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5화. 아마 여긴 것 같군
세 사람이 다소 당황하고 있을 때, 녹색 빛의 경계가 갑자기 운희가 만들어 낸 공간 안에 나타났다. 유동하는 경계는 물결치는 녹색의 빛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녹색 빛의 경계가 흔들거리며 움직이자, 전방에 광막(光幕)이 나타났다. 그때 갈황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광막을 향해 빠르게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세 사람은 자신들이 갈황과 같이 물결치는 광막 안으로 뛰어들었음을 깨달았다. 세 사람은 광막이 세 사람이 있는 공간을 향해 정면으로 쏘아져 오더니 그들을 스치고 뒤쪽의 모래 속으로 사라져 가는 것을 확실하게 보았다.
갈황은 녹색 빛이 흔들거리는 모래 속에서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방에 다시 녹색의 물결치는 광막이 나타났다. 세 사람과 갈황이 다시금 그 광막 안으로 뛰어든 후, 일행은 다시금 그 전과 같이 모래 속으로 들어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세 사람이 어찌 된 일인지 미처 반응을 보이기 전에 갈황이 위로 기어 올라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얼마 후, 운희가 갑자기 말했다.
“곧 밖이야.”
우유도와 원강은 운희가 둔지의 술법으로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지하의 깊이와 압력의 변화에 대해서 느낄 수 있었다.
과연, 머리 위가 밝아지며, ‘확’ 하는 소리와 함께 갈황의 머리가 모래를 뚫고 밖으로 튀어 나갔다. 곧 끝없이 펼쳐진 사막에서 갈황이 기어 나왔다. 다시금 정상적인 빛이 비치는 세계로 빠져나온 것이다.
기어 나온 갈황은 그 자리에서 멈춰 서서, 집게발을 흔들었다. 또 머리도 같이 흔들며, ‘하악, 하악’하는 소리를 내뱉었다.
잠시 집중하던 원강이 말했다.
“바로 여기라고 하는군요.”
운희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놀라며 말했다.
“이게 뭐야? 그냥 다시 무변사막으로 돌아온 게 아니야?”
“아니, 우리는 아마 다른 세계로 들어온 게 맞을 거예요. 이곳이 아마 제오 영역이 분명해요.”
우유도가 갑자기 말했다. 운희와 원강이 우유도를 바라보았다. 우유도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의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이 우유도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과연 달랐다. 태양 옆에 거대한 갈색 구체가 있었다. 인간계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다만 주위를 둘러보니, 사막밖에 없었다. 끝이 없는 사막, 인간계의 무변사막과 다를 것이 없었다.
“설마 제오 영역은 사막의 세계인가?”
운희가 의아스러워하며 말하자 원강이 대답했다.
“그럴 리 없어요.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아마 대량의 숲과 물이 존재하는 세계일 거예요.”
운희가 다시 법안을 열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원강의 시력이 자신보다 좋으리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참지 못한 그녀가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원강이 담담히 대답했다.
“공기가 가득하니까요!”
원강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운희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원강이 우유도를 바라보았고, 우유도는 쓴웃음을 지었다.
“원숭이의 판단이 아마 맞을 거예요. 그 원인은 앞으로 천천히 설명해줄게요. 일단 눈앞의 문제부터 해결하지요.”
“눈앞의 문제?”
우유도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던 운희는 갑자기 뭔가를 떠올린 듯, 그대로 몸을 날려 둔지의 술법을 이용해 모래 속으로 사라졌다.
원강이 그녀의 행동을 경계하며 말했다.
“뭘 하려는 거죠?”
우유도가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아마도 제오 영역의 출구가 아직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 같군.”
운희의 움직임을 이해한 원강은 다시 허리춤의 물통을 풀어 뚜껑을 열어 우유도에게 건넸다.
두 사람이 그렇게 잠시 기다리자. 지면이 ‘확’ 하고 열리며 운희가 모래를 뚫고 튀어나와 두 사람 곁에 내려섰다. 그리고는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출구가 사라졌다. 내 판단이 맞았어. 제오 영역으로 통하는 통로는 접몽환계 같은 곳으로 통하는 곳과 완전히 달라. 이곳으로 향하는 입구는 아마 무변사막 아래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아.”
