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6화. 수많은 적엽조, 수많은 갈황
원강도 얼마 후 기어 올라와 같은 곳을 빤히 바라보다가 문득 말했다.
“이 세계에 인간이 있을까요?”
운희가 갑자기 손을 들어 탑 꼭대기에 있는 사각형의 돌멩이를 툭툭 두드리더니 말했다.
“천지원기(天地元氣)의 파동이 느껴져, 이 고대(高臺)는 아마도 하나의 진(陣)인 것 같아.”
우유도가 뒤돌아, 사각형 돌멩이 위에 있는 모래알을 법력으로 쓸어 냈다. 그러자 그곳에 손바닥만 한 크기로 파여있는 공간이 드러났다.
세 사람이 고개를 쭉 내밀어 살펴보니, 그 움푹 들어간 곳 아래와 주위 내벽에 살짝 파인 부분이 있었다.
우유도가 손을 넣어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말했다.
“아마도 이곳이 바로 상령(商令)을 놓는 곳인가 보군.”
“전 조국 진국신기인 성신령을 말하는 거야?”
“맞아요!”
“여기에 성신령을 왜 놓는단 말이야?”
“마전의 기록에 따르면, 이곳에 성신령을 끼워 넣으면, 다른 네 세계의 진안(陣眼)을 열 수 있다고 했어요. 이곳 단상이 다섯 영역의 성신대진(星辰大陣)의 중추를 담당하는 진안이라고 되어있지요. 누님의 말이 맞아요. 이 건물은 바로 진(陣)이에요.”
운희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진으로 몇 개의 세계를 연결할 수 있다니. 이 상찬과 이향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 것이지? 세상에 어찌 이토록 강대한 수행자가 존재할 수 있단 말이야?”
“몰라요. 선인(仙人)들의 눈으로 보면, 우리 같은 범인들은 사실 다 개미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지요. 어쩌면 그들 부부는 정말로 전설의 선계에서 온 사람일지도 몰라요.”
옆에서 듣고 있던 원강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피더니 다급하게 말했다.
“문제가 생겼어요!”
두 사람이 돌아보니, 저 멀리서 일단의 날짐승이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수많은 적엽조였고, 바로 이곳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세 사람은 어느 정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운희가 돌연 입을 열었다.
“저 많은 날짐승이라니. 만약 저걸 데려갈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 이런, 제길!”
거대한 규모였다. 수백 마리가 넘는 적엽조가 군단을 이루어 일행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당연히 보자마자 침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적엽조 무리가 다가오기 시작하자, 다들 정신을 차렸다. 운희 또한 긴장하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당장이라도 공격하고자 하는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이것들은 인간계에서 길든 날짐승과 달랐다. 이들 적엽조는 아주 흉폭해 보였다. 마치 일행 세 사람을 사냥감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운희는 이미 소매를 떨치고 날아올라 허공을 향해 장력을 쏘아 보내고 있었다. 그야말로 일격 일격이 치명적이었다.
그렇게 쾅쾅거리는 소리가 지나고, 수십 마리의 적엽조가 비명을 지르며 탑에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그 덩치가 너무 커서, 탑의 계단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대로 굴러 사막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제야 그들은 탑 꼭대기에 있는 작은 사냥감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까이 다가가면 바로 얻어맞고 땅으로 추락했다. 적엽조 집단은 일행을 중앙에 두고 그들을 피해 양쪽으로 나뉘어 날아 탑을 반 바퀴 돌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다시 집단을 이루고는 그대로 방향을 바꿔 녹주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가 버렸다.
적엽조 집단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세 사람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운희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인간계에 있는 날짐승들은 여기서 온 것일까?”
“그럴 가능성이 있지요. 어쩌면 상찬 부부가 여기서 데려간 것일 수도 있지요.”
웅웅!
이때, 탑 아래 사막이 소란스러워졌다. 세 사람이 아래를 바라보자, 사막의 모래가 터져나가며 수많은 괴물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수많은 갈황이었다.
세 사람이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넋을 잃었다. 우유도조차 깜짝 놀라 말했다.
“갈황이 한 마리가 아니야?”
