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8화. 혹심산(惑心散)
혹심산? 그 이름을 들은 무량원의 사람들은 다들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무슨 극독이라고 할 수는 없는 독이었다. 아니 오히려 독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건 수행계의 저급한 미혼약이었다. 가짜 무량과에 그런 수작을 부려 놓다니?
혹심산은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극독이 아니었고, 심지어 보통 사람에게는 효과가 없기까지 했다. 오직 수행자의 체내에 있는 법력에만 작용하며, 환각 작용을 하는 약이었다.
또한, 수행자의 법력에도 어떠한 영향을 끼치지 않아. 평소와 마찬가지로 싸울 수 있었다.
사실 이 물건의 가장 큰 단점은 그 색이 너무 눈에 띄어 쉽게 발각당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못된 심보를 가진 사람들이 여자를 상대로, 그렇고 그런 짓을 저지르기 위해 사용하는 약이었다.
해독 방법도 매우 간단했다. ‘문심초(問心草)’라고 불리는 약초의 잎을 복용하면 그만이었다. 문심초는 영원단을 제련하는데 들어가는 영초 중 하나로, 수행계에서는 나름 쉽게 접할 수 있는 영초였다. 한마디로, 영원단을 복용하면 해독할 수 있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다만 문제는, 혹심산의 환각 작용이 꽤나 강하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법력이 멀쩡해도, 혹심산이 일단 작용하기 시작하면 제대로 싸울 수가 없었다. 아주 강한 미욕 효과가 있었기에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일반적인 수행자라면 대충 하루의 시간이 필요했다. 구성에게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한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설파파의 언급이 없다 하더라도, 나머지 팔성은 이미 깨달아 알고 있었다. 한순간의 부주의로 크게 당한 것이다. 손쉽게 알아볼 수 있는 이런 저급한 수법을 사전에 발견하지 못하고 당하다니.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또 이런 식으로 구성을 하독하려 한 사람이 얼마나 음흉한지, 그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악독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었다.
이런 저급한 물건을 사용한 것을 보면, 분명히 자신들이 무량과가 가짜라는 것을 발견하고, 감정적으로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예상한 것이 분명했다.
“독이 어디 있단 말이야?”
오상이 손에 묻은 물을 문지르며, 여무쌍을 빤히 바라보았다.
“중독된 건가?”
남도림이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여무쌍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다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여무쌍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여무쌍의 두 눈이 번득였다. 그녀는 설파파를 힐끗 바라보더니 다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다만 이미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을 회수할 수는 없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깨뜨린 무량과에는 천기산(天機散)이 하독되어 있었어!”
여무쌍이 전혀 다른 독을 언급했다.
설파파의 눈이 순간 괴상해졌다. 그녀는 다른 여덟 사람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순간 저들의 하는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파삭, 파삭, 파삭.
연달아 세 번의 소리가 들렸다. 오상이 손가락으로 세 줄기 법력을 쏘아 보내, 나무에 달린 나머지 세 개의 무량과를 깨트렸다. 물이 사방으로 퍼지며, 반짝이는 파편이 떨어져 내렸다. 하나도 예외가 없었다. 모두 가짜였다.
“무량과. 삼십 년에 한 번 꽃이 피고, 삼십 년이 지나 과실이 맺고, 삼십 년이 지나야 과실이 익는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꽃이 피었군. 이 나무에 있는 무량과는 이백 년 동안 딴 적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누가 내게 설명을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오상이 담담하지만,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목연택이 대답했다.
“혹심산에 중독되어 머리에 문제라도 생긴 건가? 지금 꽃이 피었다는 것은, 무량과가 삼십 년 전에 도둑맞았다는 말이다. 너는 그 전에 성경에 들어왔고, 그때 네가 무량원에 안배를 하지 않았나. 당시 너도 직접 무량과수에 있는 무량과를 만져 보았지. 진짜와 가짜는 만져 보기만 해도 차이가 난다는 것을 모르는 건가?”
삼십 년 전? 사람들이 깊은 생각에 잠겼다. 삼십 년 전에 무량원에 무슨 수상한 일이 있었던가?
