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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542화 (638/1,000)

1542화. 오늘, 지난날의 치욕을 설욕하자

후퇴하는 병력 사이에 있던 고품이 갑자기 말고삐를 낚아채더니 방향을 바꿔 이도파 방향으로 향했다. 그리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대군은 진열을 정비하고 적을 맞이하라!”

호각소리가 높이 울렸다. 진군은 그 즉시 멈춰 서서 신속하게 방향을 바꿔 진열을 갖추기 시작했다!

진열이 갖춰지자 고품이 즉시 손을 들어 전방을 가리켰다. 진군이 뒤돌아 다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효기군을 이끌고 전방에서 돌진하던 호연보는 그 모습을 보고 냉소 지었다. 진군이 급한 마음에 보병으로 기병을 막으려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얼굴에 냉소가 어렸을 때, 그의 몸이 갑자기 균형을 잃고 흔들렸다. 전마가 갑자기 넘어지며 비명을 질렀다. 호연보는 그대로 바닥으로 튕겨 나갔다.

그를 호위하는 수행자들이 급히 달려가 호연보를 구하려 했지만, 그들도 곧 균형을 잃고 넘어지며 관성에 의해 전마에서 튕겨 나가기 시작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돌진하던 대량의 효기군이 그대로 뒤집혔다. 땅에서 뽑아 올린 무처럼 바닥에 뒹굴었다. 한순간 수많은 전마의 울음과 고통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땅에 구멍이 파여 있었다. 수없이 많은 구멍이 파여 있었고, 마침 전마들이 그 구멍을 밟고 넘어진 것이다. 모두 진군이 철수할 때, 수행자들이 군대 사이에 숨어 빠르게 파낸 것이었다.

철수할 때 이를 급하게 처리한 것은, 혹시라도 비밀이 새어나갈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군대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만큼, 적군의 첩자가 숨어있어도 놀랍지 않았다.

심지어 직접 손을 쓰는 수행자들조차 직전까지 아무것도 몰랐다.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에 고품의 명령이 떨어졌다.

이건 기습이었다. 고품은 평생 전장을 전전했다. 당연히 기습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비밀 보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단 계획이 새어나가면, 기습이 그 효과를 잃게 된다.

지상의 수많은 구덩이는 잡초를 눕혀 가려 놓았다. 덕분에 돌진하는 진군은 그것을 바로 발견하지 못했다.

또 이것은 갑작스럽게 시행된 작전이다 보니, 척후가 이것을 발견했다 해도, 소식을 전할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다.

달리던 전마들은 구덩이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밟으면 즉시 구덩이에 빠져 다리가 골절되고 쓰러졌다.

이런 함정은 사실 다른 곳에 큰 효과를 발휘하기 힘들었다. 다만 고품은 지형의 이점을 충분히 활용했을 뿐이었다.

고품은 과연 오랫동안 전장을 전전한 명장이었다. 어떤 함정을 어떤 지형에 설치해야 하는지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번 전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변화에 대해서 아주 정교하게 계획을 세워 놓았다. 그러니 이건 가히 치명적인 일격이라 할 수 있었다!

함정은 효기군이 대규모로 언덕을 달려 내려오는 곳에 설치되었다.

전방의 전마들이 쓰러지자, 뒤를 따르던 전마들도 부딪혀 뒤집혔다. 그렇게 언덕 위에서 내려오던 기세 때문에 기병들은 멈출 수가 없었다.

챙! 고품이 검을 뽑아 전방을 가리키며 목이 찢어질 듯 소리쳤다.

“진국의 남아들아. 오늘 효기군을 격파해 지난날의 치욕을 설욕하자. 돌격!”

눈앞에 효기군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확인한 진군은 사기가 크게 올랐다. 그들은 고함을 지르며 미친 듯이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화살비가 이도파 방향을 향해 날아갔고, 고품이 뒤돌아 명령을 내렸다.

“삼도파를 지키고 있는 십오만 수비군은 지금 즉시 삼도파의 수비를 포기하고, 모두 그곳을 나와 양쪽 산맥 위로 올라가라.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늦지 않게 움직여 중앙에 있는 적군이 후퇴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 명령을 들은 장수가 깜짝 놀라 반문했다.

