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6화. 묶다
그녀의 원한은 단순히 원강의 칼을 받아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칼은 처음부터 공평하지 못했다. 당시 자신이 무슨 약을 잘못 먹었는지, 그냥 서서 적에게 공격하라고 기다렸다니.
그녀가 더욱 원강에게 원한을 품은 이유는, 칼을 받기 전에 두려워하는 모습을 사부 여무쌍이 보았기 때문이었다. 싸움을 피하는 것 같은 그녀를 바라보는 사부의 눈빛이 참으로 의미심장했다. 그 때문에 그녀는 사부가 자신에게 실망했다고 생각했고, 그 모든 것이 바로 눈앞에 있는 붉은 얼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눈앞에 있는 원강의 얼굴을 짓이기고 싶었다!
이처럼 자신의 모습을 고려하지 않고 가감 없이 보여주는 화미여의 추태를 보고 곽공은 눈살을 찌푸렸다. 또 학대를 당하면서도 반격하지 못하는 원강을 빤히 바라보았다.
수행계에 들어선 이후, 그는 원강과 같은 통뼈를 보지 못했다. 외부에서 들어온 수행자들조차 모두 고분고분하니, 일개 범부는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다만 눈앞에 학대를 당하고 있는 원강을 과연 범부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다른 건 둘째치고, 심지어 자신조차 원강의 입장에 있었다면, 그래서 화미여의 공격을 저렇게 받아냈다면, 그조차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원강은 도대체 화미여의 공격을 몇 번이나 받아냈단 말인가? 그게 아니라면 화미여가 공격에 온 힘을 다한 것이 아니란 말인가?
이미 댕기에 의해 미라처럼 돌돌 묶여 있으면서도, 한쪽 손에는 여전히 칼을 붙들고 있었고, 심지어 분노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목도 여전히 단단히 묶여 있어, 분노의 고함을 지르고 싶으나, 그의 입에서는 ‘커커’ 거리는 바람 빠지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그는 원강이 얼마나 승복하지 못하는지, 얼마나 굴복하고 싶지 않은지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가능하다면 자신을 속박하고 있는 사람들과 동귀어진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뼈가 아무리 단단해도, 여기서 저리 분수를 모르면, 스스로만 고달플 뿐이었다!
하지만 그도 남자였다. 다 큰 남자가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개 여자에게 계속 따귀를 얻어맞는 모습을 계속 지켜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정말로 원강이 죽는다면 그도 곤란해질 수 있었다.
화미여 옆으로 몸을 날린 곽공이 담담히 말했다.
“화미여, 그만해라!”
화미여가 잠시 멈추더니 뒤돌아 냉소 지으며 말했다.
“우리 사이의 은원과 무관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어째? 지금은 간섭하고 싶은 것인가?”
그리고는 그대로 팔을 휘둘러 보란 듯이 다시 원강의 따귀를 강하게 후려쳤다.
곽공은 그녀의 행동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눈썹을 꿈틀거린 그가 말했다.
“확실히 너희들의 은원에는 별다른 흥미가 없다. 하지만 이곳은 표묘각의 문천성이다. 천하의 일을 처리하는 곳이지. 이곳은 네 집이 아니다. 이곳에서 네 화풀이를 한차례 보아준 것만으로도 이미 체면을 많이 보아준 것이다. 그러니 언제까지 여기서 그러고 있을 것인가? 다시 한번 말하겠다. 그만해야 할 것이다. 사람은 데려가라. 네가 책임질 수 있다면, 어떻게 처리하든 알아서 해라. 단, 여기서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마라!”
화미여가 분노한 얼굴로 한걸음 걸어 나오자 곽공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표묘각의 법도를 시험해 보고 싶다면, 그 소원을 이뤄 주겠다!”
곽공이 손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즉시 날카로운 피리 소리가 울리고, 문천성 안 여기저기에서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들 대량의 표묘각 인원은 경고성을 듣고 달려와 곧바로 화미여 일행을 포위했다.