우유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놀랍지 않군요. 그렇지 않으면 마전에서 인도물을 찾아 제오 영역으로 들어가라고 하지 않았겠지요. 이 갈황은 분명 인도물이 틀림없어요. 아마도 이곳의 출입구를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나 봅니다.”
운희는 주위를 관찰하며 물었다.
“제오 영역에는 뭐가 있지?”
“몰라요. 마전에서는 이곳에서 다른 세계와 인간계의 통로를 닫을 수 있다고 나와 있어요. 오상이 마전을 가졌으니,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아마 이곳을 찾아올 거예요.”
“원숭이를 제외하고, 오상도 갈황을 찾을 수 있단 말이야?”
“오상이 알고 있는 건 많지 않아요. 아마 아직 갈황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겠지요. 하지만 마전에 인도물을 찾는 방법이 적혀 있어요. 그리고 원숭이가 갈황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마전에 적혀 있는 것이 아니니, 아마도 이향도 이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겠지요. 지금 보니…. 오히려 여무쌍이 어떻게 갈황이 인도물인지 알고 있는것이 궁금하군요? 아니면, 이건 단순히 우연이고, 사실 여무쌍은 갈황에게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요?”
운희가 대답했다.
“그 말은 그러니까, 우리가 갈황을 죽이면, 오상이든 여무쌍이든, 제오 영역에 들어올 수 없다는 말이군?”
갈황을 죽인다는 이야기를 들은 원강이 즉시 싸늘한 눈으로 운희를 노려보았다.
우유도가 고개를 저었다.
“죽이면 안 돼요. 오상은 마전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시험해 볼 거에요. 만약 갈황을 죽인다면, 오상은 인도물을 찾을 수 없을 것이고. 우리가 마전에 수작을 부렸다고 생각하겠지요. 그렇게 되면 아주 곤란해질 거예요. 제가 여기 온 목적은, 제오 영역 안에 또 다른 이해관계가 얽힐 수 있는 물건이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예요. 만약 있다면, 정말 곤란해질 수 있어요. 그때가 되면 오상과 한판 거하게 싸우지 않을 수도 없겠지요.”
운희와 원강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운희가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우유도가 갈황에게서 뛰어내려 바닥에 내려서더니 몸을 숙여 모래를 한 움큼 쥐고 냄새를 맡았다.
곧이어 두 사람이 뛰어내려 우유도의 행동을 바라보았다.
이 모래에서는 아무런 이상한 냄새도 나지 않았다. 우유도가 손을 펼쳐 모래를 털어 버리고는 느긋하게 말했다.
“지금 오상은 갈황이 인도물인지 모를 거예요. 하지만 나중에 오상이 여기 온다면, 갈황이 인도물임을 알게 될 것이고, 여무쌍의 의도를 의심하게 되겠지요. 원숭이가 갈황을 통제할 수 있으니까 말이에요.”
그 말을 들은 두 사람은 순간 깨달았다. 간단한 이치였다. 다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느냐의 문제일 뿐이었다. 일단 이곳에 외부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물건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오상은 그걸 자신의 손에 넣으려 할 게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갈황을 통제할 수 있는 원강은 그에게 위험한 존재였다.
하지만 만약 그런 물건이 없다면, 오상은 마전에 대한 소식이 새어나가는 것을 경계해서 원강을 굳이 건드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설사 원강이 여무쌍을 데리고 여기 온다 해도 별것 없으니 말이다.
이제야 원강도 이번 여정의 중요한 목적에 대해서 깨달을 수 있었다. 도야는 여전히 그의 안전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먼저 와서 이곳의 상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이곳의 모래가 외부와 다를 바 없는 것을 확인한 우유도가 다시 갈황 등에 올라탔다. 우유도는 아래 있는 두 사람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움직이죠!”
운희가 원강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원강은 그런 운희의 호의를 거절하고 그대로 몸을 날려 갈황 위로 기어올랐다. 그 움직임이 마치 원숭이처럼 날렵했다. 갈황 등에 올라온 원강이 물었다.
