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7화. 암류가 휘몰아치는가
곧이어 해무극이 사람들에게서 좀 떨어진 길가에 수레를 세웠다.
“고생을 시켜드렸습니다.”
제갈지도 해무극이 수레를 끌 때 손에 있는 굳은살을 본 것 같았다.
해무극이 미소를 지었다.
“목숨을 잃는 것보다 낫지. 난 자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약하지 않아. 과거 연국에서 인질로 있을 때, 지금보다 훨씬 힘들었지. 귀국한 후에 모후를 뵈었을 때, 내 모습을 보시고 크게 상심하시어 눈물을 보이셨었어……. 하……, 모후를 뵙고 싶군.”
“가지 않는 게 좋습니다. 최소한 지금은 말입니다. 서신도 안 됩니다. 지금 태후 쪽은 표묘각이 미끼로 사용하고 있을 겁니다. 가지 않으시는 것이 모두에게 좋습니다. 일단 표묘각 손에 잡혀들어가면, 태후의 목숨도 끝났다고 보시면 됩니다. 얽혀있는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을 것입니다. 그러니 잘 살아 계시는 것이 태후도 잘 살아 계실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해무극이 고개를 끄덕였다.
“땅에 떨어진 봉황은 닭보다 못한 법이지. 일반 백성들조차 아무리 힘들어도 가족과 같이하건만, 나는 집안이 망하고, 처자식과 생이별했을 뿐만 아니라 처와 딸은 누군가의 노비가 되어 학대를 받거나 노리개가 되었을 테고, 아들과 손자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했을 거야. 나 자신은 친인을 만날 자격조차 강탈당했고. 과거 일을 생각하면 그저 개탄할 뿐 무력하고 무력하구나.”
제갈지는 해무극의 고통을 이해했다. 그 이유로 줄곧 나라를 다시 세우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그러다 결국 제갈지가 마음속 의문을 밖으로 꺼냈다.
“여기 온 후에 제가 떠나기만 하면 불안해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어찌 이리 담담하십니까?”
해무극은 좌우를 살피고 말했다.
“상령을 이미 저들에게 주었네. 그러니 저들에게 기대를 품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어. 담담하지 않으면 어쩔 것인가?”
“네?”
제갈지가 깜짝 놀랐다.
* * *
표묘각 일행 아홉이 백천곡에서 날짐승 3마리를 나눠 타고 날아올랐다.
그들은 남명과 제갈지의 일 때문에 이곳을 방문했다. 이정법이 제공한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반드시 확인이 필요한 일들이 있었다. 어쨌든 남도림이 연루된 일이니, 의문점이 있다면 확실히 조사해야 했다.
백천곡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선에서 날짐승 한 마리가 다가오더니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날기 시작했다.
표묘각 일행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그 날짐승 위에 한 사람이 타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복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9명 모두가 위기감을 느꼈다.
“누구냐!”
일행을 이끄는 사람이 소리쳤다.
복면인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움직이기만 했다.
휙-
어찌나 빠른지, 그 움직임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흡사 벼락과 같은 움직임으로 손을 움직였을 뿐인데, 곧 비명이 3번 연이어지는가 싶더니 날짐승 3마리가 허공에서 목숨을 잃었다.
복면인은 허공을 격하고 연격을 퍼부었고, 표묘각 일행 중 그의 일격을 버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적의 힘을 확인한 생존자들은 그 길로 도망쳤다.
그러나 복면인은 생존자들을 뒤쫓지 않고, 허공에서 다시 자신이 타고 온 날짐승을 쫓아가 천천히 비행 고도만 낮추었다.
그렇게 지면에 도착해 주변을 순찰하듯 둘러보니, 저 아래 일단의 복면인들이 도망치던 표묘각 인원을 포위 공격하고 있었다.
* * *
백천곡 의사대전 내부.
현재 고위층들이 모여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회의는 장문인 음여술이 우려 가득한 얼굴로 진행 중이었다.
당연했다. 며칠 전 표묘각 사람들이 찾아와 조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 또 표묘각에서 사람이 왔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먼저 온 사람들이 돌아갔는지 묻고 있었다. 백천곡은 당연히 돌아갔다고 대답했다.