나추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오상! 이 무량과 곁에 있는 까마귀 장군은 네가 배치한 것이다. 까마귀 장군만 있다면, 그 누구도 몰래 무량과를 훔쳐 가지 못할 것이라고 네가 말했었지. 방금 네가 우리보고 설명을 요구했지만, 인제 보니 오히려 우리가 너에게 설명을 요구해야 할 것 같군!”
오상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에 절대적인 건 없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지키고 있는 가운데 무량과를 훔쳤다. 그게 까마귀 장군만의 문제겠는가. 내가 뭘 설명해야 하지?”
눈앞의 사람들이 다투는 것을 보면, 다들 전혀 중독된 모습이 아니었다. 설파파는 조용히, 하지만 여전히 괴이한 두 눈을 번득이며 사람들을 살피고 있었다.
원색이 갑자기 ‘하하’ 웃으며 말했다.
“요괴 할망구야. 여기서 너만 입을 다물고 있군. 혹시 뭐 찔리는 일이 있는 건가?”
설파파가 냉소 지었다.
“뚱땡이. 허튼소리로 중상모략하지 말아라. 우유도가 죽임을 당한 이유가 이번 일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지. 내가 볼 때는 오히려 네놈과 여무쌍이 아주 의심스럽군!”
원색의 말투가 갑자기 유례없을 정도로 날카로워지며, 설파파를 향해 소리쳤다.
“내가 볼 때 무량과는 네년이 훔친 것이 분명하다!”
원색이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내 말을 어떻게 생각하지?”
줄곧 빙그레 웃던 뚱땡이가 갑자기 이처럼 강하게 나오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즉시 그의 의도를 깨달았다. 지금은 누가 무량과를 훔쳐 갔는지 이야기할 때가 아니었다.
장손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요괴 할망구가 아주 의심스럽군, 일단 제압해야겠어!”
설파파는 갑작스럽게 자신을 향해 살기를 내비치는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곧 깨달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혹심산에 중독된 것이다. 다들 설파파가 손을 쓸까 봐 두려워, 약효를 억제할 수 없게 되기 전에 그녀를 죽여버리려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혼자서 여덟 명을 상대로 이길 수가 없었다. 만약 피할 수 없다면, 오늘이 그녀의 제삿날일 것이다!
깨닫는 것도 빨랐고, 반응도 빨랐다.
“개자식들!”
그녀는 욕을 함과 동시에 그대로 무량과수 꼭대기로 뛰어올라, 하늘로 쏘아져 날아 올라갔다.
나뭇가지들이 뒤흔들리며, 나머지 여덟 명이 하늘로 날아올라 설파파의 뒤를 쫓았다.
“하!”
공중의 설파파가 갑자기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한 손에 든 지팡이로 허공을 찍었다.
쾅! 하늘이 진동하며, 뒤집힌 그릇처럼 무량원을 둘러싸고 있던 빛무리 사이에 구멍이 뚫렸다. 그 사이를 설파파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하늘을 울리는 소리에 대지가 진동했다. 무량원 전체가 흔들렸고, 무량원 주위에 폭음이 울리고, 바닥이 뒤집혔다. 그릇이 뒤집힌 모양의 빛무리가 붕괴하며 무량원을 보호하던 대진이 설파파의 거대한 법력에 터져나갔다.
이 진법은 단지 일반적인 수행자들에게서 무량과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에 불과했다. 금단 수행자들이 다수 모여 공격해도 아마 막아내지 못할 정도이니, 원영기 수행자의 강대한 법력을 막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진법이 파훼 되고, 나머지 여덟 사람이 허공으로 날아올라 설파파의 뒤를 쫓았다. 그렇게 순식간에 모두 눈앞에서 사라졌다. 너무나 빠른 비행속도였다.
대지의 진동이 줄어들었고, 현장에 있는 아홉 성지의 사람들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이곳에 있는 빙설성지의 사람들은 갑자기 매우 고독한 느낌이 들었다. 나머지 여덟 성지의 사람들이 자신을 호시탐탐 노려보는 것을 보고 아주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여덟 성지의 사람들은 머뭇거리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대장들이 지금 연합해서 설파파를 죽이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니 자신들도 빙설성지의 사람들에게 손을 써야 할까?
