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8화. 치우
날이 밝았다. 풍관아는 쟁반을 들고 원강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마보를 하고 있는 원강을 발견했다. 그녀는 다급한 마음에 말했다.
“왜 일어났어요?”
하지만 빠르게 다가갔을 때, 그녀는 마치 귀신을 본 것처럼 깜짝 놀라 소리 질렀다.
“까악!”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쟁반을 떨어뜨렸고, 그 위에 올려져 있는 물건들이 떨어지며 시끄러운 소리를 만들어 냈다.
깊은 고요 속에 빠져있던 원강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그는 풍관아의 반응을 보고 다시 자신의 양손을 보았다. 그는 계속 마보를 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주체할 수 없는 흥분이 떠올랐다.
문밖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조웅가는 빠르게 석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풍관아의 비명과 물건이 깨지는 소리에 달려온 것이다.
“무슨 일이냐….”
두 사람이 모두 무사한 것을 확인한 조웅가가 입을 열었다가, 원강의 두 손을 보고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의 두 눈에는 불신이 가득했다. 그는 멍청한 눈으로 눈앞의 원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원강의 머리 위를 바라보았다.
문밖에서 또 다른 한 사람이 빠르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남천무방이었다. 세 사람 모두 멍청히 서 있는 것을 보고, 안으로 들어와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가 물었다.
“무슨 일인가?”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다가 남천무방도 원강의 두 손에 시선이 닿았다. 돌연 뭔가를 깨닫고는 입을 쩍 벌렸다. 마치 귀신을 본 것 같았다.
열 손가락은 원래 대부분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 백골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원강의 두 손은 정상인의 손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것도 아주 강인해 보이는 그런 손이었다.
이게 말이 되나? 남천무방은 믿을 수 없었다. 설사 회복할 수 있다 한들, 어찌 하룻밤 만에 이렇게 완벽하게 회복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열 손가락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떠한 흉터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가짜인가? 하지만 아무리 자세히 살펴보아도 어떤 가짜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만약 정말 가짜라면, 정말로 진짜 같은 가짜가 아닌가.
그의 시선이 다시 원강의 머리로 향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머리털이 모두 뽑혀 있었다. 비록 머리카락은 과거처럼 회복되지 않았지만, 짧은 머리털이 수북이 자라나 있었다.
“이게….”
남천무방은 원강의 양손을 가리켰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겉으로는 냉담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크게 격동한 원강이 정신을 차리고 양 허리춤에 있는 양손을 천천히 뻗었다.
그리고는 양손을 그러쥐었다. 그의 두 주먹에서 뼈가 ‘우두둑’하는 경쾌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세 사람은 눈을 부릅떴다. 여전히 믿을 수 없었다. 정말 진짜란 말인가?
반복해서 자신의 힘 있는 양손을 바라보던 원강은 주먹을 폈다. 그렇게 양손에 힘을 빼더니 다시 자신의 양발을 바라보았다. 원강은 허리를 굽혀 양손으로 발을 감싸고 있던 천을 그대로 찢어 버렸다.
부욱!
한 쌍의 건장한 발이 찢어진 천 사이에서 나타났다. 양발도 정상적으로 회복된 것이다!
세 사람은 여전히 경악한 채,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놀라워하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원강은 석실 안을 서성이며, 쭈그리고 앉았다 뛰기를 반복하더니 석벽이 있는 곳 앞에 가서 섰다.
세 사람은 원강은 그 앞에서 뭘 하려는지 몰라 지켜만 보았다. 아무튼, 원강을 바라보는 눈빛이 마치 괴물을 보는 것 같았다.
“핫!”
원강이 갑자기 기합을 지르며 석벽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주먹이 바람을 터트리며 뻗어 나갔다.
쾅! 돌 파편이 튀어 올랐다. 원강의 주먹은 석벽 한쪽에 뚫린 구멍 안에 조용히 멈춰있었다.
견고한 석벽이 원강의 주먹에 구멍이 났다. 옆방이 들여다보일 지경이었다.
마궁 안의 방들은 산을 그대로 파서 만들어 낸 것으로, 모든 방이 하나의 석실이라 할 수 있었다.
돌 파편이 후드득 떨어졌다. 잠시 후, 남천무방과 조웅가가 서로를 돌아보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심각한 부상을 입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새 살이 돋아나 주먹과 발이 회복되었고, 한 방에 일 척이 넘는 석벽에 구멍을 뚫어 버렸다. 대체 부상의 흔적이 어디 있단 말인가?
두 사람은 원강이 법력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이건 육신의 힘으로 뚫은 것이 분명했다.
풍관아도 넋을 놓고 보고 있었다.
구멍 안에 있는 주먹을 회수한 원강은 자신을 살펴보았다. 괜찮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힘이 예전보다 더 강해진 것 같았다!
이 주먹 때문에, 또 얼마 전에 겪었던 일 때문에, 또 지금의 상황을 본 원강은 갑자기 알 수 없는 조화를 느낄 수 있었다. 이는 자신이 수련한 경기공의 조화였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강한 것을 만날수록 강해져서 죽기까지 싸우면 되는 것이다!
이건 원강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르는 호탕함이었다. 원강은 참지 못하고 양팔을 활짝 펼쳤다. 온몸의 관절이 우두둑거리는 요란한 소리를 만들어 냈다. 마치 속사포 같은 폭음이었다. 온몸을 감고 있는 붕대가 터져나갔고, 등의 근육이 드러났다. 그의 등 근육은 놀랍게도 돌처럼 단단해 보이는 문양을 그리고 있었다.
원강이 힘차게 양팔을 펼치자, 육체를 따라 그의 감정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원강은 마치 천지간에 한 거대한 몸을 가진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얼굴이 모호해 알아볼 수 없었다.
