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5화. 성나찰을 시험해 보자
천남성지.
이곳은 아무도 없이 텅텅 비어 있었다. 남도림의 서신을 받은 후, 거의 다 도망쳐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쪽에 있는 금속 우리 안엔 8명이 갇혀 있었다. 나추의 딸 나방비, 오상의 수하 장로 흑석, 설파파의 양자 백무애, 원색의 수하 원비 등등. 아무튼 8대 성지의 중요 인물 모두가 남도림에게 잡혀 왔다.
8대 성지도 남도림이 이렇게 갑자기 습격할 거라곤 예상치도 못했다. 그 탓에 이토록 무방비하게 이런 상황을 맞은 것이었다.
지금 남도림은 뒷짐을 지고 우리 위에 서 있었다. 바로 그의 발아래, 8명이 있었다. 그는 지금 언제든 금제 당한 8명을 손쉽게 죽일 수 있었다.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감히 장담할 수 있었다.
곧이어 독무허를 포함한 팔인이 나타났다. 그들의 본거지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는, 생각할 것도 없이 달려온 것이었다.
이윽고 눈앞의 장면을 본 팔인의 안색이 굳어졌다.
“아버지!”
우리 안에 갇힌 나방비가 소리쳤다.
굳은 얼굴의 나추는 딸의 두 눈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딸이 무사한 것을 보고는 별말 하지 않았고, 어떠한 감정을 내비치지도 않았다.
설파파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남도림, 무슨 의도냐?”
남도림은 담담히 말했다.
“글쎄, 오히려 내가 너희에게 무슨 의도인지 묻고 싶군! 만약 이대로 반목하고자 한다면 언제든 어울려 주지. 너희 8명을 이기진 못할지 몰라도, 내가 도망치고자 한다면 나를 막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겠느냐?”
강경하게 나올 시 일단 눈앞의 8명부터 죽여버리겠다는 태도였다.
이에 목연택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풀어줘라!”
남도림이 냉소를 지었다.
“풀어줘? 네놈들이 먼저 수작을 부려놓고, 인제 와서 그리 간단히 풀어 주라고 하면 그만인가?”
장손미가 나섰다.
“우리 영역에 가서 우리 사람을 죽였다. 숫자도 적지 않지. 이제 그만하라고 경고하고 싶군. 선을 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너희들은 이번 기회에 나를 죽이려고 했다. 누가 선을 넘은 것이냐?”
이번엔 설파파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결하고 싶은 것이냐?”
“난 어찌 돼도 상관없다. 문제는 너희들의 태도지!”
독무허가 물었다.
“설마 아들을 살리고 싶은 것이냐?”
“규칙은 규칙이지. 아들이 한 짓이 확실하다면 마음대로 처분해도 상관없다. 내가 잘 가르치지 못한 탓이니 책임지고 무변각 통제권을 내놓겠다.”
나머지 사람들은 입이 썼다. 그들이 싸우는 통에 무변각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데, 그걸 내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팔인은 서로를 한번 돌아보고, 다시 우리 안에 있는 자신의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이들은 결국 눈빛으로 의견 일치를 보았다.
쿵쿵-
설파파가 지팡이로 땅을 쿵쿵치며 말했다.
“좋다! 그렇게 하기로 하지. 이제 풀어줘라!”
“어려울 것 없지! 이제 여긴 나 혼자니, 이들은 일단 나와 잠시 같이 있어야겠다. 너희가 일으킨 소란을 진정시키기만 하면 이들은 즉시 풀어 주마.”
더는 말할 것도 없었다. 팔인도 조용히 각자 자신의 영역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너 죽고 나 살자는 싸움이 간단하게 끝났다. 남도림은 협공받은 일에 대해 크게 따지지 않았다. 팔성 역시 남도림이 여덟 성지의 사람들을 죽인 일을 따져 묻지 않았다. 나름 공평한 처사인 셈이었다.
팔성은 다시 구성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이대로 멈추고 싶지 않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 전에 남도림을 죽일 수 없었으니, 이제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구성 중 누가 나머지를 모두 죽이고 유아독존 하고 싶지 않을까. 다만 그것이 너무 어려울 뿐이었다.
과거 원영기에 오른 수행자들이 적지 않았다. 다만 큰 파도가 숱하게 몰아친 끝에 결국 이들만이 살아남은 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들은 과거 가장 강한 실력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각자 자신의 목숨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은 가장 뛰어났다. 이것이 끝내 팔인이 협공해도 남도림을 죽이지 못한 제일 큰 원인이 되었다.
