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3화. 거짓말로 진실을 숨길 수 없다
반면 진국은 후진국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후진에게 곡식을 대량으로 주겠다고 했다. 다만 그 전제조건이 바로 후진국이 제국과 연합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후진국은 그 곡식이 매우 간절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국의 의도를 모를 수가 없었다. 후진국이 만약 그 곡식을 받는다면, 한국과 연국은 반드시 병력을 일으켜 공격해 들어올 것이다. 진국은 그걸 기꺼워할 것이다. 후진국의 힘을 북돋아 후진, 한, 연, 삼국의 국력을 갉아먹으려 하는 것이다.
이해득실을 따져본 후, 새로운 방법을 찾은 후진국은 진국의 호의를 거절했다.
한국과 연국도 동맹을 맺은 것 같았다. 양국 경내에 서로 대치하던 병력을 순차적으로 철수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양국은 병력을 동시에 동쪽과 서쪽에 집결시키기 시작했다. 일단 변화가 생기면, 둘은 연합해서 후진을 집어삼키고, 또 연합해서 후방의 송국이 날뛰지 못하도록 압박하기로 했다.
이 행동은 후진국에게 제국을 지원하라는 압박이기도 했다.
후진국은 어쩔 수가 없었다. 독이 든 술잔인 줄을 알면서도 당장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마실 수밖에 없었다. 이 전쟁에서 이기든 지든, 후진국의 국력은 심각한 손상을 입을 것이다. 설사 전쟁에서 이긴다 해도, 후진국은 허약해질 것이고, 한국과 연국은 후진국을 토사구팽할 가능성이 있었다. 눈앞에 떨어진 살코기였다. 먹지 않는 것이 이상할 지경이었다.
지금 유일한 희망은 제국과 연합하는 것이었다. 제국과 연합을 할 수만 있다면, 나중에 한국과 연국이 후진에 불리한 행동을 할 때, 제국이 출병해서 후진을 도와줄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후진 또한 희망이 있고, 그렇기에 언약을 맺으려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약속을 쉽사리 믿을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믿을 수 있는 한 가지는, 위국이 후진국에 한 약속을 제국이 대신 이루어 주기로 했다는 점이었다. 제국은 위국을 팔아넘기고 서병관을 후진국에 주기로 약속했다.
그러니 진국을 몰아내기만 하면, 설사 후진국 국력이 손상을 입는다고 해도, 후진국은 서병관 관내에 들어가 원래 위국의 영지였던 곳을 장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일단 후진군이 사막을 넘어 참전하게 되면, 제국도 번복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국이 이미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후진국과 다시 전쟁을 벌일 것이 아니라면, 후진국과 연합해 진국에 대항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세력이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다른 나라와 싸우라고 협박을 가했다. 당연히 그런 느낌은 좋지 않았지만, 후진국은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후진국은 홀로 다른 두 나라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다수가 되어 홀로된 진국과 싸우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진국이 일으킨 이 전쟁은 위국을 멸망시켰고, 급기야 진국의 검은 제국으로 향하게 되었다. 덕분에 후진국도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전장에 가까운 국가는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세가 한순간, 복잡미묘해지기 시작했다. 천하를 휩쓸 거대한 폭풍이 곧 몰아칠 것 같았다.
* * *
끝없는 사막이 시작되는 곳에 도착했다. 먼 길을 행군한 병력의 선봉이 드디어 도착해, 옥창 등 사람들과 합류했다.
옥창은 가장 먼저 원강을 나조에게 소개해 주었다. 동시에 곁에서 둘을 관찰했다.
“원 선생님의 명성을 익히 들어왔습니다. 오늘 이렇게 만나 뵈니 오히려 소문이 모자란 것 같습니다.”
나조는 여정에 지친 모습으로도 원강에게 예를 차리며, 상대방을 유심히 관찰했다.
하지만 실물을 본 후에 그는 더욱더 답답해졌다. 과거에 이런 사람을 만난 적이 없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얼굴이 이렇게 붉고, 큰 덩치의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면, 기억하지 못할 리 없었다.
