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3화. 경계
우유도는 은아가 자신을 알아보기는 했지만, 기억은 거의 못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유도는 천도비경에 들어가기 전에 은아를 접몽환계로 돌려보냈다. 겨우 몇 년이나 지났다고 그 일을 다 잊어버렸단 말인가?
이 때문에 우유도는 은아가 요마로 변했다가 다시 인간으로 변할 때 기억에 손상을 입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마로 있는 시간이 길수록, 인간일 때의 기억을 더 많이 잊어버리는 것 같았다. 인제야 왜 은아가 상찬 부부의 일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은아는 마치 영원히 크지 않는 아이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우유도가 미소지었다. 잊어버리는 것이 좋았다. 어떤 일들은 잊어버리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수백 년을 봉인당했다는 것을 잊어버려야 했다. 자신이 그녀를 다시 접몽환계로 돌려보냈다는 것을 잊어버려야 했다.
모든 안 좋은 기억을 잊어버리면, 은아는 더는 슬프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을 것이다.
“맞아. 도도, 바로 나야.”
우유도는 다소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요마가 자신을 부르는 호칭이 조금 견디기 어려웠다.
확인을 받은 은아가 ‘히히’ 미소지었다. 천진난만한 미소였다. 드디어 안심하는 모습이었다.
이쪽의 상황을 확인한 조웅가와 운희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렇게 천천히 은아의 얼굴을 본 후에야 드디어 안도할 수 있었다. 아는 얼굴이었다. 초려산장에 있을 때 본 적이 있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이 계집이 정말로 성나찰이었다니. 그전에 우유도가 여기에 은아를 찾으러 온다는 말을 하며, 은아가 바로 성나찰이라는 말을 했었다. 사실 운희는 그 말을 조금 의심하고 있었다.
인제 보니, 접몽환계의 성나찰이 초려산장에 오랫동안 머물렀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다는 것이 아닌가.
“이 아이?”
은아의 얼굴을 본 조웅가가 대경실색했다.
은아의 기억력이 좋지 않았기에, 은아는 두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해 내지 못했다. 두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우유도 뒤에 몸을 숨겼다. 새로 태어난 은아는 다소 낯을 가리는 것 같았다. 티 없이 맑은 맨발의 은아는 우유도의 옷을 꼭 붙잡고 경계하며 두 사람을 빤히 바라보았다.
우유도는 자신의 옷을 꼭 붙들고 있는 은아를 보며 무척 곤란해했다. 이 계집아이에게는 변하지 않은 똑같은 습관이 남아 있는 듯했다.
다시 고개를 돌린 우유도가 조웅가를 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과거에 하마터면 사숙에게 맞아 죽을 뻔했던 그 아이지요. 그때 다행히 은아가 화를 내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지금까지 살아있었겠습니까?”
“…….”
조웅가는 말을 잊었다. 과거의 일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우유도와 만난 것 자체가 많지 않았다. 과거, 자신이 눈앞의 계집을 상처 입혔던 일이 기억났다. 심지어 그때 우유도가 눈앞의 이 요마를 자신에게 떠넘기려 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조웅가는 자신도 모르게 오한이 들었다!
조웅가는 드디어 우유도가 어째서 자신을 기어이 여기로 데려오려 했는지 깨달았다. 확실히 만나는 것으로 충분했다. 더는 설명할 필요 없었다.
그가 우유도에게 비밀을 알려주기 전에, 성나찰은 이미 우유도를 따라 이곳을 떠났었다. 우유도가 수작을 부리는 것을 의심할 필요 있겠는가?
원래는 우유도가 무슨 말을 하든, 무엇을 보여주든, 절대 믿지 않겠다고 작심을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조웅가는 눈앞의 우유도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동곽 사형의 제자가 마교 역대 성녀가 줄곧 기다려온 사람이라니?
조웅가는 침묵했다. 한편, 정신을 차린 운희가 매우 참담한 모습의 우유도를 살펴보더니 물었다.
“괜찮아?”
우유도는 양손을 들어 올려 너덜너덜해진 손아귀를 보여주며 쓴웃음을 지었다.
“괜찮겠나요?”
