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8화. 산하정 (1)
곧 한국 황제 섭진정조차 빠르게 일행에게 인사하기 위해 달려왔다.
섭진정의 신분이라면, 한국 삼대문파의 장문인을 보았을 때 예를 올려야 하지만, 이처럼 추태를 보일 정도로 급히 달려올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한 것은 당연히 천영의 신분 때문이었다. 구성은 온 천하 위에 군림하고 있다. 그러니 구성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속세의 사람들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사람들이라 할 수 있었다.
황제는 큰 연회를 열어 귀빈을 접대할 준비를 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천영은 연신 사양하며, 소소한 연회면 충분하다고, 굳이 너무 일을 크게 벌일 필요 없다고 설득했다.
천영이 기어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니, 섭진정은 그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작은 연회를 아주 세심하게 준비하라고 일렀다.
연회는 준비가 필요했다. 천영이 황궁을 둘러보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섭진정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자진해서 안내하겠다고 나섰다.
지청려는 자신이 안내하면 된다며, 황제와 다른 사람들이 따라올 필요가 없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수많은 사람이 두 눈 뜨고 지켜보고 있을 것이기에 그리한다면, 불편한 부분이 있을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황궁을 조금 둘러보고, 어화원에 도착했을 때, 좌우를 둘러보던 천영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과연, 황궁이 이렇게 생겼군!”
다소 실망한 것 같은 말투였다. 별것 아닌 것 같다는 모습이었다.
섭진정과 주변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았고, 그 말을 들은 지청려가 대답했다.
“속세에 불과합니다. 당연히 빙설각과 빙설성지와 같은 선경과는 비교할 수 없지요.”
천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예전에 황궁 안에는 각종 진귀한 보물들을 모아 놓은 곳이 있다는 이야길 들었소. 혹시 오늘 천모의 안개를 넓혀 주실 수 있으시오?”
지청려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성지와 빙설각 안의 물건들과 비교해 보면, 황궁에 있는 것들이 무슨 보물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다들 속세의 물건에 불과합니다.”
섭진정도 입을 열어 동의했다.
“장문인의 말씀이 참으로 맞습니다. 성지와 빙설각과 비교할 수 없지요.”
천영이 갑자기 미소지으며 말했다.
“알겠소. 본인이 주제넘었소.”
뭘 알겠다는 말인가. 누가 봐도 뭔가 오해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지청려가 다급히 말했다.
“만약 선생님께서 속세의 물건에 눈을 더럽히는 것을 탓하지 않으신다면 폐하께서도 분명 인색하게 굴지는 않으실 겁니다.”
그리고는 섭진정에게 눈치를 보냈다.
섭진정이 다급히 이어 말했다.
“그렇습니다. 선생님만 괜찮으시다면, 황궁의 장보고(藏寶庫)를 보러 가시지요.”
천영이 즉시 아주 큰 흥미를 보이더니, 다시 조심스럽게 물었다.
“폐가 되지는 않겠소?”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선생님께서 둘러 보시는 것만으로도 짐의 영광이지요. 가시지요!”
섭진정이 포권을 하고는 손을 뻗어 움직이기를 청했다.
“좋소!”
천영이 기쁘게 대답하고는, 사람들과 같이 장보고로 향했다.
거대한 황궁 아래, 지하 보고가 존재했다. 황제와 귀빈이 직접 찾아오니, 지하궁전의 대문이 열렸다.
그렇게 일행이 지궁에 들어섰다. 외부는 말할 것도 없고, 내부에조차 병사들이 돌아가며 경비를 서고 있었다.
지궁의 통로는 수많은 문으로 닫혀 있었고, 그 문들을 하나하나 열고 안으로 들어가, 진정한 보고에 들어갔을 때는 안에 어떠한 경비도 없이 오직 각종 진기한 보물들이 나열되어 있을 뿐이었다.
보고에 들어간 천영이 발아래를 바라보았다. 그곳의 지면은 동과 철을 녹여 통짜 금속 바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모두 속세의 속물입니다. 성지에 있는 선가(仙家)의 물건과 비교하면 투박할 뿐이지요.”
섭진정이 둘러 보라는 의미로 손을 들어 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천영은 일행과 같이 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 있는 물건들은 확실히 속물들이었다. 대부분이 금은보화였고, 금을 녹여 만든 커다란 금괴도 있었다. 혹은 일부 진기한 그릇, 서화, 영초 등이 있었다.