나조와 만난 원강의 두 눈에서도 복잡한 감정이 어렸고, 마음속도 복잡해졌다. 나조에게 미안한 감정이 일었다. 지금 원강이 그를 돕는 것은, 보상 심리도 어느 정도 작용한 것이었다.
그러니 원강은 다른 사람을 대할 때보다 훨씬 더 예의를 차리며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시오!”
옥창의 눈빛을 확인한 나조가 만면에 미소를 띠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본인의 기억력이 좋지 않아 선생님을 기억하지 못하겠습니다. 혹시 저희가 예전에 만난 적이 있습니까?”
“없소.”
그러자 나조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선생님께서 먼 거리를 마다하고 후진국을 찾아온 것은, 저를 돕기 위해서라고 국사께 들었습니다. 그 말이 사실입니까?”
“그렇소.”
나조는 더욱 의아해했다.
“저는 선생님과 일면식도 없습니다. 선생님은 어째서 저를 돕는 것입니까?”
“다른 사람의 부탁을 받았소.”
나조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어느 분의 부탁을 받았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원강이 침묵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원강은 이런 일에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거짓말로 뭔가를 숨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언젠가는 마주해야 하는 일이니, 시간을 끄는 것보다 차라리 화끈하게 가는 것이 나았다. 평정을 되찾은 원강이 말했다.
“풍관아!”
“…….”
옥창 등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풍관아라면 나조의 전처가 아니던가? 나조의 전처가 사람을 불러 나조를 돕게 했다고?
나조의 전처에게 이런 능력이 있단 말인가? 사람들은 이러한 일이 뒤에 숨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나조는 잠시 멈칫하더니, 곧 안색이 급변했다. 마치 뭔가를 깨달은 듯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한편으로는 더욱 이해가 가지 않기도 했다.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 아는 것이 있었다. 그건 상대방이 지금 후진국을 도와준다면, 이 일로 인해서 아주 큰 문제가 생기리라는 것이다. 나조를 도와줌으로써 지금 이 원강이란 자는 생명을 잃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런데 풍관아가 이 자를 설득했다니, 풍관아에게 그런 능력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때,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나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는 원강을 빤히 바라보며 갑자기 물었다.
“과거, 그녀가 실종된 일이 있었소. 혹시 그때 당신과 같이 있었소?”
원강이 잠시 침묵하더니 결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소!”
나조의 얼굴이 곧 한껏 어두워졌고,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두 주먹은 이미 힘껏 그러쥐고 있었다. 찾았다. 풍관아가 알려주려 하지 않는 그 사람을 찾았다. 이를 악문 그가 말했다.
“나와 그녀는 더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니, 그녀를 위해서 나를 도와줄 필요 없소!”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나조의 반응을 보고 곧 뭔가를 깨달았다. 덕분에 사람들은 다들 멍청한 얼굴을 하고 넋이 나갔다.
옥창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는 원강에게 얼마나 어리석으면 지금 눈앞에서 그걸 인정하느냐고 묻고 싶었다. 이놈은 도대체 멍청이인가? 아니면 미친놈인가?
지금 이건 도움을 주러 온 것인가, 아니면 문제를 일으키러 온 것인가?
독고정 또한 얼굴색은 변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진지하게 묻고 싶었다. 그런 일은 둘이 조용히 이야기하면 안 된단 말인가?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밝히면 나조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나조는 이미 입을 다물고 있었다. 도움이 필요 없다는 말을 한 그는 이미 몸을 돌려 원강과 멀어지고 있었다. 나조가 어찌 이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는가?
비록 이미 풍관아와는 아무 사이도 아니고, 풍관아가 그를 돕는 것이라고만 생각한다고 할지라도, 그에게는 이미 이루 말할 수 없는 치욕이었다.
일찍이 그가 젊은 나이에 송국의 대도독이 되었을 때, 풍관아와 능소각의 뒷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당시에는 그저 웃어넘겼다. 하지만 지금 다시 이런 일을 마주하니, 더는 대범하게 넘길 수 없었다.
옥창은 즉시 원강을 버려두고 나조를 따라갔다. 그리고 그를 한쪽으로 끌고 가 설득하며 말했다.