지금도 이들은 확신이 없었다. 확신이 없는 상태의 싸움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심복마저 잃을 수 있었다. 손해는 손해대로 보고, 벼랑 끝에 몰린 남도림은 골칫거리로 밖에 남지 않을 터였다.
사실 정말 협공해서 남도림을 처리할 수 있었다면, 팔성은 인질의 생명 같은 건 절대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었다.
아무튼 남도림을 놓친 후, 팔성이 홀로 떨어졌을 때 그가 다시 습격해 온다면 누가 손해를 볼지는 알 수가 없었다.
지금 구성과 표묘각의 존재는, 바로 이들 아홉이 서로를 어쩌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기형적으로 생겨난 것이었다.
떠나기 전, 오상이 남도림을 힐끗 바라보았다.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사람들을 부추긴 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음을.
* * *
초려별원.
운희가 빠르게 밀실로 들어와 밀서를 건넸다.
“성경 쪽에서 보내온 소식이야.”
‘드디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우유도는 돌연 눈을 번쩍 떴다.
무변각에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장면을 목도한 사람이 너무 많았다. 구성끼리 싸움이 일었고, 팔성이 남도림을 협공한 것은 이제 더 이상 비밀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천하가 흔들린 것이다.
우유도가 통제하는 문파 중 무변각에 상점이 있는 문파들도 있었다. 그들이 사건이 발생한 이후 가장 먼저 우유도에게 소식을 전해왔다.
물론 그 후의 상황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우유도는 팔성이 남도림을 처리했는지 당장이라도 알고 싶었다. 하지만 사여래가 보내온 소식은 실망스러웠다. 팔성은 결국 협공해도 남도림을 처리하지 못했다. 무변각에서 성경으로 도망친 남도림은 가장 먼저 8대 성지의 인질을 잡았고, 그렇게 양측은 협상했다.
우유도는 천천히 서신을 내려놓고 침묵했다. 두 눈에도 실망이 역력했다.
처음 무량과가 도둑맞았다는 걸 들켰을 때, 팔성이 설파파를 협공했을 때, 우유도는 기대를 품었다. 그는 당시 팔성도 중독이 되었기 때문에 설파파를 죽이지 못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팔성이 남도림을 협공했건만 그를 죽이지 못했다. 이를 통해 우유도는 근본적인 문제를 깨달았다. 구성은 그 누구도 쉽게 다른 구성일원을 죽이지 못하는 것이었다.
운희는 우유도가 드물게 침울해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네가 원하는 대로 서로 이간질에 성공했는데 왜 그리 혼이 빠져나간 것 같은 모습이야?”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우유도가 하늘을 보며 장탄식을 뱉었다.
“하……. 이걸 보고도 모르겠나요? 구성은 각자 특별한 능력이 있어, 그들을 죽이는 것이 어렵다고요!”
운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그건 당연하지, 만약 구성을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면, 지금처럼 천하를 오랫동안 통치할 수 있었겠어?”
우유도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군요.”
“그게 무슨 말이야?”
우유도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모르겠나요? 팔성이 협공해도 겨우 한 사람을 죽이지 못했어요. 그들의 능력이 어떠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죠. 우리 손에 있는 이들 원영기 고수는 말할 것도 없고요. 저는 설사 원영기 수행자 100명이 있다고 해도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할까 걱정이네요!”
그는 이미 계산을 끝냈다. 팔성이 한 사람을 죽이지 못했다. 그리고 우유도가 지금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을 모두 동원한다 한들 팔성보다 강하겠는가?
운희도 심각성을 깨닫고 침묵했다. 원영기와 원영기 사이에도 큰 차이가 있었다. 그게 아니면 운희도 구성을 마주하는 걸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금단기 수행자와 마찬가지였다. 똑같은 금단기 수행자이지만, 금단기 수행자 100명으로도 금단기 수행자중의 절정 고수를 이길 거라 장담할 수 없었다.
구성은 천하를 영역으로 삼고 오랜 세월을 지났다. 그러나 여태 그들을 넘어뜨린 자가 없다는 게 모든 걸 설명했다. 그녀와 같은 사람은 아무리 오랫동안 수행에 힘쓴다고 해도 절대 구성 앞에 나서지 못할 터였다.
