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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635화 (734/1,000)

1635화. 협력을 논하다

그렇게 섬에 도착한 소평파는 뒷짐을 지고 천천히 섬 안에 있는 숲의 오솔길을 걸었다. 주위는 조용했다.

섬 위에는 단순한 정자가 몇 곳 있었다. 이곳은 원래 일부 돈 많은 부자들이 유람하며 시간을 보내는 곳 중 하나였다. 다만 이번에 전쟁이 일어나면서, 사람들은 알아서 자제했고, 덕분에 지금 이곳은 아주 조용했다.

소평파는 그중에 한 곳에 올라, 정자의 의자에 있는 먼지를 털어내고 천천히 자리에 앉아 얼굴에 쓰고 있던 가면을 벗었다.

그렇게 약속한 시각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때 고깃배에 타고 있던 어부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어부는 대나무 장대를 들고, 그대로 정자로 다가오더니 석탁 위에 호리병을 올려놓았다.

소평파가 그를 빤히 바라보았고, 어부가 설명했다.

“선생님께서 홀로 아무것도 없이 계시는 것을 보고, 목마르실까 봐 물을 들이고자 왔습니다.”

소평파는 자신의 손에 들고 있는 벗은 가면을 한번 보고는 갑자기 실소하며 고개를 저었다.

“지배인님께서는 참으로 신출귀몰하십니다. 이렇게 지배인님께서 직접 배를 몰아 저를 이곳으로 데려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어부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두 눈은 아주 싸늘했다. 드디어 과거의 목소리를 되찾은 그가 말했다.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소평파가 담담히 말했다.

“설마 저를 죽이시려는 것입니까? 잊지 마십시오. 제가 죽으면, 비밀은 더는 지켜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

어부가 냉소 지었다. 그가 갑자기 손을 뻗어 소평파의 목을 움켜잡더니 다른 한 손에서 붉은색의 단환을 꺼내 들었다.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마시겠다니. 알았다. 이 물건을 맛본 후에는 아마 고분고분해질 것이다!”

목이 움켜쥔 채로 몸이 들리다시피 한 소평파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고, 들고 있던 가면을 땅에 떨어뜨렸다.

어부가 소평파의 벌어진 입에 단환을 넣으려는 순간, 어부의 눈이 갑자기 번득였다. 그가 휙 뒤돌아보니, 손 하나가 그의 어깨에 올라와 있었고, 어부는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등 뒤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을 놓아라!”

어부의 어깨를 붙잡은 팔이 한번 진동하자, 거대한 힘이 몸 안을 파고들어 그대로 그의 몸을 짓눌렀다. 어부는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소평파를 풀어주었다.

“콜록, 콜록…….”

땅에 내려온 소평파는 목을 부여잡고 연신 기침했다.

펑! 순식간에 장력을 얻어맞은 어부는 그대로 날아가, 나무 하나를 부러뜨리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어부는 신속하게 몸을 일으켜 고개를 들어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공격한 그 사람은 방금 전에 소평파를 호위한 후, 호숫가에 남아있던 그자였다. 어부의 두 눈에 경악이 서렸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상대방의 실력이 자신을 크게 상회하고 있는 것을 확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어부는 그 즉시 몸을 날려 도망치려 했다.

휙! 하지만 호위는 이미 어부의 곁에 내려서 있었다. 어부의 얼굴에 경악이 가득 차올랐다.

쾅! 가슴에 다시 일장을 얻어맞은 어부는 피를 뿜으며 날아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안정을 되찾은 소평파는 정자에서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호위는 다시 어부 앞에 다가가, 일어나려는 어부를 한쪽 발로 내리눌렀다. 어부의 가슴을 강하게 밟았다.

어부는 법력을 동원해 발버둥 쳤지만, 상대가 얼마나 강한지,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어부는 자신을 밟고 내려다보는 사람을 보며,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도대체 누구냐?”

목소리가 또다시 바뀌었다. 이번에는 다급한 나머지 목소리를 바꿀 생각도 하지 못했다.