그리고는 어렵사리 품에 손을 넣고는 납환을 하나 꺼내 깨트려 그 안에 있는 붉은 천제단을 입에 넣으려고 했다.
그때, 옆에서 희고 고운 손이 나타나더니 우유도의 손을 붙잡았다. 우유도가 천제단을 못 먹게 한 것이다.
우유도가 돌아보니, 은아였다. 은아는 불쌍한 눈으로 우유도 손에 있는 물건을 빤히 바라보고는 코를 벌렁거렸다. 마치 천제단의 향기로운 냄새를 맡으려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두 눈을 반짝이며 우유도를 빤히 바라보고는 서럽다는 듯이 말했다.
“도도, 배고파!”
우유도는 문득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얼굴로 말했다.
“이건 먹으면 안 돼.”
하지만 은아는 한 손을 우유도의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 우유도 손안에 있는 천제단을 빼앗으려 했다.
“먹으면 안…. 음…!”
우유도가 다급히 저지하려 할 때, 은아가 실수로 우유도의 다친 손바닥을 건드렸고, 고통에 이를 앙다문 우유도가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을 풀었다.
천제단을 빼앗은 은아는 두말하지 않고 그대로 자신의 입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우유도에게 찬란한 미소를 보여주며 말했다.
“맛있어!”
그리고는 와드득 와드득 씹어먹는 소리가 은아의 입안에서 들려왔다. 우유도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
“퉷….”
그때, 은아가 갑자기 눈살을 찌푸리더니 입안에서 반죽이 되어버린 천제단을 연신 바닥에 뱉어냈다. 그리고는 소매로 입을 닦아내며 말했다.
“써, 맛없어!”
조웅가와 운희는 그 바보 같은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우유도도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고, 은아가 뱉어낸 붉은 침 부스러기를 바라보았다. 우유도는 울고 싶었다.
“금 백만 냥이 넘는 돈이 그냥 이렇게 사라진다고?”
은아의 두 눈이 갑자기 다시 번뜩였다. 마치 잘못한 것을 모르는 것처럼, 다시 한번 입안의 쓴맛을 뱉어낸 은아는 소매로 입가에 묻은 침을 닦아냈다. 그리고는 우유도가 도망가기라도 할까 봐 다시 우유도의 옷을 꼭 붙들었다.
이 모습을 보며, 우유도는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운희가 혀를 차며 말했다.
“과연 초려산장의 먹보가 틀림없군. 가짜일 수가 없어.”
우유도는 뒤돌아 주위를 살펴보더니, 저 멀리 볼록한 가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 좀 가져와 주십시오.”
저건 우유도가 처음부터 가지고 다니던 것으로, 방금 은아에게 한대 얻어맞으면서 떨어뜨린 것이었다.
운희가 몸을 날려 가죽 주머니와 저 멀리 날아가 버린 보검을 같이 들고 돌아왔다.
볼록한 가죽 주머니를 열어 안에서 기름종이에 쌓인 물건을 꺼내 은아에게 건네며 말했다.
“자, 은아 거야.”
조웅가는 고기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운희는 안에 든 것이 뭔지 알고 있었다. 접몽환계에 들어 오기 전에 그녀가 직접 구한 것이니 모를 수가 없었다.
은아는 물건을 받아 기름종이를 펼쳤다. 그 안에는 닭 다리가 한가득 들어있었다. 순간 두 눈을 반짝인 은아가 한 손에 닭 다리를 들고 입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 우걱우걱 고기를 씹으며 우유도를 향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다는 의미 같았다.
그렇게 고기를 꿀꺽 삼킨 후, 다시 우유도를 보고 ‘헤헤’ 웃었다. 매우 만족하는 모습으로 계속해서 고기를 뜯어 먹었다.
드디어 은아는 우유도에게서 손을 떼고 한 손에 먹을 것을 껴안고, 다른 한 손에는 닭 다리를 들었다. 아주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옆에서 닭 다리를 뜯었다.
우유도가 한숨을 내쉬었다.
“늦지 않게 찾아서 다행이군. 더 늦었다면, 이 선물이 썩을 뻔했어.”
조웅가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여길 오면서 특별히 저 많은 닭 다리를 준비해 온 것이냐?”
