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0화. 한칼에 은원을 끝냅시다!
옥창이 결심했다는 듯 독고정에게 눈짓을 보내자, 그 눈빛을 받은 독고정이 알았다고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옥창이 다시 원강에게 앉기를 청했다. 하지만 원강은 여전히 앉지 않았고, 칼을 등에 지고는 서서 기다렸다.
옥창은 퍽 난감했다. 원강이 고집불통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지금 보니, 마치 우유도보다 자신이 뭐라도 더 되는 것 같았다. 우유도보다 오히려 어느 면에서는 훨씬 더 겸손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만 지금 당장은 옥창이 원강에게 부탁을 하는 처지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옆에 같이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좀 오랫동안 기다렸다. 대략 반 시진이 지나고 나서야 독고정이 돌아왔다. 독고정의 뒤에는 한 노인이 따르고 있었다. 원강은 상대방의 수염을 보자, 과거에 사막에서 자신을 추격한 사람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노인의 수염이 인상 깊었기에 원강은 지금까지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노인이 안으로 들어와 원강을 빤히 바라보았다. 독고정이 그를 찾았을 때 이미 어찌 된 일인지 설명을 해 주었었다.
“각주님!”
노인이 먼저 옥창에게 예를 올렸다. 옥창은 예를 올릴 필요 없다는 듯이 손을 내젓고는 원강을 보고 말했다.
“원 형제, 이쪽이 그대가 만나고자 하는 본파의 장로 백상성(白上城)이네.”
그리고 뒤돌아 노인에게 말했다.
“백 장로, 이쪽은 초려산장의 원강 형제요. 아마 안면이 있을 것이오.”
백상성은 원강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안면이 있습니다.”
원강도 마찬가지로 그를 빤히 바라보았고, 기억 속에 있는 목소리였다. 틀림없었다.
아무튼 장로를 보고 옥창이 먼저 말을 꺼냈다.
“질책하는 것은 아니오만, 과거 원 형제가 사갈을 통제하는 것을 장로가 직접 보지 않았소. 그런데 왜 그 이야기를 내게 하지 않은 것이오? 만약 원 형제가 사갈을 이용해 대군이 무변사막을 건너는 것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지금 후진이 이렇게까지 곤경에 처하지는 않았을 것이오. 덕분에 우리 후진의 병력이 큰 손실을 보고 말았소. 아무튼 원 형제가 이처럼 직접 찾아오지 않았다면, 이 사실을 그저 묻어둔 채 활용하지 못할 뻔했소.”
백상성이 포권을 하더니 말했다.
“저자가 사갈을 통제하는 것을 보기는 했습니다만, 사갈을 이용해 대량의 인원을 운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덕분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옥창이 다시 입을 열려고 할 때, 원강이 끼어들었다.
“백 장로, 소조의 본명이 무엇인지 아시오?”
백상성이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그 아이는 내 질녀로, 본명은 백소다.”
“그대는 어째서 자신의 질녀를 죽인 것이오?”
“그 아이는 배신자가 되었지! 그 어디에서 배신자를 용납할까.”
“그녀는 효월각을 배신하지도, 팔아넘기지도 않았소.”
“그러면 도망치지 말았어야지. 남아서 잘 설명했어야 했어. 일단 변명하지 않고 그렇게 도망을 치면, 그게 바로 배신자인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 날카롭게 맞섰다. 옥창이 헛기침하더니, 손을 들어 양쪽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백 장로, 이쪽은 손님이요. 어찌 손님을 이리 대한단 말이오?”
옥창은 자신들이 원강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백상성은 깊은숨을 한번 들이쉬고는, 좀 더 부드럽게 바뀐 어투로 말했다.
“그 아이는 내 친 질녀였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라에는 국법이 있고, 집안에는 가법이 있는 법이다.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원 형제가 이곳에 왔다는 것은, 우리 후진을 돕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노부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인가?”
“나는 나조를 돕기 위해 온 것이지, 후진을 돕기 위해 온 것이 아니오. 물론 이곳에 온 것은 겸사겸사 당신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
“설마 이번 기회에 나를 죽이라고 효월각에게 협박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원강이 등에 메고 있던 대도를 뽑았다. 칼등에는 특히 눈에 띄는 세 마리 호랑이 장식이 있었다. 한 마리는 분노한 노호였고, 한 마리는 달리는 분호, 마지막 한 마리는 엎드려 있는 와호였다.
