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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650화 (749/1,000)

1650화. 사람의 계획은 하늘의 계획을 따라갈 수는 없다

“호족? 아니, 선생님도 하나를 얻었다니요?”

왕존이 사여래를 훑어보았다. 사여래가 다시 뒤돌아 그를 바라보았다.

“그 전에 자네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보니 자네에게 쉽게 알려줄 수 없었던 것이네. 다 자네를 위해서네. 다만 이미 문제가 생겼으니, 이제는 자네도 사전에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기에 알려주는 것이네.”

“내 무량과는 아직 호족의 손에 있네. 잊지 말게. 만약 내가 잘못되더라도 자네를 위해 방법을 마련해 놓을 것이니, 만약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면, 즉시 황택사지로 도망가 호족을 찾게. 내 몫으로 남겨진 무량과를 자네가 취해야 하네. 내가 죽으면 자네는 외삼촌으로서, 반드시 환려를 잘 돌보아 주게!”

왕존이 그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선생님을 해치고 무량과를 취하는 것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만약 자네가 나를 해치려 한다면,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다만, 자네 혼자 무량과를 취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호족 쪽도 쉽게 무량과를 자네에게 건네지 않을 것이네. 그러니 나를 해치는 것은 소용이 없네. 호족도 분명 상황을 확인하고, 자네에게 줄지 말지를 결정하겠지.”

“내가 무량과를 취하는 것은 꼭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없네. 그때가 되면 나추는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고, 나도 나추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네. 사실 언젠가는 마주해야 하는 일이 있기 마련이지.”

“지금 자네에게 이런 비밀을 알려주는 것은, 혹시 문제가 생기면, 자네와 나, 둘 중에 한 사람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네. 만약 자네가 살아남으면 최대한 환려를 잘 지켜주겠다고 약속해 주게. 자네 누이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네. 나는 환려까지 어려움에 부닥치는 것을 원하지 않아. 이것이 내가 위험을 무릅쓰고 우유도와 손을 잡은 이유네.”

왕존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만약 정말 그런 상황까지 가게 된다면, 제가 설사 황택사지에 숨어든다 해도, 성경을 나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환려는 저 외부의 세계에 있으니, 제 손길이 닿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네. 지금 우유도의 세력이라면, 구성과 정면으로 싸우지만 않으면, 인간계에서 환려 하나를 보호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네.”

곧 한숨을 내쉰 그가 이어 말했다.

“무량과수에 갑자기 꽃이 핀 것은, 아마 우유도도 어찌 된 일인지 모를 것이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큰일에 대해서 사전에 아무런 이야기가 없을 수 없지. 생각해 보면 운이 좋군. 지금까지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무량과를 사용하지 않았네. 인제 보니 그건 올바른 선택이었어. 이런 일이 생겼으니 일단 나추가 돌아오면, 반드시 내 경지를 살펴보려 할 것이네. 만약 내가 원영기에 올라섰다면 피할 수 없었겠지.”

상황이 갑작스럽게 바뀌었다. 사여래는 왕존에게 수많은 일을 당부하며, 일부 비밀스러운 일을 모두 알려주었다.

알면 안 되는 일들을 알게 된 왕존의 양미간 사이에 우려가 서렸다. 만약 정말 사여래의 말대로, 우유도가 무량과에 꽃이 필 것을 몰랐다면, 이 일은 우유도의 안배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의 변고로 인해 얼마나 큰 영향이 생길지 몰랐다.

그 때문에 사여래도 자신이 죽을 때를 대비해서 당부를 거듭한 것이다.

“이런 일이 생겼으니 내가 나가서 우유도와 만나는 것이 맞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렇게 움직이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는군. 이런 큰일이 생겼는데 내가 만약 성경을 떠난다면,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자네가 우유도와 연락해 지금 상황을 그에게 알려주게나. 그렇게 그가 준비할 수 있게 해주게. 또 무량과수에 꽃이 피는 일이 혹시 그가 의도한 일인지 알아봐 주게.”

