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8화. 두려운 흑막
변장한 남명이 내성을 나와 객잔 뒷문으로 들어섰다.
좌우를 한번 살핀 그가 정 6호 객실 입구에서 문을 두드렸다.
그 시각, 한창 창문 앞에 엎드려 목표를 관찰하던 제자가 지금 누군가 목표와 만나려 한다는 상황을 알렸다.
이정법은 즉시 입구에 딱 붙어 문틈으로 맞은편을 관찰했고, 그도 곧 누군가 객실 문을 두드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편, 제갈지도 소리를 듣고 입구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그는 역용을 하고 찾아온 사람과 눈빛을 교환했다.
잠시 후, 제갈지는 방문객을 객실로 들이고 문을 닫았다.
남명은 안으로 들어와 객실을 한번 둘러본 뒤, 다시 상대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상대의 체형은 당시 낭호에서 본 사람과는 달랐다.
남명이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제갈지는 쓸데없는 말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그대로 얼굴에 쓰고 있던 가면을 뜯어내 진짜 얼굴을 보여주었다.
남명은 멍한 얼굴로 상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명은 대경실색하고 말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그대로 제갈지를 가리키며 말까지 더듬거렸다.
“다……, 당신은 제갈지?”
최근에 제갈지와 해무극의 수배 초상화가 만들어져 각지에 붙었다. 무변각이라고 다를 것이 없었으니, 남명도 당연히 그 초상을 본 적이 있었다.
물론 초상화와 다소 다른 부분이 있긴 했지만, 대략적인 부분은 비슷했다. 더군다나 그쪽에서 제갈지를 데려갔다는 것까지 생각이 미치자 당연히 의심스러운 답안을 도출할 수 있었다.
제갈지는 숨기지 않고, 계획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네가 바로 제갈지요.”
순간 크게 당황한 남명이 얼른 가까이 다가가 조용히 분노를 드러냈다.
“미쳤소? 여기저기 당신을 찾는단 걸 모르오? 감히 여기로 오다니!”
남명은 지금 제갈지가 잡혀들어갈까 걱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혹시라도 자신이 얽힐 것을 걱정하는 것이었다.
남명이 이곳에 온 것은 자신이 협조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웬 말인가. 눈앞에 제갈지가 나타나다니, 해도 해도 장난이 너무 심한 것 아니던가.
제갈지는 조용히 그를 바라보며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손을 뻗어 남명의 어깨를 붙잡고 그가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남명은 대경실색하며 말했다.
“뭘 하려는 거요! 여긴 당신이 함부로 날뛰어도 되는 곳이 아니오!”
제갈지는 다른 뜻이 없었다. 그저 남명의 가면을 벗겨내 상대의 신분을 확인해 보려는 것이었다.
제갈지 역시 우유도 쪽에서 제공한 남명의 초상화를 확인했었다.
이내 상대가 남명임을 확인한 제갈지는 힘을 풀고 가면도 다시 돌려줬다.
남명은 크게 분노했지만, 차마 화를 낼 순 없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도대체 왜 날 찾아온 것이오?”
“가장 위험한 곳이 가장 안전한 곳이지. 앞으로 무변각에 머물 생각이오. 신세 좀 지겠소.”
남명이 이를 악물었다.
“장난하시오? 이곳이 뭐 하는 곳인지 모르는 것이오? 얼마나 많은 이목이 지켜보는 곳인데! 죽고 싶어도 나까지 끌어들이지 마시오. 절대 허락 못 하오!”
남명은 단호하게 반대했다. 제갈지가 무슨 말을 해도 들을 생각이 없다는 태도였다. 결국 두 사람 모두 결론을 짓지 못하고 헤어졌다.
“빨리 여기서 떠나시오!”
마지막으로 이 말을 남긴 뒤, 남명은 다시 가면을 쓰고 신속히 도망쳤다.
문 앞에 서 있던 제갈지는 천천히 밖을 살핀 후에 문을 닫았다.
* * *
입구에 딱 붙어 밖을 살피던 이정법은 제갈지의 얼굴을 확실하게 확인했다. 목표가 입었던 의복을 입은 제갈지는 자신의 원래 얼굴을 보이며 문 뒤로 사라졌다. 이정법은 천천히 문에서 떨어지며 눈살을 찌푸렸다.
“저 사람 얼굴이 왜 이렇게 눈에 익지?”