그 동작을 보고 옥창이 다급히 말했다.
“원 형제, 말로 하게. 뭐하러 직접 싸우려는 것인가.”
원강은 칼을 손에 들고 옥창의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백상성을 빤히 바라보고 말했다.
“소조는 당신의 질녀였소. 그녀는 당신을 아비처럼 따랐지. 그녀는 당신처럼 마음이 독하지 않으니, 내가 자신을 위해 당신을 죽여 복수하길 바라지 않을 것이오! 그러니 소조의 일은 일단 제쳐두고, 과거에 나를 추격하여 공격해 하마터면 죽을 뻔했던 일에 관해 이야기해야겠소.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오늘 나는 당시 일에 대한 결론을 지어야겠소.”
원강이 칼을 들어 백상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 칼을 한 번만 받으시오! 만약 버텨낸다면, 더는 과거의 일을 언급하지 않을 것이오!”
백상성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단 한 번…. 말인가?”
“단 한 번이오! 이 한칼에 은원을 끝냅시다!”
백상성이 옥창을 바라보며 말했다.
“각주님, 저는 괜찮습니다. 각주님은 어찌 생각하십니까?”
단 한칼이라는 말에 옥창은 크게 안도하며 하하 웃었다.
“이렇게 만나자마자 칼을 휘두르다니, 원 형제, 참으로 심성에 강단이 있는 자로구먼그래! 어쨌든 이로써 모든 은원이 해결될 수 있다면, 나도 나쁠 것은 없지, 그래도 되겠소?”
원강은 별말 하지 않았다. 그저 그대로 칼을 들고 홀로 건물을 나가 계단을 내려갔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았고, 옥창이 조용히 백상성에게 당부했다.
“백 장로, 조심하시오. 저자를 단순한 범인이라 생각하면 안 되오.”
백상성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저자의 칼질은 저도 겪어본 바 있습니다. 범인이 도달할 수 있는 절정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보통이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겨우 한 번의 칼질도 받아내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각주님께서는 저를 너무 얕잡아 보시는 것 같습니다.”
옥창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나는 지금 원강이 다치지 않도록 해달라고 하는 말이오. 대국을 생각해주시오. 무슨 말인지 알 것이라고 믿소.”
백상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정도 분별력은 있습니다!”
그제야 옥창이 성큼성큼 걸어나갔고, 백상성과 독고정이 좌우에서 그를 따랐다.
일행이 계단을 내려가니, 원강은 이미 광장의 공터에 선 채, 칼을 들고 백상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옥창이 걸음을 멈추자, 독고정도 마찬가지로 곁에서 걸음을 멈췄다.
다만 백상성은 계속 앞으로 걸어가, 원강과 십여 장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그리고 오른손을 왼쪽 허리춤에 걸린 보검의 손잡이로 가져가더니, 검을 천천히 뽑아내 손에 들었다. 또 왼손은 앞으로 뻗어 원강에게 공격하라며, 손바닥을 펼쳐 보여주었다. 자신은 준비가 되었다는 모습이었다.
바로 이때, 전각 곁에 있는 복도의 모퉁이에 두 사람이 나타났다. 그 뒤에는 일단의 궁녀와 내시들이 따르고 있었다. 둘은 바로 후진의 황태후 장홍과 황제 하영패였다.
두 사람은 원강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만나기 위해 오는 참이었다. 과연 그들은 원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만 두 사람이 서로 무기를 들고 대치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장홍은 걱정이 되었다. 그녀는 원강에게 호감이 있었다. 그것도 남녀 사이의 그렇고 그런 호감이었다. 다만 자신의 신분 때문에 그 감정을 드러낼 수는 없을 뿐이었다.
하영패도 마찬가지로 원강에게 호감이 있었다. 초려산장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원강이 자신의 선생인 우유도의 형제라는 것을 그가 모를 수가 없었다.
다만 이처럼 눈앞에서 결투를 벌이는 상황을 볼 줄 몰랐다. 두 모자가 복도에서 가까이 다가왔고, 하영패가 크게 소리쳤다.
