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3화. 다섯 번째 영역
빙산협곡,
강물이 우렁찬 목소리를 토해내며 흐르고 있었고, 주위는 물안개로 가득 차 있었다. 이곳은 예전에 조웅가에게 무량과를 건네주었던 그 동굴 안이었다.
약속한 시각,
우유도가 도착했을 때, 조웅가와 원강은 이미 동굴 안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아서 안에 들어온 우유도는, 두 사람 곁에 내려섰다. 그리고 원강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새로 자라 까끌까끌하게 올라온 머리카락을 보고 물었다.
“괜찮더냐?”
원강은 양손에 있는 붕대를 풀었다. 물론 이미 부상이 완치된 지 오래였다. 이 붕대는 위장이었다.
양손을 우유도에게 보여주고는 주먹을 쥐었다. 원강의 양손 관절에서 우두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요.”
“그럼 되었다.”
우유도는 다시 조웅가를 훑어보았다. 과거보다 많이 깔끔해져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또 그대로인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깔끔해 보이는 이유는 아마 요즘은 좀 씻고 다니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여전히 지저분한 모습이었다. 술이 담겨 있는 조롱박은 여전히 허리춤에 걸려 있었다. 우유도가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조 사숙, 모두 끝났으니 다 내려놓았다고 하지 않았나요? 어째서 아직도 그 모습입니까? 좀 차려입으세요. 조롱박을 허리춤에 매고 다니는 것도 이제 그만하시지요.”
“참으로 신기한지고, 어째 네놈은 맨날 내게 훈계하는 것 같구나. 도대체 내가 사숙이냐. 아니면 네가 내 사숙이냐?”
우유도가 작게 웃고는 말했다.
“한 가족 아닙니까.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조웅가가 코웃음을 치더니 다시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긴 시간이었다. 이미 습관이 되어서 그런 것 같다. 어째 새 옷으로 갈아입었더니, 조금 거북하더구나. 이 술도 너무 오랫동안 마셔와서 그런지, 바로 끊기가 어려웠다. 그러니 강제하지 않고 자연스러움에 맡기기로 했다.”
우유도는 호의로 한 말이었고, 조웅가의 대답을 듣고는 딱히 뭐라고 더 말하지 않았다. 어찌할지는 조웅가의 자유였다.
챙!
원강이 갑자기 등에서 대도를 꺼내 들어, 우유도에게 내밀었다. 우유도가 그 대도를 힐끗 보더니 물었다.
“왜?”
“도야, 이 칼이 손에 안 맞아요.”
“손에 안 맞으면 바꾸면 그만이지. 저 큰 마교에 네 마음에 드는 칼 한 자루 없을까.”
“삼후도가 제 손에 딱 맞았던 것 같아요. 이 칼을 휘두를 때는 아무런 저지력이 없이 너무 부드러워서 마음에 안 들어요. 삼후도를 휘두를 때 호랑이 울음소리가 제 손에서 터져 나오곤 했는데, 그건 마치 저의 울음소리 같았어요. 제 안의 정기신이 더욱 강해지는 느낌이었지요. 휘두를 때 신도합일이 되는 느낌이었어요.”
우유도가 그런 원강을 삐딱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는 의도가 뭐야?”
원강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가능하면, 삼후도를 되찾아 주실 수 있을까요?”
“어디 있는데?”
“무쌍성지에 있었으니, 여무쌍의 손에 있을 거예요.”
우유도가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미쳤냐? 내가 정말 무소불위의 능력이라도 있어 보여? 여무쌍에게 있는 걸 내가 어떻게 되찾아와? 목숨으로 바꿔오기라도 할까? 저리 꺼져!”
그렇게 원강을 한쪽으로 밀어내고는 조웅가에게 물었다.
“오상이 마교에게 이상한 짓을 하거나 한 건 아니죠?”
“아직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하지만 뒤로는 무슨 짓을 하고 있을지 모르죠. 경각심을 가지고 조심하세요. 만약 뭔가 이상이 발견되면 제게 연락해주세요.”
“줄곧 조심하고 있다. 감히 어찌 방심하겠느냐.”
