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8화. 향소옥운(香消玉殒: 여인의 죽음)
무심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사람을 살리느라 바빴다. 당연히 멈출 리 없었다. 오히려 안보여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마당에 나타난 그녀는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고는 냉소 지었다.
“옥창, 누굴 두렵게 하려고 이렇게 대대적으로 움직였나요?”
“말이 통하는 사람이면, 자연 두려워할 것 없겠지! 그대가 여기서 잡일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소. 오늘 보니 그 말이 사실이군, 그럴 필요 있겠소? 만약 효월각에 온다면 절대 섭섭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오.”
“어둠 속에 숨어 살던 것들이 땅굴에서 밖으로 기어 나왔다고 더는 귀신이 아니기라도 하단 말인가요?”
금단방에서 안보여는 상대방을 몇 단계나 앞서고 있었고, 자존심이 있어 쉽게 양보할 수 없었다.
“그대와 말싸움이나 하자고 찾아온 것이 아니오. 또 그대와 싸우려는 것도 아니오. 그대도 괜히 쓸데없는 고난을 자초할 필요 없겠지. 무심 선생을 불러주시오.”
“할 말이 있으면 내게 해도 똑같아요.”
“당신이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좋소. 내가 오늘 왜 여기 왔는지 알 것이오. 현미와 서문청공을 내놓는다면, 지금 즉시 떠나겠소. 절대 당신들을 곤란하게 하지 않을 것이오.”
“여기 쳐들어와 누군가를 내놓으라고 한 사람은 옥창 당신이 처음이에요. 자신을 그 뭐냐, 국사라고 부르더니, 과연 남다르군요. 이곳은 후진국이 아니고, 효월각도 아니에요. 이곳에는 이곳만의 법도가 있어요. 외부의 은원이 어떻든, 당신과 그들 사이에 무슨 원한이 있든, 나중에 알아서 해결하세요. 그러니 지금은 당장 여길 떠나세요!”
“안보여, 난 지금 많이 참고 있소.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마시지 마시오!”
그 말이 끝나자, 주위에 있는 궁수들이 즉시 천기파강전의 시위를 안보여에게로 향했다. 옥창 좌우에 있는 독고정과 곽행산은 품에서 천검부를 꺼내 들었다!
안보여의 안색이 굳어졌다. 주위를 둘러본 그녀가 결국에는 옥창의 얼굴로 시선을 돌리더니 말했다.
“옥창, 잘 생각해야 할 것이에요. 정말로 귀의를 건드릴 건가요?”
“나도 그와 원한을 맺고 싶지 않소. 또 그의 제자를 핍박하고 싶지 않소.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이 효월각의 제자를 죽였소. 만약 귀의의 제자가 기어이 끼어들어 그들을 감싸겠다면, 그건 그가 우리 효월각과 대립하는 것이오. 그처럼 우리 효월각을 업신여기니, 그가 귀의든 신의든 목숨이 아깝지 않거든, 어디 한번 와보라고 하시오!”
좌우를 둘러본 그가 말했다.
“불러도 나오지 않는구나. 찾아라!”
좌우에 있는 일단의 사람들이 뛰쳐나가 사방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얼마 크지 않은 곳이다. 이 많은 사람이 수색을 시작하면 금방 들킬 것이 분명했다. 혹시라도 무심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된 안보여는 그 즉시 몸을 날려 치료를 하는 곳으로 향했다.
옥창은 안보여가 향하는 곳을 힐끔 보더니 그 방향을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일단의 사람들이 그 뒤를 쫓았다. 그 누구도 곽만을 신경 쓰지 않았고, 그녀를 난처하게 하지도 않았다.
곽만은 좌우를 살펴보더니 손목에 있는 팔찌를 몰래 벗겨냈다….
치료실,
안보여가 뛰어들었다. 그는 외실에 기절해 있는 서문청공을 들어 빠르게 내실로 후퇴했다.
그 안에 무심은 땀 범벅인 얼굴로 현미를 치료하고 있었다. 지금이 현미를 구할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안에 들어온 안보여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효월각의 각주가 안으로 밀고 들어왔습니다.”
무심은 다급히 움직였고,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한마디 툭 내뱉었다.
“썩 꺼지라 해!”
“꺼지라고? 우리 작은 선생님께서 한 성깔 하는군!”
