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1화. 모든 것은 침묵 중에
오풍은 상대방의 신분과 그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우유도의 당부가 아니었다면, 상대방이 이러한 일을 알고 있을 리 없었다.
게다가 상대방이 나쁜 마음을 품고 있는지 의심할 것도 없었다. 정말 나쁜 마음을 품고 있었다면, 우유도가 이미 죽은 상황에서, 오풍을 내버려 둘 수 있었다. 이 긴 시간 동안, 구성조차 어쩌지 못한 요호족이었다. 요호족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
또 그렇기 때문에 오풍은 감동했다. 원래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안 될 줄 알면서도 이곳을 와본 것이다. 그런데 요호족은 우유도의 유언을 아직도 지키고 있을 줄이야. 이것만 보아도 이들 요호족은 인간보다 더 믿을 만한 것 같았다.
하지만 감동은 감동이고, 속으로는 자신도 모르게 경계를 하게 되었다.
“수작을 부리지 말아야 할 것이오. 내겐 만약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소.”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네 준비는 요호족에게 아무런 위협이 안 된다. 얼른 가자.”
말을 마친 노인은 그대로 몸을 날렸다.
어쨌든 노인의 그러한 말에도 오풍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휴가가 끝나도 그는 감히 무량원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온 성경에 호족이 살아가는 황택사지를 제외하고, 다른 곳은 모두 위험했다. 이곳이 아니라면 구성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곳이 없었고, 오랫동안 숨어 있을 수 없었다. 그러니 지금은 요호족을 따라 몸을 날릴 수밖에 없었다.
절벽을 뛰어내린 두 인영은 앞뒤로 끝없이 펼쳐진 늪지 위를 날아갔다.
그렇게 늪지 중앙에 있는 한 숲을 지날 때, 한 마리 날짐승이 그들을 마중했다. 우유도가 호족에게 남겨준 날짐승이었다.
황택사지의 깊은 곳에 도착한 후, 두 사람은 공중에서 뛰어내렸다. 노인은 오풍을 데리고 늪지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렇게 늪지 안에 있는 한 지궁(地宮)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지궁 안 여기저기에서 요호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오풍은 매우 안절부절못했다. 예전에는 눈에 보이기만 해도 죽이던 요호들이었다.
지궁의 한 밀실 내부,
호족의 현 족장 흑운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인이 들어와 예를 올리고 말했다.
“족장, 데려왔소이다.”
그리고는 다시 오풍에게 흑운을 소개했다.
“이분은 우리 요호족의 흑운 족장이시오.”
예전이었다면, 오풍은 요호족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매우 공손하게 포권을 하며 예를 차렸다.
“오풍이 족장을 뵙습니다.”
“그리 예를 차릴 필요 없다.”
그리고는 등 뒤에서 상자를 하나 꺼내 오풍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우유도가 남긴 것이다. 나보고 너를 만나면 전해주라고 했지.”
오풍이 양손으로 상자를 받아들었다. 암중에 법력을 이용해 살펴보았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제야 상자를 열었다.
상자가 열리자, 안에서 붉은빛이 뚜껑의 틈새로 새어 나왔다. 그 안에는 한 알의 무량과가 들어있었다. 사람의 마음에 스며드는 향이 흘러나왔다.
이게 어떤 물건인지, 오풍이 직접 나무에서 따기까지 했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오풍의 감정이 격해졌다. 우유도는 그에게 무량과를 한 알 주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지켜졌다. 호족이 정말로 자신에게 무량과를 주었다.
그 전에 무량원 안에서 겪은 마음고생이, 이 물건을 손에 쥔 지금 이 순간,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모험이 정말로 가치가 있었다.
오풍이 격동하는 것을 보고 흑운은 별말 하지 않았다. 그는 밀실 한쪽에 있는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우유도가 사람을 시켜 보내온 영원단이다. 네가 원영기에 올라가는 것을 돕는 것이지. 충분한지 살펴보아라. 부족하면 나중에 우유도에게 연락해 더 보내 달라고 하겠다.”
“감사합니다. 족장….”
상자를 닫으며 허리를 깊게 숙여 감사의 말을 전하던 오풍이 갑자기 멍한 얼굴을 하더니, 고개를 번쩍 들어 올리고 물었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우유도에게 다시 연락한다고요? 우유도는 이미 죽지 않았습니까?”