우유도가 소매에서 가면을 꺼내 원강에게 던지며 말했다.
“얼굴에 쓰고 움직이자.”
원강이 가면을 받아들고 보니 붉은색이었다. 아마도 자신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것 같았다.
원강이 가면을 다 착용했을 때, 우유도가 그런 원강을 한번 살펴보았다. 우유도가 보기에 뭔가 어색해 보였다. 원강 뒤로 돌아가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뭔가 어색해 보였다. 다시 원강 앞으로 돌아온 우유도가 원강에게 잠시 고개를 숙이라고 손짓했다.
원강이 고개를 숙이자, 우유도가 원강 머리 위에 손을 올리고는 법력을 이용해 머리를 다 밀어 버렸다. 원강이 순식간에 대머리가 되었다.
원강은 자신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아마 네 머리는 마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또 그 유별난 피부색을 보면 더욱 그렇겠지. 그러니 차라리 머리를 밀어 버리면 의심을 조금이라도 덜 받지 않을까 싶다.”
우유도가 대충 설명하고는 그대로 뒤돌아서 떠나려 했다. 원강은 대머리가 된 것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우유도 뒤를 따르며 물었다.
“어딜 가나요?”
“가보면 알 것이다.”
조웅가는 두 사람이 서로 어울리는 방식을 보고 미소지었다. 그 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일어났던 수많은 갈등이, 두 사람 사이에 더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깊은 계곡 안에서 한 마리 날짐승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날짐승은 우유도, 운희 그리고 원강을 태우고 저 멀리 빠르게 멀어져 갔다.
* * *
무변사막의 영역에 가까워졌을 때,
우유도는 지도를 한 장 꺼내 들었다. 거기에는 무변사막의 영역이 그려져 있었다. 우유도는 날짐승을 조종하던 운희에게 말했다.
“좀 돌아서 이곳으로 가주세요. 이 위치에서는 무변사막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거예요. 최대한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행적을 들키지 말아야 해요.”
우유도는 아무런 준비 없이 움직이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다. 품에서 지도를 선뜻 꺼낸다는 것은 이미 모든 준비가 되어있다는 말과 같았다.
운희가 지도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우유도가 다시 지도를 짚으며 돌아가자고 손짓했다. 운희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강은 그제야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 깨닫고는 물었다.
“무변사막으로 가는 건가요?”
“음.”
“갈황을 찾으려고요?”
원강은 다만 조금 의심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원강의 추측이 맞았다. 우유도가 대답했다.
“갈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렇긴 하지만, 우리 셋이서 무엇을 할 수 있나요?”
“네가 말한 여무쌍을 잊어버린 거야? 아직 네게 알려주지 않은 일이 있어. 마전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이 세상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계, 천도비경, 성경, 접몽환계 외에도 상찬이 연 다섯 번째 세계, 즉 다섯 번째 영역이 존재한다고 하지. 이른바, 제오의 영역!”
“제오 영역?”
운희가 뒤돌아 원강과 이구동성으로 놀랐다는 듯 입을 벌려 크게 말했다. 거기에 운희가 한 가지를 더 물었다.
“마전은 또 뭐지?”
우유도는 운희를 힐끗 보고는 미소지었다. 이렇게 호기심 가득한 얼굴을 한 운희는 처음이었다.
“마전은 이향이 자신과 관련된 일을 적어놓은 수찰이에요. 원숭이를 구하기 위해 그것을 오상에게 주었지요.”
그 일은 원강이 특히 송구스럽게 생각하는 일이었다. 우유도가 자신에게 그 비밀을 알려준 것을 보고는 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설마 이 무변사막이 제오 영역과 연관이 있는 건가?”