보고 내부를 한 바퀴 돌아본 천영은 찬란한 색을 뿜어내고 있는 옥 조각 앞에 멈춰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소 의아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황궁의 보물이 겨우 이 물건들이란 말이오?”
섭진정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좀 간단하긴 합니다.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지청려가 이어 말했다.
“당연히 빙설각과 비교할 수 없지요.”
천영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런 의미가 아니오. 인제 보니 폐하는 이 천모에게 진정한 보물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 같소만?”
섭진정이 멈칫했다. 천영이 기분 나빠하고 있음을 느끼고는 다급하게 말했다.
“천영 선생님, 황궁의 보물은 모두 여기 있습니다. 이것 말고는 각 궁에 배치된 물건들뿐이지요. 다만 그것들은 모두 여기 있는 것만큼 진귀하지 않습니다. 물론, 선생님께서 보시고 싶으시다면, 그쪽으로 잠시 가셔서 보셔도 무방합니다.”
천영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말하는 것은 그런 보물이 아니오.”
섭진정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이것들 외에 황궁에는 다른 보물이 없습니다.”
천영이 ‘하하’ 크게 웃었다.
“폐하는 지금 이 천모가 무지하다고 무시하는 거요?”
섭진정이 다급히 대답했다.
“어찌 제가 감히...”
천영의 목소리가 살짝 커졌다.
“진국신기 산하정은 어디 있소?”
보고 안이 침묵에 휩싸였다.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들은 천영의 말을 듣고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섭진정도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가, 곧 조심스럽게 물었다.
“설마 선생님께서는 산하정을 보시고 싶으신 겁니까?”
“폐하는 지금 황궁에 더는 다른 보물이 없다고 했소. 그럼 산하정은 보물이 아니란 말이오? 그게 아니면, 산하정이 이곳에 있는데, 내가 눈이 삐어 알아보지 못한 것이오? 만약 산하정이 이곳에 없다면, 폐하의 의도가 아주 명확하다 할 수 있소. 내게 보여주고 싶지 않거나, 내가 무지하다고 속이려는 것이 아니오?”
섭진정이 다급히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선생님 오해하셨습니다. 절대 소홀히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말을 하면서 섭진정이 지청려에게 눈짓을 보냈다.
지청려가 즉시 옆에서 거들며 말했다.
“천 선생님, 산하정은 한국의 진국신기입니다. 쉽게 꺼내놓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천영의 얼굴이 서서히 싸늘해졌다.
“쉽게 꺼내놓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면, 처음부터 그렇다고 말하면 그만이지, 어째서 황궁에 이것들 외에 다른 보물이 없다고 했소. 그것이 내가 무지하다고 속이려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소?”
그렇게 말하니, 그와 같이 있던 사람들의 입장이 아주 민망해졌다. 또 아주 불안해졌다. 지금 천영은 누가 봐도, 크게 화가 난 모습이었다.
누가 감히 빙설각의 사람이 무지하다고 속이려 하겠는가?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천영의 말에서 뭔가를 느낄 수 있었다. 천영은 아마도 자신이 빙설각에 데릴사위로 들어가 아는 것이 없다며, 자신을 무시한다고 오해한 것 같았다.
일부 사람들은 섭진정이 말을 너무 경솔하게 했다고 속으로 질책하기도 했다.
덕분에 섭진정은 크게 당황하며, 연신 손사래를 쳤다.
“천영 선생님, 오해입니다. 정말 오해입니다. 산하정은 예외입니다. 소위 말하는 보물에 속하지 않는 물건입니다.”
그 말을 들은 천영이 바로 반박했다.
“그럼 내 체면을 보아서 한번 보여줄 수 있소?”
“그것이...”
섭진정은 정말 뭐라고 말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산하정은 쉽게 꺼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또 천영에게 안보여 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천영의 싸늘한 시선을 확인한 섭진정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지청려를 돌아보았다.
삼대문파 안에서, 지금 눈앞에 있는 천녀교의 장문인이 이곳에서 지위가 가장 높았다. 그러니 그녀가 결정을 내려주길 바란 것이다.
지청려도 난처해졌다. 하지만 결국은 억지웃음으로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폐하, 천영 선생님이 이토록 보고 싶어 하시니, 산하정을 꺼내 한번 보여드리도록 하지요.”
