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9화. 개자식!
한편, 정신을 차린 원강은 차분히 입과 코로 호흡을 순환시키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강의 코와 입에서 혈무가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며, 순환하게 되었다. 혈무를 뱉어내고, 다시 빨아들였다. 그 호흡 소리가 마치 풀무질 소리 같았다.
그때, 지하 통로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원강이 눈을 살짝 뜨고 깊은숨을 들이쉬자, 혈무가 흐르는 구름처럼 원강의 폐부로 빨려 들어갔다.
잠시 후, 한 사람이 나타났다. 바로 여무쌍이었다. 그녀는 느긋하게 빛을 발하는 식물들 사이로 걸어왔다.
그리고 원강이 매달려 있는 곳으로 다가와 그를 올려다보더니 뛰어올라 주변에 툭 튀어 올라있는 큰 바위 위로 올라섰다. 그제야 그녀는 허공에 매달린 원강과 비슷한 시야를 가지게 되었다.
일남일녀가 서로 마주 보았다.
여무쌍은 원강의 안색이 나쁘지 않은 것을 보고는 원강의 목에 손을 대고 법력을 이용해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경악했다. 겨우 하룻밤사이에 부상이 어찌 이처럼 좋아질 수 있단 말인가. 원강이 그녀로부터 입었던 부상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갈비뼈가 몇 개는 나갔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이었다. 그런데 이미 갈비뼈가 대부분 붙어있었다. 아무리 천제단의 효능이 있다 해도, 이 정도로 빠른 치유가 가능하진 않았다.
“그 안개를 내뱉고 빨아들이는 토납법은 어디서 배운 것이냐?”
뒷짐을 진 여무쌍이 물었다.
여기에 걸려 있는 사람을 그냥 방치할 리 없었다. 당연히 감시하는 사람이 있었고, 원강의 특이한 토납법도 당연히 상부에 보고되었다.
“알려 줘봤자, 배우지도 못할 것이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해라.”
이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원강이 작은 촌마을에서 깨어났을 때, 몸을 단련하기 위해서 원래 알고 있던 경기공을 단련했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특수한 공능이 있으리라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므로 작은 마을에 살 때 숨기지도 않았다. 마을의 친구들에게 이를 알려주기도 했다. 그들의 몸을 단련시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배운 사람이 적지 않았건만, 다들 몸이 강건해지는 결과만 얻었을 뿐이라는 점이었다. 이런 신기한 효과가 나타난 것은 오직 원강뿐이었다.
그도 이것이 어찌 된 일인지 알지 못했다. 나중에 우유도에게 가르침을 청했지만, 우유도도 알 수 없었고, 둘이 상황을 정리해 보았지만,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소조를 데리고 무변사막으로 도망쳤을 때, 절망에 빠진 원강은 비통함에 비명을 질렀다가 사갈을 부르게 되었다. 이후, 사갈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우유도는 그걸 원인으로 보았다. 아마도 ‘치우무방’이라 불리는 이 수련법은 사람마다 그 효과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 같았다.
사갈은 당연히 원강의 목소리를 듣고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정말 그렇다면, 앞으로는 그냥 사갈에게 말을 하면 그만이지, 예전처럼 큰 소리로 울부짖을 필요가 없었다. 사갈이 영향을 받는 것은 원강의 목소리에 담겨있는 감정이었다.
우유도는 사람의 성정과 감정이 ‘치우무방’과 어울렸을 때, 이 경기공이 원강의 신체에 작용한 효과처럼 신비스럽게 변할 수 있으리라 추측했다.
우유도는 심지어 우스갯소리로 혹시 치우가 원숭이 너 같은 성격은 아니었을까 하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다만 장난은 장난이고, 우유도의 분석이 완전히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수행자들의 각종 수행공법도 모두 인간의 사감(思感)으로 통제하는 것이었다. 기혈의 토납 장단 같은 것들도 모두 인간의 사감으로 통제되었다. 그리고 감정이라는 것은 분명 사감의 일부분이었다.
설사 수행자가 아닌 일반인이라 할지라도, 감정과 성격 때문에 신체에 좋고 나쁜 결과가 나타나고는 한다.
물론, 진정한 원인이 정말 그것인지에 대해서는 우유도 또한 완전히 장담할 수 없었다. 이건 단지 우유도 개인의 분석일 뿐이었다. 사실 원강이 경기공과 토납법을 수련하는 방법은 너무나 간단했다. 그런데도 이런 신묘한 효과를 만들어 내니, 우유도 또한 이해할 수 없었고,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여무쌍은 원강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원강이 방금 한 말,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라는 그 한마디였다.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자신 앞에서 행패를 부리며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이니, 죽음이 두렵겠는가? 이렇게 강경하고, 죽어도 입을 열지 않는 사람은, 무슨 형벌을 써도 아마 효과가 없을 것이다.
잠시 침묵한 여무쌍이 말했다.
“나를 도와 사갈을 찾아준다면, 너의 안전을 내가 보장해 주겠다. 어떠하냐?”
“불러낼 수 없다고 말하면, 믿을 것이냐?”
여무쌍은 믿지 않았다.
“겨우 갈황 한 마리다. 그걸 위해 목숨을 잃어버리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더냐?”
“과거, 내가 암살자의 추격을 받아 목숨이 위태로울 때 갈황이 내 목숨을 구해주었다. 이 목숨은 처음부터 갈황이 준 것이니, 그에게 돌려주는 것이 아까울 리 없다.”
여무쌍의 두 눈이 번득이며 할 말을 잃어버렸다. 원강같은 사람의 정신상태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곧 작게 미소지은 그녀가 말했다.
“갈황이 중요하더냐, 아니면 풍관아의 목숨이 더 중요하더냐?”