그때, 창문에 얼굴을 붙이고 있던 제자의 안색이 급변했다. 제자는 즉각 자리에서 일어나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장로님, 수배 초상화의 그 사람입니다!”
사실 이정법도 천천히 생각했다면, 충분히 떠올릴 수 있는 부분이었다. 어쨌든 전 조국의 잔당이라는 단서를 따라서 온 것이니까.
그렇게 제자의 말을 들은 순간,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제갈지!”
제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합니다! 틀림없습니다. 숨어 있던 조국 인원의 밀정 명단을 내놓으라고 할만한 사람을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정법의 두 눈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만약 정말 제갈지를 발견한 것이라면, 이건 큰 공로였다.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는 크게 기뻐하며 방안을 서성였다.
“생각지도 못했구나! 정말로 생각지도 못했어. 노력은 뜻있는 사람을 저버리지 않는다고 하더니, 내가 대어를 낚았구나!”
손바닥을 비비며 이정법은 고민했다. 직접 잡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했다. 일단의 사람들이 달려들어도, 아마 순식간에 살해당할 게 뻔했다. 그러니 이건 상부에 보고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 전에 조국 밀정과 접선한 표묘각의 사람을 생각하며, 그는 자신도 모르게 혀를 끌끌 찼다.
“과연 표묘각과 결탁을 하고 있었구나. 어쩐지 그 전에 밀고를 받고 도망치더라니, 정말 대담해. 감히 무변각에 숨어 있다니! 그러고 보니, 방금 저 사람과 만난 자는 누구란 말이지? 혹시 다른 곳에서 감시하는 제자들이 뭔가를 알고 있는지 한번 알아보거라.”
“알겠습니다!”
제자가 명령을 받고 움직였다.
* * *
내성으로 돌아왔지만, 남명은 대문 입구를 지키는 시위에게 저지당했다.
물론 시위들도 역용한 남명이 나가는 걸 봤지만, 역용한 사람이 드나드는 것에 문제가 있을지 없을지 누가 안단 말인가. 당연히 조사해야만 했다.
나가기는 쉽지만, 다시 들어가기는 쉽지 않았다.
그때 한쪽에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두 시위가 돌아보자, 그곳에 남명을 기다리고 있던 총관 반해가 눈짓을 하고 있었다.
두 시위는 즉시 남명을 들여보냈고, 남명은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 이후 한쪽에서 몸을 드러낸 반해가 그의 뒤를 쫓아갔다.
* * *
문이 열리고, 두 제자가 들어왔다.
여태 객실 안에서 기다리던 이정법은 황급히 물었다.
“목표와 접촉한 사람이 만나는 모든 이를 감시해야 한다. 성과가 있느냐?”
제자는 고개를 저었다.
“더는 감시할 수 없었습니다.”
“설마 무변각을 떠난 것이냐? 그럼 떠난 방향을 확인하고, 날짐승을 이용해 앞질러 가서 매복하면 되지 않느냐?”
제자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목표와 접촉한 사람은 무변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대로 객잔 뒤에 있는 내성으로 들어갔습니다.”
“뭐라?”
이정법이 멈칫했다. 경악한 그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과연 표묘각과 결탁을 했구나. 어쩐지 이곳에 숨어들었더라니. 인제 보니 무변각 내부에 내통자가 있는 것 같구나.”
그러자 감시를 맡은 제자가 덧붙여 말했다.
“장로님, 제가 보기에 내통자는 무변각의 총관 반해 같았습니다!”
이정법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반해?”
“그렇습니다! 예전에 이곳을 오가면서 본 적이 있습니다. 틀림없이 반해였습니다. 목표와 만난 사람이 내성으로 들어간 후에 반해가 직접 그를 마중하더니 같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순간 가면 아래 이정법의 얼굴이 급변했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반해가 직접 마중을 나와 같이 들어갔다고?”
제자가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확실합니다. 제가 직접 봤습니다.”
이정법은 뭔가를 깨달은 듯 다시 물었다.
“반해가 그 사람을 어찌 대하더냐?”
“두 사람이 워낙 빨리 들어가 오랜 시간 관찰할 수는 없었습니다. 멀리서 보기엔 그 사람에게 어느 정도 예를 갖추는 것 같았습니다. 또 움직일 때 그 사람 뒤를 따라서…….”
이젠 제자도 뭔가 깨달은 듯 말을 멈췄다. 그의 눈에도 경악이 서렸다.