여기 있는 사람들이라고 다들 멍청이겠는가. 모두 팔성의 의도를 깨달은 상태였다. 아마도 다들 설파파가 말한 ‘혹심산’에 중독된 것이 분명했다. 설파파가 무량과를 훔쳤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아마 나머지 팔성은 혹시 몰라, 연합해 설파파를 죽이려고 한 것이리라.
그때 한 사람이 날아올라 무량과수 아래 착지했다. 바로 무량원을 지키는 빙설성지의 집사였다. 그가 소리쳤다.
“빙설성지의 사람들은 모두 이곳에 와서 같이 무량과수를 지켜라!”
‘지켜라’라는 한마디가 유독 크고 의미심장했다. 그가 무량과수에 손을 올렸다.
빙설성지의 사람들은 즉시 집사의 뜻을 깨닫고는 분분히 날아올라 나무에 내려앉았다. 누군가 함부로 움직이면, 바로 무량과수를 없애버리겠다는 협박이었다.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해있던 다른 여덟 성지 사람들은 오히려 내심 안도했다. 빙설성지의 사람들은 그들에게 가만히 있을 수 있는 변명거리를 준 것이다. 나중에 상부에 할 말이 생겼다.
어쨌든 이들은 이곳에 수년, 수십 년간 밤낮으로 함께한 사이였다. 감정이 깊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친분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목숨 걸고 싸우라고 하니, 어째 내키지 않았다.
더욱이 빙설성지의 사람들이 가진 실력이 약하지 않으니, 만약 목숨을 걸고 싸운다면 어쨌든 다들 적지 않은 피를 흘려야만 할것이다.
여덟 성지의 집사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하나둘 자신의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빠져나와 멀지 않은 곳에서 머리를 맞댔다.
“어찌하는 게 좋겠소?”
“뭘 말이오? 저들이 무량과수를 ‘인질’로 잡고 있으니, 어찌 경거망동하겠소.”
“하긴, 모든 일을 너무 극단적으로 처리할 필요는 없지 않겠소. 지금 구성께서 서로 싸우고 계시고, 누가 죽고 누가 살지 아직 모르는 것 아니겠소. 만약 우리 배후의 어느 분이 그리되신다면….”
“그렇소, 잠시 기다리는 게 좋겠소.”
“이보시오. 내 말은 그게 아니오. 무량과를 도둑맞았소. 무량과가 도둑맞았단 말이오. 우리는 그 무량과를 지키는 사람들이고 말이오. 당신들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소?”
“뭘 그리 두려워하시오. 지금 꽃이 핀 것을 보면, 무량과는 삼십 년 전에 도둑맞은 것이오. 우리랑 무슨 상관이오.”
“노부는 삼십 년 전에도 여기 있었소.”
“나는 이곳에 오십 년 가까이 있었소. 당시에는 아직 집사가 아니었지.”
엽념이 미소지었다.
“하하, 그럼 당신들은 무사하길 비시오. 아무튼, 난 삼십 년 전에 여기 없었으니.”
“하아, 마치 당신하고는 상관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군. 하지만 만약 우리가 도망치겠다면, 당신은 우릴 막을 것이오, 막지 않을 것이오? 만약 최선을 다해 막지 않으면, 나중에 뭐라고 변명할 것이오? 그렇다고 최선을 다해 막으려 한다면, 우리가 연합했을 때 막을 수 있기는 하오?”
“…….”
엽념은 할 말을 잃었다.
“내게 한 가지 방법이 있소.”
“어디 말해보시오.”
“저기!”
한 사람이 나무 아래를 턱짓하며 말했다.
“팔성이 설파파의 뒤를 쫓아가지 않았소. 저들과 의논해서 저들에게 도망치라고 하고, 우리가 쫓는 척합시다. 일단 여기를 벗어난 후에, 시간을 끌면서 상황을 지켜보는 것은 어떻소.”
구성은 천하인들을 관리한다고 하지만, 천하인의 마음까지는 관리하지 못했다. 비밀리에, 비밀이 새나갈 걱정이 없는 상황에서, 무슨 말인들 하지 못할까.
이제 와 다들 목이 달아날 상황이었다. 그러니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일부 사람들은 거리낌이 없었다.
엽념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 엽념을 빤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