운희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중요한 건 구성들 자신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그들의 실력이 어떠한지 알 수 없다는 거지. 새롭게 원영기에 오른 사람 중에 누가 감히 먼저 그들을 도발하겠어? 잠깐만. 성나찰, 성나찰로 시험해 보는 건 어때?”
우유도는 진작 그럴 계획이 있었다. 다만 지금까지 결심을 내리지 못한 건 만약 그 먹보가 구성을 상대하지 못한다면, 그건 먹보를 죽음으로 내모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이제는 시도라도 해봐야 했다.
우유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한번 시도해 보지요! 그렇지만 성나찰은 통제할 수가 없으니, 저도 성나찰이 구성을 상대할 수 있는지 없는지 확신할 수가 없네요.”
운희는 다소 걱정스레 말했다.
“만약 성나찰도 그들의 상대가 아니라면, 더는 방법이 없어 보이네.”
“어렵긴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운희의 눈이 번뜩였다.
“방법이 있어?”
우유도는 고개를 저으며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2가지 방법이 있었다. 하나는 우유도 그 자신이 원영기에 오르는 것이었다. 그럼 구성을 한번 상대해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지금 무량과수에 꽃이 피었고, 우유도가 세운 계획이 뒤틀렸다. 우유도가 원영기에 오를 때까지 저들이 기다려 줄지 모르는 상황이 된 것이다.
또 하나는 구성을 다섯 영역 중 한 곳에 봉인해, 다신 못 나오게 막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반드시 구성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전제하에, 성신령, 양천척, 복전장, 정신주와 파공검을 손에 넣어야만 실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물건들이 다 일국의 진국신기였다. 아주 깊숙이 숨겨져 있었으니, 구성 몰래 손에 넣는다는 건 아예 불가능에 가까웠다.
또 신기를 보유한 각국에선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제대로 한번 보기도 어려웠다. 구성과 신기를 보유한 자가 아닌 이상, 쉽지 않았다.
오상조차 산하정을 이용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지 않았던가. 천영이 산하정을 빌린 배후에 누가 있는 건지 우유도가 모를 수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불가능에 가깝다고 해도 우유도는 그쪽으로 최대한 준비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해무극에게 성신령을 받아내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이것이 우유도가 제갈지를 구한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그렇게 고민하던 우유도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성나찰로 시험해 보지요.”
순간 운희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얼굴에 두려운 빛이 드리웠다.
“성나찰을 다시 데리고 나오려면, 또 그 여인과 싸워야겠지?”
그녀는 우유도가 성나찰에게 중상을 입었던 상황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우유도는 정말이지 하마터면 죽을 뻔했었다.
우유도가 인상을 썼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성나찰을 데리고 나오려고요?”
운희가 멈칫했다.
“데리고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데리고 나옵니까? 일단 성나찰의 본래 모습이 나타나면, 미쳐 날뜁니다, 절대 통제할 수 없어요. 더욱이, 성나찰이 구성을 상대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 성나찰을 데리고 나오는 건 그 여인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접몽환계는 그 여인 영역입니다. 성나찰은 무수한 접나찰을 거느리고 있어요. 그러니 차라리 접몽환계에서 구성과 싸우는 것이 더 안전합니다.”
“네 말은 구성을 환계로 끌어들이자는 거야?”
우유도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그건 어렵지 않지요. 문제는 구성의 협공을 성나찰이 견딜 수 있느냐 없느냐지요. 그 여인이 홀로 구성의 협공을 견딜 수 있다고 보시나요?”
운희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군. 아무튼, 나는 성나찰의 상대가 아니야.”
우유도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럼 구성을 모두 끌어들이면 안 됩니다.”
“그걸 어떻게 통제해?”
“구성은 절대 무량과의 일에 손을 놓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원래 계획을 계속 진행하면서…….”
동문서답하던 우유도가 잠시 고민한 후에 말을 이어갔다.
“소문을 내야겠어요. 성경에서 30년 전 무량과 12알을 도둑맞았고, 천하에 이미 원영기 고수 12명이 숨어 있어 세력을 만든 후 인심을 이반시키려 한다고요. 누님은 이번 일에 신경 쓰지 마세요. 홍랑에게 시킬 겁니다. 남명이 건네준 두 윗선도 있지요. 그들과 연락을 취해주세요, 만나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