그중에는 일부분 무쌍성지의 인원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그들은 아홉 성지 중 한 곳에 불과하니, 뭔가를 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화미여가 주위를 둘러보고는, 마지막에 곽공에게 삿대질을 하고 말했다.
“두고 보자!”
곽공이 눈살을 찌푸렸다.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마시려는군. 다른 사람에게 들으라는 듯한 그런 위협이 무슨 의미가 있나? 네가 나를 어쩔 수 있더냐? 지금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라!”
화미여의 얼굴이 붉어졌다가 창백해지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주위 상황을 확인하고는 그저 분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가자!”
몇 마리 날짐승이 날아왔고, 일행이 그 위에 올라타자 날짐승이 다시 허공으로 날아올라 멀어져갔다. 화미여는 그야말로 큰 원한을 품고 떠나게 되었다.
그 후에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각자 흩어졌다. 팔대 문파의 감찰 인원도 탄식하며 고개를 저었다.
“원강이 이토록 굴복하려 하지 않다니, 굳이 왜 그런단 말인가. 내 동생 우유도가 사라지니, 초려산장의 사람들이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것 같군!”
전태봉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게 우유도는 인물이었다. 다만 참으로 이해할 수 없게 죽어버렸으니, 우유도의 죽음을 어느 정도 안타깝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엄입이 코웃음을 쳤다.
“굴복하려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둔한 것이지!”
그는 원강에게 지금 자금동의 상황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말을 붙여보기도 전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다들 원강의 행위가 매우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그야말로 분별없는 짐승 같지 않은가.
비록 자신들이 성경에 들어온 후 결국 어떤 처지에 처하게 될지 알고 있다 해도, 어쩌면 이용당한 끝에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해도, 이들은 여전히 ‘굽힐 때는 굽힐 줄 아는 사람’의 방식이 맞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원강처럼 목숨을 걸고 반항하는 방식은 다른 사람들과 너무나 달랐다. 그러니 다들 원강이 어리석다고 여긴 것이다!
곽공이 뒷짐을 지고는 왔던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움직였다. 그렇게 움직일 때, 곽공의 뒤를 따르던 악광명이 그에게 신호를 보내며 말했다.
“선생님.”
곽공이 뒤돌아보니, 저 멀리 몇 마리 날짐승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 선두에 있는 사람은 천마성지의 장로 흑석이었다. 그는 흑석이 갑자기 왜 여길 찾아왔는지 몰라 뒤돌아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날짐승에서 뛰어내린 흑석이 성큼성큼 걸어와 그 앞에서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단도직입적으로 밝혔다.
“천마성존의 법지에 따라 사람을 데려가려고 왔소. 곽공, 그 원강이라는 자를 넘기시오.”
곽공의 두 눈이 번뜩였다.
“천마성존께서 원강을 천마성지로 데려가려 한단 말이오?”
“그렇소! 불만이오?”
“법지에 따르기만 한다면, 불만은 없소. 다만 한발 늦은 것 같소만. 이미 다른 쪽에서 사람을 데려갔소.”
흑석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데려갔다고? 누가 말이오?”
“화미여가 무쌍성존의 법지를 받아 방금 그자를 데려갔소.”
흑석은 크게 당황하며 마치 그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뒤에 있는 부하에게 명령했다.
“가서 알아보아라.”
그 옆에 있던 한 수하가 그대로 몸을 날려, 문천성에 있는 천마성지의 사람을 찾아 상황을 알아보았다.
잠시 후, 그가 돌아와 흑석의 귓가에 뭐라고 한참 중얼거리자 흑석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는 그대로 뒤돌아 소리쳤다.
“가자!”
빠르게 왔다가, 빠르게 날아서 그렇게 떠나갔다. 악광명이 말했다.
“선생님, 만약 다들 이런 식으로 나선다면, 저희가 표묘각을 관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게 무슨 허튼소리더냐. 표묘각은 원래부터 아홉 성존의 일을 대리하기 위한 곳이다.”
하지만 그의 말과는 달리, 곽공의 눈살은 이미 한껏 찌푸려져 있었다.