흑운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 멍청한 놈이군! 우유도가 죽었다면, 우리가 위험을 감수하고 너 같은 외부인을 받아들일 이유가 있겠느냐? 또 네놈에게 무량과를 줄 이유가 있겠느냐? 네가 얼마나 많은 우리 동족을 죽였느냐? 만약 우유도가 나서서 보장하지 않았다면, 너의 공이 죄를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하지 않았다면, 네놈의 생사는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우유도는 살아 있다. 거짓으로 죽어 성경에서 몸을 빼냈을 뿐이다.”
“살아 있다고요?”
오풍이 멍청한 얼굴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말도 안 됩니다! 구성이 직접 시신을 검사했습니다. 어찌 죽은 척할 수 있단 말입니까?”
“천하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더냐. 아홉 개자식에게 억압당하는 것을 누가 기꺼워할까. 아홉 개자식을 속이는 게 뭐 잘못되었더냐? 우유도는 아주 교활한 놈이다. 그렇게 쉽게 죽을 리 없지. 잘 들어라. 넌 이곳에서 고분고분 지내야 할 것이다. 우리 호족의 동의 없이는 절대 나갈 수 없다!”
오풍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우유도가 어떻게 아직 살아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그저 흑운의 말에 대충대충 알았다고 대답했다.
사실 오풍에게 협박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오풍이 감히 밖으로 나갈 리 없었다.
“또 한 가지, 여기에 구성이라는 말은 없다. 아홉 개자식만 있다. 앞으로 내 앞에서 구성이라는 말을 입에 담기만 하면 혼쭐이 날 줄 알아라!”
말을 마친 그는 소매를 휙 휘날리며 그대로 뒤돌아 군막을 벗어났다.
그리고는 소매를 내저으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오직 오풍만이 홀로 그곳에 서 있었다.
흑운이 제공한 소식을 천천히 상기한 후, 그는 다시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붉게 빛나는 무량과를 보았다. 마음속에 기쁨이 치솟아 올랐다. 자신이 수행계의 사람들이라면 꿈에도 도달하고 싶어 하는 원영기에 들어설 기회를 얻다니!
그 전의 모든 모험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어렵게 마음을 진정시킨 오풍은 한쪽으로 다가가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영원단이 가득 들어있었다. 오풍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너무 기쁜 나머지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
우유도가 그를 위해 모든 준비를 마친 후였다. 그는 그저 안심하고 수련해서 원영기에 들어서기만 하면 됐다.
이번에 그는 정말로 크게 감동했다. 신용을 지키는 우유도의 행동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는 이번에 우유도라는 사람에 대해서 진정으로 알게 되었다. 우유도 같은 사람과 뭔가를 도모한다면, 걱정이 없었다. 그 전의 걱정은 모두 쓸데없는 것에 불과했다.
* * *
제국 황궁 내부, 높은 누각 위.
호운도는 귀빈과 마주하고 있었다. 손님은 효월각의 각주 옥창이었다.
일단의 사람들이 위로 올라왔다. 주빈이 자리에 앉았다. 천화교의 장문인 우문연, 현병종의 장문인 북현, 대구문의 장문인 삼천리가 동석했다.
후진과 제국은 이미 동맹을 맺었다. 이제는 순망치한의 관계였다. 손님 접대가 당연히 나쁠 수 없었다.
자리에 앉은 후에 호운도가 하하 웃으며 말했다.
“옥창 선생님, 과거가 생각나지 않소이까? 당시의 이별이 바로 이곳이지 않았소. 당시 선생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참으로 잘도 속이셨소이다.”
옥창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부득이하게 그리되었소.”
호운도도 책망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반복해서 찬사를 늘어놓았다.
“효월각이 나라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 그야말로 오랜 기간 치욕을 견디며 중임을 짊어지셨소!”
옥창이 감개무량한 얼굴로 말했다.
“제 서러움을 알아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소.”
그렇게 서로 안부를 물으며 음식이 상에 오르고, 서로 술잔이 돈 후에 옥창이 갑작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현미가 제경에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소만?”
호운도의 두 눈이 번득였다. 오늘 옥창이 찾아온 이유를 대략 추측할 수 있었다. 호운도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라가 망하고 가문이 무너졌습니다. 다만 어쨌든 짐의 며느리이니, 어찌 그냥 두고 보겠소.”
“물론이지요.”
옥창이 술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하지만 현미는 나라를 재건하고자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소.”
