가 무슨 의도로 그러는지 알아낼 수 없었다. 아무튼, 소평파는 태숙환아를 아내로 맞이한 기회를 틈타 빠르게 내부의 갈등을 해소했다. 이제 다시 진국 내부의 힘을 빌려 소평파를 공격하는 것은 어렵게 되었다. 지금 진국 쪽에서는 소평파와 원한을 맺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소평파가 권력을 포기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숨기 위해 이렇게 하기로 결정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 때문에 가무군은 일단 방심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상황을 살폈다…….
집안일, 국가의 일, 천하의 일. 고품은 제국과 대치하고 있는 시간 동안, 여러 가지 것들을 정리했다. 그렇게 드디어 전면적으로 위국의 흔들리고 있는 세력을 처리했고, 후방을 공고히 다질 수 있었다.
물론, 그동안 진국도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었다. 진국은 다시금 병력을 모집해, 정식으로 전방을 향해 병력을 보냈다. 그것이 호연무한에게 거대한 압박으로 다가왔다. 고품은 지금 굳건한 방어진을 치고 버티고 있었으니, 호연무한이 감히 그곳을 뚫어내지 못했다!
* * *
중군 군막 내부.
지도를 확인하고 있던 호연무한은 드디어 결심했다. 제군 방어선의 한 지점을 손으로 쾅쾅 두드렸다.
그의 지목에 의해 수많은 사람의 운명이 바뀌었다.
제군은 연회를 열어 위국의 신하들을 초대했다. 호연무한의 초대였다. 감히 따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평소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위국의 신하들은 의심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모이자, 제군이 갑자기 들이닥쳤고, 숨어있던 병력이 위국의 신하들을 포위하고 몸에 병장기를 들이밀었다.
탁자가 뒤집히고, 고함과 비명이 난무했다. 위국 신하들은 극도의 공황에 빠져들었다.
그때, 군막의 입구가 열리며 연회의 주인이 등장했다. 갑주를 입은 호연무한이 느긋하게 나타나더니, 허리의 보검을 움켜쥔 채 싸늘한 눈으로 현장을 훑어보았다. 그 담담한 모습이 오히려 더욱 무서웠다!
탁자에 쓰러진 채 제압당한 금영찬이 곧 크게 소리쳤다.
“대장군, 어찌 이러시는 겁니까? 제국과 위국은 동맹입니다. 지금 적군에게 좋은 일을 하시려는 것입니까?”
“걱정할 것 없소. 본인이 이런 하책까지 동원한 것은, 바로 연합군의 작전을 좀 더 쉽게 하려는 것이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위국에 병력이 얼마나 남았소?”
“아직 십만이 남았습니다!”
“그 십만의 대군은 각 대신의 심복 병력이 모여 만들어진 군대요. 본인이 몇 번이나 나서길 요구했지만, 전혀 움직일 생각이 없는 것 같았소. 그 이유가 무엇이오?”
금영찬은 말이 없었다. 그 군대는 위국의 마지막 기반이었다. 어찌 쉽게 죽게 놔둘 수 있단 말인가?
더 중요한 것은, 방금 호연무한의 말마따나, 그 군대는 대신들이 그 휘하에 갖고 있던 병력이었다. 즉, 그들이 목숨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었다. 적지 않은 사람이 사심을 가지는 것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이제 여러분의 목숨이 본인의 손에 들어왔소. 그러니 아마도 좀 더 적극적으로 군대를 움직이지 않을까 하오. 만약 그렇지 않고, 다른 뜻을 품는 자가 있다면, 본인의 칼이 무정하다 탓하지 못할 것이오!”
그리고는 그대로 피풍을 휘날리며 군막을 빠져나갔다.
“모두 묶어라!”
한 장수가 소리쳤다.
잠깐 소란이 일더니, 위국의 대신들이 모두 포로가 되었다. 이들은 과거 모두 위국 조당에서 호풍환우를 하던 자들이었으니, 지금 심정이 말이 아니었다.
연회에 들어올 때, 위국의 수행 법사들은 이미 밖에 발이 묶인 상태였다. 그들은 안의 상황을 은연중에 확인하고는 대경실색했다. 몇 사람은 이미 되돌아가 지금 상황을 알리기까지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현미와 위국의 삼대 문파 등, 수많은 수행자가 그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들이 본 것은, 제군이 중군 군막 밖에 수만의 대군이 진세를 펼치고 있는 모습이었다. 수만의 궁병이 활을 들고 그들을 겨누고 있었다. 공성노 위에 있는 강철창이 번뜩였다. 한순간에 전방을 가시숲으로 만들 수 있어 보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제국의 수행자들이 대량으로 운집해 있었다.
그 진세를 확인한 현미는 미처 분노를 터트릴 겨를도 없었다. 한 군사가 다가와 보고하기를 제군의 오십만 병력이 이미 위군 병력을 포위하고 있다고 했다.
놀랄 일이었다.
양쪽이 교섭할 때, 호연무한은 얼굴을 보여주지도 않았다. 다만 위국의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은 해주었지만, 그것도 일부 고위층으로 제한했다.
그러니, 인제 와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호연무한을 만나지 않으면 위국은 철저하게 끝장날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