“노부는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하오. 다만 지금은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할 때가 아니지 않겠소? 남자라면 가장 중요한 것은 공훈을 세우고 업적을 쌓는 것이오, 공을 세운다면 어찌 아내가 없을까 걱정하겠소?”
나조가 분노하며 말했다.
“국사께서는 지금 나보고 그 천한 년의 도움을 받아 공을 세우라는 말씀입니까?”
그 말을 하고는 곧장 옥창에게서 멀어졌다.
옥창은 다시 쫓아가 설득했다. 원강은 그저 멀리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결국에는 나조가 옥창에게 설득을 당한 것 같았다.
사실 인제 와서 나조는 설득당할 수밖에 없었다. 옥창이 포기할 수 있는가? 아니면 나조가 거절할 수 있겠는가? 국운이 달린 일을, 사사로운 감정으로 처리할 수 있단 말인가?
돌아온 옥창은 참으로 난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원강을 바라본 그는 그야말로 두손 두발 다 들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원강과 지내다 보니 저 멍청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성격을 깨달을 수 있었다. 뭐든지 화끈하게 처리하는 성격 말이다!
아무튼, 모든 것이 원래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후속 부대가 모두 도착한 후, 원강이 사막의 경계로 걸어가 사막에 있는 한 언덕 위에 올라가,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향해 팔을 펼치고 긴 울음을 토해냈다.
“아오오…….”
그를 따라온 옥창 등 사람들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곧 전방의 사막에서부터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군데군데 몇 마리 사갈이 모래를 뚫고 밖으로 기어 나오더니, 원강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사갈들은 일제히 꼬리를 꼿꼿이 세우고 급히 떨어대기 시작했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공중에서 날짐승을 타고 순찰을 돌던 수행자가 내려다본 아래 광경은 훨씬 더 경악스러운 것이었다. 그들은 사갈이 마치 물결의 파동처럼 모래 속에서 기어 나오는 광경을 보았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사갈이 안에서 기어 나와, 한쪽을 보고 꼬리를 흔들었다.
그런 모습이 계속해서 퍼져나갔다. 공중에서 보면 마치 호수 위에 수많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점점 더 많은 사갈이 지면에 나타났다.
건조한 바람을 맞으며 원강이 한참 침묵하더니, 다시 두 팔을 벌리고 긴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꼬리를 흔들던 사갈이 원강을 향해 빠르게 달려왔다. 가까운 곳부터 먼 곳까지 모두 움직임이 있었다. 모두 한 방향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수없이 많은 사갈이 밀집하기 시작했다. 공중에서 보면 마치 개미 떼 같아 보일 정도로 장관이었다.
반면에 지상에 있는 사람들은 사막에서 시작된 진동을 느끼고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갈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걸 확인한 전방에 있는 장병들의 얼굴에 공포감이 떠올랐다.
얼굴을 굳히고 있던 나조도 떨리는 얼굴로 이 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는 언덕 위에 있는 신비한 남자의 거대한 등을 보았다. 그는 혹시 풍관아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따른 것이, 혹시 저자가 자신보다 더 강대하기 때문은 아닌지 궁금해졌다.
갈색의 사갈 군단이 빽빽하게 원강 앞에 들어찼다. 그 광경을 보는 사람들은 머리칼이 곤두설 것 같았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도망가지 말라는 나조의 명이 있었기에, 다들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물러서는 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었다.
울음을 멈춘 원강이 양팔을 내리고 옥창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정도면 충분해 보이오.”
“시작해도 되겠는가?”
원강이 끄덕였다.
“서둘러 주시오.”
옥창이 즉시 뒤돌아 말했다.
“빨리!”
독고정이 빠르게 나조에게 달려가 명령을 전달했다. 나조도 빠르게 군령을 내렸다. 하지만 군령을 들은 병사들은 감히 그 누구도 선뜻 집행하지 못했다.
결국은 독고정이 일부 수행자에게 솔선수범을 보이게 하고 나서야, 장병들이 천천히 그 흉악하고 공포스러운 사갈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