“뭘 가지고 말이오? 망상에 불과하오.”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요. 지네는 잘려 죽어도 꿈틀댄다는 말이 있지 않소. 위국이 비록 지금 이 순간 무너졌지만, 우부의 틀이 아직 남아 현미의 손에 있지 않소. 위국 쪽에도 분명 충성을 지키는 신하와 젊은이들이 과거의 주인을 잊지 않고 있을 것이오. 또 폐하가 말하지 않았소. 그녀는 폐하의 며느리요. 한 가족이라 할 수 있지요. 그렇게 생각을 하니, 노부는 아주 불안하오.”
삼대 문파의 장문인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옥창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있었다. 후진이 제국에게 연합한 것은 조건이 있기 때문이었다. 후진은 진국을 몰아내는 데 성공하면, 위국의 땅을 후진에게 상당 부분 달라고 말했고, 제국은 이를 승낙했다.
그렇지만 이제 와 상황이 후진에게 조금 불리해졌다. 지금 후진의 정세는 명확했다. 이번 전쟁에서 이기든 지든, 후진의 영역은 한국과 연국 앞에 놓인 살코기가 되었다. 두 나라는 이처럼 좋은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후진국이 제국에 병력을 보낸 것은 배수의 진을 친 것이라 할 수 있다. 위국의 영역이 후진국의 마지막 퇴로가 된 것이다.
한마디로, 현미의 존재는 확실히 옥창을 불안하게 했다. 옥창은 오늘 인사나 나누자고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현미를 죽여 후환을 없애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찾아온 것이었다.
현미의 목숨은 삼대 문파의 장문인들에게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뭐라고 할 처지가 아니었다. 명목상 현미는 호운도의 며느리였다.
호운도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는 다 알면서 느긋하게 물었다.
“옥창 선생님은 어찌하고 싶으시오?”
옥창이 미소지었다.
“호승 황자에게 좋은 배필이 없겠소. 폐하가 허락하기만 하면, 후진국 경내에 있는 수많은 미녀 중에 좋은 여인을 황자에게 고르게 하겠소!”
호운도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어쨌든 그녀는 짐의 며느리요.”
“그러니 무슨 일이 생기든 그건 폐하와 무관한 것이고, 제국과도 무관한 것이오. 후진국이 알아서 처리하겠소. 이 삼엄한 경성 안에서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수비병력이 움직이지 않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지. 다들 어찌 생각하시오?”
옥창이 잔을 들어 건배를 제의했다.
삼대 문파의 장문인들은 조용히 들리지 않는 척, 보이지 않는 척했다. 호운도는 침묵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잔을 들어 답례했다.
옥창이 하하 크게 웃어, 단번에 잔을 비웠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잔의 바닥을 보여주었다.
한쪽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보심은 좌우를 살펴보았다. 그는 삼대 문파 장문인들의 침묵 안에 모든 대답이 들어있음을 알고 있었다.
* * *
새롭게 하사받은 왕부 내부. 이곳은 호승의 왕부였다.
호승이 성큼성큼 걸어 문으로 다가갔다. 입구를 지키고 있는 서문청공이 걸음을 옮겨 그 앞을 막아섰다. 입구를 막아선 것이다.
호승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그는 서문청공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눈 크게 뜨고 잘 보아라. 여긴 본왕의 집이다. 네놈의 집이 아니다. 이 집의 주인이 누구인지 잘 알아야 할 것이다. 너도 지금 누구 집에 살고 있는지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이다. 너는 지금 본왕의 집에 살면서, 본왕의 것을 먹고 있다. 그런데도 본왕의 앞을 막아선단 말이냐?”
그는 제경에 돌아오자마자 서문청공을 처리하고자 했다. 하지만 서문청공의 실력과 신분이 눈앞에 있으니, 상부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선뜻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그에게 실권이랄 것이 없으니,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서문청공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지만, 여전히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킨 채, 비켜서지 않고 입구를 딱 틀어막았다.
호승은 그야말로 기가 막혔다. 그런데도 그는 서문청공을 감히 어떻게 하지 못했다. 그저 화난 얼굴로 서성이다가 갑자기 소리쳤다.
“현미, 너는 조정의 대신들을 만나고 싶지 않으냐? 본왕에게 그렇게 거드름을 피우려 하니, 계속 그러고 있어라. 후회하지 말아라!”
그리고는 그곳을 떠나려 했다.
“잠깐!”
현미의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
“서문, 그를 들여보내세요.”
마친 계단을 내려가려던 호승이 멈춰 서더니 뒤돌아보았다. 서문청공은 침묵했지만, 결국은 옆으로 비켜설 수밖에 없었다.
호승은 냉소 지으며 뒤돌아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서문청공은 그런 호승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