“이 사막 안에 제오 영역의 입구가 숨겨져 있어요. 저는 처음에 세상에서 단 세 사람만이 이 비밀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여무쌍에 대해서 원숭이에게 듣고 나니, 여무쌍도 그 비밀을 알고 있는지 의심이 들었지요. 또 여무쌍이 그토록 갈황을 원하니, 저는 갈황이 마전에 기록된 제오 영역으로 향하는 인도물이라는 의심이 들었어요. 그런 의심을 하게 된 이유는, 이 사막에 사갈을 제외하고는 인도물이라 할 만한 것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여무쌍이 사실을 아는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이제 오상은 알고 있을 거예요. 오상은 지금 아마도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찾으려고 하고 있겠지요. 지금 오상이 찾고자 하는 물건은 우리가 손에 넣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에요. 최소한 지금은 그 물건을 빼앗으려다가 죽을 수도 있어요.”
운희가 말했다.
“그러니까, 너는 원숭이를 데리고 가서 시도해 보려는 거군? 갈황이 정말로 우리를 제오 영역으로 데려갈 수 있는지 말이야?”
“맞아요. 만약 제 판단이 틀리지 않는다면, 갈황은 우리를 제오 영역으로 이끌 거에요. 그럼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제오 영역이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있겠지요. 상황을 안다면, 대충으로나마 어림짐작을 할 수 있고, 미리 준비할 수 있지요. 그러면 나중에 결정적인 순간에 아무것도 모르고 죽는 상황을 방지할 수 있어요.”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원강은 우유도의 의도를 깨닫고는 입을 열었다.
“만약 그런 거라면 굳이 길을 돌아갈 필요 없어요.”
“갈황을 불러내는 움직임이 너무 소란스러워. 당연히 최대한 무변각의 수행자들에게 발견되지 않을 곳을 찾아야지.”
“조용히 불러낼 수 있어요.”
우유도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 큰 사막에서 갈황이 어디 있는지 찾을 방법이라도 있다는 말이야?”
“찾을 수 있어요.”
우유도는 원강이 허풍을 일삼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원강의 말을 들은 우유도가 즉시 운희에게 말했다.
“원강이 가자는 곳으로 가죠.”
일행은 그렇게 무변사막을 가로질러, 사막의 한 영역에 도착했다. 그렇게 사막 경계에 있는 산등성이에 내려앉았다.
그 후에 운희는 다시 날짐승을 타고 산 정상으로 올라가 혹시 접근하는 사람이 없는지 경계를 섰다.
원강은 모래 위를 걸어, 천천히 모래언덕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광활하게 펼쳐진 사막을 향해 양팔을 펼친 후, 갑자기
“아…….”
하고 긴 울음을 토해냈다. 우유도는 그 곁에 서서 사막을 관찰했다.
곧 전방에 보이는 모래 사이 사이에 군데군데 구멍이 뚫리더니, 여기저기서 백 마리는 넘어 보이는 사갈이 튀어나와 원강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반면 원강은 고함을 멈추고 그런 사갈을 기다렸다. 그렇게 사갈 집단이 원강 앞에 다가왔을 때, 원강이 그들을 향해
“하…. 하…. 하….”
하며 한참을 소리 질렀다.
우유도는 뒷짐을 지고 원강과 일단의 괴물들이 교류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우유도의 얼굴이 조금 괴상해 보였다. 자신과 두 생애에 걸쳐 형제로 지낸 원강이었다. 하지만 갈수록 원강에게서 예상치 못한 모습을 발견하고 있었다.
“하!”
원강이 마지막 묵직한 소리를 질렀을 때, 사갈들이 빠르게 뒤돌아 사삭거리며, 마치 평지 위를 달리는 것처럼 빠르게 사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더니 모래 속으로 쑥 하고 파고들었다. 과연 이곳에서 나고 자란 생물다운 모습이었다.
원강이 뒤돌아 말했다.
“이 정도 사갈이라면, 아마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을 거예요.”
우유도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또 원강의 의도를 깨달았다.
“지금 저 사갈 들에게 갈황을 데려오게 한 거야?”
“맞아요.”
“저 괴물들을 통제하는 것에 갈수록 익숙해 지고 있군.”
“여러 번 하다 보니 요령이 생기더라고요. 여러 번 만나보니 깨닫는 것도 있고요. 이제 저들과 어떻게 교류해야 하는지 알 것 같아요.”
우유도가 담담히 말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지?”
“몰라요. 하지만 아마 문제없이 우릴 찾아올 거예요.”
“그럼 기다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