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5화. 마지막 희망
몽산명이 이어 말했다.
“호연무한은 고품과 그리 오랫동안 대치하면서 줄곧 경거망동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설마 삼도파를 공격하는 위험성에 대해서 몰랐겠습니까? 만약 몰랐다면 어찌 지금까지 기다렸겠습니까? 고품의 방어선을 보면, 삼도파 후방의 드넓은 평지만이 돌파구입니다.
그곳을 뚫어내야지만, 제군의 장점을 발휘해 진격을 할 수도 있고, 방어를 할 수도 있습니다. 또 언제든지 세 방향으로 진국의 방어를 타격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위국 경내의 진군을 뒤흔들 수 있습니다.”
“진군이 버티지 못할 정도의 상황을 만들 수 있다면, 잘못하면 위국이라는 살코기조차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조성할 수 있다면, 진국은 위국 쪽에 지원을 보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제국으로 병력을 보낼 여력이 없겠지요. 제국의 위기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제국의 조당은 당연히 호연무한에게 철수하라고 압박을 가하지 않을 것이고, 그저 전력으로 지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이해득실을 따져본 고품은 마치 거북이처럼 숨어서 시간을 끈 것입니다. 결국, 버티지 못한 호연무한은 위험한 모험을 감행했고, 지금처럼 패배한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패배한 것은, 호연무한과 그가 지휘하는 제군이 산지의 전투에 익숙하지 않았던 이유도 있습니다.”
“호연무한은 그 명성 때문에 손해를 보았고, 고품은 이번 전투로 과거의 치욕을 설욕해, 진군의 사기를 크게 끌어 올렸습니다!”
“결국은, 처음부터 대세가 호연무한에게 없었다는 것입니다. 위국의 변고로 인해서 대세가 철저하게 진국으로 기울었습니다. 진국은 두 전선을 동시에 감당할 수 있지만, 제국은 그럴만한 역량이 없습니다. 대세가 넘어갔으니, 앞으로 호연무한은 어려운 전투를 이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다만 초원에서의 전투는 호연무한에게는 식은 죽 먹기이니, 진국은 쉽게 제국을 삼키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고품은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이번 호연무한의 무모한 작전을 보고, 호연무한이 발목을 잡혔을 때의 약점을 간파했으니, 계속 그의 약점을 파악하려 들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호연무한은 아주 곤란해질 것입니다!”
상조종이 다시 지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고품은 전투에서 이기고도, 호연무한이 멀리 철수할 때까지 방어선에 숨어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참 재미있지 않습니까?”
“그가 사용한 것은 바로 금작의 방법입니다. 오직 신중함을 추구하는 것이지요. 자신을 아주 안정적인 상황으로 만들기만 하면, 상대방이 허점을 보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과연 고품은 그 기회를 붙잡았습니다!”
거기까지 말했을 때, 몽산명은 자신의 두 다리를 바라보며 다리를 만지작거렸다. 그는 과거를 회상하는 것 같았다.
상조종은 몽산명의 반응을 보고, 그의 다리를 앗아간, 뼈에 새겨진 과거를 회상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상조종이 그를 위로했다.
“몽 어르신은 호연무한과 다릅니다. 당시 어르신은 폐하를 구하기 위해 그리하신 것이지 않습니까.”
몽산명이 고개를 저었다.
“지킬 것을 지켜낸 것은, 그 자체로 아주 대단한 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고품은 대단한 장수가 맞습니다.”
“어르신은 고품이 단지 금작의 방법을 따라 한 것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전장에 영원히 지지 않는 장수는 없습니다. 언제나 새로운 인물이 오래된 인물들을 밀어내지요. 노인은 결국 쇠잔해집니다.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존경할 만한 능력입니다. 금작의 방법을 아무나 배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킨다는 것은 사실 몹시 어려운 일입니다. 공격보다 훨씬 복잡하며, 무수히 많은 복잡한 상황에 대해 준비를 해야 하기도 합니다.”
