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6화. 이향수찰
요마령, 산속 깊은 골짜기,
조웅가가 어둠 속에서 뭔가를 더듬고 있었다. 우유도는 그 뒤에 서서 수시로 고개를 들어 일자로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조웅가가 드디어 한쪽에 있는 석벽과 지면이 만나는 곳에 멈춰 서더니 한참 동안 그곳을 파 내려갔다.
그렇게 일 장 정도 파 내려갔을 때, 그 안에서 큰 돌멩이를 법력으로 끌어당겼다. 이어 손에 쥐어진 돌멩이를 장력으로 깨트리자 그 안에서 금속으로 만들어진 상자가 나타났다.
우유도가 즉시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았다.
상자를 열자, 안에는 기름종이에 쌓인 물건이 들어있었다. 조웅가는 기름종이를 취하고 상자를 버렸다. 그리고 완벽하게 밀봉된 기름종이를 풀어보니, 그 안에 고동색의 금속으로 된 길쭉한 통이 들어있었다.
그 물건을 보고 조웅가가 한숨을 내쉬었다.
“당시 성녀와 약속한 후에 이 물건을 오랫동안 지켜왔다. 오늘에서야 드디어 해방될 수 있겠구나.”
조웅가는 그 통을 우유도에게 넘겼다.
우유도가 받아보니 그 위에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이향수찰(*離香手札: 이향의 친필 서한)’
우유도가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이게 마전입니까?”
“그렇게 불릴 뿐이지, 만약 이향수찰이라고 부른다면, 너무 눈에 띄지 않느냐?”
조웅가가 대충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우유도에게 마전을 여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마전은 일종의 두루마리였는데, 통 옆에 달린 길쭉한 막대를 잡아당기는 구조로 되어있었다. 그 막대를 잡아당기면 그 안에 내용이 적힌 부분의 두루마리가 길게 뽑혀 나오는 것이었다. 또 막대를 놓으면 자연스럽게 다시 안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어있다고 했다.
우유도가 막대를 쭉 잡아당겨 보니 내용이 적힌 부분이 빠져나왔다. 다만 신비한 것은 내용이 적힌 부분이 종이가 아니라 금속으로 되어있다는 점이었다. 수많은 작은 금속 편들을 이어 붙여 만든 것이었는데,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글씨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우유도는 기다리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내용을 읽어 내려갔고, 조웅가는 바로 경계를 섰다.
정신을 집중해 내용을 살펴본 우유도는 시작부터 몇 가지 술법이 적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었다.
먼저 처음으로 본 것은 일신의 법력을 한 곳으로 집중해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는 폭체술(爆體術), 이건 적과 동귀어진 하는 술법이었다.
또 타인의 법력을 빨아들여 빠르게 경지를 높이는 법문도 있었다. 하지만 이건 다급한 상황에 적을 상대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마찬가지로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법문이었다. 타인의 법력을 빨아들여 경지를 높인 시전자는 결국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이외에 자신의 법력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는 법문도 있었다. 하지만 이 법문을 시전하면, 시전자는 온몸이 말라비틀어져 죽게 된다. 법력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만약 그럴만한 그릇이 아니라면, 마찬가지로 근맥이 터져서 죽게 된다.
아무튼, 이외에도 까마귀 장군을 제련하는 법 같은 것들이 있었다. 천천히 두루마리의 내용을 훑어본 우유도는 내심 간담이 서늘해졌다. 잠시 후, 수법 편을 다 본 우유도가 고개를 들어 말했다.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같이 사문외도(邪門歪道)이며, 자신과 남을 해치는 속설 술법이군요. 과연 그 이름대로 마전이라 불릴 만합니다!”
“성녀의 말에 따르면, 이향이 이 술법을 남긴 것은, 마전을 지키는 사람이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대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하는군.”
“당당한 무조의 황후가, 사마외도의 술법에 어찌 이리 정통하단 말입니까?”
조웅가가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른다. 다만 그것이 중요하더냐?”
우유도가 계속해서 내용을 읽어 나갔다. 그다음에 나오는 것은, 바로 이향이 남겨준 당부였고, 우유도는 그 내용에 깊이 빠져들었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 세상의 영기가 희박해, 상찬은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고자 허공을 깨트려 연속으로 네 개의 세계를 열었다는 것이었다. 상찬은 이를 통해 네 개의 세계로 통하는 통로를 뚫어냈고, 여기서 수련에 용이한 영기를 끌어왔다고 되어있었다. 추후, 상찬은 과거의 추억을 쫓아 허공을 부수고 사라졌으며, 떠난 후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향은 상찬이 돌아오지 않을 리 없다고 생각했고, 분명 무슨 일이 생겼다고 판단을 내렸다고 했다. 이후, 그녀는 상찬을 찾으러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향은 마찬가지로 자신이 돌아오지 못할까 걱정되었다. 자신의 통제가 없다면, 아마 수행자들이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인세를 어지럽히리라 생각한 것이었다.