호위는 대답하지 않았다. 상대방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줄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곧바로 몸을 숙이더니 어부의 몸 여기저기를 점혈해 금제를 가했다. 이후, 손을 뻗어 어부의 목 위쪽을 부여잡고 어부의 얼굴에 덧씌워진 가죽을 뜯어냈다. 찌직 하는 소리와 같이 어부의 변장이 벗겨졌다. 진짜 얼굴이 드러난 것이다.

자신의 신분이 들통났다는 것을 깨달은 어부는 흉악하고 신경질적인 얼굴로 물었다.

“넌 도대체 누구냐?”

호위는 어부의 목을 붙잡고 들어 올려, 소평파 앞으로 데려가서 말했다.

“틀림없소. 남도림의 아들, 무변각 각주 남명이오.”

소평파는 남명의 얼굴을 살피더니, 잠시 후, 자신의 호위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호위에게 상대방은 어쩌면 구성 중 한 명인 남도림의 아들일 가능성이 크다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호위는 서슴없이 손을 썼다.

두 사람이 겨루는 속도는 너무나 빨랐다. 소평파의 안력으로는 움직임을 다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자신의 호위가 남명을 아주 손쉽게 제압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수행자에 대해 잘 모르는 소평파라 해도,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그건 무변각 각주의 지위에 오른 자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는 멍청이가 아닌 이상 그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정도 지위에 오른 자라면, 실력이 매우 뛰어날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수행자가 아닌 그가 보기에도, 첫 손속을 겨룬 후에 남명은 즉시 도망치려 했다. 그것만 보아도, 남명은 자기가 호위의 상대가 아님을 깨달았다는 말과 같았다.

소평파는 자신의 호위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다만 가무군 쪽과 연락을 했을 당시, 가무군은 한 사람을 보냈다. 그가 소평파를 도우면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질지라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가무군은 확신하며 말했었다. 소평파는 그 말에 긴가민가했지만, 이제 와 벌어진 일을 보고는 확신할 수 있었다.

지배인의 신분을 밝히는 것에 대해서 소평파는 어느 정도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혹시라도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있을까 봐, 소평파는 남몰래 호위를 더 배치해야 하는지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눈앞의 이 호위는 그럴 필요 없다며, 사람이 많으면 보는 눈만 많아질 뿐이니 필요 없다고 했다. 그는 자신 혼자면 소평파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 소평파는 그 말이 진실임을 알 수 있었다. 누군지 모르는 이 호위의 실력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무변각 각주조차도 한순간에 제압할 정도였다.

물론 지금 소평파가 고민하는 것은 호위의 뛰어난 실력이 아니었다. 오히려 가무군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고수를 이처럼 가볍게 파견하다니. 그것이 바로 가무군의 세력이 얼마나 강대한지를 설명해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구성을 무너뜨리겠다고? 소평파는 자신도 모르게 가무군이 했던 한마디가 떠올랐다.

‘저는 오랫동안 수행계에서 세력을 일궈왔습니다. 아마 대인이 생각하는 것을 아득히 초월하는 세력일 것입니다!’

그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닌 듯했다. 남도림의 아들을 보고도 당황하지 않고 손을 쓰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힌 소평파가 조용히 깊은숨을 들이쉬었다가, 천천히 뱉어냈다. 그의 시선이 남명의 얼굴을 향하더니 갑자기 미소지었다. 그리고 여유롭게 포권을 하며 허리를 숙이고 말했다.

“소평파가 각주님을 뵙습니다.”

낭패한 모습의 남명이 몸을 흔들었지만, 상대방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소평파를 노려보며 이를 갈며 말했다.

“소평파, 간덩이가 부었구나. 감히 함정을 파고 나를 해하려 하다니, 넌 분명 후회할 것이다!”

지금 남명은 형용할 수 없는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온 천하에서, 감히 자신을 이렇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특히나 성경 밖에서 그를 마주한 사람은 그 누군들 황제를 대하는 것처럼 공손하지 않았던 자가 없었다. 지금 같은 치욕적인 대우를 당한 적이 없었다.

소평파는 침착하고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해하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다만 각주님과 협력하는 것에 관해서 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것이지요.”

“협력? 네놈이 뭐라고 감히 나와 협력을 논한단 말이냐!”

남명은 극도로 화가 나서 몸을 흔들어 대며 소리쳤다.