왕존이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구성이 싸웠습니다. 나추가 살아 돌아올지 알 수 없습니다. 혹시 우리도 나추가 살아 돌아오지 못할 상황을 대비해 뭔가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여래가 반문했다.

“지금 시기에 누가 감히 경거망동하겠는가? 확실한 결과가 나오기 전에 그 누구도 경거망동할 수 없네. 만약 나추가 돌아와 뭔가를 알아차린다면, 누군가 자신이 죽은 후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결과를 누가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게 아마도 나방비를 내세운 이유일 것이네.”

“우린 다른 준비를 할 필요가 없네. 그저 경계심만 높이고 있으면 그만이지. 일단 상황이 이상해지면, 일단 나추가 정말 돌아오지 못하면, 다른 성지들이 대나성지를 소탕하려고 하겠지. 그러니 우리는 언제든지 황택사지로 철수할 준비만 하고 있으면 그만이네. 더욱이, 혹심산 같은 저열한 물건으로는 나추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없네. 나는 지금까지도 나추가 혹심산에 당한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군. 그러니 그런 쓸데없는 환상은 품지 말게나.”

“또 한 가지, 자네도 당분간은 성지를 떠나지 말게. 혹시 불필요한 의심을 불러올 수 있으니, 최대한 대나성지를 벗어나지 말게.”

왕존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가서 일을 처리하게. 지금 자네를 찾아온 것은 이 당부를 하기 위해서네. 지금 나방비가 정신이 없으니 만약 내가 그녀 곁에 없으면, 다른 사람의 의심을 불러일으킬 것이야. 난 가서 그녀를 위로해야 하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왕존이 명을 받고 물러갔다.

* * *

성경에서 온 서신이 빠르게 초려별원에 도착했다.

운희는 서신을 들고 밀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우유도를 보더니 서신을 들고 있는 손을 등 뒤로 돌리고 물었다.

“물어보고 싶은 일이 있어.”

우유도가 천천히 법력을 거둬들이고, 두 눈을 떴다. 그리고 의아한 얼굴로 운희를 살펴보더니 물었다.

“무슨 일이죠?”

의아하게 생각한 것은, 운희가 이런 태도로 그와 대화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뒷짐을 지고 말이다.

운희가 다시 말했다.

“물어보고 싶은 일이 있어.”

우유도는 의아한 얼굴로 다시 그녀를 빤히 바라보더니 천천히 말했다.

“말하세요!”

“혹심산에 대해서 알고 있어?”

우유도가 멈칫하더니 말했다.

“들어봤어요. 왜요?”

“사용해 본 적 있어?”

우유도가 다시 한번 멈칫하더니, 두 눈을 번득였다. 그는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며 느긋하게 말했다.

“여자한테 주로 사용하는 아주 저급한 물건이라고 알고 있어요. 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 약에 미혹 당한 여자들이 쉽게 화를 당한다고 알고 있지요. 설마 내게 그런 물건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정말 사용한 적이 없어?”

“세상천지에 내가 원하는 여자를 손에 넣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건가요? 내가 원하기만 하면…. 그런 물건이 필요할까요?”

“난 여자라고 말한 적 없어. 예를 들어 성경에서 사용한 적이 있는 거야?”

우유도의 얼굴에 경각심이 떠올랐다. 그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뒤에 뭘 숨기고 있는 건가요?”

“사용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잖아.”

“성경에서 온 소식이군요?”

우유도는 질문과 동시에 손을 내밀었다. 운희는 결국 관방의가 평소 보이던 모습처럼, 혀를 차며 말했다.

“정말로 네가 한 짓이군. 무량과를 도둑맞은 일이 폭로되었어. 구성이 혹심산에 중독되어 서로 싸웠다고 하는군.”

운희가 등 뒤에 있는 서신을 건넸다.

멈칫한 우유도가 빠르게 서신을 받아 내용을 살피더니, 그대로 침상을 내려와 서신을 들고 주변을 서성였다.