원강을 성경에 데리고 들어오자마자, 공교롭게도 화미여가 딱 맞춰 찾아와 사람을 데려갔다.
화미여와 원강 사이에 원한이 있으니, 다급히 찾아와 사람을 요구한 것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흑석조차 이처럼 다급히 찾아와 사람을 달라고 하는 건 무슨 의도란 말인가?
사실 여무쌍은 일찍이 후진국의 병력을 모두 운송하고 나서 원강을 바로 데려가고자 했다. 다만, 오상이 갑자기 다른 구대지존에게 연락을 취해, 원강을 잡아다가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보자고 의견을 제시했고, 다들 동의했다. 사실 어찌 된 일인지 구대지존 모두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에 표묘각에게 명령을 내리게 된 것이었다.
이렇게 되자, 여무쌍은 오히려 표묘각을 무시하고 움직이기 어려워졌다. 또 여무쌍은 오상에게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품게 되었다. 그러니까 여무쌍은 오상도 갈황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 것이었다. 그 때문에 그녀는 사람을 시켜 가장 먼저 원강을 데려오게 시킨 것이다.
당연히 그 배후의 일들을 곽공은 알 수 없었지만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고, 원강의 일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대원성지 쪽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여전히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을 수 없었고, 발걸음을 빨리했다. 지금 상황을 최대한 빠르게 대원성지에 보고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 * *
무쌍성지,
그림과 같은 산수가 펼쳐져 있었다. 누각들은 아름다운 봉우리와 흐르는 물줄기 사이에 세워져 있어 마치 선경 같아 보였다.
몇 마리 날짐승이 마치 꿈같기도 하고 환상 같기도 한 무쌍성지의 주봉에 내려섰다. 고치처럼 돌돌 말린 원강이 그곳에 있는 궁전으로 끌려들어 갔다.
바닥에 쓰러진 원강은 마치 야수처럼 ‘컥컥’ 거리며 발버둥 치고 있었다.
잠시 후, 깨끗한 순백의 대전 뒤쪽에서 옥으로 빚은 연꽃처럼 아름다워 보이는 여무쌍이 천천히 걸어왔다. 그리고 바닥에 꽉 묶여 쓰러진 원강을 바라보았다. 그를 묶고 있는 댕기에는 핏자국까지 있었다.
원강이 여전히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을 보고 여무쌍이 물었다.
“어찌 된 일이더냐?”
화미여가 포권을 하고 말했다.
“사부님, 이 잡놈이 감히 문천성에서 사부님의 법지에 따르지 않고, 제자를 향해 바로 손을 썼습니다. 저도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이 자를 붙잡아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이렇게 소란스럽게 끌고 온 것이냐?”
“사부님, 확실히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 미처 모르시는 것이 있습니다. 이 자는 참으로 괴이합니다. 저희가 이 자를 여기까지 끌고 오면서 수차례 점혈을 하려고 했지만, 법력으로 금제를 가해도, 이 자의 육신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제자는 이런 상황을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습니다. 계속해서 반항하며 발버둥 치고, 또 그 힘이 보통이 아니니, 저도 어쩔 수 없이 이런 모습으로 끌고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무쌍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정녕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냐?”
마치 믿지 못하겠다는 말투였다. 그리고 발버둥 치고 있는 원강에게 다가가 그를 내려다보며, 원강의 육신을 시험해 보고자 손가락으로 법력을 몇 줄기 쏘아 보냈다.
풋풋 소리가 들리고, 발버둥 치던 원강의 몸에서 힘이 빠졌다. 더는 발버둥 치지않고 움직임이 멈췄다.
“…….”
화미여가 깜짝 놀랐다. 금제가 먹힌다고?
여무쌍이 화미여의 반응을 살펴보더니, 허리를 숙여 직접 돌돌 말려 있는 원강의 몸에 손을 대고 법력을 이용해 몸을 살펴보았다. 원강의 각 대혈이 그녀에 의해 봉인이 되어, 근맥에 금제가 가해져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걸 확인한 여무쌍이 몸을 일으켜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화미여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