우유도를 태우고 온 갈황은, 자신의 동료들이 익숙하다는 듯, 그들과 소리를 내며 소통하고는, 적엽조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 갈황들은 땅에 떨어진 적엽조를 붙잡아 뜯어 먹기 시작했다. 이외에도, 더욱 수많은 갈황이 땅을 뚫고 튀어나와 땅을 울리며 달려왔다. 그리고는 땅에 떨어진 적엽조를 게걸스레 뜯어 먹었다.
이 갈황들은 아마도 그들이 알고 있는 무변사막의 사갈과 똑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극도로 예민한 후각을 가지고 있는 듯했고, 피비린내를 맡은 것 같았다.
운희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장난하는 건가, 유일한 한 마리니까 갈황이라고 부르는 거지. 아무리 봐도 다 비슷한 크기잖아. 이렇게 되면 갈황이라고 부를 순 없는 노릇이군……. 잠깐만, 큰일이야!”
“음?”
우유도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운희가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릴 데리고 들어온 갈황이 어떤 놈이지? 만약 그걸 모르면, 어떻게 돌아가?”
그 말을 듣고 난 후, 이번에는 우유도마저 정말 멍청한 얼굴로 넋을 놓았다. 잠시 한눈판 사이에, 자신들을 데려온 갈황을 놓쳐버렸다.
지금 여기 있는 수많은 갈황들은 먹이를 차지하기 위해 이미 뒤섞여 있었다. 또 생긴 것까지 똑같으니, 어떤 놈이 어떤 놈인지 구분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자신들이 타고 온 갈황을 찾기 위해 아래로 내려갈 수도 없었다. 작은 산만한 괴수들이 서로 먹잇감을 먹기 위해 다투고 있었다. 그 싸우는 소리조차도 천둥소리 같았다. 그러니 이 사이에 끼어들었다간, 우유도와 원강은 물론이요, 심지어 운희마저도 무사하지 못할 것 같았다.
대체 어떤 것이 갈황이지?
이때, 잠시 넋을 놓고 있던 원강이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제가 구분할 수 있어요. 우릴 데리고 온 갈황이라면 제 말에 반응할 거예요.”
그 말을 들은 우유도와 운희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는 곧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문제없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돌아갈 때 아주 곤란할 뻔했다.
수십 마리의 날짐승이라고 해봤자 아래 갈황들이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양일 리가 없었다. 어느새 바닥에는 적엽조의 깃털밖에 남지 않았다. 곧 바람이 불어와 그 털들까지도 어딘가로 날려가 버렸다.
먹을 음식이 없자. 이놈들은 탑 위에 있는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모기가 아무리 작아도 고기는 고기라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쿵쿵! 땅을 울리며 덩치들이 탑을 빠르게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우유도 등 세 사람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곧 탑 아래 한 마리 갈황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직 그 한 마리만이 세 사람을 사냥감으로 보지 않았다.
운희가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부를 필요도 없겠군. 아마 저 녀석이 우릴 데리고 온 놈일 거야. 잘 봐둬, 눈에 깃털이 붙어있는 놈이야.”
그렇게 땅을 울리며 기어 올라오는 수많은 갈황을 보면서 우유도는 웃기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정상에 오르기도 전에 갈황들은 자기들끼리 뒤엉켰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 마리 한 마리가 너무 거대했다. 정상에 가까워져 올수록 공간은 좁아지고, 수많은 갈황들이 다투는 상황에서, 적지 않은 갈황이 그대로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그런데도 결국은 정상까지 오르는 갈황도 있었다.
원강이 그런 갈황을 본 후, 한 계단 뛰어내리더니, 숨을 그러모았다.
“하……!”
원강이 분노를 가득 담은 고함을 질렀다.
그 목소리가 들리자, 열심히 위를 향해 기어오르던 덩치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너무 갑작스럽게 멈춰선 나머지 그대로 땅으로 굴러떨어져 뒤집혔다가, 다시 꼬리를 이용해 몸을 뒤집는 갈황도 있었다.
탑 꼭대기에 가장 가까운 한 마리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조심스럽게 그 거대한 입을 원강에게 천천히 가져다 댔다. 마치 원강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으려는 모습 같았다. 그 작은 인간에게 이 거대하고 흉악한 괴수가 다가가는 모습은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하!”
원강이 눈앞에 있는 갈황을 향해 크게 분노 가득한 고함을 질렀다.
“하악!”
