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2화. 보총(寶塚)
세 사람은 사람이 있었던 흔적을 보고도 놀라워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 세계를 거닐면서 이미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을 보았다. 다만 하나도 어김없이 모두 폭력에 의해 크게 훼손되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아직 건물들이 온전했을 때, 아주 격렬한 싸움이 있었던 것 같았다.
또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여기서 발견한 옛 건물들이 하나같이 모두 불교의 사찰 같은 건축물이라는 것이다. 그건 유적의 조각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오직 사찰의 유적만 있고, 성곽의 유적은 발견하지 못했다. 수많은 흔적을 보면, 이곳은 불교도의 세계였고, 속세의 사람이 생존했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불교도만 있을 뿐, 속세의 신도들이 있었다는 흔적은 없었다. 그야말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어떤 종파든, 신도들의 공양을 통해 유지되었다. 그런데 여긴 꽃과 과실만 있을 뿐, 그 근원이 없다니?
지금까지, 이들은 이 세계에서 단 한 사람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 세계는 인류의 방해 없이 이미 짐승들의 약육강식 세계가 되어있었다.
눈앞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유적과 그 유적을 뒤덮고 있는 수많은 덩굴이 있었다. 여기저기 무너지고 넘어진 담벼락의 조각을 보면, 이곳 또한 당연하게도 불교의 유적임을 알 수 있었다.
화악! 원강이 갑자기 발로 바닥을 쓸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소리 때문에 곁에서 주변을 관찰하던 우유도와 운희가 원강을 돌아보았다.
원강은 뭔가를 발견한 것 같았다. 그의 눈은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곳을 향해 길을 찾아 전진해 나가고 있었다.
우유도는 원강이 가진 특기 중 하나가, 일부 단서를 가지고 수사를 통해 뭔가를 알아내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그런 원강이 뭔가를 발견한 것 같았다. 운희와 서로 눈빛을 교환한 우유도가 원강을 향해 다가갔다.
원강은 한 곳에 도착한 후에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유도가 다가와 물었다.
“뭐 하는 거야?”
“도야, 아마도 이 위치가 이 거대한 건축물의 대문 위치였던 것 같아요.”
원강의 말을 들은 우유도는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원강의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챙!
원강이 등에서 칼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주위에 널린 잡초를 베어 넘기며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운희가 의아해하며 우유도에게 물었다.
“뭘 찾고 있는 거야?”
“일단, 좀 지켜보지요.”
한참이 지난 후, 원강이 갑자기 허리를 숙여, 확 하고 폐허 속에서 거대한 판자를 끄집어냈다. 그리고 뒤돌아 소리쳤다.
“도야, 찾았어요.”
우유도가 날아와 그 곁에 섰다. 원강이 그런 우유도에게 글자가 적혀 있는 판자를 보여주었다. 매우 무거워 보였다. 비록 세월이 많이 흘러 판자가 매우 낡아 보이기는 했지만, 딱 봐도 금속으로 만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운희가 가까이 다가와 보더니 드디어 원강이 뭘 찾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편액이야, 하지만 절반밖에 없군!”
우유도는 법력으로 절반의 편액에 묻은 세월을 씻어냈다. 곧 편액은 찬란한 그 본모습을 드러냈다.
운희가 몸을 숙여 편액을 잠시 만져보더니 말했다.
“희귀한 천외자금(天外紫金)으로 단조한 물건이야. 절반만 해도 반장 정도 길이라니, 온전한 모습이었다면 얼마나 거대했을까. 도대체 무슨 사찰이길래 이렇게 큰 편액을 사용한단 말이야?”
“사(寺)?”
우유도는 편액에 적힌 글자를 보며 중얼거렸다. 선명하게 보이는 글자는 사(寺)자 하나뿐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중간에 끊겨있어 읽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이곳이 무슨 사(寺)인지도 알 수 없었다.
운희는 갈라진 편액 절반을 만져보더니 갑자기 숨을 들이켰다.
“이건 예리한 무기나 어떤 물건에 의해 잘린 거야. 이토록 단단한 천외자금을 이토록 반듯하게 잘라 버리다니. 손을 쓴 사람의 실력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야!”
화악! 주위를 살피던 원강이 저 멀리서 또다시 무거운 판자를 끌고 왔다. 나머지 절반을 찾아서, 다소 힘겹게 끌고 온 것이다.