옥창의 목소리가 주렴 뒤편에서 들려왔다. 곧 옥창이 일단의 사람들을 이끌고 내실로 밀고 들어왔다.
옥창은 침상 위에 누워있는 현미와 옆에 있는 서문청공을 보고는 웃었다. 마음이 놓인 것이다.
무심은 그를 힐끗 보았을 뿐이다. 그는 내실로 밀고 들어온 사람들이 남자들인 것을 보고 얼굴에 분노가 살짝 떠올랐다. 지금 현미는 거의 발가벗은 몸이었다.
하지만 지금 무심은 정말 그쪽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무심은 다시 자기 일에 집중했다. 은침 하나하나에 약을 묻히고는 계속해서 현미의 심장과 머리 부위에 침을 놓고 있었다.
계속해서 침을 놓고, 또 계속해서 침을 뽑아 다시 약을 묻히고, 침을 놓았다.
지금 현미는 거의 죽어있다고 할 수 있었다. 지금 무심이 하는 것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현미의 마지막 심맥이 독에 뚫리는 것을 막는 행위였다. 또 독성이 현미의 머리를 침식하는 것을 막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설사 나중에 현미를 살린다 해도, 바보 천치가 될 것이 분명했다.
손을 쓰지 않았다면 모를까, 손을 쓰면 그는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건 이쪽 능력을 갖춘 자신에 대한 모독이었다.
지금 무심은 현미의 몸을 두고 사신과 마지막 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조금도 방심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알 수 없었다. 그저 무심이 한 성깔 한다고만 생각했다.
흰 천으로 덮인 채, 적지 않은 은침이 놓인 현미의 몸을 힐끗 본 옥창은 의도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그 정도 품위는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더 이상 현미를 바라보지 않고, 무심의 맞은편으로 다가가 말했다.
“무심 선생, 그리 고생할 것 없소. 우리에게 맡기면 되오.”
독고정과 곽행산은 손에 천검부를 들고 옥창 좌우에 서서 안보여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들에겐 안보여가 바로 가장 큰 위협이었다.
하지만 계속 바쁘게 움직이는 무심은 단 한마디로 대답했다.
“여기서 당장 꺼져!”
수차례 꺼지라는 이야기를 들은 옥창은 체면 때문에라도 그냥 들어 넘길 수 없게 되었다.
“무심, 설사 그대 사부 귀의가 오더라도, 이런 식으로 나라 사이의 분쟁에 끼어들지는 않을 것이오. 각국 사이의 일이오. 구성조차도 최대한 개입하지 않으려고 하는 일이지, 그대는 자신을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소. 그대 사부의 체면을 봐서, 곤란하게 하지 않겠소. 그러니 주제 파악을 좀 하시오. 이 이치는 귀의가 와도 뭐라 반박하지 못할 것이오!”
무심은 그와 말싸움할 시간이 없었다. 쫓아내지 못하니, 무심은 일단 눈앞에 있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머지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도 됐다.
하지만 그처럼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에 옥창은 분노했다. 옥창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데려가자!”
일단의 사람들이 현미와 무심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안보여는 더는 서문청공을 신경 쓰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무심이 고집을 부리다가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녀는 한발 먼저 다가가 무심을 잡아당겼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방해받은 무심은 극도로 분노하며, 뒤돌아 안보여의 따귀를 때려버렸다.
짝!
따귀 소리가 울렸다. 안보여는 깜짝 놀랐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화조차 내지 않았다.
그녀는 의술에 대한 무심의 태도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심은 이 사람들이 이처럼 밀고 들어온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이들은 시장의 무뢰배들과 비교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람의 목숨을 취하는 자들이었다.
무심의 따귀에 옥창도 깜짝 놀랐다. 그런데 안보여는 따귀를 맞고도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닌가. 그야말로 전형적인 노비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본 옥창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뭐 하는 것이냐?”
무심이 다시 뒤돌아섰을 때, 효월각의 사람들이 현미 몸에 놓인 은침을 뽑고 있었다. 무심은 크게 분노하며 일갈했다.
“멈춰라!”
하지만 안보여는 그런 무심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무심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효월각의 사람들은 나쁜 마음으로 은침을 뽑은 것이 아니었다. 다만 현미의 몸에 은침이 가득했기 때문에 데려가기 어려워 일부 은침을 뽑아낼 수밖에 없었다.