양측이 만나 이야기를 나눈 순간, 즉시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진작 돌아가 보고했어야 할 사람이 갑자기 사라졌다. 이게 무슨 상황일까.
백천곡도 당연히 인원을 동원해 그들을 찾으려 했다.
“장문인, 찾았습니다!”
한 장로가 의사대전에 뛰어 들어왔다. 그의 등장으로 회의가 멈췄다.
음여술이 다급히 물었다.
“어디 있던가. 어째서 표묘각으로 돌아가지 않은 것인가?”
장로는 발을 구르며 말했다.
“여러분, 큰일 났습니다. 서남 방향 100리 밖에 있는 곳에서 날짐승 3마리와 시신 5구를 발견했습니다. 그중에 네 사람은 흔적도 찾을 수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당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대경실색했다.
“뭐라? 그들이 표묘각의 사람인 게 확실한가?”
장로는 시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확실합니다. 그 흔적을 찾지 못하다가, 부근에 사는 사냥꾼이 우연히 시신을 발견하고 우리 쪽에 신고한 것입니다. 제가 직접 가서 확인했습니다. 저번에 우리 쪽을 방문한 표묘각 일행이 확실합니다.”
“감히 누가 표묘각을 건든단 말인가! 날짐승조차 죽여버리다니, 누가 감히 그처럼 간덩이가 부었단 말인가?”
누군가 놀라 소리쳤다.
사실 누가 그렇게 간덩이가 부은 건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크게 당황했다. 표묘각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조사를 진행했고, 아직 조사 내용을 가지고 돌아가기도 전에 더 머나먼 곳으로 떠나버렸다.
백천곡은 이번 사건과의 관계를 부정할 수 있을지조차 불분명해졌다.
* * *
후진국 경내, 한 산골 내부.
이곳에 표묘각 인원 10여 명 정도가 모여있었다.
그때, 입구에 한 복면인이 나타나 누군가를 가리키며 굳게 소리쳤다.
“너, 나와!”
지목당한 사람이 분노하며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너희는 도대체 누구냐. 우리 신분을 아느냐!”
하지만 복면인은 신분이 뭐든, 일단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 것을 보고 그대로 들어와 소리친 사람을 끌고 나갔다.
* * *
그렇게 동굴 밖으로 끌고 간 사람을 피비린내 나는 협곡으로 데려갔다.
땅에는 이미 표묘각 옷을 입은 시신들이 쓰러져 있었다. 여전히 선혈이 흐르고 있는 것을 보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바닥에 강제로 무릎 꿇린 사람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 앞에는 복면을 쓴 사람이 서 있었다.
복면인이 곧 핏물 가득한 검을 그의 목 앞에 갖다댔다.
“어디, 내가 흥미로워할 만한 것을 말해봐.”
무릎 꿇린 사람은 이를 갈며 말했다.
“도대체 뭘 알고 싶은 것이냐.”
복면인이 냉소 지었다.
“뭐든지, 네가 알고 있는 거라면. 표묘각 규율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은밀한 것이라면 뭐든 상관없다. 말하지 않으면 저렇게 될 거란 것만 알아라.”
복면인이 검 끝으로 뒤에 있는 시신을 가리켰다.
* * *
초려산장 밀실.
운희는 우유도가 직접 적은 밀서를 살펴봤다. 그녀가 알아볼 수 없는 초서(草書)였지만, 내용은 대략 알고 있었다. 방금 우유도에게 물어보았기 때문이다. 이 서신은 원강에 보내는 것이었다.
운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원숭이에게 여무쌍을 유인하라니. 만약 나중에 이 일이 밝혀지면, 여무쌍은 원숭이를 의심하지 않을까?”
“의심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확인할 수도 없지요. 중요한 것은, 그 여인이 원숭이에게 시키려는 일은 비밀로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의심스러워도 가슴에 묻어둘 수밖에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만약 원숭이가 내 지시대로만 움직인다면 아무 일 없을 겁니다!”