두 조각으로 나뉜 편액이 결국 하나로 합쳐졌다. 우유도가 다시 한번 법력을 이용해 편액을 닦아냈다. 결국, 하나로 합쳐진 그 글자는 ‘음(音)’자가 되었다. 편액에는 총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대뢰음사(大雷音寺)!’ (*대뢰음사: 석가모니가 수행했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사찰)
그 선명한 네 글자를 확인한 우유도와 원강이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는 곧 눈빛을 교환했다.
운희는 편액을 빤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글자는 인간계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군…. 대뢰음사라! 아주 패기 있는 이름이군.”
원강이 갑자기 우유도에게 물었다.
“도야, 이 대뢰음사가, 혹시 그 대뢰음사입니까?”
만약 전생이었다면, 우유도는 분명 아니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 수행계의 세계에 온 후에, 일부 귀신과 괴물을 직접 두 눈으로 본 후이다 보니, 우유도조차 뭐라고 확언할 수 없었다.
“나한테 물어보면, 나는 누구에게 물어보란 말이야?”
“설마 여기가 그 전설의 세계란 말입니까? 만약 정말이라면, 전설의 불법무변의 세계가, 어찌 이렇게 변했단 말입니까?”
운희가 뒤돌아 물었다.
“무슨 전설 말이야? 난 왜 들어본 적이 없지?”
우유도가 한참 고개를 저으며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그도 마찬가지로 눈살을 찌푸리고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심불지…. 심불지…. 이 이름이 과연 그냥 지어진 것이 아니군.”
한숨을 내쉰 우유도는 다시 주위를 둘러보고는 말했다.
“흩어져서 또 뭔가 발견할 수 있는지 살펴보지요.”
세 사람을 그렇게 흩어져 주위를 수색했다. 하지만 쓸모있는 물건은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설사 그런 물건이 있다 한들, 아무것도 모르는 세 사람은 단서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세 사람은 산맥을 둘로 가른 거대한 균열이 있는 곳에 다시 모였다. 그 균열은 깊이가 만장은 되어 보였고, 그곳에 강한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운희가 하늘로 날아올라 한참 주위를 둘러보더니 다시 내려와 경악스럽다는 듯 말했다.
“이 산뿐만이 아니야. 여길 가로지르는 산맥까지 이 균열이 이어지고 있어. 넓이만 해도 백 리는 되어 보이는 산맥을 단번에 쪼개다니, 도대체 얼마나 경천동지한 일격이었을까. 만약 이것이 인위적인 것이라면, 도저히 상상이 안 되는군. 그 힘은 그야말로 천지를 파멸시킬 수 있는 힘일 거야!”
“가자! 내려가서 확인해보자.”
우유도가 아래 펼쳐져 있는 만장단애(萬丈斷崖)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가장 먼저 뛰어내렸다.
운희는 곧이어 원강의 팔을 잡고 우유도의 뒤를 따라 뛰어내렸다.
만장단애(萬丈斷崖) 아래, 세 사람은 크게 가치 있는 물건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곳은 그저 커다란 힘에 의해 갈라진 곳일 뿐이었다.
다시 산 정상으로 돌아온 일행은 주위의 세계를 둘러보았고, 그럴수록 깊어지는 의문을 감출 수 없었다. 도대체 이곳에서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금의 갈피도 잡을 수 없었다.
아무튼, 세 사람은 이 세계에 변고가 생긴 것은 아주 고대의 일이라는 것만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깊이 묻어난 흔적들로 보아, 상찬의 무국 시대보다 훨씬 더 과거인 것 같았다. 다만 이 흔적들이 상찬 부부와 상관이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 편액을 처리해.”
벼랑 끝에서 깊은 사색에 빠져있던 우유도가 갑자기 뒤돌아 당부했다.
원강은 우유도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했다. 오상이 이곳에 돌아올 가능성이 있었다. 만약 이 편액을 처리하지 않으면, 눈썰미가 있는 사람에게 이곳에 누군가가 왔었다는 것을 들키고 말 것이다.
원강은 이런 일을 처리한 경험이 있었고, 곧 우유도의 명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면에 우유도는 산 정상의 폐허 속을 뒤지고 있었다. 결국, 그곳에서 우유도는 부러진 돌기둥을 찾을 수 있었고, 그 돌기둥에 글자와 문양을 조심스럽게 새기기 시작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운희가 가까이 다가와 우유도의 모습을 보더니 잠시 지켜보았다. 하지만 곧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뭐 하는 거야?”