그는 손을 들어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왕야께서는 고품의 방어선을 살펴보십시오. 이미 점령한 큰 땅을 포기하면서까지 유리한 지형에 방어선을 만들었습니다. 또 각 방어선의 배치가 그야말로 난공불락입니다. 호연무한이 방어선 밖에서 시종일관 허점을 발견하지 못하게 한 것만 보아도, 아주 대단한 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금작의 방법으로 전투에서 이긴 것만 보아도, 고품의 능력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전장에서 처음부터 이기기만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들 손해를 보았고, 천천히 단련되는 것입니다. 어떤 능력은 어쩔 수 없이 생기기도 합니다. 다만 어떤 사람은 빨리 배우고, 어떤 사람은 그 배움이 느린 것이 다를 뿐입니다. 고품이 뿌리를 단단히 내렸습니다. 호연무한이 있었기 때문에 장기간의 실전 훈련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고품은 이번에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니, 작전 능력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것이 분명합니다.”
“과거, 고품은 수차례 호연무한에게 패배했습니다. 하지만 인제 보니 호연무한이 오히려 그를 키워주었습니다.”
“게다가 놀라운 점은, 고품이 과거 호연무한에게 수차례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태숙웅이 그를 중용했다는 점입니다. 태숙웅이 없었다면, 그는 지금과 같은 단련의 기회가 없었겠지요. 그러니 태숙웅이 고품을 키웠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국가의 명운이 달린 일입니다. 상승 장군을 지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 누구도 계속 패배하는 장군을 지지하는 기백을 가지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건 태숙웅이 줄곧 고품을 마음에 들어 했다는 것이고, 고품의 능력을 눈여겨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번에 진국이 온 나라의 힘을 모아 치르는 전쟁에서, 고품은 태숙웅을 실망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순간에 버텨냈습니다!”
“하아, 고품이 명군을 만났습니다!”
상조종이 뭔가 생각에 잠기며 물었다.
“몽 어르신이 보기에 제국은 진국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으십니까?”
몽산명이 대답했다.
“비록 지금 진국이 강성하지만, 그렇다고 바닥이 안 보이는 무저동(無底洞)은 아닙니다. 호연무한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호연무한은 실패를 교훈 삼아 발전해야 합니다. 마치 고품이 성장했듯이 말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래서 발전한 고품을 여전히 예전 방법으로 상대하려 든다면, 호연무한은 아주 힘들어질 것입니다!”
상조종이 뒤돌아 지도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몽산명이 갑자기 물었다.
“왕야, 초려별원의 그분은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상조종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주 태평하십니다. 아무렇지도 않아 하시더군요. 여전히 바뀐 것이 없습니다. 일이 있으면 우릴 찾아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직접 찾아오지 않는 이상, 저희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라고 하셨고, 간섭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하아! 정말로 유유자적이시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상조종의 말에 몽산명이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아닙니다. 내버려 두고 건드리지 않는 것도 일종의 기백입니다.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충분한 자신이 있다는 것이니 말입니다. 왕야께서는 기백이 있는 분을 만나셨습니다. 이것은 왕야의 복입니다. 그분은 지금까지 왕야를 위해서 각 세력의 압박을 받아 내셨습니다. 덕분에 왕야께서는 마음껏 움직이실 수 있으셨지요!”
상조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다만 이번에는 조금 느낌이 다릅니다. 마치 전쟁조차도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느낌입니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몽산명이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에서 무사히 나온 것을 보십시오. 이는, 그분의 손발이 이미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건들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미 이 전장의 다툼을 크게 초월한 것입니다. 당연히 그쪽이 그분이 대응해야 하는 핵심이 되었지요. 그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초월했으니, 저희가 끼어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상조종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이 바로 제가 남몰래 걱정하는 부분입니다. 일단 천벌이 내리면, 이 모든 것이 먼지처럼 흩어질까 두렵습니다.”