무심은 중요한 급소에 놓인 은침이 사라진 것을 보고 두 눈을 부릅떴다. 그 순간, 마치 속이 텅 비어 버린 것처럼 멍한 얼굴을 하더니,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축 늘어졌다.
자신의 의술이 아무리 대단해도, 강한 무력 앞에서 이처럼 나약하고, 이처럼 무력했다.
다행히 안보여가 무심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바닥에 쓰러지는 것은 면할 수 있었다. 이때, 그 모습을 본 옥창도 뭔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는 다급히 소리쳤다.
“해약, 빨리, 현미의 심맥을 보호해라!”
옥창이 현미를 데려가려는 것은, 현미의 입을 열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였다. 또 옥창은 믿는 바가 있었다. 그에게는 천기파강전에 발린 극독의 해약이 있었기 때문에 무심에게 수고할 필요가 없다고 한 것이기도 했다.
즉시 두 사람이 앞으로 나서더니, 한 사람은 법력으로 현미의 심맥을 보호하고, 한 사람은 해약을 꺼내 그녀의 입을 벌렸다.
하지만 그녀의 입이 벌어진 그 순간, 검푸른 입술 사이로 피가 흘러나왔다. 그런데도 수행자는 그 입안으로 해약을 밀어 넣고, 법력을 이용해 삼키게 하고, 해약이 몸 안에 퍼질 수 있도록 도왔다. 최대한 약효가 빨리 퍼지도록 한 것이다.
그때 법력으로 현미의 심맥을 보호하고 있던 사람의 입술이 꿈틀거렸다. 그는 천천히 옥창을 바라보더니, 곤란한 얼굴로 말했다.
“각주, 주…죽었습니다!”
옥창이 깜짝 놀라 그를 밀쳐내고 직접 현미의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곧 옥창은 정신이 멍해졌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한쪽에서 속이 텅 비어 버린 것 같은 얼굴로 축 처져있는 무심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옥창은 자신의 오만으로 인해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무심이 사람을 살려낼 때까지 고분고분 기다려야 했었을지도 몰랐다.
그때 옥창이 갑자기 뒤돌아 여전히 기절해 있는 서문청공을 바라보더니, 그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빨리! 해약!”
현미가 죽었다. 하지만 서문청공이라면 뭔가를 알고 있을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의 노고를 헛고생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 즉시 누군가가 서문청공에게 다가가 그에게 해약을 복용시켰다.
하지만 무심은 그쪽은 바라보지도 않고, 멍청한 얼굴로 조용히 누워있는 현미만을 바라보았다. 서문청공에게 해약을 복용하는 일은 더는 그에게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한 사람이 죽으나, 두 사람이 죽으나 그에게 더이상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침상 위에 있는 여인은 조용했다. 그 몸은 얇은 천으로 덮여 있을 뿐이었고, 그 얼굴은 꽃처럼 고왔다.
불세출의 여승상이었으며, 위국의 마지막 황제였다. 한때는 저 고고한 곳에 서서, 수많은 사람의 경배를 받으며, 수많은 사람의 보호를 받는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때로 무력했으며, 홀로 고독하게 왕관의 무게를 견뎌내야만 했다. 그녀는 고난 중에 발버둥 치며 자신의 나라를 지키려 했다. 하지만 결국은 이루지 못했다.
이제는 눈앞에 있는 사람이 그녀의 생명을 구하려고 했지만, 그조차 결국에는 이루지 못했다.
그 왕관은 마치 보이지 않는 족쇄 같았다. 그녀가 발버둥 치며 도망치지 않으려 할 때, 마치 그녀의 운명이 그녀의 국가와 같이 스러지는 것이 결정된 것 같았다. 국가가 무너졌다. 집이 없어졌다. 그녀도 더는 존재할 의미를 잃었다.
죽을 때가 되어서야 현미는 그 왕관이 이미 존재하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집착에서 철저하게 깨어날 수 있었다. 고해는 끝이 없으니, 고개만 돌리면 그곳이 바로 피안(彼岸)임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이미 늦은 것 같았다.
얼굴은 여전히 꽃처럼 아름다웠다. 다만 그 입술만이 검푸른 색을 띠었고, 입에서는 닦아내지 못한 핏물이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덕분에 그 용모가 다소 괴이해 보였다.
마지막 여황제가 결국은 이국 타향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것도 이 작고 약 냄새가 가득한 방 안에서 끝을 맞이했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는 옥창은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워,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