고민하던 이향은 연결된 다섯 세계, 즉 오계(五界)를 연결해주는 통로를 모두 끊어 인간계를 제외한 사계에서 들어오는 영기를 차단하려 했다. 그렇게 한다면 인간계의 수행자들이 힘을 키우기 어려울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다섯 영역은 상찬이 별의 힘을 이용해 배치한 진법이었다. 일단 파괴하면, 그녀와 상찬도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어쨌든 이곳은 상찬 부부의 자녀들이 있는 곳이 아닌가.
결국 고심하던 이향은 오계의 통로를 부수는 대신, 자신의 자녀들과 인간계,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 타협책을 내놓았다. 그녀는 상찬이 만든 오역성신대진(五域星辰大陣)을 대대적으로 손보았다. 그렇게 어느 정도 영기가 인간계로 유입되는 것을 제한했다.
이외에도 여덟 가지 기물을 남겼으니, 그것이 바로 경(鏡), 검(劍), 척(尺), 정(鼎), 환(環), 주(珠), 장(杖), 령(令)이다.
만약 이향이 돌아오지 못하고, 수행자들이 인간계를 어지럽히면, 수찰의 전승자는 ‘침불지(浸佛地)’로 향하라고 되어있었다. 침불지에 도착한 후에는 환으로 정을 치면, 장명이 울리고, 길을 인도하는 인도물이 나타날 것이니, 그것을 따라가면 고대(高臺)를 볼 수 있을 것이라 되어있었다.
그 고대(高臺)에는 영패를 집어넣을 수 있는 장치가 있는데, 이 장치에 영패를 넣으면 다른 네 영역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연결 진안(陣眼), 즉 진법의 눈을 열 수 있다고 되어있었다.
이후, 검을 인간계의 진안에 꽂아 넣고, 장을 천도비경의 진안에 넣고, 주는 접경의 진안에 끼워 넣고, 척은 호선경의 진안에 넣는다면, 오역성신대진을 와해시킬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게 의미하는 것은 명확했다. 인간계로 향하는 영기를 끊을 수 있다고 명확히 서술돼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영기를 끊게 되면, 시간이 흐르며 인간계 수행자들은 영기 부족으로 서서히 그 힘이 약해질 것이고, 범인이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그 외에도, 은접아의 주인이 현세에 나타난다면, 그는 분명 대단히 뛰어난 자일 테니, 즉시 이 수찰을 그에게 전하라는 내용 같은 것이 적혀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이향이 경고하기를, 자신이 한 무더기의 ‘탈명초혼진’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는 만약 수찰의 전인이 자신의 명을 따르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만든 것이었는데, 그렇게 된다면 경중인(鏡中人), 즉 거울 속 사람이 나타나 그에게 천벌을 내릴 것이라고 되어있었다!
“경중인…. 탈명초혼진…. 경중인….”
그렇게 마지막까지 보고 난 후, 우유도는 자기도 모르게 두 단어를 중얼거리며 천천히 두루마리를 원래대로 접어 넣었다. 지금 우유도는 조금 얼떨떨했다. 탈명초혼진이라는 단어를 봤을 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졌던 어느 고분이 떠올랐다. 그 고분은 우유도가 이쪽 세계로 오기 전, 마지막으로 있었던 장소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고분 안에는 상경과 똑같이 생긴 동경이 있었다. 인제야 우유도는 그것을 연관시킬 수 있었다
“한 무더기 탈명초혼진…. 한 무더기…?”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한 무더기’ 부분을 읽을 때, 우유도의 얼굴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떨떠름한 미소가 떠올랐다.
주위를 경계하던 조웅가가 뒤돌아 바라보니, 수찰이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뭘 그리 중얼거리는 것이냐. 다 보았느냐?”
“하아!”
우유도가 하늘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 보았습니다. 도대체 상찬과 이향은 뭐 하는 사람입니까?”
“내가 그걸 어찌 알겠느냐?”
우유도가 금속 두루마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수찰의 전승자는 아마도 마교의 성녀를 말하는 것인 듯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위에 적힌 대로 집행하지 않은 겁니까?”
“이향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긴 것이지. 그녀의 자손에게 그녀 자신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탐욕이 있었다는 것을 그녀는 알지 못했던 게야. 그녀의 자식들은 서로 황위를 차지하기 위해, 소위 그녀가 남긴 ‘팔보(八寶)’를 무슨 보물 대하듯 취급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이향이 남긴 물건이니 그 값어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무언가 귀한 가치가 있다고 자연스럽게 여겨진 것이지.”