덩치는 쉭쉭거리다가, 즉시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결국, 발을 잘못 디딘 그 갈황은 그대로 굴러떨어졌고, 아래에서 올라오던 갈황들과 얽혀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원강이 지른 두 번째 고함에 맞춰, 탑을 타고 오르던 덩치들이 천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원강은 자신이 이들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을 확인하고, 더는 안전을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원강은 또 추가로 뭘 하려는 것인지, 한 계단씩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우유도는 힐끗 운희를 바라보며, 그녀의 안색과 반응을 살폈다. 곧 운희의 안색이 정상적이지 않은 것을 보고 물었다.
“왜 그래요?”
운희가 한숨을 내쉬었다.
“원숭이의 고함에는 마력이 있어!”
“마력?”
우유도가 멈칫하더니 웃으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운희가 눈살을 찌푸렸다.
“마치 고대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한 줄기 두려운 기운 같아. 고대의 혼돈을 품은 공포감이랄까. 아주 위대하고, 거대한 느낌을 주고, 왠지 모르게 숭배하고, 그를 왕으로 떠받들고 싶게끔 하는 느낌을 주지. 원숭이가 고함을 지를 때, 사실 내 감정에도 영향을 주었다. 만약 내가 영지(靈智)가 열려 지성을 얻지 못했다면, 아마도 원숭이의 감정이 담긴 소리에 저항하지 못했을 거야.”
우유도는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 운희는 뱀이었지만, 수련을 통해 인간이 되었다. 당연히 그 몸에는 뱀과 같은 야수의 본능이 남아 있었다.
운희가 뒤돌아 우유도를 보고 물었다.
“사실 난 처음 원숭이를 보았을 때부터 뭔가 이상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을 들인 후에야 천천히 익숙해질 수 있었지. 한 사람의 몸에서, 어떻게 이토록 신기하고 두려운 기운이 뿜어져 나올 수 있는 거지?”
“그건….”
우유도가 쓴웃음을 지었다.
“저도 몰라요. 나는 말할 것도 없고, 아마 그 자신도 어찌 된 일인지 모를 거예요.”
“도대체 원숭이가 어떤 무술을 수련하고 있는 거야?”
우유도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별 특별할 것 없어요. 그 무술을 수련한 사람이 원숭이만 있는 것도 아니지요. 원래 살던 마을에서 많은 젊은이가 원숭이와 같이 수련을 했어요. 몸 건강을 위해서요. 하지만 이런 이상한 능력이 생긴 사람은 원숭이 혼자인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나머지 사람들은 다들 왕야 밑에서 그를 따르고 있지요.”
운희가 고개를 저었다.
“원숭이는 영지가 열리지 않은 모든 동물을 통제할 수 있을 거야. 이성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모든 동물이 그의 손바닥 아래 있다는 것이지. 정말로 불가사의하군!”
우유도는 운희와 이 주제를 가지고 너무 깊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원강이 아래 있는 덩치들과 뭔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즉시 우유도는 단상을 뛰어내렸다. 지면에 거의 도착했을 때, 발아래서 다시 기류를 출수한 우유도는 살짝 떠올라 충격을 흡수하고는 가볍게 원강 옆에 내려섰다.
운희도 곧 그 옆에 내려섰다. 수많은 덩치 앞에 서서 우유도가 좌우를 살피더니 물었다.
“뭐 하는 거야?”
원강이 뒤돌아 말했다.
“도야, 방금 시도해 봤는데, 이놈들이 돌려준 감정을 봐서, 우리를 데려온 그 갈황뿐만 아니라, 이들 모두가 출입구를 찾을 수 있는 것 같아요.”
“호오!”
우유도가 깜짝 놀랐다. 이런 괴이한 일이 있나? 우유도는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설마 인간계에도 갈황이 한 마리가 아닌가?”
“이놈들의 지능이 높지 않아서, 일부 문제는 감정 표현으로 구분하기 어려워요.”
“어라? 뭐 하는 거지?”
우유도가 멀지 않은 곳 두 마리의 덩치가 얽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저기 눈에 깃털이 붙어있는 갈황이 바로 우리를 데려온…. 음….”
운희의 얼굴이 순간 급변하더니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우유도의 얼굴도 아주 볼만하게 변했다. 알아본 것이다. 두 마리 덩치가 백주대낮에 거리낌 없이 교미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말로 못 볼 꼴이었다. 심지어 일행을 데리고 들어온 놈이 당하는 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