“이미 한 몸이 되었습니다. 그런 걱정은 불필요한 것입니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그분이 일부 사건을 처리하는 것을 보면, 가히 짐작하기 어려운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깊이를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알아서 하실 것이니,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면 됩니다.”
“하아!”
상조종이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의 생사가 걸린 일인가.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 * *
제군이 드디어 위국에서 전면 철수했다. 안장 위에 앉아 종군하던 현미의 얼굴은 매우 처량했다.
위국이 그녀의 손에서 멸망했다. 외부인은 지금 그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이제 더는 이용가치가 없었다. 삼도파 전투에서 심각한 손실을 본 삼대 문파는 이미 그녀에 대한 보호를 포기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그녀의 옆에 있는 한 사람은 그녀를 떠나지도 포기하지도 않았다. 서문청공은 그녀 곁에서 그녀를 계속 보호했다.
또 몇몇 위국의 중신들은 마찬가지로 침울한 얼굴로 말을 타고 그녀 옆을 따르고 있었다.
다른 대신들 같은 경우는 이미 어떠한 특별대우도 받지 못했다.
이들은 제국의 초원지대에 들어섰다. 끝없이 늘어서 행군하는 부대 안에 과거 위국의 대신들은 물자를 실은 마차를 밀고 끄는 일꾼이 되어있었다. 금의옥식에 길들어 있던 이들이었기에, 이런 거친 일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을 감독하는 병사가 든 채찍은 그런것까지 배려해 주지 않았다.
삼도파에서 생존한 천여 명의 장병들도 모두 흩어져 종군 일꾼이 되었다.
현미를 포함한 몇몇은 당연히 그런 일을 할 필요 없었다. 그래도 과거 일국의 여황이었으며, 제국 황자의 부인이었다. 호연무한은 그런 그녀까지 난처하게 만들지 않았다.
다만, 그런데도 호연무한은 현미를 쉽게 보내주지 않았다. 간단한 이치였다. 지네는 잘려 죽어도 꿈틀댄다는 말이 있다. 현미의 손에는 아직 호연무한이 필요로 하는 물건이 있었다.
위국이 비록 겉으로는 끝장났지만, 정보기관의 암중 세력은 여전히 존재했다. 천하에 분포된 이 세력을 제국은 손에 넣고 싶어 했다.
현미는 당연히 쉽게 내놓으려 하지 않았다. 이건 그녀가 가진 마지막 기반이었다. 어쩌면 마지막 희망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효월각, 진(秦)나라의 여당이 어찌 지금 후진국을 세웠을까? 바로 각지에 숨어있는 인원들이 노력한 결과였다.
위국 삼대 문파 같은 경우는 그 손실이 너무 심각해서, 위국의 다른 문파를 호령할 힘도 없었다. 반면에 타국의 수행계 세력은 그들이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는 것을 반기지 않았다. 지금 제국은 아직 그들의 도움을 받아 작전을 수행해야 했다. 그러니 그들은 일단 계속 제군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대군이 주둔지에서 정비하고 있을 때, 서문청공은 현미의 지시를 받고 그곳을 떠나, 부근에 있는 밀정과 연락을 취했다. 지금까지 줄곧 이래왔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규칙을 파악했고, 서문청공이 떠나자마자, 현미의 군막에 찾아왔다.
침울한 얼굴의 현미가 고개를 들어보니, 들어온 사람은 바로 그의 남편 호승이었다. 호승이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오자, 현미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이미 자유를 주었는데, 여길 왜 찾아온 것이지?”
호승이 같잖다는 듯이 말했다.
“자유를 주어? 우습군. 만약 제군이 압박을 가하지 않았다면, 나를 풀어주었을까? 그리고 내가 여길 왜 왔을까? 너는 내 부인이고, 나는 네 남편이다. 와서 보는 것도 안 된단 말인가?”
“여긴 널 반기지 않는다!”
현미가 소매를 한번 털고는 그대로 뒤돌았다. 하지만 곧 그녀의 허리에 타인의 손길이 느껴졌다. 호승이 뒤에서 그녀를 껴안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