“헉! 삼도파의 수비를 포기하고, 모두 말입니까? 사령관님…….”

고품이 분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체하는 자는 그 목을 벨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 장수는 즉시 명령을 집행하기 위해 움직였다.

삼도파의 수비군은 군령을 받고 빠르게 양쪽 산맥을 오르기 시작했다. 발을 잘못 디디어 아래로 떨어지는 병사들도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고 계획을 강행했다.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라는 군령을 따르는 것이었다.

효기군의 수행자들이 앞에서 적군을 막아섰다. 곧 그들을 향해 돌격하는 진군의 수행자들과 얽혀들었다.

고품이 소리쳤다.

“호연보의 수급을 취하는 자에게 큰 상을 내릴 것이다!”

이도파 위가 순식간에 혼란스러워졌다. 수많은 기병이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언덕 위에서 같은 편이 앞길을 막고 있으니, 언덕 위와 언덕 뒤의 기병들은 그 뒤를 따르는 같은 편 보병 덕분에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날 수도 없게 되었다.

‘전군 공격’의 군령 때문에 이도파 언덕 위는 더욱더 혼란스러워졌다. 철저하게 통제를 잃어 가고 있었다.

후방에서 지휘하던 호연무한은 전방의 병력이 나아가지 못하는 것을 보고, 대경실색하고 소리쳤다.

“어찌 된 일이더냐?”

공중에서 날짐승이 날아왔다. 그 위에서 한 사람이 뛰어 내려 다급히 보고했다.

“사령관님, 적군이 이도파 뒤에 함정을 설치했습니다. 효기군의 선봉이 그 함정에 빠져 전마가 대량 전복되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진군이 다시 반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호연보 장군님이 적군에게 포위당했습니다. 지금 아주 위험한 상황입니다!”

그 말을 들은, 호연무한 곁에 있던 사호가 갑자기 양 소매를 한번 휘두르더니, 순식간에 말 안장에서 뛰어내려 마치 대봉처럼 날아올랐다. 그가 즉시 전장으로 쏘아져 갔다.

그때, 또 다른 사람이 하늘에서 내려오며 보고했다.

“사령관님, 삼도파의 수비군이 지금 양쪽 절벽을 타고 오르고 있습니다.”

호연무한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쳤다.

“후퇴하라! 전군 철수!”

하지만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쉽게 철수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이도파 위에서 오도 가도 못 하게 된 기병들에게 화살비가 쏟아져 내렸다. 그야말로 도살당하는 상황이었다. 화살에 맞는 말들은 같은 편을 걷어차며 난리를 피웠다.

호연보는 온몸에 피칠갑을 하고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몸에는 일고여덟 개의 화살을 꼽고 있었다.

너무나 창졸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전마가 전복되고, 대응할 시간이 부족했다. 그사이 수없이 많은 화살이 쏟아져 내렸고, 호위 수행자들은 튕겨 나간 호연보를 지킬 수 없었다.

그때 한 수행자가 호연보를 끌어안았고, 다른 수 명의 수행자들이 목숨 걸고 대항했다. 그들은 중상을 입은 호연보를 구하려고 했다.

하지만 고품이 호연보를 딱 짚어 군령을 내렸고, 그의 수급을 취하고자 했다. 일단의 수행자들이 앞다투어 공을 세우기 위해 몰려들었다. 덕분에 호연보를 지키고 있는 수행자들은 그곳을 벗어나지 못했다.

고품이 호연보를 물고 놓아주지 않는 것은, 호연보를 죽여야지만, 제국 군대의 사기에 큰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제국의 군신과 같은 인물인 호연무한의 아들조차 전사했다는 사실은 매우 큰 것이었다. 이런 소식은 제국 인심에 매우 큰 영향을 줄 수 있었다. 분명 향후 전쟁에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호연보와 수 명의 수행자들이 몸을 뺄 수 없어 힘들어하고 있을 때, 하늘에서 한 사람이 떨어져 내렸다. 그는 마치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순식간에 호연보를 포위하고 있는 적군의 수행자들을 멀리 밀어냈다.

그는 바로 호연 가문의 집사이자, 호연무한의 호위 수행자였던 사호였다. 그는 바로 호연보를 품에 안고, 다른 손으로 장력을 ‘쾅’하고 쳐냈다. 그들을 향해 달려오던 수많은 진국의 장병들이 그대로 튕겨 날아갔다.