이제 섭진정이 뭐라 할 수 있겠는가. 그저 같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알았다고 말할 뿐이었다.
“그것도 좋지요!”
그리고는 지청려를 향해 포권을 해 보였다.
지청려는 천영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천영 선생님, 산하정은 보고 밀실 안에 있습니다. 그 문을 여는 방법은 오직 폐하만이 아시지요. 그 모습을 저희가 보는 것은 옳지 않으니, 폐하가 보고의 밀실을 열 수 있도록, 잠시 밖에서 기다려주십시오.”
“어려울 것 없소!”
천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보고를 빠져나갔다.
다른 사람들도 알아서 보고를 빠져나갔고, 섭진정이 대내총관 창덕(昌德)에게 눈짓을 보냈다.
창덕은 곧 허리를 숙이고 몇 걸음 뒤로 물러나더니 그대로 보고를 빠져나갔다. 창덕이 마지막으로 보고를 빠져나갔을 때, 보고의 대문이 닫혔고, 그는 대문 앞에 서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며, 접근하지 못하게 경계했다.
보고 안에 홀로 남은 섭진정은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며 곤란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옆 단상에 올려져 있는 꽃문양의 은주전자를 들어 한쪽에 있는 물항아리로 다가가 주전자에 물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물을 가득 담은 후, 주전자를 들고, 보고 모서리에 있는 두 개의 나무 탁자 앞으로 다가갔다. 나무 탁자 위에는 투명한 수정병이 두 개 올려져 있었다.
섭진정은 은주전자에 담긴 물을 천천히 한 수정병에 조심스럽게 따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정병 안의 수위가 수정병에 조각된 산수화의 어떤 산꼭대기에 도달했을 때, 즉시 물을 따르는 것을 멈췄다.
그러자 나무 탁자가 수정병과 같이 천천히 바닥으로 일정 수준까지 가라앉더니 멈췄다.
섭진정은 그제야 벽에 있는 글자들 앞에 다가가, 몇 글자를 연달아 눌렀다. 그러자 벽 안에서 ‘찰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궁 정문 맞은 편에 있는 철판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리며, 끼익하는 소리와 같이 양쪽으로 열렸고, 빛을 뿜어내는 보고의 밀실이 드러났다.
섭진정은 다시 수정병 앞으로 다가가 병 안에 있는 물을 다시 은주전자에 따르고, 조심스럽게 두 수정병의 위치를 서로 교환했다.
그제야 다시 물항아리로 다가가 물을 그곳에 다시 따라버리고는 비어있는 은주전자를 원래 위치에 돌려놓았다.
마지막으로 보고 입구에 가서 소리쳤다.
“창덕, 천영 선생님께 들어 오시라 전해라.”
‘웅!’ 보고의 대문이 다시 열렸다. 창덕은 문밖에서 사람들을 안으로 안내했고, 섭진정은 안에서 밀실로 손을 뻗었다.
“천영 선생님, 저를 따라오시지요.”
안에 들어온 사람들은 다들 활짝 열린 밀실의 대문을 볼 수 있었다. 천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따라 움직였다.
보고의 밀실에 들어가니, 좌우에 야명주가 몇 개씩 박혀있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밀실의 정 중앙에 일 척 정도 크기의 검은 철정(鐵鼎)이 하나 놓여있었다.
천영이 빠르게 다가가 단 위에 놓인 철정 주위를 돌며 살펴보았다. 철정에는 산과 강이 새겨져 있었다. 마치 이 철정으로 산과 강에 제사를 지내는 것처럼 그림의 기세가 매우 웅장했다.
철정을 살펴본 천영이 손을 뻗어 살짝 매만지더니 고개를 들어 물었다.
“이것이 바로 산하정이오?”
섭진정은 미소를 억지로 짜내며 말했다.
“맞습니다. 바로 산하정입니다.”
천영이 양손으로 손짓을 하며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이토록 작은 철정이 전설의 산하정이라니?”
지청려가 웃으며 말했다.
“산하정을 보지 못한 사람은 이에 대해 신비로운 환상을 품고 있지만, 사실상, 겨우 이만한 것이지요.”
천영이 다시 양손으로 산하정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기에는 작고, 색이 어두워 눈에 띄지 않지만, 무개는 아주 묵직하군!”
사람들이 어색하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