원강의 두 눈이 번득였다. 그가 후진군을 도와 병력을 운송한 원인을 알아낸 것이 분명했다. 원강이 흉악한 얼굴로 소리쳤다.
“개 같은 년!”
짝!
여무쌍이 그대로 따귀를 때렸다.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죽고 싶어 환장했는가. 감히 성존에게 개 같은 년이라니!
하지만 생각해 보면, 확실히 눈앞에 있는 남자는 죽고 싶어 환장한 사람이 맞았다.
따귀를 맞고 고개가 돌아간 원강이 다시 고개를 획 돌려 여무쌍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걸로 내게 위협할 필요 없다. 내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 사내대장부로 태어나, 하늘과 땅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고, 살아서 의를 행하고, 가치 있게 죽으니, 그것이야말로 기개 있는 삶이 아닌가! 나는 다른 사람 때문에 은혜를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다.
네가 그녀를 죽이려 한다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너를 막을 것이다. 만약 막을 수 없다면, 너는 나도 같이 죽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살아있는 한 언젠가는 풍관아의 혈채를 받아 낼 것이다!”
원강의 격앙되고 정기가 충만한 기세는 거짓이 아니었다. 여무쌍은 원강의 말이 진실임을 한 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원강은 확실히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우유도 때문에 풍관아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녀에게 빚진 것을 목숨으로 갚으려 했다. 그리고 우유도는 그런 원강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니 원강을 죽일 것이 아니라면, 언젠가는 이런 짓을 벌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었다. 그리고 설득이 먹히지 않자, 더는 강요하지도 않았다.
또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여무쌍은 자신도 모르게 원강을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보고 은혜를 잊으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갈황이다. 사람을 내놓으라는 것이 아니라, 갈황 말이다.”
원강이 호통쳤다.
“만약 사람이 무정무의하면 축생과 무엇이 다를 것이며, 축생이 유정유의하면 설사 한 마리 개새끼라 해도 사람과 무엇이 다르단 말이냐?”
여무쌍은 그를 빤히 바라보더니 굳은 목소리로 갑자기 입을 열었다.
“넌 도대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있는 것이냐?”
“아무튼, 네년이 키운 것이 아닌 건 확실하다. 오히려 네년이 죽으면, 내 삶이 좀 더 편안해지겠구나!”
여무쌍은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구대지존 중의 한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최소한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자신을 저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분명했다.
덕분에 죽으라는 저주를 받았음에도 오히려 크게 분노를 표하지 않았다. 사람이 정말로 어이가 없을 땐 반응이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그녀는 오히려 다시 말을 걸었다.
“조건을 말해보아라!”
“조건은 없다.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해라!”
짝! 여무쌍이 다시 따귀를 날렸다. 다시금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기에 한마디를 추가로 선물해 주었다.
“개자식!”
시원하게 욕을 내뱉은 여무쌍이 몸을 돌렸다. 이처럼 말이 안 통하는 사람하고는 대화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으니, 나중을 기약하기로 했다.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쳤지만, 여전히 속박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저 두 눈 뜨고 여무쌍이 떠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가라앉힌 원강은 다시 눈을 감고, 풀무질 같은 호흡을 시작했다. 다시금 혈무가 일어났고, 그의 호흡을 따라 코와 입을 순환했다. 일단은 몸의 부상을 치유하는 것이 먼저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발소리가 들려왔다. 원강은 다시 부상 치유를 멈췄다.
여무쌍이 돌아왔다. 옆에는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원강이 모르는 사람이었다. 금의에 옥포를 입은 남자였다. 그의 얼굴에는 그와 아주 잘 어울리는 냉막함이 서려 있었다.
남자는 여무쌍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으니, 그 모습만 보고도 원강은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무허성지에서 온 구대지존 중 한 사람인 독무허였다. 당연히 원강이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고치에 매달려 있는 원강에게 다가왔고, 독무허가 고개를 들어 물었다.
“이게 뭐 하는 것인가?”
“내 제자에게 상처를 입혔으니, 이 자에게 벌레에게 뜯어 먹히는 충서형(蟲噬刑)을 내렸지.”
독무허는 주위 나뭇가지에서 사삭거리며 나뭇잎을 뜯어 먹는 옥잠을 보고는 물었다.
“뭔가 알아낸 것이 있나?”
“입이 아주 무거워!”
“이제 슬슬 표묘각에 넘기는 것은 어떤가?”
“어째? 내게 무례를 범한 놈을 내가 마음대로 죽이지도 못하는 건가?”
독무허는 원강을 잠시 보다가 뒤돌아 그곳을 벗어났고, 여무쌍은 매달려 있는 원강을 한번 보고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두 사람이 지하 공간을 벗어나 다시 햇빛 아래 나왔을 때 독무허가 입을 열었다.
“여무쌍, 처벌하겠다면 말리지 않겠지만, 저자를 죽여서는 안 돼.”
“사람 하나 죽이는 거 가지고, 당신까지 이견이 있는 건가?”
독무허가 뒤돌아 그녀를 바라보며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
“너와 오상, 모두 저자를 다급히 데려가려 한 것은 무슨 의도냐. 이 정도 이야기했으면 알아들었겠지? 무쌍성지의 사람이 만약 무량원에서 쫓겨난다면, 네가 만약 무량원의 통제권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면, 살인멸구 같은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말을 마친 독무허는 그대로 하늘을 향해 쏘아져 날아갔다. 여무쌍은 싸늘한 눈으로 그를 배웅했다.
그 후로 한동안 구성 중에 몇몇 사람들이 연달아 찾아왔다. 다들 원강을 보러왔고, 전하는 말은 대부분 비슷비슷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