“너조차 원숭이를 걱정하지 않는다면, 나도 걱정할 것 없겠지. 설사 원숭이에게 문제가 생긴다 해도 너를 배신하지는 않을 테니까.”
몇 마디 중얼거린 운희가 우유도가 시킨 일을 처리하러 움직였다.
* * *
요마령, 마궁 내부.
조웅가는 원강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 풍관아는 꼼꼼히 원강의 방 청소를 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보통 하인들이 하는 잡일을 하고 있었다.
반면, 원강은 서탁에 앉아 마궁 내부 인원 상황을 살피는 중이었다.
이건 원강의 장기였고, 그가 최근 집중하고 있는 일이었다. 원강은 마궁 내부에 있는 인원 중 문제가 있는 사람을 찾아내려고 했다. 실제로 최근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기도 했다.
조웅가는 입구에 서서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를 바라보는 조웅가의 눈빛은 복잡했다. 도대체 저들이 무슨 사이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초려산장 쪽에서 받은 정보에 따르면, 둘은 이미 정을 통한 사이였다. 심지어 원강이 풍관아를 위해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상황을 보면, 두 사람은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각자의 방에서 따로 지내고 있기도 했다.
“무슨 일입니까?”
과연 원강은 경각심이 높은 사람이었다. 갑자기 뒤돌아 입구에 있는 조웅가를 발견하고는 먼저 운을 뗐다. 풍관아도 그제야 뒤돌아보았다.
이윽고 조웅가가 들어와 헛기침했다. 풍관아는 두 사람이 할 말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조용히 물그릇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조웅가는 천천히 서탁으로 다가갔다.
“너희 두 사람은 대체 뭐 하는 것이냐. 종이는 어차피 뚫렸다, 그 위에 새롭게 덧붙인다고 안 뚫린 것이 된다더냐? 아무리 멍청한 사람이라도 알겠다, 저 여인이 아무 불만도, 후회도 없이 네 곁에 있다는 건 이미 너를 따르겠다고 결정한 것이 아니더냐. 그러니 더는 스스로에게 여한을 남기지 말아라.”
원강은 무표정한 얼굴로 반문했다.
“심심하십니까?”
“하하!”
소리 내 웃은 조웅가가 서탁 위 마궁 인물관계도가 적힌 명단을 들었다.
“네게 이런 재주가 있을 줄은 몰랐군, 또 뭔가를 발견했느냐?”
“할 말이 있으면 하십시오.”
“참 재미없는 사람이다. 인간미가 없어. 그 사람이 보낸 것이다.”
조웅가는 혀를 차고 소매에서 밀서를 꺼내 서탁에 던져주었다.
원강은 서신을 들어 내용을 살펴보았다. 익숙한 초서였다. 우유도가 직접 작성한 밀서였다. 곧 내용을 자세히 살핀 그는 서신을 태워버렸다.
조웅가가 조용히 물었다.
“무슨 상황이냐?”
원강은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우유도의 서신에 따르면 그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었기에 숨기지 않고 서신 내용을 조용히 알려주었다.
“풍관아에게 나조를 찾아가게 하라고?”
조웅가가 중얼거렸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3일, 도야가 요구한 시간입니다. 3일 내로 전 반드시 그 여인을 다시 데려와야 합니다. 너무 이르게도, 너무 늦게도 안 됩니다. 이 3일 안에 전 반드시 돌아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조웅가가 다시 의아한 눈으로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는 것이냐?”
“모르겠습니다. 도야가 이렇게 안배했다면, 분명 그 이유가 있겠지요. 저는 최선을 다해 집행할 뿐입니다. 그쪽은 문제없습니까?”
원강은 정말 우유도가 이런 일을 지시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우유도가 안배한 일이라면 안심할 수 있었다. 우유도가 자신을 해칠 리 없다는 걸, 원강 스스로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조웅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간단한 일이다. 문제 될 것 없지. 하지만 그 여인이 중요하다. 그 여인의 협조가 있어야 하니까.”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제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좋아, 나머지는 내가 준비하지.”
조웅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빠르게 그곳을 빠져나갔다.