하지만 그조차도, 흐르는 강물에 던져진 작은 돌멩이와 같았다. 잠시 작은 파란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주위의 진국 군대가 미친 듯이 돌격하고, 또 진국 수행자들이 밀물처럼 쏟아져 오자, 그도 간신히 그곳에서 호연보의 목숨만 임시로 건질 수 있을 뿐이었다.

이때, 고품의 명을 받고 날아오른 기운종의 장로가 날카로운 눈을 번득였다. 그는 허공에서 몸을 거꾸로 돌린 후, 허공을 박차며 아래를 향해 마치 독수리처럼 쏘아져 나갔다. 곧 그가 양손을 넓게 좌우로 펴 허공을 그러쥐었다. 그러자 거대한 강기로 형성된 망치가 두 손에 만들어졌고, 기운종의 장로는 이 거대한 망치를 아래를 향해 휘둘렀다.

호연보를 안고 허공으로 날아오르던 사호는 위에서 갑자기 우레와 같은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고 급히 올려다보았다. 곧 그를 향해 벼락과 같이 휘둘러지는 망치를 볼 수 있었다. 순간 사호는 한쪽 팔을 내밀어 팔뚝으로 망치를 정면으로 막았다.

‘쾅!’ 망치와 팔뚝이 부딪히며 거대한 소리를 만들었다.

망치가 내리쳐지자, 사호는 그 충격에 다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바닥에 내려선 사호는 다시 창을 꼬나쥐고 자신을 향해 달려오던 진국의 병사들을 날려 버렸다.

기운종의 장로는 사호와 부딪힌 충격 덕분에 허공으로 잠깐 다시 튕겨 올라간 후였다. 그러나 그는 다시 다리로 허공을 박찼고, 또 한 번 매섭게 아래로 쏘아지며 다시 망치를 휘둘렀다.

사호는 공중을 보며 두 눈이 싸늘해졌다. 하지만 품에 안긴 호연보가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았기에, 더는 여기서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사호의 시선이 허공에서 지상으로 바뀌었다. 한 명의 장로보다, 지상의 수많은 병력을 뚫는 것이 더 용이하다 본 것이었다. 일단 품에 호연보가 있으니 사호는 지금 제 실력을 발휘해낼 수가 없었다.

그러니 차라리 아수라장을 통과하는 게 나았다. 그렇게 사호는 주변의 병사들을 마치 지푸라기처럼 이리저리 튕겨내며 빠져나갔다. 몇몇 수행자들이 사호를 막았지만, 장로가 아닌 이상 사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들은 사호의 예상치 못한 강함에 간신히 목숨만 건져 도망치기 일쑤였다.

그렇게 사호는 사람들의 저지를 순식간에 뚫어냈고, 거리를 벌렸다. 그 후에야 사호는 그대로 호연보를 안고 날아올라 그곳을 벗어났다.

기운종의 장로가 사호를 뒤쫓으려 했지만, 뒤돌아 고품을 보고는 멈춰 섰다. 혹시라도 고품에게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너무 멀리 떨어질 수 없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는 고품을 호위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다시 고품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장로가 말했다.

“아쉽소. 호연보를 잡지 못했군. 하지만 화살이 급소에 맞았으니, 살아남지 못할 것이오.”

고품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일을 빠르게 잊어버렸다. 그는 전장을 지휘하는 데 집중했다.

군대가 패배하면 마치 산이 무너지듯 패퇴한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전투였다. 후퇴하라는 군령이 내려지자, 서로의 발에 밟혀 죽는 병사가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좁은 곳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양쪽의 산 위에 진군이 도착했다. 삼도파 양쪽에 있는 산이었다. 수많은 궁수가 궁을 당기고, 하늘을 향해 활을 쏘았다.

이들은 아래를 향해 화살을 쏘지 않았다. 삼도파의 폭이 비교적 넓었기 때문에 설사 양쪽 산 위에 있는 궁수들이 서로를 향해 쏜다 해도, 강궁의 사격 거리로는 서로 화살이 교차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니 아래를 향해 쏘면 그 사거리가 더욱 짧아질 것이 자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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