운희는 그런 우유도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보았다. 정말 감탄밖에 안 나왔다. 위풍당당한 구성이 우유도 때문에 혹심산에 중독되다니, 정말 못하는 짓이 없는 사람이었다.

사실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있었다. 다른 독도 많은데, 왜 하필 혹심산 같은 저급한 역할을 하는 물건이었을까.

혹심산으로 구성을 중독시키다니, 그런 뻔뻔스러운 생각을 하다니, 이게 도대체 장난인 거야. 아니면 농담인 거야?

퍽! 서신을 보고 이리저리 서성이던 우유도가 서탁을 내리쳤다. 그의 얼굴에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우유도가 한이 맺힌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식으로 공든 탑이 무너지다니, 구성의 목숨이 참으로 질기구나!”

운희는 마음속의 호기심을 참지 못했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일이었기 때문에 우유도에게 물었다.

“다른 독도 많은데, 왜 하필 혹심산인 거야?”

우유도가 냉소 지으며 반문했다.

“그럼 어디 누님이 한번, 먹지 않고 신체 접촉으로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극독이 있으면 찾아와 보세요. 그런 것이 있나요? 만약 있으면, 제가 혹심산을 사용할 이유가 있었겠나요?”

운희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혹심산을 사용할 필요는 없잖아. 설마 그런 저급한 물건으로 구성을 죽일 수 있단 말이야?”

우유도가 코웃음을 쳤다.

“전 다만 일정 시간 동안 그들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보호 능력을 상실하게 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어쨌든 저는 무량과를 손에 넣어, 수많은 원영기 고수를 만들어 낼 수 있지요. 제가 만약 사람들을 사전에 성경으로 밀어 넣고, 무량과가 도둑맞았다는 것을 밝혔다면, 그렇게 시기만 잘 맞출 수 있었다면, 어쩌면 한방에 모든 걸 처리할 수 있었겠지요. 저도 그들이 이 독에 중독될 수 있겠다고 확신을 한 건 아니에요. 다만 혹시라도 기회를 만들 수 있을까 하고 한 수를 남겨 놓은 것뿐이지요.”

운희는 우유도가 혹심산을 사용한 의도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일단 기회가 온다면, 무량과가 도둑맞은 일을 밝힐 수 있었다. 이후, 구성이 우유도의 계획대로 중독된다면, 그때 무량원 외부에 적절한 안배가 되어있다면, 구성을 압박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어디로 도망치든지 간에 우유도에게 감시당할 것이고, 우유도가 성경에 밀어 넣은 원영기 고수들이 그 기회에 그들을 죽일 수 있었다!

“이걸 이런 식으로 이용하려 하다니, 정말 대단히 악독한걸?”

운희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이게 칭찬인지, 조롱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방금 물었을 때는 끝까지 모른 척하더니, 정말 대놓고 들키지 않았다면, 끝까지 입을 다물었겠어!”

“이건 제가 남겨 놓은 살초(殺招)였어요. 여기저기 광고하고 다닐 필요 없지 않겠어요?”

우유도가 불만스럽다는 듯이 한마디 하더니 곧 하늘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저들 구성이 정말로 그렇게까지 추태를 보일 줄 몰랐네요. 다만 하늘이 그들의 목숨을 구한 것이 너무 아쉽군요!”

“그래도 쓸모가 있었어. 최소한 네 이간계에 걸려들어, 팔성이 같이 설파파를 뒤쫓아 갔다고 하지 않았어?”

우유도가 고개를 저었다.

“설사 정말 설파파를 죽일 수 있다 한들, 구성과 팔성이 무슨 차이가 있겠어요?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참으로 답답하네요. 무량과수는 무량과를 딴 후에 삼십 년이 지나야 꽃이 핀다더니, 지금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꽃이 핀단 말인가요? 사람이 아무리 거창한 계획을 세운들, 하늘의 계획을 따라갈 수는 없다는 말이 참으로 맞는 것 같습니다!”

우유도의 말투에 아쉬움이 절절히 묻어났다. 우유도가 지금까지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아쉬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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