“허…….”
이정법이 숨을 크게 들이쉬며 객실에 같이 남아있던 제자와 눈빛을 교환했다. 두 사람 모두 눈빛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반해가 누구인가. 무변각의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였다. 그런 반해가 직접 나와 마중한 것만 해도 이목을 끌만한 일인데, 예를 차리고 뒤따라 움직이기까지 했다고?
과연 무변각에서 반해가 그런 대우를 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목표와 만난 사람의 신분에 대해 더는 생각하기도 두려울 지경이었다.
감시를 맡은 제자는 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전에 여기서 맞은편 객실을 관찰할 때 함께 있지 않아서 두 사람이 누구를 봤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오히려 상대가 아직 깨닫지 못한 줄 알고 크게 외쳤다.
“장로님, 목표와 만난 사람은 무변각의 각주 남명인 것 같습니다!”
“닥쳐라!”
갑자기 소리치는 이정법을 보고, 제자는 몹시 어리둥절했다. 그러다 곧 사형이 자신에게 쓸데없이 입을 놀리지 말라며 연신 손사래 치는 것을 보고, 그냥 입을 다물었다.
이정법은 깊은 고민에 잠겨 주변을 서성였다. 남명? 남명은 또 어떤 사람이던가. 구성 중 한 명인 남도림의 아들이었다!
방금은 그저 제갈지가 만난 사람이 무변각 내부의 내통자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젠 그 내통자가 남명일 가능성이 아주 농후해졌다. 그야말로 매우, 아주 곤란한 상황이었다.
왜 하필 남명이란 말인가!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얼마 전 구성이 직접 만든 포위망을 벗어난 제갈지의 배후가 정녕 남명이라고……? 만약 정말 남명이라면, 그건, 남명과 제갈지가 손을 잡았다는 의미였다!
이정법은 이번 일이 아주 고약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이번 일에 남명이 얽혀있었다. 일단 이번 일을 밝혔다가 남명이 처리된다면, 그의 행동은 남도림의 노여움을 불러올 수 있었다.
남도림은 그가 감히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백천곡이 다 달라붙어도 감히 털끝 하나 건드려선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는 무의식중에 매우 두려운 흑막에까지 생각이 닿았다. 이정법은 자신도 모르게 오한이 들었고 후회했다. 창자가 썩어들어 가는 것 같았다. 애초 장문인의 말을 듣지 말 것을, 후회가 밀려왔다.
왜 하필 이번 일에 개입했단 말인가! 이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져들었다.
이건 더 이상 시간 안에 처리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번에 동원한 인원이 너무 많았다. 이번 행동을 표묘각이 모를 것이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는 남명의 일을 밝혀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려웠다. 하지만 이번 일을 숨겼다가 나중에 들킨다면 그것 역시 참담한 처지가 될 것도 분명했다.
호랑이 등에 탔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는 이번에야말로 깊이 깨달았다.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두려움이 치솟고 있었다.
“지필묵을 가져와라!”
이정법이 뒤돌아 소리쳤다. 그는 직접 장문인에게 보고해, 장문인의 결정을 물어보고자 했다.
* * *
내성으로 돌아가 방으로 들어온 남명은 변장을 벗어버리고 이를 갈았다.
“각주님,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반해가 다가와 물었다.
이내 남명이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누가 왔는지 아느냐? 빌어먹을, 제갈지였다!”
반해가 대경실색했다.
“아!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왔답니까! 죽고 싶어 환장한 겁니까?”
남명이 소리 내 웃었다.
“하하! 겨우 죽고 싶어 환장했을 뿐일까. 아마 나까지 죽이고 싶어서 환장한 거겠지. 그러면서 가장 위험한 곳이 가장 안전한 곳이라더군. 여기서 장기간 묵고 싶다며 나보고 안배해달라고 했다. 그 빌어먹을 자라 새끼가!”
반해는 매우 놀랐다.
“각주님, 절대 허락하시면 안 됩니다. 일단 표묘각에 들키면 어찌 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남명은 곧 가볍게 탁자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 정도로 정신이 없진 않아, 당연히 거절했지. 다만 문제는 우리한테 그를 쫓아낼 방법이 없다는 거야. 아직 내가 확실하게 거절한 것은 아니니 잘 감시해라. 언제라도 떠나면 내게 즉시 보고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반해가 즉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