“설사 협력을 논한다 해도, 지금 이런 식으로 협력을 논하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이냐?”

소평파는 여전히 품위 있어 보이는 모습으로 담담히 말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조치였습니다. 몇 번이나 각주님께 연락을 했지만, 각주님은 저를 피하셨지요. 저도 어쩔 수 없이 이런 하책을 써서….”

소평파는 손을 들어 남명과 자신을 번갈아 가리키더니, 다시 뒤의 호위를 가리키고는 말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라도, 제가 각주님과 협력을 주장할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려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이처럼 상대방과 ‘평등’하게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무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가무군은 소평파에게 강한 수행자를 제공해 줄 수 있었다. 얼마나 강한지는 방금 그 눈으로 직접 보았다. 이제 소평파는 상대방과 협력에 대해서 논할 당당함이 있었다.

남명이 소평파를 조롱하는 어투로 말했다.

“협력의 자격? 하하, 네놈이 뭐라고!”

소평파가 미소지었다.

“각주님이 기어이 그렇게 나오시겠다면, 저는 어쩔 수 없이 각주님을 죽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호위에게 턱을 살짝 들며 말했다.

“죽이십시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남명은 멍해졌다. 자신의 목을 잡은 상대방의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을 느낀 것이다. 남명이 곧 다급히 소리쳤다.

“잠깐!”

소평파가 잠시 멈추라며 손을 들었다.

“혹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대화를 나눌 생각이 드셨습니까?”

죽음의 위협 앞에서 남명은 확실히 냉정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의 목을 붙잡고 있는, 손아귀에 들어간 힘은 결코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죽음의 공포가 마음속의 분노를 이겼다. 당연히 냉정해질 수밖에 없었다. 남명이 이를 갈며 말했다.

“소평파, 만약 나를 죽이면 너도 살 수 없을 것이다.”

“그렇습니까? 각주님은 저 높은 곳에 앉아서, 제가 감히 각주님을 건들지 못한다고 생각했겠지요. 우리 둘의 일을 아마 많은 사람에게 알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각주님 곁에 우리 일을 아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일부 개입하면 안 되는 일에 개입했을 것이 분명하니, 대놓고 사실을 밝히지 못하겠지요.”

“제가 각주님을 죽인다 한들, 각주님은 그저 실종된 것에 불과할 테고, 각주님의 사람도 기껏해야 남몰래 저를 찾아와 복수하려 하는 것이 다겠지요. 더군다나 각주님조차 저를 만나다가 사라졌는데, 각주님의 사람이 대놓고 저를 찾아오겠습니까?”

“물론, 이건 모두 농담일 뿐입니다. 저는 각주님과 서로 죽여야 하는 상황까지 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서로 협력한다면, 서로에게 좋지 않겠습니까. 제 말을 잊지 마십시오. 만약 제게 문제가 생긴다면, 각주님이 한 일들은 폭로될 것입니다. 천하는 천남성지만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저를 죽여 입을 막으려는 것은 소용없는 짓입니다.”

“이걸 위협으로 받아들여도, 부탁으로 받아들여도 상관없습니다. 세상에는 일단 한발을 내디디면, 더는 물러설 수 없는 일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 둘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상대방에게 좋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저와 각주님 모두 사실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지요. 상대방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도 있습니다. 앞으로는 각주님도 제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왕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만났으니, 이치에 대해서는 더는 이야기하지 않아도 잘 아실 겁니다. 다시 원래 주제로 돌아와서, 지금 저는 각주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제갈지! 전 조국 대내총관 제갈지. 표묘각에서 그를 찾아내기 전에 한발 먼저 그를 찾아내야 합니다.”

“제갈지?”

남명이 대경실색하더니, 분노했다.

“미쳤느냐? 너는 제갈지가 어떤 사람인지 아느냐? 그는 원영기의 수행자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다. 구성이 암중에 천하의 역량을 동원해 붙잡으려는 사람이다. 구성이 모두 관심을 기울이는 일에 누가 감히 개입한단 말이냐?”

소평파의 두 눈이 번득였다. 과연 원영기의 수행자였다. 인제 보니 가무군의 소식통이 보통이 아닌 것 같았다. 없는 말을 지어낸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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