“어딜 가죠?”
“마전의 기록에 따르면, 인도물은 우릴 어느 곳에 있는 고대(高臺)로 데려간다고 되어있어. 갈황에게 그곳으로 가자고 시도해봐.”
“고대?”
운희가 중얼거리더니 그대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저 높은 하늘에서 주위를 둘러보더니 다시 아래로 내려왔다.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주위에 고대라고 불릴만한 높은 단(壇)은 보이지 않았어.”
“저도 이 고대라는 것이 단순히 서면에 적힌 그대로의 뜻을 갖고 있는지는 확신이 없어요.”
원강은 곧 앞으로 나와 갈황의 머리 부분에서 ‘하, 하.’하고 소리쳤다.
갈황이 곧 몸을 돌려 방향을 조정하더니, 그대로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다만 갈황의 모습이 좀 이상했다. 인간계에 있을 때와 달리, 제오 영역에 들어온 갈황은 더는 모래 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줄곧 모래 위를 달렸다.
갈황 위에 있는 세 사람은 사막 위를 내달리며, 제오 영역이 인간계에 있는 사막과 분명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날 때마다, 이곳 위에 있는 하늘은 잠시 어두워졌다가 밝아지기를 반복했다.
태양 곁에 있는 그 구체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어, 일정 시간마다 태양의 빛을 가리기 때문이었다.
물론, 당연히 이건 갈황의 전진을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갈황이 움직이는 와중에 이들은 주변을 유심히 살펴봤지만, 여전히 끝이 없는 사막만 보일 뿐이었다. 여기에는 사갈들도 살지 않는 듯했다. 마치 어떤 생물도 여기에는 살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운희가 갑자기 말했다.
“나중에 이 갈황이 돌아가는 길을 기억할 수 있을까?”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요. 아마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마전의 기록에 따르면, 다섯 세계의 연결을 끊기 위해서는 이곳에만 갇혀있을 수 없어요.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야 하죠.”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면, 걱정이 없었다. 운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발아래 있는 갈황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녀석의 체력이 정말 대단해. 지칠 줄을 모르는군!”
이들은 좀 더 시간이 지난 후, 이곳의 별자리가 인간계와 다르다는 점도 깨달았다. 태양이 떨어지는 속도가 매우 느렸다. 하루의 시간이 인간계보다 훨씬 긴 것이 분명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갈황과 같이 흔들리며 전진하던 세 사람은 모두 정면을 빤히 바라보았다. 저 멀리 높게 솟은 뭔가가 나타난 것이다.
그 높게 솟은 물건의 형태를 확인한 우유도와 원강은 참지 못하고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 건축물의 형태가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전생에서 익히 보았던, ‘피라미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왜 그래?”
운희는 두 사람의 이상한 모습을 확인하고는 무슨 일인지 물었다.
우유도와 원강은 분명 크게 흥분한 것 같았다. 심지어 둘은 혹시 자신들이 전생에 살았던 세계로 돌아온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할 지경이었다. 그때, 갑자기 세상이 어두워졌다. 두 사람은 고개를 들어 하늘의 태양을 보았다.
일식 같은 상황이 다시금 나타난 것이다. 그제야 두 사람은 환상에서 깨어났다. 이전 세계에서는, 당연히 태양 옆에 저런 이상한 구체가 없었으니, 이들은 이곳이 이전 세계가 아님을 다시 한번 알게 됐다.
그렇게 높게 솟은 건축물 아래 도착한 후, 운희가 건축물을 살펴보더니 말했다.
“이건 사람이 만든 거야.”
우유도는 건축물 가장 밑단에 내려서서 법력을 이용해 밑단을 덮고 있는 모래를 쓸어 냈다. 그리고 손을 들어 계단을 툭툭 두드려 보았다. 그리고 다시 뛰어올라 결국에는 가장 높은 곳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보며 침묵했다.
우유도를 따라 그 곁에 내려선 운희도 침묵했다. 전방 저 멀리 사막의 경계가 보였고, 그 뒤로 끝없는 녹주(綠州)가 펼쳐져 있었다. 운희가 중얼거렸다.
“과연 원숭이의 말이 맞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