“원 선생님.”
장홍도 옆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각주님, 이처럼 손님을 대하는 도리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옥창과 독고정이 돌아보았다.
옥창은 모자가 나타난 것을 오히려 반겼다. 만약 두 사람이 원강을 저지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쁜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모자는 아마도 원강과 그나마 친분이 있을 것이고, 저들이 원강의 고집불통인 태도를 중화시킬 수 있다면,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백상성이 뒤돌아 모자를 한번 바라보고는 곧바로 다시 두 눈을 빛내며 눈앞의 원강에게 신선을 고정했다.
하지만 원강은 모자의 말을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듯, 갑자기 움직였다. 마치 공격을 준비하고 있던 야수처럼, 상대방이 조금 방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그 즉시 휙 하며 쏘아져 나온 것이다.
습격인가? 옥창도 빠르게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저 고집불통인 원강이 다소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옥창은 싸울 때 원강이 얼마나 최선을 다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원강을 처음 훈련 시킨 사람이 그에게 알려준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적을 쓰러뜨릴 때는 무조건 최선을 다할 것!
원강이 이미 공격을 시작한 것을 보고, 장홍 모자는 깜짝 놀랐다. 원강이 처음 움직이기 시작하는 몇 걸음은 그나마 볼 수 있었지만, 그 후부터는 그저 광장을 가로지르는 원강의 그림자만 보일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본 옥창이 내심 감탄을 내뱉었다. 정말 빠른 속도군!
열 걸음 정도 달려나갔을까, 원강이 갑자기 뛰어올랐다. 원강은 그 뛰어오르는 기세에 몸을 싣고 그대로 목표를 향해 쏘아져 나가며, 양손으로 칼을 꽉 움켜잡고 아래를 향해 내리그었다.
어흥~!
천둥벼락과 같은 호랑이 울음소리가 도신에서 폭발하듯이 뿜어져 나와 광장을 뒤흔들었다. 그 때문에 주위를 지키던 황궁의 호위들도 순간 자신도 모르게 광장을 돌아볼 정도였다.
장홍 모자는 깜짝 놀랐다.
한편, 공격을 감행하고 있는 원강을 노려보는 백상성의 입가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상대방의 공격 속도는 그야말로 신속하다 표현할만했다. 하지만 조용히 기다리던 백상성의 반응속도도 절대 늦지 않았다. 그는 담담한 모습으로 검을 들어 원강의 공격을 막아내려 했다.
휘익!
공중에서 검과 도가 교차하며 맞부딪히려는 그 순간, 백상성은 미소를 지었다. 과연 대단했고, 평범한 수행자들이 휘두르는 검의 위력을 뛰어넘을 정도의 힘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볼 때, 못 막아낼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때, 허공에서 칼을 내리치던 원강이 갑자기 몸을 허공에서 한 바퀴 휙 돌렸다. 동시에 삼후도 또한 한 바퀴 회전하며 다시 아래로 내리쳐졌다. 몸이 빠르게 회전함에 따라 원강의 팔이 휘두르는 삼후도의 속도가 빨라졌다. 원강의 칼이 허공에서 이차 가속을 한 것이다!
어흥~!!
두 번째 호랑이 울음소리가 다시 도신에서 터져 나왔다.
두 번째 소리는 첫 번째 소리만큼 우렁차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소리는 마치 구천(九天) 위에 있는 먹구름 속에 숨어 폭발할 때를 기다리는 천둥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마치 언젠가는 터져 나올 먹구름 속의 번개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비록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심금을 먹먹하게 뒤흔드는 힘이 있었다.
원강의 도에 처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가속이 붙었다. 햇빛 아래, 마치 한줄기 벼락같기도 했고,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무지개 같기도 했다.
“조심해!”
상황이 매우 급한 것을 확인한 옥창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여유 있게 대결에 임하던 백상성도 대경실색했다. 상대방의 일격에 전술이 숨어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지금 자신은 그 덫에 걸려버렸고, 적을 얕본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되돌리기엔 이미 늦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검과 도가 교차하는 그 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지금 유일하게 남은 방법은, 자신이 가진 모든 법력을 동원해 원강의 일격을 막아가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