그는 이미 사라져간 과거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원강은 그가 자신을 마주 보고 있다고 느꼈다. 마치 그자와 마음이 통하는 것 같았다. 원강은 과거로부터 오는 그 위압감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을 느낀 원강은 ‘치우’라는 두 글자를 크게 부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결국은 그 이름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감정을 절제한 그는 뒤돌아 세 사람을 향해 걸어갔다. 원강은 그들 앞에 서서 고개를 끄덕였다. 풍관아는 여전히 멍청한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남천무방도 위아래로 원강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어떠한 표정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려웠다.
조웅가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앞으로 나와 손을 뻗으며 말했다.
“상처를 한번 보자.”
원강은 그런 조웅가의 손을 막으려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다 나았습니다!”
참으로 쉽게도 나오는 한마디였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세 사람의 얼굴은 참으로 볼만했다. 어제만 해도 온몸이 만신창이였다. 손발뿐만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뼈가 부러져 있었고, 심각한 내상까지 있었다. 그런 상처가 다 나았다고?
원강은 그들의 반응을 무시했다. 정력을 회복한 원강은 이미 완벽하게 고문을 당하기 전의 몸으로 돌아간 듯했다. 그의 정신도 이미 또렷했고, 아주 명철했다.
풍관아를 본 그는 마치 뭔가가 생각났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조는 이미 후진국의 대군을 이끌고 제국 경내에 들어섰소.”
그 이야기를 들은 풍관아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말했다.
“들었어요. 당신이 도와주었다는 이야기를요.”
“내가 떠나기 전에 나조가 당신에게 전하라는 말이 있었소. 그는 내게 말하길, 앞으로 당신은 그에게 빚진 것이 없다고 했소.”
그 말을 들은 풍관아는 왠지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절벽 위에 있던 그 사람이 그녀에게 같은 말을 했다. 다만 당시, 그는 원강을 가리키며 원강은 이제 그녀에게 아무것도 빚지지 않았다고 말했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할까. 풍관아는 입술을 깨물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외부인이 듣고 있기에는 다소 민망했다. 조웅가는 알아서 눈치껏 남천무방의 소매를 툭툭 잡아당겼다.
남천무방도 그 뜻을 알아듣고는 조웅가와 같이 석실을 나갔다.
석실을 나선 남천무방은 마치 조웅가의 꼬리처럼 그 뒤를 졸졸 따라갔다. 그렇게 조웅가의 방에 들어갔을 때, 빠르게 문을 닫고 또 빠르게 조웅가 곁에 딱 들러붙은 남천무방이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회복했다고? 이렇게 쉽게 말인가? 어찌 된 일인가? 정말로 꿈을 꾸는 것 같군. 현실 같지 않아!”
조웅가라고 해서 뭘 알겠는가. 그도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순간 그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다만 지금 조웅가는 겸사겸사 마교를 경영하라는 우유도의 조언이 떠올랐다. 조웅가는 매우 의미심장해 보이는 얼굴을 보이며 말했다.
“내가 어찌 알겠는가. 다만…. 이제는 왜 그자가 역대 성녀들이 기다린 사람인지 조금 알겠는가? 이제는 믿을 수 있겠는가?”
남천무방이 침묵했다. 결국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성자 참배의식을 준비 중이네. 곧 시작할 수 있을 것이네.”
* * *
진국과 제국의 전쟁에 후진국의 병력이 개입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자 전장의 정세에 큰 변화가 생겼다. 진군은 전선을 양쪽으로 유지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큰 압박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진군은 당황하지 않고 전쟁을 준비했고, 이에 제군과 후진군도 큰 압박을 받았다. 특히 진군의 병력이 계속해서 증가하는 것을 보고, 제국과 후진국 양국의 병력을 합치고도 수적으로 크게 이득을 보기 어렵게 되었다.
나조와 호연무한은 서로 만난 후, 호연무한의 작전계획을 따르기로 동의했다. 호연무한은 제군을 이끌고 진군의 주력을 끌어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후진군이 기회를 봐서 위국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 곡창지대를 교란한다는 내용이었다.
고품이 천천히 준비하고, ‘위국’의 곡창지대를 잘 추슬러 지구전을 벌일 준비를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 전략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진국은 방대한 병력으로 지구전을 벌일 수 없을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 후진군의 개입은 제국에게도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었다.
후진국은 처음부터 가진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후진과 제군, 양군의 작전 물자에 대한 공급은 지금 제국이 전담하다시피 했다. 또 서병관이 진국의 통제를 받고 있고, 타국의 관망하는 태도 덕분에 타국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일국의 힘으로 이처럼 방대한 작전 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제국 내부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었다.
* * *
후진,
제국의 병력이 빠르게 재배치 되었다. 대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진국 경성,
진국 황제 태숙웅이 내려준 황가의 장원이 바로 태학이 들어선 곳이었다.
장원의 옛터 위로 대대적인 토목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지도를 든 소평파는 장인들과 같이 섞여 태학을 개조하는 일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
그때, 마차 한 대가 도착했다. 혼인한 여인의 복장을 한 태숙환아가 마차에서 내렸다. 그 얼굴에는 달콤한 미소가 어려있었다. 그녀는 직접 만든 간식을 가져온 것이다.
소삼성이 그녀와 동행하고 있었다. 웃는 얼굴로 그녀를 마중한 소평파는 소삼성에게 할 말이 있음을 확인하고는 태숙환아와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그녀를 다시 돌려보냈다.
소삼성은 떠나지 않았다. 마차가 멀어진 후, 소매에서 서신을 꺼내 소평파에게 건넸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소평파에게 좋은 점이 한 가지 있다면, 행동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또 진국의 일부 수행 문파와 사적으로 접촉을 할 수 있었고, 수행계의 소식을 알아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