“결국 사람들 사이에 이 팔보를 얻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그렇게 서로 뺏고 빼앗으면서, 수찰을 가진 사람이 그 여덟 가지 물건을 온전히 모을 수 없게 됐다. 시간이 갈수록 수행자들로 인해 천하는 크게 혼란스러워졌고, 결국 이향의 예측대로 수행자들이 이 세상을 천천히 장악하기 시작했지.
그러니 수찰의 전승자는 더욱더 수찰에 적힌 일을 집행할 수 없게 되었다. 자신만으로는 이 거대한 수행자 세력을 어찌할 수 없었음이야. 그러니 이름을 숨기고 마교라는 것을 만들었다. 세력의 힘을 빌려 뭔가를 해보려고 했지. 하지만 마교에 있는 자들도 끝없는 욕심과 욕망에 취한 것이 사실이었으니, 그러한 일 때문에 지금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 전의 어떤 일들은 나조차도 답을 알지 못하니, 내게 물어도 소용없다. 나도 너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군. 과거, 나 또한 기연이 아니었다면 이 수찰을 손에 넣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이 수찰은 내가 아니었다면 이미 오상의 손에 들어갔거나, 영영 찾을 수 없는 곳에 묻힌 채, 영원히 발견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성녀가 이 수찰을 감춰두었던 위치는 그 누구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곳이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너는 성나찰을 굴복시켰고, 이 수찰을 손에 넣었다. 그러니 오히려 네가 그 이유를 추측할 수 있을 거라 난 생각하는데?”
우유도가 작게 웃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성나찰을 굴복시키라 한 것은 그냥 일종의 시험 같습니다. 이향이 원하는 최소 요구 조건이 그 정도였던 거지요. 만약 최소한의 조건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그녀의 수찰을 볼 수 없는 것이지요. 다만 참으로 대담한 사람 같습니다. 이 수찰이 영원히 누구도 읽을 수 없는 곳에 묻히는 것이 두렵지 않단 말입니까?”
“설사 잃어버린다 해도, 이향의 물건이다. 이향은 자격이 없는 사람이 이 물건을 발견해 읽을 바에야, 차라리 아예 읽히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이겠지. 게다가 어쨌든 이는 귀중한 물건이니, 물건을 얻은 사람이 이를 훼손하거나 가벼이 다루겠느냐? 아마도 보물처럼 소중히 간직할 것이다. 그러니 이 물건은 발견될 확률이 어쨌든 높았다고 할 수 있다.”
우유도가 잠시 고민하더니, 조웅가의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아 유쾌하게 웃었다.
“과연 마전을 보관하시던 분입니다. 생각이 깊으시군요.”
조웅가는 손사래를 치며 물었다.
“그런데 탈명초혼진과 경중인은 무슨 뜻이더냐? 또 이곳에서는 일곱 가지 물건의 용도는 설명했지만, 상경의 용도는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여기서 말하는 ‘경중인’과 상경이 서로 연관이 있지 않을까 추측했다. 역대 성녀들은 이걸 읽고도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너는 아마도 알아들은 것 같구나?”
우유도는 조웅가의 심정을 이해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지키던 물건이다. 하지만 결국은 우유도 또한 정확히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자신조차 궁금증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웃는 듯 마는 듯한 미묘한 얼굴로 우유도가 말했다.
“여기에 한 무더기의 탈명초혼진이라고 적혀 있지 않습니까. 한 무더기 말입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만약 수찰의 계승자가 뭔가를 해서 오역성신대진을 끊어 버리면, 아마도 뭔가 중단될 것입니다. 당연히 그렇게 되면 탈명초혼진도, 경중인도 나타나지 않겠지요. 하지만 만약 그렇게 중단되지 않는다면, 아마 성공할 때까지 탈명초혼진과, 경중인이 계속 나타날 것 같습니다. 아마 끊임없이 연달아 나타날 것입니다.”
조웅가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저도 모릅니다.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제가 하는 말이 진실이 아닐 가능성이 더 높으니, 그냥 헛소리로 생각하셔도 됩니다.”
우유도가 코웃음을 치더니 손에 든 두루마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여기 다섯 영역이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것은 인간계, 접몽환계, 성경, 천도비경뿐이군요. 여기서 말하는 침불지는 뭐 하는 괴상한 곳입니까? 왜 들어본 적이 없습니까? 또 여기 북 치고 장구 치면 무슨 인도하는 인도물이 나타날 것이라고 하는데 이건 또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입니까?”
“성녀의 말에 따르면, 침불지는 바로 무변사막이라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