“장난을 좀 치고 있지요.”
우유도는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며 대충 대답했다.
우유도의 행동은 다시 조용히 지켜보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우유도가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고, 다만 돌기둥에 새겨져 있는 ‘보총(寶塚)’이라는 두 글자만 알아볼 수 있었다!
다시 우유도가 새긴 문양을 살펴보니, 그것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일단의 사람들이 어떤 물건을 어딘가에 묻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 그림과 ‘보총’이 결합하면, 그 말대로, 뭔가 보물을 묻고 있는 모습이라 해석할 수 있었다.
운희는 우유도에게 이런 정교한 손재주가 있는 것이 다소 의외였지만, 여전히 그가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아, 결국 참지 못하고 되물었다.
“도대체 뭐 하는 거야?”
“때가 되면 알게 될 거에요.”
잠시 후 원강이 돌아와 우유도를 보고는 마찬가지로 물었다.
“이게 뭔가요?”
“네게 주는 거다.”
원강이 깜짝 놀라 대답했다.
“저요?”
대화하는 와중에 우유도의 손은 쉬지 않았고, 곧 모든 일을 마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눈앞에 있는 돌기둥을 툭툭 치며 말했다.
“가져가자.”
또 주위를 두리번거린 우유도가 이어 말했다.
“여기저기 둘러봐도, 대충 이런 모양이군요. 별문제 없을 것 같군요. 너무 오랫동안 인간계를 떠나있는 것도 별로 좋지 않으니, 슬슬 돌아가지요.”
원강은 두말하지 않고 돌기둥을 들어 어깨에 둘러멨다. 그리고는 다른 손으로 입술을 잡고, 휘파람 소리를 냈다.
저 멀리 내려앉아 있던 흰 깃털의 날짐승이 다시 날아올라 세 사람을 향해 왔다. 세 사람은 그대로 뛰어올라 그렇게 다시 하늘 높이 날아 멀어져 갔다.
일행은 수많은 산맥과 강을 지나, 다시 처음에 도착했던 사막의 경계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눈에 띄는 고대가 여전히 그 자리에 높게 솟아있었다.
가까이 다가갔을 때 우유도가 날짐승에서 뛰어내렸고, 운희도 그 뒤를 따라 뛰어내렸다.
하지만 원강은 여전히 날짐승을 타고 아래를 향해 날아갔다.
우유도는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내려섰고, 운희도 마찬가지로 그 옆에 내려섰다. 날짐승이 그 근처를 날아갈 때 그 위에서 원강이 뛰어내려 두 사람 곁에 내려섰다. 그리고 하늘을 보고 긴 울음을 토해내자, 세 마리 날짐승은 그대로 하늘로 높이 날아오르더니, 자유의 몸이 되어 그곳을 떠나갔다.
멀리 떠나가는 날짐승을 바라보던 원강이 뒤돌아보니, 우유도는 다시 꼭대기의 움푹 들어간 부분에 손을 넣고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운희가 깜짝 놀라 불안한 목소리로 말렸다.
“또 뭐 하려고 그러는 거야? 벼락에 한번 맞은 거로 부족한 거야?”
괜히 떠올리기 싫은 일을 떠올리게 하는 운희를 한번 째려본 우유도는 운희를 무시하고는 다시 더듬으며 살펴보았다.
반면 원강은 우유도의 손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그가 파인 곳의 넓이를 측정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시 후, 우유도가 원강에게 돌기둥을 달라고 하더니 꼭대기에 세워두고는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돌기둥을 깎아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 운희와 원강은 우유도가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나중에 돌기둥이 깎여 나가면서 윤곽을 드러내자, 두 사람은 우유도가 돌기둥을 꼭대기 파인 곳에 끼워 맞추려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왜 돌기둥을 끼우려는 거지? 운희는 두 눈을 반짝이며 돌기둥 위에 새겨 놓은 그림과 ‘보총’에 생각이 미치더니, 순간 우유도의 의도를 깨닫고 경악하며 말했다.
“지금 또 누굴 물 먹이려고 그러는 거야?”
간단한 이치였다. 만약 누군가 여기 온다면, 돌기둥 위에 있는 문양을 보고, 이 고대가 바로 보물을 묻어 놓은 곳이라고 오해할 것이고, 파 내려가려 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게 강제로 고대를 파 내려간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 우유도가 벼락을 맞은 것을 보면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