“이 아이가 이걸 좋아하는 걸 어떡합니까.”
그리고는 다시 품에서 하나의 납환을 꺼내, 납환을 깨뜨리고는 다소 경계하며 은아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그제야 안심하고 천제단을 삼켰다.
다행히 영종에게서 천제단을 적지 않게 받아놓았다. 또 여기 오면서 은아에게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몇 알을 더 가지고 오기도 했다.
그 자리에 앉은 우유도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단약을 연화시켜, 약효를 이용해 요상을 시작했다.
영단이 아무리 좋다 한들, 몸을 즉시 회복시킬 수 있을 리 없었다. 체내의 어혈을 깨끗하게 없애고, 상세를 진정시킨 후에야 두 눈을 떴다. 남은 약효가 천천히 몸을 회복시킬 것이다.
그 후,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우유도는 자신을 붙잡고 있는 손길을 느꼈다. 지금 자기 곁에서 은아가 몸을 웅크리고 편안한 모습으로 자신의 옷을 꼭 붙잡은 채, 자고 있었다. 우유도는 은아 때문에 일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은아에게 옷을 붙잡히는 것은 이미 익숙해진 일이었다. 다만 닭 다리를 먹고 기름이 덕지덕지 묻은 손으로 자신의 옷을 만지는 것이 너무 눈에 띄었을 뿐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운희가 가부좌를 틀고 요양을 하고 있었고, 조웅가가 주변을 경계하며 호법을 서고 있었다.
우유도가 공력을 회수하는 것을 보고, 조웅가가 다가와 물었다.
“괜찮으냐?”
우유도가 두 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소리를 들은 운희도 공력을 회수하고 눈을 떴다.
조웅가는 우유도에게 할 말이 있어 보였다. 곧 운희에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우유도가 저를 여기로 데려왔으니, 이 아이와 할 말이 있습니다.”
운희는 무슨 말인지 알고는 일어나 자리를 비켜주었다.
조웅가는 우유도 맞은편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깊은 잠에 빠진 은아를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괜찮겠나?”
“어리석은 아이일 뿐입니다. 비밀이 새나갈 리 없으니, 걱정하지 말고 말하십시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우유도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뭐가 어찌 된 일이란 말입니까?”
“자네가 어떻게 상찬의 행궁을 찾은 것인가? 또 어떻게 성나찰을 굴복시킬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인가?”
그걸 어찌 다 말할까? 설명하려면 전생부터 시작해야 했다…. 우유도가 한숨을 내쉬었다.
“설명할 수 없는 일들도 있는 법입니다. 어떤 일들은 지금까지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러니 구체적으로 이게 어찌 된 것인지는 아마도 상찬과 이향 본인들에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와서 그런 질문을 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조 사숙, 설마 마전의 일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지금 마전은 내게 없네. 당연히 지니고 있을 리가 없지. 숨겨 놓았네. 그리고, 걱정하지 말게. 나가서 그 물건을 바로 자네에게 주겠네. 그걸 어떻게 처분할지는 자네의 일이지. 물건을 자네에게 넘기기만 한다면, 나도 성녀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 되는군. 하지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오상이 일단 마전을 손에 넣는다면, 상숙청이 병부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기 어려울 것이네.”
“그것도 당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문제를 해결하면 그만입니다. 제가 여기에 사숙을 데려온 것은, 일단 마전을 손에 넣고, 내용을 확인한 후에야 그걸 어떻게 처리할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씀해 주십시오. 마전에 도대체 무엇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사실 별거 없네. 일부 사문비술이 전부이지. 주요 내용은 이향이 직접 작성한 것인데, 후인들에게 남기는 당부들이지.”
“무엇을 당부한단 말입니까?”
“확인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나찰의 주인에게 줄 것이었다면, 여기 성나찰이 있는 곳에 마전을 같이 놓아두면 더 안전하고 좋지 않겠습니까? 그럼 성나찰의 주인도 쉽게 마전을 손에 넣을 수 있고 말입니다.”
“마전을 확인하면 다 알게 될 것이네.”
“그렇다면, 어서 돌아가시지요. 서해당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원강 쪽도 너무 시간을 끄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